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넘어서
“사귐이 깊어지면 애정이 싹트고 사랑이 있으면 고통의 그림자가 따르나니 사랑으로 시작되는 많은 고통의 그림자를 관찰하고 저 광야를 가고 있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숫타니파타). 온갖 욕망과 시기와 거짓과 어리석음으로 얼룩진 세상을 넘어서 불멸의 진리를 찾아 배우고 가슴에 품고서 당당하게 혼자서 나아가라.
혼잡한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진리의 세계를 동경하고 사랑하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眼目)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한1서 2장 15-17절). 이 세상은 언제나 변함없이 탐욕과 거짓과 어리석음 등의 불로 불타고 있다. 이 불 붙은 위험한 집에서 우리는 속히 벗어나야 비로소 축복과 영생(永生)을 얻을 수 있다.
고로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면 이런 사악한 세상의 속성들, 탐욕과 거짓과 어리석음 등에 빠져 멸망의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마음을 수양하는 공부를 하면서 신독[愼獨 또는 근독(謹獨)]할 줄 알아야 한다.
백강 이경여 선생도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신독(愼獨) 혹은 근독(謹獨) 즉 ‘홀로 있을 때라도 마음가짐과 행동이 도리(道理)에 어그러짐이 없어야 할 것’을 가장 소중한 덕목으로 보았다. “인(仁)을 숙련하는 공부가 어찌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겠습니까.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덕(天德)·왕도(王道)는 그 요체가 홀로 있을 때에 삼가는데 있을 뿐이다’고 하였습니다(程子以爲: “天德 王道, 其要只在槿獨”). 홀로 있을 때를 삼가지 않아서 유암(幽暗)하고 은미(隱微)한 데에 문득 간단(間斷)되는 곳이 있다면 어떻게 날로 고명(高明)한데에 오르겠습니까“<효종4년 1653년 7월20일 백강 이경여 상공 ‘재변(災變)극복을 위한 상차문(上箚文)’에서>.
목수가 재목을 곧게 다듬고, 궁사(弓師)가 화살을 바르게 펴며, 농부가 물고랑을 팔 때 곧게 내서 물을 순조롭게 흐르도록 하듯이 현명한 사람은 마음을 수양하고 신독함으로 세상의 탐욕과 거짓과 어리석음 같은 악들을 극복하고 언제나 마음이 올바르고 진실하게 작동하도록 한다. 이런 현명한 사람은 또한 큰 바위가 흔들리지 않듯이 뭇사람들의 비방과 칭찬에 그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며 항상 그 마음의 중심이 동서고금의 진리의 말씀 안에 반듯하게 놓여 있다.
이런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독서를 하지 않을 수는 없는데 다만 인류 역사상 불멸의 경전(經典)과 성현(聖賢)들의 말씀과 해석들을 반드시 그 바탕에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서가 오히려 해악을 불러 올 수가 있다. 뿌리가 없는 저열한 책들이나 음탕한 음악, 난잡한 그림들은 오히려 사람의 심성(心性)을 타락시키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므로 꽃 좋고 열매 많나니[根深之木、風亦不杌(근심지목, 풍역불올) 有灼其華、有蕡其實(유작기화, 유분기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치므로 내를 이뤄 바다에 가나니[源遠之水、旱亦不竭(원원지수, 한역불갈) 流斯爲川、于海必達(유사위천, 우해필달)]”<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제2장>.
2023. 6.20. 素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