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날 일기
추석을 이틀 앞둔 어제 아침(2007. 9. 23. 일요일) 일찌감치 서해안 고향으로 내려갔다.
경부고속도로를 타다가 경기도 안성분기점에서 평택 - 안성간 고속도로로 진로를 바꿨다.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를 빠져나와 홍성군 서부면 남당리 남당항으로 나갔다.
추석 쇠려고 고향 내려가는 길목에서 에둘렀는지 많은 사람들이 갯비릿내 나는 포구와 갯바닥에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어항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잔챙이 물고기를 건져내고 있었다. 만조(滿潮)되어 바닷물이 넘실거릴 것 같은 틈새에도 갯물이 닿지 않은 갯바닥에서, 거무추레한 갯돌을 뒤로 제키면서 갯것(작은 게, 바지락 등)을 잡는 여행자들도 눈에 띄었다.
'당신네들, 무분별한 외지인들이 숱하게 갯바닥을 파헤치며 갯돌을 뒤져서 어패류(魚貝類)의 종자까지도 다 잡았을 터이니 지금쯤 그 갯바다에 무엇이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들의 소행이 조금은 미웠다.
남당리항 전어축제장.
왕새우(대하 大蝦)와 전어를 구워 먹은 뒤 홍보(홍성 - 보령)간사지, 보령시 오천항을 지나서 오천면 갈매못 성지(聖地)에 들렀다.
갈매못 성지에서 안내판을 읽었다. 구한말 1866년 프랑스인 다블뤼 주교신부와 한국인 신자 등 다섯 명이 충청수영 모래사장에서 참형되었다.*
보령시 대천항, 대천해수욕장, 남포방조제를 거쳐 무창포로 내달렸다.
무창포해수욕장에서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았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한적한 고향인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마을(곶뿌래) 그리고 밤.
시골집 바깥마당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서 있는 전봇대에서는 백열등이 희미한 불빛을 내뿜었다. 며느리밑씻개(풀)과 억새 등 잡초로 쑥대밭이 된 텃밭에서는 풀벌레 소리가 스르렁거렸으며, 이따금 어디선가 개구리 소리도 들렸다.
가을비가 끈질기게 내리면서 낡은 함석지붕을 피아노 건반처럼 두들겼다.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소리, 낙수 소리가 무척이나 가라앉았다, 마음까지도.
비를 피해서 대문 앞에 놔 둔 의자에 걸터앉았다. 빗속에 묻어오는 시원한 공기, 바람냄새, 어둠들이 한없이 조용했다. 모든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하염없는 밤을 보냈다.
잠을 자다가 밖으로 나온 아내에게 나는 새벽 두 시가 가깝도록 하늘, 별,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도란도란 들려주었다.
'별의 숫자는 얼마쯤 됄까요?'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1934년생)의 '코스모스(Cosmos)' 천문학 책에 따르면 별의 숫자는 100억의 1백조 쯤 된다고 한다. 아마도 10자리 숫자가 22개 된다고 추정하는데도 나는 그게 얼마나 많은지를 상상도 못한다.
도대체 인간의 과학지식이 얼마쯤이며 그것 또한 얼마나 정확할까? 작은 개미에게 천문학을 이해시키는 것과 같을까, 작은 시냇가에 사는 송사리에게 태평양의 바닷물을 다 들이마시게 하는 것과 같을까? 하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우주의 끝은 神의 영역을 넘는다'고 말해도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다소곳이 듣기만 했다.
추석 한가위를 하루 앞둔 오늘은 9월 24일.
밭 언덕에 서 있는 밤나무를 보았다. 밤송이가 조금씩 터지고 있었다. 날카로운 가시가 박힌 틈새가 살짝 벌어지면서 알밤이 보였다. 여물어가는 밤톨을 보노라면 마치 행실이 단단한 여인네를 연상케 한다. 치마말기를 단단히 움켜쥔 청상과부 같다.
점심때다.
추석 차례 준비로 서울로 일찍 올라오려고 식구들을 재촉하다가 자동차 옆에 선 어머니를 보았다. 골이 깊게 팬, 주름진 얼굴, 눈자위 눈시울을 살짝 적신 어머니의 애잔한 모습을 보았다. 간밤에 내려온 자식이 겨우 하룻밤만 보낸 뒤 당신만 남겨놓은 채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현실이 야속했으리라. 큰손녀 큰손자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자못 서글펐으리라.
평생을 외롭게 살아온 당신. 이번에도 어머니는 자식들과 함께 올라올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젊은 날부터 차멀미를 심하게 한 탓으로 고향집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지금은 여든아홉 살 극노인이니 말해 무엇하리.
어머니가 밤송이를 털고, 줍고, 발라서 나한테 준 알밤을 서울로 가져왔다.
칼로 밤을 쳤다. 무딘 칼날인데도 햇밤 껍데기는 잘 벗겨지고 속껍질도 잘 깎였다.
내일 아침 한가위 추석 차례상에 올리면 조상님이 풋과일 햇밤 맛을 보시리라.
1박2일간의 짧은 일정이라도 나는 아내, 두 자식들과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잠깐씩이라도 에둘렀던 중부 서해안 갯바다 여행지의 이모저모를 간략하게 소개했다.
크나큰 집에서 혼자서 추석을 혼자서 쇠야 하는 늙은 어머니를 뵙고는 다음날 서울로 되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이렇게 일기를 썼다.
* 1866년 병인양요 천주교 박해사건.
흥성 대원군(이하응)은 병인양요 때 8,000여 명의 천주교도와 9명의 프랑스 신부를 처형.
갈매못 성지는 참혹한 역사의 아픔을 안고 있으며, 아름다운 바다(오천항)를 바라보는 곳에 있다.
조선조 26대 고종(이명복)과 민치록의 딸과의 결혼이 예정되었기에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사형지로 선택.
프랑스인 3명, 조선인 2명을 한양에서 이곳까지 끌고와 참수(1866년 3월 30일).
2007. 9. 24. 월요일.
//////////////////////////////////////////////////////
갈매못 성지
뒤로 오천항 바다가 살짝 보인다(자연풍광이 아름다운 사형지?).
무창포 갯바다.
물이 많이 쓰면 이처럼 해산물을 줍는다.
위 사진 두 개는 인터넷에서 임의로 퍼왔다.
현지 모습을 보여주려고... 용서하실 게다.
첫댓글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고향 내려가는 길목에 들렀던 여행기.
인생말년에 다달은 어머니를 모시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글이 되었네요.
위 글 쓴 다음해 여름철부터는 그 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했지요.
저는 퇴직했기에... 몇 해 둘이서 함께 살았지요.
엄니에 대한 빚을 쬐금, 쬐금이라도 갚았기에...
한 달 뒤 시향에 고향 내려가면 엄니 산소에 들러야겠습니다.
글 더 다듬어야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어머니를 생각하시는 마음이 깊고 큽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세 아들 가운데 가장 못난 아들 하나만 남았다고 자탄하던 엄니...
정말로 외롭고 고단하게 한 평생을 보냈지요.
지금은 서해바다가 멀리서나마 내려다보이는 산 말랭이에 묻혔지요.
그저 하나의 산문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