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뭘할수 있을것 같아? 그렇게 생각한다면 정말 미련한 생각이야.
17
나연은 그가 벗어 놓은 옷에서 그의 소지품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마 항상 소지할꺼야, 그 물건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서.'
그의 말대로 승민이 소지품을 따로 두는곳은 없었다. 특히나 중요한것들은. 비즈니스맨들의 전유물인 만년필과,
절제된 슈트 속에서 빛을 발하는 로렉스 시계는 그의 필수품. 예외일때는 샤워할때나 행위를 할때다. 걸리적거림을
싫어해서 아끼던 것들도 행위 전만 되면 급하게 벗어 던져 버린다. 나연이 그의 소지품에 특별히 관심이 있던것도
아니었고 그것을 뒤지리라고는 어제만 해도 생각할수 없었던 일들이다. 중요한것은 지금 뒤지고 있는것이 결정적인
도움을 하게 되리라는것이다. 나연이 원하는건 단 하나, 그의 차 키. 채취과 남아있는 승민의 옷에선 그의 몸을 더듬고
있는것 같았다. 연거푸 헛손질을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셔츠의 주머니를 차근히 뒤졌다. 그녀 스스로 용의주도하게 도망친다면,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면. 이런 가정하에 그려지는 그의 형상화는 가히 악마나 다름없다. 어떤 방법을 쓰던 그녀를 찾아내어
창살없는 감옥을 더 견고히 다질것이다. 실패 시에, 다시 기회가 돌아올일은 없음을 그녀는 잘 알고 있다. 무조건 성공해야 했다.
찾았다!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꺼낸 은빛의 열쇠를 들고 나연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운전해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거의 5~6개월 정도.
운이 나빠 교통경찰에게라도 걸리면, 운전증도 없고 민증도 없는데 최악의 상황을 나중에 고려하기로 하고 나연은 물건을 집어들었다.
아직까지 승민이 샤워를 마치지 않아 물소리가 이어진다. 그것에 안심하고 쥐죽은듯 발을 옮겼다.
'안심하긴 일러. 그 녀석 그래뵈도 철처하니까.'
"거기서 뭐해."
물소리에 내심 안심하고 있었던 그녀는 등 뒤에서 승민의 말소리가 들리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무래도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탓인지 샤워 도중 나온것 같았다. 중타올을 골반에 두르고 물기는 닦지 않아 온통 물이다. 나연은 자기도 모르게 오른손에
쥔 물건을 뺏기고 싶지 않은듯 꽉 쥐었다. 승민은 나연의 오른 손을 유심히 쳐다 보며,
"손에 든건 뭐야."
"아, 아무것도."
"이리내."
"싫어!"
겁에 질린 나연이 악바구니로 소리치자 나연의 불안정함을 눈치챘다. 승민은 되도록 평정을 유지하며 한발자국씩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내 놔!"
간단명료한 대시지만 한 옥타브 낮아진 목소리가 섬뜩하다. 나연은 도리질을 치며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위협스럽게 다가온
그는 나연의 손목을 휘어 잡더니 상대도 안되는 힘으로 엄지, 검지 중지를 차례대로 벌렸다. 아무리 해도 남자의 완력은 이길수
없다는게 한스러웠다. 벌려진 손가락 사이로 차 키의 형체가 들어나자 그의 반듯한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나연은 마지막
희망을 쉽게 뺏겨버리고 망연자실했다. 승민은 나연의 목덜미를 부여잡아 끌어당겼다. 벗어나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시
감금당하고. 스스로 목을 조를지도 모르는 그 상황은. 나연은 끌려가지 않으려 현관 입구를 잡았다. 아등바등 버티는 나연.
승민이 나연의 허리를 잡더니 번쩍 들어 올렸다. 나연은 팔등을 할퀴고 때렸다. 거센 반항에도 승민은 태연하다. 마지막 수단으로
고개를 돌려 승민의 어깨를 사납게 물어 뜯었다. 그제서야 승민도 반응을 나타낸다. 악! 하는 비명과 함께 나연이 나동그라졌다.
나연은 엉금엉금 기어 현관 문고리를 돌렸다. 살짝 열렸지만 나연이 빠져 나가기도 전에 어깨가 잡힌다.
"어딜 가려고."
"이, 이것 놔!!"
"여기까지만 하자. 더 이상은 안 봐줘."
"싫어! 이거 놔!!"
그녀는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거세게 반항하던 중 결국 입구에 놔두었던 빈
와인병의 주둥이를 잡고 그의 머리에 명중했다. 순전히 충동적으로 그런것이다. 둔탐함과 날카로운 굉음이 나면서 승민이
머리에서 주륵하고 농도 짙은 피가 흘렀다. 박힌건지, 깨진건지 알리 없는 나연은 비명을 지르고서 물러났다. 승민의 눈초리는
끈질기게 쓰러지면서까지 나연을 놓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났다. 과장의 모습과 승민의 모습이 겹쳐진다.
승민의 손에서 열쇠를 빼내어 달음박질 쳤다. 모든게 슬로우모션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뛰고 있는데도 걷는것보다 늦는것 같았다.
차고에서 빼어난 몸매를 자랑하는 차의 차문을 열고서 자리에 앉았다. 말로는 침착해야 돼, 침착해야 돼! 를 연발하지만 정작
침착해질수 없는 나연이다. 차 키를 맞추고 시동을 걸었다. 아무리 키를 돌려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긴장과 초조함이 그녀를
방해하고 있었다.
-쾅
검은색 차 트렁크가 울렁였다. 나연이 깜짝 놀라 백미러를 보니 승민이 피칠을 하고선 차를 두들기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운전석으로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나연은 질겁하며 어거지로 차 키를 휘돌렸다.
-쾅쾅
가볍지 않은 부상에도 무지막지한 힘으로 차를 두들기는 승민. 운전석 옆의 창에 들러붙어 창문을 두들겨 나연은 끝까지
눈을 맞추지 않고 시동을 걸기 여념이 없다. 다행히 드디어 엔진이 움직였다. 나연은 기다렸다는듯 액셀을 밟았다. 창틀에
매달리듯 딸려 오자 그녀는 급브레이크를 밟자 승민의 몸이 앞으로 나가떨어 버렸다. 나연은 이 틈을 이용해 핸들을 꺾고 가속
페달을 바닥까지 밟았다. 백미러에서 비틀거리며 쫓아오는 승민이 보인다.
점점 멀어지고 점으로 보이고 점마저로도 보이지 않을때, 완전히 사라졌을때야 비로소 백미러를 확인하지 않을수 있었지만
안심할순 없었다.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튀어 나와 목덜미를 잡을것 같았다.
'25번 고속도로를 타고 빠져 나와서 변두리에 차를 버려. 도난차량으로 등록될게 뻔하거든. 타고 다니다간 사방에 감시카메라
찍혀서 행적 남기는 꼴이 되잖아.'
말 잘듣는 모범생처럼 착실히 이행했다. 25번 고속도로를 타고 달렸다. 내린 창에서 순식간에 짜릿함을 만끽하며 두려움을
벗으려 용을 쓰다싶이 굴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무사하겠지? 홀로 일어설 정도였으니까 무사할꺼야.
스스로 그렇게밖에 할수 없었던 제 자신을 이해하면서도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 제 자신을 질책했다.
'택시를 타서 기차역으로 간 뒤에 서울로 와.'
'하지만 저 상황이 안좋아서, 인적이 많은 곳은…'
'네 사정은 다 알고 있어. 나만 믿어. 서울이 오히려 안전하다니까.'
서울로 도착 뒤에 이어질 의식주의 기본적인 생활들은 그가 맡아 책임져주기로 했다.
"흑- 흐윽-"
아니다. 강준호, 그 사람에게도 갈수 없었다. 준호는 그의 눈을 보지 못했다. 네가 벗어날 수 있을것 같애?
희번뜩 거리는 두 눈은 집념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차마 그 눈은 잊을수 없을 것이다. 그 눈을 본 지금에서야 절실하게 깨달았다.
준호가 연관되면 언젠가 탄로날것이다. 위험에 빠지는건 그녀 혼자만이 아니게 된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한탄과
서러움이 밀려 들었다. 그에 대한 배신의 행위, 어떤 댓가가 치러질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녀에겐 뒤로 빠질 길도 없었고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갈 길도 없어 보였다.
한참을 달려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지방에 다다르자 그녀는 차를 멈춰 세웠다. 사람이 적은 지방에 작은 도시라도
요즘같은 전자세대에 공중전화를 찾기는 힘든 일이었다. 얼마간 찾아 헤맨뒤에야 겨우 허름한 공중전화 부스가 눈에 띄였다.
한쪽 주머니엔 준호가 준 현금이, 다른쪽 주머니에는 준호의 핸드폰 번호가 적힌 쪽지가 있었다. 쪽지를 꺼내들고 다이얼을 꾹꾹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여보세요? 하고 단조로운 목소리가 흘렀다.
"저에요. 김나연."
[오~ 그래, 어떻게 됐어?]
"서울로는 못갈거 같애요."
[그게 무슨 말이야? 실패한거야? 가만, 그렇다면 전화할수도 없을텐데. 이거 공중전화 번호지? 그럼 성공한거 아니야?
왜 서울로 못온다는거야?]
윙윙- 머리가 울리고 눈물이 앞을 가려. 히끅거리며 나연은 말을 이었다.
"지금 별장으로 가보세요. 제가… 제가 병으로 승민을 쳤어요. 피가 많이 났어요."
[너…어쩌려고. 서울로 와. 당분간 살곳도 마련해 놨어. 승민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아니오. 제 일은 이제 제가 알아서 할께요."
[경제적인 도움이 되주려 했어. 그런데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해? 널 끌어들였던건 나잖아!]
"죄송해요, 이만 끊어야 겠…어요."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못해 미안해하는 준호. 그녀는 그를 끌어들일수 없었다. 만약이라도 나중의 상황에서 준호는
아무 잘못이 없노라고 주장할수 있게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여보세요, 얌마! 끊지마!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수화기를 내려 놓자 짤랑- 동전이 내려간다.
음산하게 흐린 날씨와 스산한 바람, 폭풍이 일지도 모르겠다.
먹구름으로 짙게 깔린 바다가 음울하게 울고 있었다.
바다와 함께 그녀도 울었다.
카페 게시글
로맨스 소설 1.
[ 중편 ]
개미지옥 17
브로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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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237
08.08.17 21:58
댓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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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성공적인 탈출 콩글레츄레이션 유후훗! 승민이 지금 어쩌고 이쓰까잉 ㅋㅋㅋㅋ ㅜㅜㅜ 뭔가 불안불안 인제 나연이 어케요?
나연이 이제 어떻게 될지 다음편 함께 합시다! 히히 /
다음편이 궁금해요!~
다음편부터는 술술 써내려갈수 있도록! /
다음편 짱 궁금해요~
기대해주세요! 또 다른 등장인물이 드디어!
다른 등장인물.,,,ㅋㅋㅋ 남자겠죠..ㅋㅋㅋ
헉 승민이 지못미 ☞☜ 나연이 너무한거 아닌가요 ㅜㅜ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못미 ㅋㅋㅋ ㅜ;/ 병으로는 너무 심한건...아니죠! 승민인 한방 맞아도 될듯...(퍽) ㅜ
헉,,,,, 승민이 폭발하겠네....;;;;;
브로콜린님!!! 많이 바쁘신가봐요!!!ㅎㅎㅎ 힘내세요...
(댓글수정) 아닙니다 ㅜ 개강이 다되가니까 주위에서 술약속때문에 살짝 바빴던것뿐; 매일 집에 있답니다. 딴짓하느라 연재가 느려져서(...) 얼른쓸께요/ 폭발수위는...비밀? (퍽) 저도 고민. ㅜ
승민이는.....??? 폭발수위는 어느정도....???ㅋㅋ
재밌어여...ㅋ.ㅋㅋㅋㅋㅋ
고맙습니다ㅜ 다음편도 봐주실꺼죠? 히히 /
아정말 재미써요..승민이 나연을 잡으려하는 그과정과..잡히고나서의 그결과!! 넘궁금해요....빨리담편보구싶어요!!ㅋㅋ
이런! 너무 기대하시면 곤란해요! 실망안겨드리면 어쩔(...) 인연님 이시간까지 안자고 뭐하세요! 물론 저도 댓글이 궁금해 수시로 들락거리긴 하지만...(퍽)
..다시잡힐거같아여 ㅠㅠ.........
다시 잡힐까요? 말까요? 기대에 부응하도록 ㅋ ㅜ/
안되ㅠㅠㅠ승민이무서워요,잡히면나연이를가만두지 않을것만같은...ㅠㅠㅠ
표현력이 딸려서 더 무섭게 만들고 싶은데 맘처럼 안되고 있습니다 ㅜ; 나연이가 어떻게 될지...흠흠 /
소유욕 강한 소설을 오랜만에 만났네요 ㅎㅁㅎ 재밌어요! 나연인 정말 살인을 한건가요? ㅜ 작가님 건필하시궁, 힘내세요
한번 지켜봐주세요, 열심히 쓰고는 있습니다. 요즘 게으름펴서 그렇지 (퍽;)
승민이가 워쩌고 있을까나.....분명 노련한 머리로 전략을 세우고 있을꺼여...나연이 붙잡힐 듯
안돼!! 제가 도망시킬겁니다(...) 히히히
우연히 할게 돼서 읽는데 진짜 너무 재밌어요!!!!!!!!!!!!!!!! ㅜㅜ 나연이가 잡히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 ㅜㅜ 진짜 넘넘 재밌어요!!!! 18편 언능 올려주세여!!!
18편 쿨럭. 저 요즘 너무 농땡이 치는 바람에 ; 얼른 데리고 올께요/
아 손에 땀나 ㅠㅠ
공포영화같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흥미진진, 영화같아용! 승민이 그래두 죽거나 많이 다치면 안되는데.ㅜㅜ
근데염// 진짜 공포영화같이 무서워염..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