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21(월) ayyeka
본문 / 시편19:1-14
제목 / 온누리에 비추이는 하나님의 말씀
1. 시작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람들과 아무리 많은 말을 나누어도 마음 가운데는 후회와 허탄함만 남을 뿐입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 안에 있을 때에 진정한 만족과 쉼이 있나이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주의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으로 씻어 자유하게 하시고 안식을 누리게 하옵소서.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2. 본문주해
시19: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19: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시19: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시19: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시19: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시19: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시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시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시19: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시19: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19: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시19: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19:13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시19: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편19편의 시인은 태양과 연관된 핵심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여 본문의 통일성을 이룬다.
“하나님의 계명은 순결하여(밝아서) 눈을 밝게 한다‘에서(8절) 계명(토라)이 ’밝은 태양의 영상‘으로 나타난다(잠6:23, 시119:105).
“해는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자 없도다”(6절)에서 태양은 ‘숨은’허물을 드러내는 율법과 동일한 기능을 하고 있다(12절). 사람이 태양을 피해 숨을 수 없듯이 주님의 율법을 피해 숨을 수 없다(삼하12:12, 사29:15-16, 렘23:24).
시인은 율법을 개인적으로 적용하면서 “주의 종으로 고범죄-고의로 범하는 죄-를 짓지 말게 하소서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라고 구한다(13절). 여기에서 ‘(죄짓지) 않게 하다’는 히브리어 원어로 ‘어둠’과 발음이 유사하며(‘차쇼크’-‘쵸세크’) ‘주장하다’는 천지창조에서 태양이 낮을 ‘자스리는 것’과 일치한다.
보다 넓은 성경의 맥락을 생각해 보면 이 시편의 전반부는 천지창조를 전하는 창세기1장을 후반부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준 이야기를 전하는 창세기 2-3장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시편19편은 창세기 1-3장을 시로서 새롭게 노래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 시편은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며 또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노래한다. 시인은 아담처럼 죄를 범하지 않고 오히려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 되기를 원한다’는 기도를 드린다.
1. 온 우주에 가득찬 하나님의 말씀(1-4절중)
첫 단락은 ‘저 하늘[에서 시작하여, ’세상 끝‘으로 마치고 있다. 이리하여 ’저 하늘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영광‘은 ’온 세상 끝까지‘ 울려 퍼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간 구조인 ’낮과 밤‘(2절), 공간 구조인 ’하늘, 창공‘(1절)과 ’온 누리, 세상 끝‘(4절)에 퍼져가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은 ’말씀‘과 ’지식‘으로 전해지지만(2절), ’말소리, 속삭임 소리‘도 없다(3절). 그러나 ’그 소리와 그 말씀‘은 온 세상에 울려 퍼진다.
2. 온 세상을 달리는 태양(4하-6절)
두 번째 단락은 ‘하늘’에서 시작하여 ‘하늘’로 마치고 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 창조의 걸작인 ‘태양’이 주인공이 된다. 태양은 여기에서 ‘신랑’과 ‘용사’와 ‘달리기 선수’로 비유되고 있다. 이 세 영상에서 ‘기쁨’이 공통점을 이룬다. 또한 태양은 ‘새 신랑’으로서 ‘장막’을 갖고 있으며 그곳은 바로 ‘뜨거운을 피하는 곳’과 연결된다(6절하).
3. 토라에 드러난 주의 영광(7-10절)
세 번째 단락에서는 하나님의 계시의 결정체인 ‘토라’가 나타난다. ‘토라’는 ‘율법, 증거, 교훈, 계명, 진리, 판단’으로 나타나며 생명과 지혜와 기쁨의 원천이 되고 있다. 토라는 그 가치에 있어서 ‘순금 보다 귀하며’ ‘송이 꿀 보다 더 달다’(10절). 또한 토라는 그 효능에 있어서 ‘생기, 지혜, 기쁨, 밝은 눈’을 우리에게 준다(7-8절).
세 번째 단락의 주제가 되는 토라는 1장에 있는 ‘말씀’과 ‘지식’에 이어지며 두 번째 단락에서 ‘그 뜨거움을 피할 자 없다’와 연결된다(6절). 또한 토라가 마음에 주는 ‘기쁨’은 신랑과 용사의 ‘기쁨’과 이어지고 있다(5절). 토라가 ‘눈을 밝혀 주는 능력’(8절)은 태양이 온 세상을 비추는 것과 용어상의 일치를 이룬다.
4. 죄 고백과 헌신(11-14절)
마지막 단락은 ‘주의 종’(11,13절)로 수미 일치를 이루며 ‘큰 상’(11절), ‘끔찍한 죄’(13절), ‘잘못’(12절), ‘숨겨진 죄’(12절), ‘죄와 고범죄’(13절), ‘반석과 구속자’(14절), ‘입의 말과 마음의 생각’(14절)으로 수 많은 댓구를 이루고 있다. 이리하여 시인은 ‘온 우주’(첫 단락), ‘태양’(두 번째 단락), ‘토라’(세 번째 단락)를 거쳐 자신의 내면 세계인 ‘ 내 마음의 생각’으로 들어오고 있다. 만약 마지막 단락이 없었다면 이 시편은 온 우주와 토라를 살피고 관통하면서도 자신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제사장’의 모습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토라를 통하여 ‘빛을 받고’(11절), ‘자신의 잘못과 숨겨진 죄’까지 발견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죄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은혜를 구하며(13절), 자신의 ‘말’과 ‘생각’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시기를 ‘구하는데까지 나아간다(14절).
3. 묵상
태양빛이 비추지 않는 음지는 항상 습하고, 어둡고 우울하고 춥고 외롭다. 내 길의 등이요 내 발의 빛이 되신 주의 말씀이 내 인생을 비추어주시지 않으면, 내가 빛되신 주의 말씀 안에 있지 않으면 내 삶에는 어떠한 밝음도 따뜻함도 생명의 기운도 없다. 하루 중 가장 힘든 시간이 말씀 앞에 나오기 바로 직전인 것 같다. 가슴이 답답하고 어둡고 우울하고 외롭다. 그런데 말씀 앞에 서서 그 말씀을 묵상하면 아침의 태양 빛이 떠올라 모든 어두움과 습기와 냉기를 몰아내듯이 내 마음 속에 비추어온다. 빛이 비추어 내 속의 어두움을 비추어 내시는 것은 때로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 빛이 비추이자 말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의 풍성함이 나를 살려주심으로 부끄러움이 변하여 기쁨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앞에서 감출 수 있는 죄가 없다. 태양이 떠오르면 그 열기를 피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내 안의 모든 죄와 허탄함과 어두움이 물러간다.
생각해 보면 나는 온 하늘과 피조물 가운데 충만한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그 생명의 빛을 피해 죄의 음습함과 수치와 부끄러움 속에 웅크려 숨어 있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사람의 눈 만 피하면 모든 것을 감추고 괜찮은 사람으로 보란 듯이 성공을 추구하며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말씀의 빛 아래서 나의 우둔함이 드러나고 내 마음의 모든 우울함과 수치와 부끄러움이 밝혀짐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의 말씀의 빛 아래 있지 않으면 나는 날마다 죄의 비참함 가운데 고통하며 신음할 수 밖에 없는 자이다. 그런데 날마다 나를 말씀 앞으로 불러 주셔서 나의 허물과 죄를 그 말씀의 빛으로 비추어 주시고 그 말씀 앞에서 생명의 영으로 다시 살려 주심이 놀랍고 감사하다.
죄짓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 자칫 그것이 나의 의가 되어지고 나의 자랑이 되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자유함과 기쁨을 누리는 방법은 날마다 그 빛되신 말씀 앞에 나아오는 것이다.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강단에 엎드려 있으면 지하 본당의 강단 위로 열려있는 창을 통해 햇빛이 한 줄기 들어온다. 그 빛 아래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기쁨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른다. 무덤과 같은 그 자리에서 하늘을 향해 열린 창으로 빛이 내려올 때 나는 송이꿀 보다 더 단 생명의 말씀을 먹는 특권을 매일매일 누린다.
그 자리에서 빛으로 찾아오셔서 나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나의 무능을 발견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날마다 말씀의 인도함을 받는다. 그 무덤의 자리가 바로 나의 상급이다.
매일 매일 태양 빛과 같은 말씀으로 나를 비추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몸으로 바로 느낄 수 있는 이 자리가 너무나도 귀하다. 나를 날마다 무덤으로 인도하셔서 새벽 동이 터오를 때마다 하늘의 빛으로 내게 임하셔서 말씀하시는 주님을 매일 경험할 수 밖에 없도록 생명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4. 나의 결단과 기도
하나님! 날마다 주의 말씀의 빛으로 내 안의 비참함과 우울함과 슬픔을 비추어 하늘의 기쁨과 생명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의 의지로는 주의 말씀의 빛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었고 그 말씀을 듣기도 거절하는 자였습니다. 나의 완악함을 아시는 주께서 나를 날마다 무덤으로 내려갈 수 밖에 없도록 인도하심이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나를 위해 열어놓으신 그 생명의 길로 예수의 보혈을 힘입어 매일매일 담대히 나아가게 하시고 그 생명의 자리에서 하늘의 생명과 기쁨을 풍성히 누리게 하옵소서. 이 생명과 기쁨을 사랑하는 성도들과 함께 나누어 생명의 공동체가 날마다 주의 말씀의 빛 앞으로 나아와 그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내 안에 착한 일을 이루신 주님을 의지하고 찬송합니다.
생명의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