叔孫武叔毁仲尼 子貢曰 無以爲也 仲尼不可毁也 他人之賢者 丘陵也 猶可踰也 仲尼 日月也 無得而踰焉 人雖欲自絶 其何傷於日月乎 多見其不知量也 숙손무숙이 중니(공자)를 헐뜯거늘 자공이 말하기를, “그러지 마십시오. 중니는 헐뜯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현명함은 언덕만한 것이므로 그래도 넘을 수가 있지만,
중니는 해와 달과 같으므로 넘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비록 스스로 끊으려고 하지만 그것이 해와 달에게 무슨 손상이 되겠습니까, 다만 자기의 분수를 알지 못함을 보여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無以爲 猶言無用爲此 土高曰丘 大阜曰陵 日月 喩其至高 自絶 謂以謗毁自絶於孔子 할 수가 없다는 것은 이렇게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과 같다. 흙이 높으면 丘라고 하고, 큰 언덕을 陵이라고 한다. 해와 달은 그 지극히 높음을 비유한 것이다. 스스로 끊는다는 것은 비방하고 훼손함으로써 공자에게서 스스로를 단절하는 것을 말한다.
南軒張氏曰 子貢善喩 如宮牆日月之喩者 可謂切矣 夫丘陵高可踰 太山雖高然猶有可踰之理 至於日月之行天 則孰得而踰之哉 人之議日月者 初何損於日月之明 徒爲自絶於日月而已矣 남헌장씨가 말하길, “자공은 비유를 잘하였는데, 예컨대 궁의 담장과 해와 달로 비유한 것은 절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릇 구릉이 높아도 뛰어넘을 수 있고, 태산이 비록 높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래도 뛰어넘을 수 있는 이치는 있는 것이다. 해와 달이 하늘을 운행함에 이르면, 누가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 해와 달을 의논하는 것이 처음부터 해와 달의 밝음에 무슨 손상을 주겠는가? 그저 헛되이 해와 달에게서 스스로를 끊어내는 것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聖人之心 如化工之生物 未嘗不欲物物而生之也 聖人未嘗有絶人之心 彼毁謗者 自節於聖人耳 호씨가 말하길, “성인의 마음은 조화옹이 만물을 내는 것과 같아서, 일찍이 사물마다 살리고자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성인은 일찍이 사람을 끊어내려는 마음을 가진 적이 없고, 저 훼손하고 비방하는 자들이 성인에게서 자신을 끊어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多 與祗同 適也 不知量 謂不自知其分量. 多는 祗와 같은데, 단지라는 말이다. 헤아릴 줄 모른다는 것은 스스로 제 분수와 도량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厚齋馮氏曰 量謂斛斗升合小大不同也 후재풍씨가 말하길, “量은 斛(곡, 10말), 말, 되, 홉(合: 되의 1/10)의 그 크고 작음이 같지 않음을 말한다.”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聖人有聖人之分量 賢人有賢人之分量 愚人有愚人之分量 州仇不自知其庸愚之分量 宜其不足以知聖人之分量也 孔子之道 如日月行天 萬古常明 雖有州仇之毁 何損於明 子貢以何傷日月曉譬之 可謂智足以知聖人而警之深矣 신안진씨가 말하길, “성인에게는 성인의 分量(분수와 도량)이 있고, 현인에게는 현인의 분량이 있으며,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사람의 분량이 있다. 주구는 자신의 용속하고 어리석은 분량을 스스로 알지 못하였으니, 그가 성인의 분량을 알기에 부족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공자의 도는 마치 해와 달이 하늘을 운행하는 것과 같아서 만고에 항상 밝았으니, 비록 주구가 훼손한다 할지라도, 그 밝음에 무슨 손상이 될 것인가? 자공은 ‘해와 달에 무슨 손상이 되겠는가?’라는 말로써 타일렀(曉譬)으니, 그 지혜는 성인을 알기에 충분하였고, 자신을 경계함이 깊었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