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실 김명순*을 위한 진혼가
한 여자를 죽이는 일은 간단했다. 유학 중 도쿄에서 고국의 선배를 만나 데이트 중에 짐승으로 돌변한 남자가 강제로 성폭행을 한 그날 이후 여자의 모든 것은 끝이 났다. 출생부터 더러운 피를 가진 여자! 처녀 아닌 탕녀! 처절한 낙인이 찍혀 내팽개쳐졌다. 자신을 깨워, 큰 꿈을 이루려고 떠난 낯선 땅 내 나라를 식민지로 강점한 타국에서 그녀는 그때 열아홉 살이었다. 뭇 남자들이 다투어 그녀를 냉소하고 조롱했다. 그것도 부족하여 근대 문학의 선봉으로 새 문예지의 출자자로 기생집을 드나들며 술과 오입의 물주였던 당대의 스타 김동인은 그녀를 모델로 '문장' 지에 소설 '김연실전'을 연재했다.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성폭력, 비열한 제2의 확인 사살이었다. 이성의 눈을 감은 채, 사내라는 우월감으로 근대 식민지 문단의 남류(男流)들은 죄의식 없이 한 여성을 능멸하고 따돌렸다. 창조, 개벽, 매일신보, 문장, 별건곤, 삼천리, 신여성, 신태양, 폐허, 조광**의 필진으로 잔인한 펜을 휘둘러 지면을 채웠다. 염상섭도, 나카니시 이노스케라는 일본 작가도 합세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그들은 책마다 교과서마다 선구와 개척의 자리를 선점했다. 인간의 시선은커녕 편협의 눈 하나 교정하지 못한 채 평론가 팔봉 김기진이 되었고 교과서 편수관, 목사, 소설가 늘봄 전영택이 되었고 어린이 인권을 앞세운 색동회의 소파 방정환이 되었다. 김동인은 가장 큰 활자로 문학사 한가운데 앉았다. 처음 그녀를 불러내어 데이트 강간을 한 일본 육군 소위 이응준은 애국지사의 딸과 결혼하여 친일의 흔적까지 무마하고 대한민국 국방 경비대 창설로, 초대 육군 참모총장으로 훈장과 함께 지금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탄실 김명순은 피투성이 알몸으로 사라졌다. 한국 여성 최초의 소설가, 처음으로 시집을 낸 여성 시인, 평론가, 기자, 5개 국어를 구사한 번역가는 일본 뒷골목에서 매를 맞으며 땅콩과 치약을 팔아 연명하다 해방된 조국을 멀리 두고 정신병원에서 홀로 죽었다. 소설 25편, 시 111편, 수필 20편, 희곡• 평론 등 170여 편에 보들레르, 에드거 앨런 포를 처음 이 땅에 번역 소개한 그녀는 처참히 발가벗겨진 몸으로 매장되었다. 꿈 많고 재능 많은 그녀의 육체는 성폭행으로 그녀의 작품은 편견과 모욕의 스캔들로 유폐되었다. 이제, 이 땅이 모진 식민지를 벗어난 지도 칠십여 년 아직도 여자라는 식민지에는 비명과 피눈물 멈추지 않는다. 조선아, 이 사나운 곳아, 이담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보아라. 피로 절규한 그녀의 유언은 오늘도 뉴스에서 튀어나온다. 탄실 김명순! 그녀 떠난 지 얼마인가. 이 땅아! 짐승의 폭력, 미개한 편견과 관습 여전한 이 부끄럽고 사나운 땅아!
* 김명순(1896~1951) 호 탄실. 1917년 춘원 이광수에 의해 등단한 소설가. 많은 작품을 썼지만 일본 유학 중 열아홉 살에 고향 선배로부터 데이트 강간을 당한 후 조롱과 따돌림을 당하고, 역시 고향 선배인 김동인의 소설 '김연실전'의 실제 인물로 알려져 문단에서 유폐된 한국 여성 최초의 작가.
** 김명순을 소재로 냉소와 멸시의 글이 실린 잡지들.
ㅡ 계간 《문예중앙》 2016년 겨울호 ..................................................... 불에 발군 인두로 가축에 표시하는 낙인을 ‘스티그마’라고 한다. 어떤 사람을 부정적으로 낙인찍어 계속 부정적인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을 ‘스티그마효과’ 또는 ‘낙인효과’라고 일컫는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 한 아이에게 주위에서 바보라고 낙인찍고 반복해서 그 소리를 해댄다면 아이는 갈수록 행동이 위축되고 의기소침해져서 자기가 진짜 바보인가 생각되어 결국엔 멀쩡한 아이일지라도 진짜 바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때는 중학입시가 있어서 한번 삐끗하여 소위 ‘따라지’ 학교에 들어가면 좀처럼 회복하기 힘든 것도 비슷한 이유라 하겠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함은 물론이고, 훗날 힘들게 살거나 가령 범죄자가 되는 경우에도 이러한 '낙인효과'의 편견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사회에서도 과거의 좋지 않은 경력이 현재의 인물평가에 계속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쳐 사회적 기회가 박탈당하기 일쑤다. 특정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악순환을 만들어내고, 편견이 강할수록 그 대상자도 편견에 맞추어 행동하게 될 개연성이 높다. 경제학에서 부도 등 한번 신뢰를 잃은 기업에게 편견을 갖는 경우에도 이 용어를 사용한다. 이와는 반대개념인 ‘로젠탈 효과’와 ‘피그말리온 효과’도 있다.
우리 역사에서도 이러한 낙인효과로 인한 사회적인 소외가 반복되어 희생된 인물이 적지 않다. 단 한 번의 실수나 불가피한 상황에 의해 낙인찍히고 손가락질을 받으면 그 부정적인 인식이 쉬 사라지지 않으며 헤어 나오기도 힘들다. 우리 문학사에서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탄실 김명순이다. 본문 내용과 주석에서 김명순의 이력과 과정을 비교적 소상히 밝혔으므로 이 ‘곡시’만으로도 그 내막에 접근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이자 시인, 번역가, 언론인, 배우였던 ‘탄실’의 일생은 김별아의 소설에서도 잘 조명되어 있다.
소설 <탄실>은 1917년 문단에 데뷔한 이래 지난 100여 년 동안 독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김명순을 오롯한 작가이자 한 인간으로 소환하여 복원했다. 그녀의 행과 불행은 고위관료인 아버지의 소실인 어머니가 평양기생출신이었다는 사실에서부터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진명, 숙명, 이화학당을 거쳐 1919년 동경 유학 이후 ‘자유연애’로 화제를 뿌렸으나, 본격적인 불행의 발단은 1915년 1차 동경 유학당시 도쿄 변두리 숲에서 함께 산책하던 일본군 소위 이응준(훗날 대한민국 최초의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데이트 강간을 당하면서부터이다.
충격을 받은 김명순은 강에 뛰어들어 자살까지 시도했다. 김명순은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여학교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졸업생 명부에서 삭제되고 귀국해야 했다. 그럼에도 당시 언론은 오히려 김명순이 이응준을 짝사랑하다가 실연하자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보도했고, 김동인은 그를 모델로 한 소설 '김연실전'에서 자유분방한 성품이 빚어낸 사건인양 묘사했다. 이후 김명순은 김유방이란 남자를 만나 순수한 사랑을 바쳤으나 김유방은 즐기기만 했지 그녀를 부담스럽게 생각해 일본 유학을 주선, 자신의 곁을 떠나게 하였다.
2차 유학 후 이광수, 김일엽, 나혜석, 허정숙 등과 함께 자유 연애론을 주장하기도 했으나 후에 그에 대한 연구에서 김명순은 '자유연애주의자'라기보다는 차라리 성적으로 보수적이었으며, 다만 시대적 상황인 여성에 대한 과도한 억압과 편견의 굴레를 벗고자했던 것이다. 1927년 영화 '광랑(狂浪)'의 주연으로 캐스팅된 이후 몇 편의 영화에도 출연하였고, 1925년 '생명의 과실'이라는 시집을 간행한 한국 최초의 여성 시인이기도 한 그는 여성 해방을 부르짖은 우리 여성사에 기록될 선구자였을지언정 지탄을 받아야할 인물은 아니었던 것이다.
시에도 언급된 그의 시 <遺言>을 옮겨본다. “조선아 내가 너를 영결(永訣)할 때 개천가에 고꾸라졌든지 들에 피 뽑았든지 죽은 시체에라도 더 학대해다오. 그래도 부족하거든 이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 보아라. 그러면 서로 미워하는 우리는 영영 작별된다. 이 사나운 곳아, 이 사나운 곳아” 결국 그녀가 태어난 조선은 그녀를 맞아줄 준비가 되지 않은 조국이었다. 근거 없이 '내놓은 여자' 심지어 '화냥년'으로 낙인찍어 한 탁월한 예술가를 몰아내고 좌절시켰던 것이다. 그것도 ‘성폭행’에서 비롯하였다니 말이다.
그녀는 결국 사생아를 낳고 아비의 이름을 끝내 숨겨 무수한 비난을 받으며 조롱거리가 되었다. 심지어 김동인은 소설에서 그를 ‘더러운 여자’ '남편 많은 처녀'라고 조롱하였다. 김기진의 공개 비판에 그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으며 자유로운 인간이 되길 원한다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당시 남성 문인들의 질투와 학대에 가까운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인해 그녀는 삶을 추스르고 재기할 기회를 잃고 만다. 그는 세속에서 내동댕이쳐져 풍화되고 잊혀졌다. 여비가 없어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할 정도로 곤궁했고 피폐해졌다.
그렇게 비참한 말로를 걷다가 1951년 도쿄의 한 정신병원에서 어두운 생을 마감한다. 유해의 존재는 알지 못하며 유일한 혈육이었던 그의 아들도 자살로 생을 끝냈다. 그에게 덧씌워진 온갖 ‘낙인’은 훗날 ‘가짜 뉴스’의 희생양이었음이 밝혀졌지만 지금쯤은 ‘진혼’이 되어 용서할 수 있을까. ‘아직도 여자라는 식민지에는 비명과 피눈물 멈추지 않는’ 것은 아닐까.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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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詩하늘 통신 원문보기 글쓴이: 제4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