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비숲1을 정주행 하다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눈을 뜨니 벌써 저녁이 다 되어 있었다.
주변을 더듬어 휴대폰을 확인했다. 2월.
엥. 2월?
지금은 3월 말인데 웬 2월?
휴대폰이 고장났나? 데이터가 안 터지나?
졸린 눈을 비비며 캘린더 앱을 켜, 휴대폰 화면을 응시했다.
2017년 2월이었다.
믿을 수 없는 화면을 목격하고 후다닥 거실로 뛰쳐나갔다.
TV를 틀었다.
마침 뉴스 시간대였다.
사건사고 소식입니다. 오늘 오전, 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한 주택에서 강도 살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피해자는 40대 후반의 무직 남성인 박 모씨이며, 자택에서 살해된 채 발견되었습니다. 한편, 경찰은 곧바로 용의자 강 모씨를 추적해 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검거...
어.
나 이거 아는데.
뭐지?
뭐더라?
2017년 2월. 서울 용산구 후암동. 강도 살인 사건. 피해자 박 모씨....박 모씨... 박.... 박...무성? 그럼 용의자 강 모씨는....강진섭?
어?
이거.... 비숲 내용 아니야...?
다시 방으로 달려가 휴대폰 화면을 켰다.
포털사이트에 접속해 오늘의 사건사고 뉴스를 한 눈에 펼쳐보던 중, 방금 전 뉴스에서 본 사건의 기사를 발견했다.
사건 현장으로 보이는 집의 사진이 나타났다.
눈에 익은 곳이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 박무성의 자택.
뉴스 기사에서는 현장 근처에 있던 서울서부지검의 검사와 용산서 형사가 함께 용의자를 검거했다고도 쓰여있었다.
틀림없다.
비밀의숲 내용이었다.
그럼 내가 지금 비숲 세계 안에 들어와있다는 얘긴데......
등장인물의 얼굴이 하나하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황시목, 한여진, 이창준, 서동재, 영은수, 강원철, 윤세원, 이연재...
순간, 나는 번개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초반 내용이 어떻게 되더라? 강진섭이 잡힌 후에....자살한다.
그는 교도소에서 황시목을 고발하는 내용의 유서를 쓰고 목을 매 자살한다.
그가 강도를 한 건 맞지만, 박무성을 살해한 진범은 아니었다.
어떡하지?
황시목에게 알려야 하나?
나는 고민에 빠졌다.
황시목은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게 분명하다. 자칫했다간 그가 날 용의선상에 올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이창준이나 윤세원을 찾아가 설득했다가는 그들에게 그들의 계획을 모두 알고 있는 나부터 제거당할지 모른다.
그럼 영은수는 어떨까?
은수의 죽음을 슬퍼했던 시청자가 많았다.
혹시 내가 영은수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영은수는 4월 말에 죽는다. 지금은 2월 말이다.
2개월 동안의 시간이 있다.
그럼 내가 그동안에 벌어지는 나쁜 일들을 모두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가장 좋은 선택지는 한여진일 것이다.
내가 말이 안 되는 개소리를 한다고 해도, 여진이는 일단 들어줄 테니까.
나는 서둘러 용산서로 향했다.
한여진 형사는 갸우뚱한 표정을 짓고 나를 쳐다본다.
영 탐탁지 않은 얼굴이다. 나를 또라이로 보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래서, 범인을 보셨다고요? 피해자 집 뒤편에서?"
"네."
"확실해요?"
"확실해요."
"얼굴은?"
얼굴도 봤다고 말해야 한다. 그래야 사건이 여기서 끝난다.
윤세원 얼굴로 몽타주를 그리면 강진섭도 죽지 않을 거고, 김가영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
"...봤어요. 똑똑히."
한여진과 나는 바로 국과수로 이동했다.
나는 몽타주 프로그래머 앞에서 윤세원의 얼굴을 설명하다가 생각에 잠겼다.
가만 있자.... 그럼 영은수는 어떻게 죽었더라? 아. 한조.
한조는 어떡하지? 이창준이 여기서 잡히면 한조가 휘청할까?
천하의 이윤범이? 그럴 리 없다.
이윤범은 제 사위가 어떻게 되든, 극중에서처럼 방위 비리를 벌일 것이다.
기억해보자. 한조가 누구랑 공모하더라.
한조.....
방위 비리니까 국방부 장관.
그리고 일본 놈도 하나 있었는데.....더.....더 뭐였는데. 더.......
"반반하게 생겼네요?"
....반...! 더반!
"네?"
"용의자요. 제보자 분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린 몽타주인데, 되게 반반하게 생겼어. 진짜 이렇게 생겼어요?"
나는 대충 그렇다고 대답하고 국과수를 빠져나왔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나는 답을 정했다.
황시목에게 가자.
가서, 한조와 더반그룹, 그리고 방위 사업에 대한 얘기를 살짝 흘리자. 지금은 논의조차 되고있지 않은 이슈니까 지금 가서 황시목에게 다 말해준다한들 아무 소용이 없을 거다.
오히려 나를 의심쩍게 보겠지.
그러니까 정말 조금만 흘리자.
그 사건만 미리 낌새를 알고 저지하면 영은수가 죽지 않을 수 있다.
영은수는 황시목의 집에 들렀다가 황시목 집에 경고하고 나오는 우병준에게 오해 받아서 죽은 거니까.
이 시간이면 이미 퇴근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황시목의 퇴근은 보통 빠르지 않지만 지금은 2월 말이고,
황시목은 2월 말, 박무성 사건의 진범으로 강진섭을 이미 잡아놓았기 때문에 지금은 드라마를 통틀어 황시목이 가장 바쁘지 않은 시기이기도 했다.
그럼 퇴근을 했겠지?
나는 서부지검으로 가려던 발을 살짝 틀어, 그가 사는 공덕 래미안 아파트로 갔다.
경비실 벨을 눌러 1002호 입주민 손님으로 왔다고 했다. 호수를 대자, 경비원은 금방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곧장 엘리베이터에 올라 10층을 눌렀다.
10층. 황시목 집 앞에 도착해, 벨을 눌렀다.
사건 때문에 찾아온 거긴 하지만, 어쨌든 무려 드라마의 주인공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좀 떨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황시목이 나를 의심하면 어쩌나 싶은 생각도 했다.
하지만 한여진이 이미 나를 제보자로 알고 있으니, 황시목이 날 어떻게 해도 한여진이 내게 도움을 주지 않을까?
좋아. 화이팅. 떨지 말자.
어라.
여러 번 눌렀는데도 반응이 없다.
집에 없나?
아무래도 잘못 짚은 모양이다. 지검에서 야근을 하는 듯하다.
검찰청 들어가서 만나는 게 더 빡셀 텐데........
걱정하면서, 나는 발길을 돌려 다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어?
황시목 집의 문이 열렸다.
뭐야. 안에 있었던 건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급하게 열림버튼을 눌렀지만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닫혀,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에이... 다시 1층까지 갔다가 또 올라가야 되네.
아니 황시목은 안에 있으면 제깍제깍 문을 좀 열지 왜 늦게 열어선.........
............근데.... 황시목....이..... 키가..... 그렇게 크지 않을 텐데.....? 황시목....맞나?
아닌 것 같은데.....
근데 분명 황시목 집에서 사람이 나왔단 말이지.
그럼 당연히 황시목이겠.....
.....!
<1층입니다>
1층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경쾌한 알림과 함께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나는 이 장면을 알고 있다.
이미 본 적 있었다.
영은수가 그랬던 것처럼....
황시목 집에서 나오는 우병준을....내가 본 것이다.
나는 굳은 몸을 움직여 겨우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때.
계단에서 급하게 1층으로 내려오는 구둣발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그는 한조 이윤범의 최측근 비서인 우 실장, 우병준이었다.
첫댓글 내가 은수야.....?????? 헉 ㅠㅠㅠㅠ 너무 재밌다......
아니 시발....시목아 언제와 씌앙 나 죽어
내가 선택한 답안대로 흘러가서 1차소름 우병준본게 나라서 2차소름ㅠ
와 진짜 재밌다 이거
ㄱㅆ 여진이한테 말하는 선택지에서... 1번 5번 비슷한데 왜 굳이 두 개를 넣었냐 궁금할 것 같아서 적어봄
(엥?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는데...)
1번 선택지를 선택하면 한여진은 '나'도 의심하게 됨. 진범이 그냥 따로 있다는 말과 강도살인이 아니라는 말은 완전히 다른 말임. 아무것도 모르는 그 당시에는 진범 또한 강도살인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래서 1번을 말했다간 '나'도 한여진에게 의심을 살 것. 5번으로 가야 안전합니다...^^* 그럼 이만 설명충 ㄱㅆ 퇴장
아 미친 존맛 ;; ㅠㅠ 더주세요
헉 재밌다... 비숲 기강잡아..
소름 개쫄려
미친 개존잼이다
아개재밌다 근데 나 은수처럼 죽으면 어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