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간 후의 날씨가 맑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불안하다.
오전에 흐리고 오후에 비예보가 있다.
태풍 후 맑은 하늘에 가을 분위기 느끼며 모후산 줄기에서 전남의 산군들을 보고
멀리 지리산까지 보일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로 늦으막이 유마사로 간다.
빗방울이 떨어져 산행을 포기하고 버너를 챙겼으니 어느 정자에서 놀고 올까도 생각한다.
유마사 절 뒤의 계곡에 들자하고 차를 주차장 위로 운전하는데
절 앞 삼거리에 쇠말둑을 박아 통제한다.
차를 두고 유마사쪽으로 오른다.
이파리가 떨어진 큰 나무들이 그래도 파랗다.
상륜부가 없는 혜련부도를 지나 등산로 없음이라고 씌여진 안내판을 통과한다.
금방 숨이 차 오른다. 땀이 난다.
난 산에 자주 가는 편이지만 여전히 힘들다.
개울을 건너 정자를지나는데 모기들이 따라온다.
빗방울이 떨어져 포기하자고 한다.
몇번 포기를 생각하며 정자를 그려본다.
그러면서도 쉬지 않고 꾸억꾸억 걷는다.
중간에 흐르는 물로 세수하는데 바보가 얼굴이 하얗다고 한다.
흐르는 물을 손으로 마시니 조금 낫다.
낙엽 흩탄리는 원두막에 앉아 간식을 먹는다. 배낭에 남은 스카치를 한모금 마시니 힘이 난다.
비가 내리다가 그친다. 모기를 쫒다가 다시 일어나 올라간다.
용문재까지의 멀지 않은 길을 힘들게 올라간다.
알콜 탓인지 꾸준히 걸어진다. 바보는 두에 쳐진다.
용문재 정자엔 두 팀의 부부가 점심인지 간식인지를 먹고 있다.
모두 정상으로 가기는 포기한 듯하다.
모노레일을 오른쪽으로 두고 능선을 걷는다.
생각보다 멀다. 바보는 뒤에서 불랴댄다.
비가 쏟아진다. 차분히 맞는다. 비는 부드럽고 옆에서 내려치는 비도 부드럽다.
바위를 올라 바보를 기다린다. 얼굴에 비가 흘러내린다.
바보도 힘들다면서도 비맞는게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비는 애무하듯이 온기를 머금고 있다. 비는 오도가 아니다.
내가 힘들어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 걷는다. 며느리밥풀 앞에서 원추리 앞에서 바보가 오길 기다린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더니 전화를 한다.
강우관측소를 지나 정상 앞에 서서 기다리며 사진을 찍어준다.
바보의 머리도 다 젖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없다. 셀카를 찍고 중봉쪽으로 내려간다.
비가 갠 사이 중봉을 지나 철철바위로 내려가는데 가파른 길이 길다.
지나며 가끔 본적이 있지만 폭우로 암자터의 흔적이 더 드러난다.
철철바위 위의 계곡엔 다리가 놓였다.
물로 내려가 신발을 벗고 씻다가 다 벗고 물로 들어간다. 시원하다.
철철바위를 지나 폭우로 변한 계곡길을 따라 내려온다.
예전 내가 다니던 길의 흔적이 가물하다.
숯가마의 흔적을 본다.
원두막에서 먹은 간식과 술 탓인지 배가 그리 고프지 않다.
내려가다 정자에서 불을 피워 닭도리탕을 뎁혀 점심을 먹자는데
바보는 다 젖었다고 얼른 집에 가잔다.
텐트 쳐 추위를 막아주겠다고 고집을 피우려다 그의 말에 따라
도곡하나로마트에 들렀다가 빵을 먹으며 광주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