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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향하신 (시편 117편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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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겉보기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보실 때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겉멋만 화려한 사람을 속빈 강정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존경 받는 많은 인물들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나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이라면 겉 보다는 내면의 성숙을 이루어 가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시편은 성경에서 가장 많은 분량의 책으로 무려 150편이나 됩니다. 시편은 다섯 권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을 하나로 묶어 놓은 책입니다. 시편에서 가장 긴 시편이 119편으로 전체 분량이 176절며, 이에 반해 가장 짧은 시편이 오늘 말씀인 117편입니다. 117편은 단 두절로 되어 있고, 가장 긴 119편의 1/80밖에 되지 않습니다. 분량은 비교할 수 없지만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한다”는 말과 같이 117편의 내용은 아주 충실합니다. 성경의 핵심내용을 단 두 구절로 심오하게 압축해 놓은 말씀입니다.
시편 117편은 사실 독립적인 시가 아닙니다. 시편의 첫 머리가 “할렐루야”로 시작 되거나, 아니면 마지막이 “할렐루야”로 끝나는 시편이 총 일곱 편 있습니다. 시편 111~117편이 “할렐루야” 시편으로, 117편은 일곱 편의 시편 가운데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시편을 읽으신다면 111~117편은 한 번에, 통으로 읽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 말씀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여기서 ‘찬양하며’라고 번역된 말이 히브리어로 ‘할렐루’인데, 원어에서는 이 말이 첫 머리에 시작됩니다.
1절은 근본적으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과 세상의 만물들이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의미입니다. 본문에서 ‘찬양 한다’와 ‘찬송 한다’는 말은 단어는 다르지만 의미상으로는 동일하게 영어의 Praise를 뜻합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 합니다. 인간이 흙으로부터 만들어진 본질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찬송하게 창조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만드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본문에서 주목해서 볼 것은, 찬송해야 되는 대상을 ‘나라들’ 그리고 ‘민족들’로 나누어 놓았는데, 두 단어 앞에 ‘모든’이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겠는가 싶겠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의도가 담겨져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은 어떤 때에 사용되는 말들입니까? 나라와 민족은 독립된 국가를 말할 때 사용됩니다. 즉 세워진 왕이나 통치자에 의해서 다스려지면서 고유한 영역을 소유한 독립 국가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나라와 민족이 복수로 지칭이 됩니다. 복수형의 의미는 좁게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나라들, 백성들을 뜻하기도 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의 창조의 영역이 미치는 모든 만물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의 생각과 말씀으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로부터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한 영광스러운 분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또 ‘모든’이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의 관심 대상이 어디까지인가를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특정 국가. 특정 민족을 염두에 두고 일하시지 않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이라는 국가와 유대민족을 택하여서, 이끄시고, 약속하시고, 성취하게 하셨지만, 하나님의 통치 전체로 본다면 이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민족이 자신들만 선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을 아전인수식으로만 해석하는 무지의 소치입니다. 하나님은 1절에서 분명하게 유대인과 그 밖의 나라와 민족들을 아우르는 ‘모는 나라들’,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찬양하라고 하십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인간들, 나라들, 백성들을 모두 다 품기를 원하십니다. 전부 동일하게 사랑하십니다. 구분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한결 같이 동일한 마음으로 관심을 보이신다는 뜻입니다.
내가 낳은 자식들을 사랑하고 똑 같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부모의 당연한 마음이며, 우리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1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향하신 무한한 사랑하심의 표현 구절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1절은 세상에 살아가는 인간들이 힘과 돈과 지위로 인해 차별되고 구별되는 것은 창조질서에 위배되는 잘못된 일임을 깨달으라는 의미가 함께 포함 되어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창조의 정신은 평등과 자유였습니다. 높고 낮음의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누구를 구속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강자도 약자도 없었습니다. 옛날 어린이 찬양 가사 중에,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어린이도 함께 뒹구는 참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이 동일한 인격체, 동일한 생명이 존중 받도록 창조 하셨습니다. 오염되지 않은 순전함과 거룩함을 유지하며 영원토록 함께 지내게 하는 것이 창조의 목적이었습니다. 과거 에덴동산이 바로 그런 곳이고, 앞으로 우리가 들어가기를 소망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지으면서 이런 모든 균형이 깨져 버렸습니다. 아담이 죄를 범하였을 때, 아담과 하와와 뱀이 저주를 받았지만 땅도 저주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돌로 죽였을 때, 살인자 가인은 저주를 받고 쫓겨 갔지만 이때도 역시 땅도 함께 저주를 받았습니다. 범죄는 인간들이 저지르는데 왜 가만히 있는 땅이 저주를 받습니까? 땅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억울한 처사입니다. 이 말씀들은 인간이 죄와 악으로 인해 타락해 감으로 인해 땅을 포함한 자연과 환경도 파괴되고 오염되어 간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자연 만물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정화되고 회복되어야 하는 구원의 대상에 포함이 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로마서 8장 21-22절,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들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고 했습니다. 죄로 인간만 고통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 전체가 신음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마가복음 16장 15절,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는데, 여기서 만민 이라는 말이 모든 피조물(all creation)이라는 뜻입니다. ‘복음’은 인간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들려져야할 유일한 구원의 메시지임을 잘 나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사람만이 죄에서 자유함을 얻는 것이 구원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대상이 모든 만물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1절은 결국, 하나님께서는 창조질서를 회복하여 모든 만물에게 찬양을 받으시려고, 모든 나라들, 모든 백성들, 모든 피조물들을 다 구원해 주겠다는 약속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놀라운 구원을 베푸시려는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은 ‘사랑’, ‘은혜’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이 없다면, 은혜를 베푸심이 없다면 우리는 죄와 사망 가운데 방치되어 고아와 같이 소망 없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구원해 주신다는 약속을 이루어 주심으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멸시천대를 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제는 존귀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나라는 존재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믿고,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은 내가 만들어내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부어 주시는 사랑을 느낄 때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랑 받았음을 느끼고 살아가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보이는 것을 드려서 칭찬과 상급을 받는다면 우리는 드릴 것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보이는 것이 전부 가 아닙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받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무엇이겠습니까? 믿음입니다. 사랑입니다. 듣는 마음입니다. 순종하는 일입니다.
1절이 말하는 것처럼 구원받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고 찬송하는 일입니다. 구원받은 백성, 구원받은 민족, 구원 받은 피조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할 것이 없습니다. 무엇을 이루어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해 드려야 하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일을 계획하시는 것은 인간이지만 이루시는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는 찬송하고, 찬양하는 일에 오로지 집중하면 됩니다. 그 일이 가장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일이고,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나라에서는 찬송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인간의 나라는 국경선이 있고 언어와 문화가 다르지만, 하나님 나라는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시선 안에 있습니다. 모두 다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과 소통하며 지낼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통치 영역 안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영적인 교감이 완전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하심에 내가 포함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하나님 나라에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궁극적으로는 심판이후에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곳이 곧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 하나님과 깊은 교감 속에 있고, 나의 영혼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주권하에 완전하게 맡기고 살아간다면, 현재 나는 하나님 나라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 시간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것입니다.
1절을 정리해 봅니다. 1절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에 관한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창조하셨고,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려고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모든 나라들, 모든 민족들, 모든 백성들이 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그들 모두가 다 구원받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평등과 자유함의 질서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죄와 악으로 인해 세상은 오염되고 변형되고 차별과 구별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만물은 더러움과 거짓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돈이, 지위가, 학력이, 이념들이 정해 놓은 불평등의 조건들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어쩔 수 없는 현실인 것처럼 속고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창조질서에 위배되는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으로 원위치를 시켜 놓았습니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은 높아지고, 많이 벌고, 자랑하고, 땅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자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일임을 믿게 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사랑이시고, 하나님만이 영원한 나라의 주인임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고달프고 힘든 인생들에게 말씀 하십니다. “나를 찬양해 봐라! 나를 찬송해 봐라!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껴 봐라! 내가 너의 슬픔과 아픔을 다 안다! 내 손을 잡아라! 내가 너를 영원히 떠나지 않고 너의 하나님이 되어 주리라!” 참으로 우리 하나님은 멋지십니다. 마음껏 자랑하고 싶은 하나님 이십니다. 찬송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찬송하고, 찬송하고, 또 찬송을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여러분도 다 이런 생각이시죠? 네, 무조건 아멘입니다.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1절 말씀대로 정말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그리고 통일 된 대한민국 백성들이 하나님만을 믿고 찬송하는 그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날이 속히 오게 하려면, 우리 교회가, 한국교회들이, 그리고 믿음의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모든 나라들, 모든 백성들이 다 구원 받은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날이 속히 올 수 있도록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데 애쓰고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2절에서,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인자와 진실함이 있음을 말씀하시면서, 인자와 진실하심이 우리에게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라는 복수형은 다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수 있겠으나, 1절에서 말하는 모든 나라들, 모든 민족들을 말하며, 나아가서 구원의 대상인 모든 피조물을 대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아야 하는 모든 피조물들을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으로 대해주고 계십니다.
인자하심은 우리가 많이 들어본 히브리어 ‘헤세드’라는 단어입니다. 다른 의미로는 자비, 용서, 기회를 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반대의 뜻인 ‘혼내준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위대한 것은, 우리를 혼내주시고 책망함으로 그 인자하심을 나타내실 수도 있지만, 참으시고 봐주시는 너그러운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이끄신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성경의 인자하시다는 말을 읽을 때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보다는 죄송하고 염치없는 마음이 듭니다. 계속 용서하시고, 계속 기회를 주시기만 하시니 나 자신이 너무 용서받음에 무감각 해져 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무거운 마음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 인자하시다는 말 뒤에 ‘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대부분 ‘힘이 세다’, 혹은 ‘강력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능력이 있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인자하심은 끝임 없이 용서하고, 기회를 주고, 다시 세우려는 오랜 인내심을 필요로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능력이 필요 합니다. 이 능력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품어줄 수 있는 사랑의 능력입니다. 즉, 하나님은 사랑의 능력자이시며, 사랑이 크신 분이기 때문에 인자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무한한 인자함을 베풀 수 없습니다.
진실하심은 히브리어로 ‘에메트’라는 단어로 ‘신실하다(faithfull)’, 혹은 ‘충성되다’라고 번역합니다. 진실하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마음을 나타낼 때나, 흔들림 없는 일관된 목표를 이루어 나갈 때 사용됩니다. 거짓이 아닌 참으로만 일하시는, 진리 되시는 하나님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2절에서, ‘진실하다’는 말씀이 ‘영원하다’는 말씀과 함께 쓰였습니다. 영원하다는 말은‘ 숨겨져 있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영원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즉, 진실하다는 말은 하나님이 계시는 동안 계속 될 것이기 때문에 영원토록 존재하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진실하심이 영원하다”는 말씀은 진실함이 없는 인간들의 말은 전부 거짓이니 속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말은 수시로 바뀌고 남을 속이려는 잔재주를 부립니다. 남을 속여서 내가 이득을 취한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진실함이 없는 인간은 영원이라는 한계를 결코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말세가 될수록 미혹의 영이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나 그리스도를 사칭하는 자들은 자신들만이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고 선동합니다. 술수나 하찮은 잔재주를 부려서 여린 마음의 인간들을 넘어뜨리려 합니다.
이단들은 아예 자신들이 추종하는 인간을 신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생명의 기한이 정해진 인간이 영원을 말하면서 불사의 존재인 것처럼 거짓을 퍼트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들에게 선포하십니다. “오직 진실하신 분은 하나님 뿐이며, 오직 영원 하신 분도 하나님 뿐이다. 진리에서 벗어나 거짓을 말하는 모든 자들은 결단코 영원의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다” 이 엄한 경고의 말씀이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는 말씀 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인자하심이 크다”는 말과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는 말씀의 뜻을 살펴보았습니다. 자, 이 두 말씀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구절인데, 오늘 말씀에서는 이 말씀이 결정적으로 “우리에게 향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혼내실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으신대도, 오히려 사랑의 능력으로 언제나 우리를 용서하시고 돌이켜 돌아오게 하시려는 마음이 바로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다”는 말씀 이었습다. 또,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시고 식언하지 않으시는 진리가 되시는데, 불쌍한 우리 인생들에게 구원의 약속과 영생의 소망을 주시겠다는 약속하신 것이 바로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리로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시는 이 놀라운 과정을 분명하게 약속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이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2절속에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애달픈 외침이 담겨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품어주고, 넘어지면 세워주고, 슬퍼하면 위로해 주고, 낙심하면 기를 살려주고, 기뻐하면 즐거워 해주고, 잘못 가면 방향을 잡아주시려는 마음이 애잔하게 녹아 있습니다. 사람을 믿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라는 당부를 하고 계십니다. 짧은 인생에 목숨 걸지 말고, 영원을 약속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진실한 말씀만 듣고, 믿고, 순종하며 살아가라는 명령도 하고 계십니다. 귀 있는 자들은 2절에서 말하고 있는 우리에게 향하신 주님의 애달픈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시편 117편 1절과 2절의 말씀을 정리합니다.
1절의 말씀은, 내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창조된 존재이기에, 나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가는 것이 마땅함을 일깨워 줍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못나고, 가진 것이 없다고 하여도 그것 때문에 낙심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지으셨고, 창조주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존감을 높이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내 자신을 가장 많이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나는 완전하게 평등함과 자유함을 누릴 권세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귀한 존재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내 자신의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을 이루어 하나님께 드리려는 것보다 제일 먼저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찬양하는 것이 모든 일보다 우선하여 행해 질 때 하나님을 가장 영광스럽게 하는 칭찬 받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절 말씀은, 거짓이 없으신 인자하신 하나님께서는 나를 혼내실 능력을 내려놓으시고, 크신 사랑의 능력을 내새워서 나를 무한정 용서하시고, 기회를 주시는 인자하심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 없음으로 인해서 남을 용서하지 못하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능력을 충분하게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남을 용서하는 인자함의 마음을 베풀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2절 말씀 에서는, 하나님만이 진실하시고, 모든 인생은 거짓과 비 진리에 거한다는 사실을 확인해 줍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고 하나님 자녀답게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혀는 거짓을 말하나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실이며, 이 진실하심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겨 줍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향하신 마음은 사랑과 용서와 영생의 소망을 주기 위함입니다. 누구를 말할 것이 아니라 나를 보십시오. 내가 곧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나는 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너를 결코 포기 하지 않을 거야! 내가 너와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약속은 거짓이 아니며, 오늘도 너의 마음에 나의 큰 사랑의 능력을 풍성하게 부어 줄 테니,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세상을 이기며 승리 하거라!”
힘이 나시죠. 아멘. 이제 우리는 힘을 내서 시편 117편 말씀대로 “내 평생에 하나님만을 찬양하며 살겠습니다” 고백하시고, 우리나라가, 우리민족이, 그리고 세계 모든 나라들과 민족들이 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영생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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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사랑으로 창조하시고 하나님만을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로 모시고 찬양하며 살아가도록 은혜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오직 하나님만을 찬양하는 것이 기쁨이요 즐거움이 되게 하옵소서. 나를 용서해 주시고 온전케 해 주시는 인자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에게 진실함을 가르쳐 주시고 진리의 하나님만을 따르도록 소망을 주신 것도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인자와 진실하심을 늘 감사로 고백하는 입술이 되게 하옵소서.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