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역사소설^태종•이방원:⤵
태종•이방원 제18편 :평생 라이벌, 강씨와의 만남
(아버지의 여자와 어색한 첫 만남)
지친 몸을 이끌고 어머니 한 씨가 있는 재벽동 전장(田莊)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부터 일꾼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로 소란스러워야할 마당은 조용했다. 100여 명이 넘는 노복과 일꾼들은 뜬소문에 놀라 모두 도망가 버리고 없었다. 빈집처럼 썰렁했다. 휑하게 큰집에 어머니 한 씨가 나이 어린 누이동생들과 함께 있었다.
발 없는 말이 날개를 달았을까? 근거 없는 뜬소문이 바람에 실려 왔을까? “송도에는 난리가 났다.” “반란군이 왕을 죽였다.” “여진족이 쳐들어 왔다.” “명나라 군사가 압록강을 건너 개경으로 쳐들어온다.”
세월이 하수상하여 온갖 소문이 난무했다. 다음 왕이 덕을 잃고 혼탁한 세상이라 그럴까. 난신적자들이 세상을 어지럽혀서 그럴까. 삶에 지친 백성들이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세상, 한번 뒤집어 지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벼랑 끝 염원이 배어 있어 그럴까. 별의 별 유언비어가 온 마을을 흘러 넘쳤다.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 성 소문이다.
어머니 한씨 부인에게 아버지 이성계의 전갈을 전했다. 놀라지도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지아비를 전쟁터에 내보낸 장수의 아내로서 숱하게 겪었던 일이라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방원은 흩어졌던 노복을 불러모아 짐을 꾸렸다. 단발령을 넘어 함흥으로 가자. 포천에서 함흥 가는 길은 만만한 길이 아니다. 고개와 영마루를 두 개나 넘어야 한다. 국토의 등허리에서 뻗어내린 먹포령산맥에 걸쳐있는 단발령(斷髮嶺)을 넘어야 하고 철령을 넘어야 한다.
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가 개골산에 입산하기 위하여 삭발했던 고개가 단발령이며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을 있게 한 원초적인 원인을 제공한 고개가 철령이다. 철령이야 이성계의 근거지 함흥의 아성에 속하니 별로 걱정이 안 되지만 단발령은 통하는 관리도 없고 산적들의 소굴이 있는 무서운 고개다.
오죽하면 남서쪽 아랫마을 이름이 오량동이었을까. 대낮에도 고개를 넘으려면 닷냥을 주고 사람을 사서 장정들의 호위를 받으며 넘어야 하는 으스스한 고개다. 가는 여정은 민가가 드문드문하게 박혀있는 산악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촌락을 발견해도 오히려 비켜가야 한다. 신분이 노출되어 관군에게 붙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식사를 스스로 해결하고 노숙할 준비를 했다. 식량과 이부자리를 챙겨 우마차에 실었다. 전장에 남겠다는 노복들도 데리고 재벽동을 나섰다.
100여 명의 가솔들이 떠난 텅 빈집에 대문을 걸어 잠그던 한씨 부인이 입을 열었다. “너희 서모도 모시고 가야 하지 않느냐?” 이성계의 제2부인 강씨를 말한 것이다. 이 때 강씨는 철현 전장에 있었다. “네? 누구라구요?” 이방원의 말투는 퉁명스러웠다. “너희 서모 방석이 어머니 말이다?” '시앗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말이 있다. 한씨 부인에게 강씨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다. 여자의 한 사람으로서 지아비에 대한 독점욕이 한씨에겐들 없으랴.그렇지만 투기하지 않았다. 숙명이라 받아들였다. 피난 가는 위급한 상황에서 지아비의 여자를 걱정하는 것이다.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방원은 뜻밖의 문제에 봉착했다. 아버지에게 강씨에 대하여 특별히 지시받은 것이 없었다. 긴박한 상황이니 포천에 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함흥으로 가라는 얘기만 전해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강씨 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이다. 아버지 이성계는 하나하나 지적하지 않고 ‘어머니’라는 표현 속에 한씨와 강씨 두 여자를 당연히 포함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방원은 생모 한씨에 국한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난감했다. 이제까지는 아버지의 의사를 순순히 따르는 수동적인 삶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누구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 21세 청년은 결단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강씨는 나에게 무엇인가?” 아버지의 제2부인 씨는 아버지의 여자 일뿐 자신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생모 한씨의 가슴에 못을 박고 두 눈에 피눈물 나게 하는 몹쓸 여자로 각인되어 있었다.
개경에 여우같은 마누라를 떼어놓고 온 방원이에게 서모 강씨와의 동행은 결코 내키지 않았다. 데리고 가자는 어머니가 바보같이 보였다.
“그냥 가시지요.” “당치않은 소리를 하는구나. 아버지에게 불효가 따로 있다드냐? 강씨는 너희 아버지의 아이를 낳은 부인이다. 서모도 함께 모시고 가도록 하여라.” 두고 가는 것은 아버지에게 불효라는 어머니 한씨의 말에 더 이상 토를 달수 없었다. 차후에 떨어질 아버지의 불호령도 두려웠다. 발길이 무거웠다. 달갑지 않지만 쇠고개(鐵峴) 전장을 찾았다. 뜻밖의 방문에 영문을 모르고 있던 강씨가 깜짝 놀라며 반겼다.
훗날 앙숙이 될 강씨와의 첫 만남. “방원이라 합니다.” “호호, 그래요? 아버님으로부터 말씀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개경에 있는 걸로 아는데 여긴 어인 일로...?” 말끝을 흐리는 강 씨의 모습이 썩 반가운 표정은 아니었다. 이성계로부터 방원이의 됨됨이를 수없이 들었던 터라 익히 알아보았다. 평소에 이성계가 다섯 아들 중에서 방원이 제일 똑똑하다고 자랑하면 셈이 나서 뾰루퉁했던 강씨였다. 강씨는 6세, 7세 연년생 방석과 방번을 키우며 노복을 데리고 전장을 관리하고 있었다.
첫 만남이었다. 훗날 앙숙이 되어 무덤의 신장석마저 파헤쳐 돌다리를 만들어 버렸던 강씨와 방원은 이렇게 처음 만났다. 방석도 마찬가지다. 훗날 이복형 방원의 손에 죽어야 했던 방석도 이날 처음 만났다. 참으로 어색한 만남이었다.
태종•이방원^다음 제19편~
첫댓글 예전 드라마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대장님 주말 잘보내세요 글 감사합니다 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