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개론
산상수훈
산상수훈(The Sermon on the Mount, 山上垂訓)은 마태복음 5-7장에 걸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말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전(全) 교훈의 요약」, 「천국의 대헌장Magna Charta」, 「그리스도교의 대헌장」, 「황금률The golden rule of morality」, 「성경 중의 성경」, 「천국시민헌장」, 「천국의 가신(嘉信; 아름다운 편지)」, 「천국의 복음」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산상수훈은 주후 4세기 초 성(聖) 어거스틴 이후부터 산에서 설교하신 말씀이라는 뜻에서 산상설교(山上說敎), 가르쳐서 본받게 한다는 뜻에서 산상교훈(山上敎訓), 계속하여 가르쳐 후세에 전한다는 뜻에서 산상수훈(山上垂訓), 보배와 같은 말씀이라는 뜻에서 산상보훈(山上寶訓) 등의 명칭으로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후대의 사람들이 마태복음 5-7장에 대해서 산상수훈, 산상설교, 산상교훈, 산상보훈 등의 이름을 부여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산상수훈이라는 말이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전해진 가르침의 핵심
산상수훈은 설교와 담화(談話) 등의 형식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3년의 공생애를 통해 전하신 수많은 설교와 제자들과 대화하시며 가르치신 어록 등의 자료들을 꼼꼼하게 수집하고 편집해서 한 편의 설교집으로 정리, 마태복음 5∼7장에 가장 완전한 형태로 수록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누가복음 등 공관복음을 보면, 마태가 산상수훈에 집약해서 기록한 내용이 복음서의 여러 곳에서 반복되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산상수훈이 산 위에서 단 한 번 일회적으로 제자들에게 선포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질 수 있도록 여러 번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가르쳐졌던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은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모든 가르침들이 집약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산상수훈은 기독교 신앙과 윤리의 규범적 기초이며, 대헌장과 같은 천국의 가장 기본적인 골격이 되는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나라의 백성이 진정으로 그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법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면, 하나님 나라의 법을 준수하며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 법의 통치를 받는 자만이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처벌을 받거나, 그 나라를 떠나야 합니다. 산상수훈은 하나님 나라의 법을 가장 온전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산상수훈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산상수훈의 구성
산상수훈은 크게 서론(마5:1-2), 팔복(5:3-12), 빛과 소금의 비유(5:13-16), 6가지 반제와 율법의 완성(5:17-48), 세 가지 경건의 훈련(마6:1-18), 그리스도인의 생활윤리(마6:19-7:27), 실천의 중요성(마7:15-27), 결론(마7:28-29)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팔복, 빛과 소금의 비유, 6가지 반제Antithese(율법과 새 법), 그리스도교 기도의 모범인 주기도문The Lord's prayer, 세 가지 경건 훈련(기도, 금식, 구제)의 올바른 지침, 황금률,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가치관, 말씀을 실천하는 삶 등의 중요한 가르침들이 산상수훈에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산상수훈을 공부하며 그리스도의 제자가 가져야 할 올바른 삶의 지침과 인생관, 가치관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산상수훈은 천국 백성이 가져야 할 올바른 마음과 삶에 대해서 정확한 표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산상수훈의 모든 내용은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먼저 삶으로 실천하심으로 온전히 이루신 세계를 말씀으로 풀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진정한 천국의 법이라는 것을 삶을 통해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6가지 반제
마태는 특히 산상수훈에서 6가지 반제(성내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이혼하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 보복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를 통해 예수님을 모세를 능가하는 율법 선생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모세를 가장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로 생각했던 당시 유대인들에게 나사렛 출신의 목수에 불과했던 예수를 모세보다 더 크고 위대한 인물로, 더 나아가 그들이 오랜 시간동안 기다려왔던 그리스도로 선포한 것은 매우 도전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6가지 반제를 통해서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탁월한 해석은 물론, 그것을 기초로 한 차원 더 깊게 열려진 천국의 새 법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이 모세의 율법을 완성한 율법 선생이요 진정한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마태는 6가지 반제 중에서 원수 사랑을 중요하게 언급하며, 이것이 율법의 완성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써 원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통해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해진다]”(마4:58)고 했습니다. 마태는 하나님을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시는 분으로 그렸습니다(마5:45). 그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임하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를 알리기를 원했고, 그것을 그리스도인들이 닮아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기존의 율법이 죄에 대한 벌을 가르쳤다면, 예수님께서는 새 법을 통해서 죄에 대한 용서라는 새로운 차원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것은 산상수훈을 포함한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이 됩니다. 이 원수 사랑을 통해서 위대한 복음의 시대가 열려진 것입니다.
행함의 중요성
또한 마태는 산상수훈 후반부에서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7:24-27)고 기록하며 산상수훈을 마치고 있습니다. 마태는 「지혜로운 건축자와 어리석은 건축자 비유」를 통해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산상수훈을 결론지었습니다.
그리고 산상수훈 전체 내용 가운데 무려 6분의 1(92절 중 15절) 가량을 통해서 행함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은 매우 소중한 가르침이지만, 이것이 삶의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고 단순히 지적 유희를 제공하는 수준에 그치고 만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닫고, 마음으로 공감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행할 때 진정으로 천국의 백성이 될 수 있고 말씀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행함으로, 실천과 적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가르침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울 뿐 아니라 그것을 삶에서 실천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산상설교와 평지설교
누가복음 6장 20절에서 4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해주신 말씀이 산상수훈과 약간은 다르지만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전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열두 제자를 뽑으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누가복음 6장 12-1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셔서 밤이 되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신 후에 열두 제자를 뽑으셨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점점 많은 제자들이 주님께 나아오자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도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은 제자들에게 전해진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이 말씀을 전하실 때의 정황에 대해서 “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눅6:17)라고 했습니다. 마태가 「산」에서 전했다고 하는 말씀을, 누가는 「평지」에서 전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의 기록은 산상설교, 누가의 기록은 평지설교라고 합니다. 앞에서 산상수훈에서 가르친 말씀을 예수님께서 동일하게 여러 곳에서도 전했다고 언급했지만, ‘산’과 ‘평지’는 복음서의 저자인 마태와 누가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모세가 산에서 선포한 새 법
그렇다면 마태는 왜 예수님께서 산에서 말씀을 전한 것으로 기록했을까요? 이 안에는 매우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마태는 구약 시대의 상징적인 인물인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아서 [산]에서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전함으로 율법으로 다스려지는 [구약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참고 출19, 20장), 새로운 모세인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새 법]을 받아서 [산]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전함으로 새 법으로 다스려지는 [신약의 새 시대]를 여신 것으로 그려놓은 것입니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으로 인해 신약의 새 시대가 열려지는 감격을 너무나 장엄하고 아름답게 그렸습니다. 특히 새로운 모세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싶었습니다. 이 감격에 대해서 우리가 깊이 묵상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산상수훈을 통해서 그 천국의 [새 법]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배울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새로운 모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신 천국의 새 법을 깊이 알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의의 역사를 열어가는 새 시대의 주역이 되는 놀라운 축복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