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語集註大全卷之二十
요왈(堯曰) 제이십(第二十)
凡三章 모두 3장이다. 요왈 제1장. 堯曰 咨 爾舜 天之曆數在爾躬 允執其中 四海困窮 天祿永終 요임금이 말씀하시기를, “아아, 순아, 하늘의 운수가 그대에게 있으니, 진실로 그 중을 잡아라 천하가 곤궁하면 하늘이 주신 녹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고 하셨다.
此堯命舜 而禪以帝位之辭 咨 嗟歎聲 曆數 帝王相繼之次第 猶歲時氣節之先後也 允 信也 中者 無過不及之名 四海之人困窮 則君祿亦永絶矣 戒之也 이는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명하여 제위를 선양하는 말씀이다. 咨는 탄식하는 소리다. 曆數란 제왕이 서로 이어받는 차례로서, 해와 계절과 기후와 절기의 선후와 같은 것이다. 允은 ‘진실로’라는 말이다. 中이라는 것은 지나침도 못 미침도 없다는 것의 명칭이다. 사해 사람들이 곤궁하게 되면, 곧 임금의 녹 역시 영원히 끊어진다는 것이니, 순임금을 경계한 것이다.
朱子曰 帝王相承其次第之數 若曆之歲月日時 亦有先後之序 然聖人所以知其序之屬於此人 亦以其人之德知之 非若讖緯之說 姓名見於圖籙而爲言也 聖賢言中有二義 大本云者 喜怒哀樂未發之時之理 其氣象如此也 時中云者 理之在事而無過不及之地也 此曰 允執其中 蓋以其在事者而言 若天下之大本 則不可得而執矣 此聖人之道 時行時止 夫豈專以塊然不動者爲是而守之哉 주자가 말하길, “제왕이 서로 계승하는 그 순서의 역수는 달력의 해, 달, 일, 시처럼 역시 선후의 순서가 있다. 그러나 성인께서 그 순서가 이 사람에게 속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역시 그 사람의 덕으로써 그것을 알기 때문이지, 참위설에서 성명이 도록에 보여서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다. 성현께서 中을 말씀하심에 있어 2가지 뜻이 있다. 大本이라 운운하는 것은 喜怒哀樂이 아직 발현되지 않은 때의 이치인데, 그 기상이 이와 같다는 것이다. 時中이라 운운하는 것은 이치가 일에 있어서 지나침도 없고 못 미침도 없는 지경이다. 여기서 允執其中이라 말한 것은 대체로 일에 있어서 그러한 것으로써 말한 것인데, 만약 천하의 大本이라고 한다면 붙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성인의 도는 때로 행하고 때로는 그치는 것이니, 무릇 어찌하여 오로지 꼼짝 않고 움직이지 않는 것을 옳다 여겨 지킬 것인가?”라고 하였다.
伊川云 允執其中 中怎麽執得識得 則事事物物上 皆天然有箇中在那上 不待人安排 安排著 則不中矣 정이천이 말하길, “允執其中에서 中을 어떻게 붙잡을 수 있고 알 수 있는가? 이는 곧 모든 사물 위에는 전부 천연적으로 하나의 中이 있기 때문이다. 그 위에서는 사람이 안배하기를 기다리지 않으니, 만약 사람이 안배하여 붙인다면, 곧 中道에 맞지 않는 것이다.”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以其德當天心 故知天之曆數在其躬 允執其中 事事物物 皆有中 天理之所存也 惟其心無依倚 則能執其中而不失 此所謂時中也 君之所爲安榮者以民故也 天之視聽自我民視聽 若四海困窮 則天祿亦永終矣 聖人之相授 凡以天人之際而已 남헌장씨가 말하길, “그 덕이 하늘의 마음에 합당하기 때문에, 하늘의 역수가 그의 몸에 있음을 아는 것이다. 진실로 그 中道를 잡으라 하니, 모든 사물마다 전부 中道가 있는데, 바로 천리가 보전되어 있는 곳이다. 오직 그 마음이 어떤 것에 의지하고 기댐이 없다면, 능히 그 중도를 붙잡아 잃지 않을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이른바 時中이라는 것이다. 임금이 편안하고 영화로울 수 있는 것은 백성 때문이다. 하늘은 내 백성들이 보고 듣는 것을 말미암아 보고 듣는 것이니, 만약 사해가 곤궁하다면, 천록 역시 영원히 끝날 것이다. 성인들께서 서로 帝位를 물려주신 것은 무릇 하늘과 사람의 관계로써 했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或以守字解執字 守與執不同 執是執其要 事事物物各自有中 凡擧一物便要執定那要處 如執扇須執柄相似 如擇乎中庸而不能朞月守 方是守 便易得死殺了 執者 隨事隨物而執其中 不死殺 쌍봉요씨가 말하길, “혹자는 守자로써 執자를 풀이하기도 하는데, 지키는 것은 붙잡는 것과 같지 않다. 붙잡는 것은 그 요처를 붙잡는 것인데, 모든 사물마다 각자 자기의 中을 갖고 있다. 무릇 한 사물을 들어 올림에 있어서는, 곧 그 요처를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 예컨대 부채를 붙잡을 때 반드시 그 자루를 붙잡는 것과 서로 비슷한 것이다. 예컨대 중용을 택하고서도, 능히 1년을 지켜내지 못한다고 하는 이것이 바야흐로 지킨다는 것이니, 곧 경직되기 쉬운 것이다. 붙잡는다는 것은 모든 일과 사물에 따라서 그 中을 붙잡는 것이니, 경직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新安倪氏曰 按執云者 非執一定之理 蓋於事物上酌其中而執以用之 中庸謂舜用其中 卽用其所執之中也 신안예씨가 말하길, “내가 살펴보건대, 붙잡다라고 운운하는 것은 일정한 이치를 붙잡는다는 것이 아니다. 대체로 사물 위에서 그 가운데를 짐작하여 붙잡아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다. 중용에서 ‘순임금은 그 가운데를 사용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는 곧 그가 붙잡은 가운데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舜亦以命禹 순임금 역시 이와 같이 우임금에게 명하셨다.
舜後遜位於禹 亦以此辭命之 今見於虞書大禹謨 比此加詳 순임금이 나중에 우임금에게 자리를 선양할 적에, 역시 이 말씀으로써 명하셨다. 지금 ‘우서 대우모’에 보이는데, 이것보다는 더 상세하다. 朱子曰 中只是箇恰好的道理 允是眞箇執得 堯當時告舜 只說這一句 後來舜告禹又添得人心惟危道心惟微惟精惟一三句 說得又較仔細 這三句是 允執厥中 以前事 是舜敎禹 做工夫處 人心惟危道心惟微 須是惟精惟一 方能允執厥中 堯當時告舜 只說一句 舜已曉得那箇了 所以不復更說 舜告禹時 便是怕禹尙未曉得 故恁地說 論語後面說 謹權量審法度修廢官擧逸民之類 皆是恰好當做底事 這便是堯舜禹湯文武治天下只是這箇道理 聖門所說也 只是這箇 雖是隨他所聞所記說得不同 然却只是一箇道理 如屋相似 進來處 雖不同 入到裏面 只是共這箇屋 大槪此篇所載 便是堯舜禹湯文武相傳治天下之法 雖其纖悉不止此 然大要却不出此 大要於此可見 주자가 말하길, “中은 그저 하나의 꼭 맞는 이치다. 允은 진짜로 붙잡을 수 있는 것이다.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알려줄 당시에, 그저 이 구절 하나만 말해주었는데, 나중에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알려주면서 다시 ‘人心은 오직 위태롭고, 道心은 오직 은미하니, 오직 정밀하고 오직 한결같을지어다.’라는 세 구절을 첨가하였으니, 또한 비교적 자세하게 말한 것이다. 이 세 구절은 진실로 이 중을 붙들라 이전의 일로서,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공부해야 할 곳을 알려준 것이다. 人心은 오직 위태롭고 道心은 오직 은미하니, 모름지기 오직 정밀하고 오직 한결같아야만, 바야흐로 진실로 그 가운데를 붙잡을 수 있는 것이다.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알려줄 당시에 단지 한 구절만 말한 것은 순임금이 이미 그것들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이상 다시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알려줄 때에는, 곧 우임금이 아직 깨우치지 못한 것을 걱정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논어는 뒤쪽 부분에서 도량형을 신중히 정함, 법도를 살핌, 폐지된 관직을 수선함, 일민을 기용함의 부류를 말했는데, 모두가 때마침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다. 이것이 바로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 탕왕, 문왕, 무왕이 천하를 다스릴 적에 그저 이 이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聖門에서 말하는 바도 단지 이것이었다. 비록 그들이 들은 바와 기억한 바에 따라 말한 것이 같지는 않지만, 오히려 단지 하나의 도리일 따름이었다. 예컨대 집과 비슷한데, 들어가는 곳은 비록 같지 않지만, 일단 그 안에 들어가면, 단지 이 하나의 집을 함께 할뿐이다. 대체로 이 편에 기재된 바는 바로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 탕왕, 문왕, 무왕께서 서로 전해주신 것으로서, 천하를 다스리는 법이다. 비록 그 세세한 것이 모두 다 여기에 그치지는 않지만, 그러나 큰 요점은 도리어 이것을 벗어나지 않으니, 큰 요점을 여기서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天下之大運之在心 此心之用稍有過不及 則非中矣 非中則四海將至困窮而天祿亦永終矣 授命之際 天祿方於此乎始也 而卽以永終言之 爲戒深矣 운봉호씨가 말하길, “천하의 큰 운행이 마음에 달려 있으니, 이 마음을 씀에 조금이라도 지나침이나 못 미침이 있다면, 곧 中道가 아닌 것이다. 중도가 아니면, 사해는 장차 곤궁함에 이를 것이고 天祿 또한 영원히 끝날 것이다. 천명을 전해줄 즈음에, 天祿도 바야흐로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지만, 곧바로 영원히 끝나버린다는 것으로써 말한 것은 경계해줌이 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天祿永終與天之曆數在爾躬相照應 允執其中告以保天祿之本也 四海困窮不能允執其中之驗 所以致天祿之永終也 舜之授禹謹述此四句 不易一字 但辭加詳 而理益明意益盡耳 舜之授禹 具載於書 堯之授舜 微弟子記之於此 則三聖人以一中相授受之淵源 其孰從而知之哉 신안진씨가 말하길, “天祿이 영원히 끝난다는 것과 하늘의 曆數가 네 몸 안에 있다는 것은 서로 일치하여 대응하는 것이다. 진실로 그 가운데를 붙잡으라는 천록을 보전하는 근본을 말해준 것이다. 사해가 곤궁한 것은 允執其中을 하지 못한 징험이니, 이 때문에 천록이 영원히 끝나는 상황을 불러온 것이다.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천명을 전해줄 적에 이 네 구절을 삼가 전술하였는데, 한 글자도 바꾸지 않았지만, 말은 더욱 상세하여 이치가 더욱 밝아졌고, 뜻도 더욱 곡진할 뿐이었다.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천명을 전해준 것은 모두 서경에 실려 있으나,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전해준 것은 제자들이 여기에 그것을 기록함이 없었더라면, 세 분의 성인께서 하나의 中으로써 천명을 서로 주고받은 연원을 그 누가 따라가 알았겠는가?”라고 하였다. 曰 予小子履 敢用玄牡 敢昭告于皇皇后帝 有罪不敢赦 帝臣不蔽 簡在帝心 朕躬有罪 無以萬方 萬方有罪 罪在朕躬 순임금이 또한 우임금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저 소 자리는 감히 검은 소를 제물로 하여 거룩하신 하느님께 밝게 아뢰옵니다.
죄가 있는 자를 감히 용서하지 아니하고 어진 사람은 하느님의 신하인지라 이를 덮어 가리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뜻대로 간택한 것입니다.
제 몸에 죄가 있으면, 만방으로 인한 것은 없으며, 만방에 죄가 있다면 오직 제 몸에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此引商書湯誥之辭 蓋湯旣放桀而告諸侯也 與書文大同小異 曰上當有湯字 履 蓋湯名 用玄牡 夏尙黑 未變其禮也 簡 閱也 言桀有罪 己不敢赦 而天下賢人 皆上帝之臣 己不敢蔽 簡在帝心 惟帝所命 此述其初請命而伐桀之辭也 又言君有罪非民所致 民有罪實君所爲 見其厚於責己薄於責人之意 此其告諸侯之辭也 이것은 상서 탕고 편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아마도 탕이 이미 걸왕을 유배 보내고서 제후들에게 말한 것일 것이다. 서경과 글이 대동소이하다. 曰 위에 마땅히 湯자가 있어야 한다. 履는 아마도 탕의 이름인 듯하다. 제사에 검은 숫소를 사용하는 것은 하나라가 검은 색을 숭상하였기 때문인데, 아직 그 예를 바꾸지 않은 것이다. 簡이란 골라 뽑는 것이다. 걸왕에게 죄가 있으니, 자신이 감히 사면해줄 수 없고, 천하의 어진 사람은 모두 하느님의 신하들이어서 자신이 감히 덮어 가릴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신하를 간택하는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니, 오직 하느님이 명령한 바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탕임금이 처음으로 천명을 청하여 걸왕을 칠 때의 말을 전술한 것이다. 또한 임금에게 죄가 있다면 이는 백성들이 불러온 바가 아니며, 백성에게 죄가 있다면 실제로 임금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니, 탕임금이 자신을 나무라는 것에 후하고 남을 나무라는 것에 박하였다는 뜻을 알아볼 수 있다. 이것은 그 제후들에게 고한 말씀이다.
䟽世本云 湯名天乙 孔安國云 至爲王 改名履 13경주소와 商書正義 세본에 이르길, 탕임금의 이름은 천을이라 하였고, 공안국이 이르길, 왕이 된 때에 이르러 이름을 履로 고쳤다고 하였다.
記檀弓上 夏后氏尙黑 大事斂用昏(大事謂喪事) 戎事乘驪(戎兵也 馬黑色曰驪) 牲用玄 殷人尙白 大事斂用日中 戎事乘翰 牲用白(翰白色馬也) 周人尙赤 大事斂用日出 戎事乘騵 牲用騂 예기 단궁상 편에, 하후씨는 검은색을 숭상하였으니, 大事의 염습(殮: 斂)은 저녁을 이용하였고(大事란 喪事를 말한다), 융사엔 驪를 탔으며(戎은 兵이고, 말이 검은 색이면 驪라고 불렀다), 제물에는 검은색 소를 썼다고 한다. 은나라 사람은 하얀색을 숭상하였는데, 대사의 염습은 낮을 이용하였고, 융사엔 翰을 탔으며, 제물에는 흰색 소를 썼다(翰은 흰색 말이다)고 한다. 주나라 사람은 붉은 색을 숭상하였는데, 대사의 염습은 해가 뜰 때를 이용하였고, 융사엔 騵(붉은색 말)을 탔으며, 제물은 騂(성, 붉은 소)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朱子曰 簡 閱也 善與罪天皆知之 如天點檢數過 爾之有善 也在帝心 我之有惡 也在帝心 주자가 말하길, “簡은 골라 뽑는 것이다. 선과 죄는 하늘이 다 알고 있는 것이니, 마치 하늘이 여러 잘못을 점검해서, 네가 선을 갖고 있는 것도 상제의 마음에 들어있고, 내가 악을 갖고 있는 것도 모두 상제의 마음에 들어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有罪不敢赦 謂桀得罪於天 不敢稽天命而不討 然凡天下之人 莫非帝之臣 其善惡不可蔽也 則何敢專 顧帝所眷命何如耳 己有罪 則不敢以及萬方 萬方有罪 則歸之於己 此其自列以聽天命之辭 公天下之心 如此 然則 其有天下也 亦何與於己哉 남헌장씨가 말하길, “죄가 있는 자를 감히 사면하지 못한다는 것은 걸왕이 하늘에 죄를 얻었기에 감히 천명을 헤아려 토벌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무릇 천하의 사람들은 상제의 신하 아닌 자가 없는데, 그 선악을 덮어 가릴 수 없으니, 어찌 감히 제멋대로 하겠는가? 상제가 좋아하고 명하는 바가 어떠한지 돌아볼 따름이다. 자신에게 죄가 있다면, 감히 이로써 만방에 미치게 할 수 없고, 만방에게 죄가 있다면, 이를 자신에게 돌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스스로 천명을 듣겠다는 말과 천하를 공정하게 대하는 마음이 이와 같다는 것을 나열한 것이다. 그러한즉, 그가 천하를 소유한다고 할지라도, 또한 무엇을 자신에게 허용해 주겠는가?”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湯述其告天之辭以告諸侯 쌍봉요씨가 말하길, “탕왕은 자신이 하늘에 고한 말을 진술함으로써 제후들에게 고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周有大賚 善人是富 주나라에 이르러 크게 상을 주었으니, 선한 사람은 모두 부유하게 되었다.
○ 此以下述武王事 賚 予也 武王克商 大賚于四海 見周書武成篇 此言其所富者 皆善人也 詩序云 賚所以錫予善人 蓋本於此 此 이하는 무왕의 일을 기술한 것이다. 賚는 준다는 말이다. 무왕이 상나라를 이기고 사해에 큰 상을 하사하였다. 주서 무성편에 보인다. 이는 그가 부유하게 해준 사람들이 모두 선한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시경의 서문에도 이르길, “뢰는 선한 사람들에게 상을 하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아마도 여기에 뿌리를 두었을 것이다.
詩周頌 賚大封於廟也 賚 予也 言所以錫予善人也 시는 주송 편이고, 賚(뢰)는 사당에서 크게 봉해주는 것이다. 賚는 주는 것이니, 善人에게 하사해주는 것을 말한 것이다.
雙峯饒氏曰 紂爲天下逋逃主 所用皆是惡人 故武王伐商之初 便把善人是富 做箇打頭第一件事 大賚是錫予普及四海 其中善人 則錫予又自加厚 洪範曰 凡厥正人旣富方穀 正人旣得其富 則其爲善也篤 故不容以泛然錫賚施之也 쌍봉요씨가 말하길, “주왕이 천하의 도망치고 달아난 자들의 주인이 되어 기용한 자들은 모두 악인이었다. 그래서 무왕이 상나라를 치는 초기에 곧 선인들을 부유하게 해주었는데, 처음에 했던 첫 번째 일이었다. 大賚란 상을 하사해주어 사해에 널리 미치도록 하는 것인데, 그중에서 선인에게는 상을 하사해주고 또한 후하게 더해주었다. 홍범에 이르길, ‘무릇 저 올바른 사람이 이미 부유해졌다면 바야흐로 좋은 것’이라 하였으니, 올바른 사람이 이미 자기의 부유함을 얻었다면, 그가 선을 행하는 것도 독실할 것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넓게만 하사함으로써 베푸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雖有周親 不如仁人 百姓有過 在予一人 비록 주변에 착한 사람이 있으나 나의 어진 사람만 못하고 백성이 허물이 있다면 그 책임은 나 한 사람에게 있을 것이다. 此周書太誓之辭 孔氏曰 周 至也 言紂至親雖多 不如周家之多仁人 이는 주서 태서의 말이다. 공씨가 말하길, “周는 지극하다는 말이다. 주왕에게 지극히 가까운 친척이 비록 많았지만, 周家에 어진 사람이 많았던 것만 못하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孔氏 名安國 西漢曲阜人 공씨는 이름이 안국이고, 서한 시대의 곡부 사람이다.
問雖有周親 註紂之至親 雖多 他衆叛親離 那裏有至親 朱子曰 紂之至親 豈不多 唯其衆叛親離所以不濟事 故書謂 紂有億兆夷人 離心離德 是也 누군가 묻기를, “‘비록 지극히 친한 친척이 있더라도’에 대하여, 집주에서는 ‘주왕의 지극히 친한 친척이 비록 많았더라도’라고 하였으나, 그는 뭇사람이 배반하였고 至親은 떠나갔으니, 어디에 지극히 친한 친척이 있었단 말입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주왕의 지극히 친한 친척이 어찌 많지 않았겠는가? 오직 그에게 있어 뭇사람은 배반하고 至親은 떠나갔기 때문에, 그래서 일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서경에 이르길, ‘주왕에게 억조의 백성이 있었으나, 마음과 덕이 모두 떠나갔다.’라고 하였으니, 바로 이것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周有大賚 惟善人之是富 雖有周親不如仁賢 如周公雖至親亦以尊賢之義爲重也 百姓有過在予一人 是武王公天下之心 與成湯無以異也 此所載帝王之事 孔子之所常言 門人列於末章 所以見前聖後聖之心 若合符節 其不得時位而在下 則夫子之道 其得時位而在上 則帝王之業 남헌장씨가 말하길, “주나라에 크게 상을 하사함이 있어서 오직 선인이기만 하면 부유하게 해주었으니, 비록 지극히 친한 친척이 있다 할지라도 仁人과 賢者만 못한 것이다. 예컨대 주공은 비록 至親이었지만, 역시 賢者를 높이는 義를 소중히 여겼던 것이다. 백성에게 잘못이 있더라도, 그 책임은 나 한 사람에게 있다는 것은 바로 무왕이 천하를 공정하게 대하는 마음이었는데, 성탕왕과 더불어 다를 게 전혀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기재한 제왕의 일은 공자께서 항상 말씀하시던 바였다. 문인들이 이를 末章에 나열한 것은 앞 성인의 마음과 뒷 성인의 마음이 마치 부절이 합해지는 것과 같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들 중에 때와 지위를 얻지 못하여 아래에 있게 된다면, 공자의 도인 것이고, 때와 지위를 얻어서 위에 있게 된다면, 곧 제왕의 대업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厚齋馮氏曰 微子去之 箕子爲之奴 比干諫而死 雖紂至親 不獲用也 予小子旣獲仁人 祗承上帝 蓋武王有亂臣十人 皆爲用也 奉天討罪 以罪己爲本 故曰 禹湯罪己 其興也勃焉 후재풍씨가 말하길, “미자는 떠나갔고, 기자는 그의 노예가 되었으며, 비간은 간언하다가 죽었으니, 비록 주왕의 至親이라고 할지라도 쓰임을 얻지 못한 것이었다. 저 소자는 이미 어진 사람을 얻었으니 上帝를 공경하고 받들겠다는 것은 대체로 무왕이 유능한 신하 10명을 데리고 있었는데, 모두 제대로 쓰였다는 것일 것이다. 하늘의 명을 받들고 죄인을 토벌함에 있어, 자기에게 죄를 묻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니, 그래서 말하길, ‘우임금과 탕임금은 자신에게 죄를 물었으니, 그들이 흥기함도 힘차게 이루어졌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謹權量 審法度 修廢官 四方之政行焉 도량형을 바로 하며 법과 제도를 살펴 정비하고 없어진 관서를 수리하니 사방의 정치가 잘 시행되었다. 權 稱錘也 量 斗斛也 法度 禮樂制度 皆是也 權이란 저울의 추다. 量은 말이다. 법도란 예악과 제도가 모두 이것이다.
古註引漢律曆志云 權者銖兩斤鈞石也 所以稱物平施知輕重也 本起黃鍾之重 一龠容千二百黍 重十二銖 兩之爲兩 二十四銖爲兩 十六兩爲斤 三十斤爲鈞 四鈞爲石 五權謹矣 量者龠合升斗斛也 所以量多少也 本起於黃鍾之龠 用度數審其容 以子穀秬黍中者 千有二百實其龠 合龠爲合 十合爲升 十升爲斗 十斗爲斛 五量嘉矣 又云度者 分寸尺丈引也 所以度長短也 本起黃鍾之長 以子穀秬黍中者 一黍之廣爲一分 十分爲寸 十寸爲尺 十尺爲丈 十丈爲引 而五度審矣 而此不言度者從可知也 옛 주석에서 한서 율력지를 인용하여 이르길, 權이라고 하는 것은 수, 량, 근, 균, 석으로서, 사물을 달아서 평형을 이루게 함으로써 그 경중을 아는 것이다. 본래 黃鐘의 무거움에서 기원한 것인데, 一龠은 기장 1,200알을 용납하는데, 12銖의 무게다. 그것을 2배로 하면 兩이 되니, 24銖가 1兩이 된다. 16兩이 근이 되고, 30근이 鈞이 되며, 4鈞이 石이니, 5가지 저울추가 삼가 정해진 것이다. 量이라고 하는 것은 약, 홉, 되, 말, 곡으로서, 많고 적음을 헤아리는 것들이다. 본래 黃鐘의 龠에서 기원한 것인데, 숫자를 헤아림으로써 그 용량을 살피는 것이다. 기장 알곡의 중간 크기로 1,200개를 그 龠에 채우는데, 龠 2개를 합하면 1홉이 된다. 10홉이 되(升)가 되고, 10되가 말(斗)이 되며, 10말이 곡(斛)이 되니, 5가지 量이 보기 좋은 것이다. 다시 말하길, 度라는 것은 分, 寸, 尺, 丈, 引인데, 모두 장단을 헤아리는 것들이다. 본래 黃鐘의 길이에서 기원한 것으로서, 기장 알곡의 중간 크기로써 하는데, 기장 한 개의 넓이를 分으로 하였다. 10분은 寸이 되고, 10寸은 尺이 되며, 10척은 丈이 되고, 10장은 引이 되니, 5가지 度가 잘 살펴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度를 말하지 않았음을 이를 따라서 알 수 있는 것이다. 興滅國 繼絶世 擧逸民 天下之民歸心焉 없어진 나라를 일으키고 끊어진 세대를 이어주고 숨은 사람을 들어 쓰니 천하 백성의 마음이 주나라로 돌아갔다. 興滅繼絶 謂封黃帝 堯舜 夏商之後 擧逸民 謂釋箕子之囚 復商容之位 三者皆人心之所欲也 멸망한 나라를 일으키고 끊어진 가문을 이어준다는 것은 황제, 요임금, 순임금, 하나라, 상나라의 후손을 제후로 봉해주었다는 말이다. 숨은 인재를 기용하였다는 것은 구금된 기자를 풀어주고 商容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다는 말이다. 세 가지 모두 사람들이 마음으로 하고 싶어 하는 바이다.
禮記武王克殷反商未及下車 而封黃帝之後於薊 封帝堯之後於祝 封帝舜之後於陳 下車而封夏后氏之後於杞 投殷之後於宋 封王子比干之墓 釋箕子之囚 使之行商容而復其位 庶民弛政 庶士倍祿 예기에 따르면, 무왕이 은나라를 이기고 商에 돌아와 아직 수레에서 내리기 전에 황제의 후손을 薊나라 땅에 봉해주었고, 요임금의 후손을 축나라 땅에 봉해주었으며, 순임금의 후손을 진나라 땅에 봉해주었다고 한다. 수레에서 내려서 하후씨의 후손을 기나라 땅에 봉해주었고, 은나라의 후손을 송나라 땅에 투입했으며, 왕자 비간의 묘에 봉토를 더해주었고, 기자의 구금을 풀어주었으며, 그로 하여금 상용에게 가서 그의 지위를 회복하도록 해주었다. 서민에게는 가혹한 정사를 느슨하게 해주었고, 庶士에게는 녹봉을 2배로 해주었다.
朱子曰 興滅國 繼絶世 擧逸民 此聖人之大賞 兼弱攻昧 取亂侮亡 此聖人之大罰 주자가 말하길, “멸망한 나라를 부흥시켜주고, 끊어진 가문의 세대를 이어주며, 숨은 인재를 들어 기용하는 것, 이것은 성인께서 내리시는 큰 상이고, 나약한 자를 겸병하고, 우매한 자를 치며, 어지럽히는 자를 잡아들이고(取) 망한 자를 업신여기는 것, 이것은 성인께서 내리시는 큰 벌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謹權量 是平其在官之權衡斗斛 使無過取於民 關石和均 王府則有 固是要通乎官民 然民間權量關係尙淺 政是官府與民交涉 便易得加增取盈 當今苗斛皆然 當紂之時必是取民過制 所以武王於此不容不謹 審法度是審度可否因革之宜 是底因之 不是底革之 卽此便是審處 修廢官亦只是因其見在之官而廢者 從頭改去 興滅繼絶 只是一事 黃帝堯舜禹湯 皆有功德於民 合當他子孫有國 如何不繼其絶後得 逸民是有德而隱者 亦合當敎他有祿 民心皆欲得其如此 而我則興之繼之擧之 此其所以歸心 쌍봉요씨가 말하길, “도량형을 삼가 마련한다는 것은 관청에 있는 저울, 저울추, 말과 斛을 공평하게 하여 백성에게서 지나치게 취함이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서경에 ‘關石과 和鈞이 王府에 곧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본래부터 관청과 백성에게 두루 통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민간의 도량형이 왕부와 관계가 아직도 얕다면, 이는 확실히 관부가 백성과 교섭하면서 더욱 많이 취하여 넘치기가 쉬울 것이다. 지금의 곡식을 재는 斛도 모두 그러하다. 주왕 당시에도 반드시 백성에게 취함이 제도를 지나쳤을 것이기 때문에, 무왕이 여기에 있어서 삼가지 않음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법도를 잘 살핀다는 것은 그대로 因襲하거나 없애는 것이 합당한지 그 가부를 잘 살피고 헤아려서 옳은 것은 그대로 두어 따르고, 옳지 않은 것은 없앤다는 것이니, 곧 이것이 바로 잘 살펴야 할 곳이다. 폐지된 관직을 수선한다는 것, 역시 단지 현재의 관직을 바탕으로 하되 폐지된 것을 처음부터 다시 고쳐나간다는 것이다. 멸망된 나라를 부흥시키고 끊어진 세대를 이어준다는 것은 단지 하나의 일이다. 황제와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 탕왕은 모두 백성에게 공덕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자손은 나라를 보유하고 있어야 마땅하니, 어찌 그 끊어진 후손을 이어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逸民은 덕이 있으면서도 숨어 지내는 사람이니, 역시 그들에게 녹봉을 받도록 해야 합당한 것이다. 민심이 모두 이렇게 될 수 있기를 바라는데, 내가 곧 이렇게 부흥시켜주고 이어주고 기용한다면, 이것이 바로 나에게 민심이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所重 民食喪祭 백성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민생문제와 상례와 제례였다.
武成曰 重民五敎 惟食喪祭 서경의 무성편에 이르길, “백성의 오교(오륜)을 중시하되, 오직 음식과 상례와 제사를 더 중시했다.”라고 하였다.
節齋蔡氏曰 五敎君臣父子夫婦兄弟長幼 五典之敎也 食以養生 喪以送死 祭以追遠 五敎三事所以立人紀而厚風俗 聖人之所甚重焉者 절재채씨가 말하길, “5가지 가르침은 군신, 부자, 부부, 형제, 장유 등 5典의 가르침이다. 食은 이로써 산 사람을 부양하고, 喪이란 이로써 죽은 사람을 보내주며, 祭는 먼 조상을 추모하는 것이다. 五敎와 三事는 사람의 벼리를 세우면서 풍속을 후하게 하는 것이니, 성인께서 매우 중히 여기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周有大賚以下 夫子零碎收拾 或擧其辭 或述其事 湊成武王一段事實 쌍봉요씨가 말하길, “周有大賚 이하는 공자께서 자잘한 것들을 주워서 거두어들인 것인데, 혹은 그 말씀을 거론하기도 하였고, 혹은 그 일을 기술하기도 하였다. 이로써 무왕 관련 일단의 사실을 모아서 이루어 놓았다.” 라고 하였다. 寬則得衆 信則民任焉 敏則有功 公則說 너그러우면 무리를 얻을 것이요, 믿음이 있으면 백성이 신임할 것이요, 민첩하면 공적이 있을 것이요, 공평하면 모두 기뻐할 것이다.
○ 此於武王之事無所見 恐或泛言帝王之道也 이것은 무왕의 일에서 보이는 바가 없는데, 아마도 혹시 제왕의 도를 피상적으로(泛: 넓게만) 말한 것인 것 같다. 雲峯胡氏曰 帝王之道 不能外一中字 堯舜以禪讓爲中 湯武以征伐爲中 泛言之 則曰寬曰信曰敏曰公 約言之 曰中而已 운봉호씨가 말하길, “제왕의 도는 하나의 中자를 벗어날 수 없다. 요순임금은 선양을 中으로 삼았고, 탕왕과 무왕은 정벌을 中으로 여겼다. 넓게 말하자면, 관대하다고 말하고, 미덥다고 말하고, 민첩하다고 말하고, 공정하다고 말하지만, 요약해서 말하면, 中이라고 말할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寬者柔之中 敏者剛之中 信者中之實 公者中之體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寬이라는 것은 부드러운 것의 中道이고, 敏이라는 것은 굳센 것의 中道이며, 信이라는 것은 中道의 실질이며, 公이라는 것은 中道의 體다.”라고 하였다.
○ 楊氏曰 論語之書 皆聖人微言 而其徒傳守之 以明斯道者也 故於終篇 具載堯舜咨命之言 湯武誓師之意 與夫施諸政事者 以明聖學之所傳者 一於是而已 所以著明二十篇之大旨也 孟子於終篇 亦歷敍堯舜湯文孔子相承之次 皆此意也 양씨가 말하길, “논어라는 책은 모두 성인의 은미한 말인데, 그 무리들이 이를 전하여 지킴으로써 그 도를 밝힌 것이다. 그래서 끝 편에 이르러 요순임금이 선양하면서 명하신 말씀과 탕임금과 무왕이 군사들에게 맹세한 뜻과 무릇 정사에 펴신 것들을 함께 기재한 것이다. 이로써 성학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여기에 한결같을 따름이라는 것을 밝혔으니, 20편의 큰 뜻을 드러내어 밝힌 것이다. 맹자가 끝 편에 역시 요임금, 순임금, 탕임금, 문왕, 공자가 서로 이어받은 순서를 하나하나 서술한 것도 모두 이 뜻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此篇夫子誦述前聖之言 弟子類記於此 주자가 말하길, “이 편은 공자께서 옛 성인의 말씀을 암송하여 기술한 것을 제자들이 여기에다 유형별로 기록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此篇多闕文 當各本其所出而解之 有不可通者闕之 可也 謹權量以下 皆武王事 當自周有大賚以下 至公則說爲一章 蓋興滅國繼絶世擧逸民 當時皆有其事 이 편에는 궐문이 많으므로 마땅히 각자 그 말이 나온 출처에 근본을 두고서 풀이해야 한다. 통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빼놓고 넘어가도 괜찮다. 謹權量 이하는 모두 무왕의 일이다. 周有大賚 이하부터 公則說까지는 마땅히 하나의 章으로 삼아야 한다. 대체로 멸망한 나라를 부흥시키고 끊어진 세대를 이어주고 숨은 인재를 기용한 일은 당시에 모두 그러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勉齋黃氏曰 論語末篇 歷叙堯舜禹湯武王相傳之道 而先之以執中 得其要矣 其下泛及賞善罰惡 責己恕人 大綱小紀 本數未度 無不具擧 蓋帝王之道 初無精麤 凡事之合天理當人心者 是其所以爲道也 所謂執中 正以其事事物物無適而非中耳 豈虛空無據而可謂之中乎 면재황씨가 말하길, “논어의 말편에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 탕왕 무왕께서 서로 전해주신 도를 차례차례 서술하면서도, 執中(가운데를 붙잡음)을 앞세운 것은 그 요점을 터득한 것이다. 그 아래로 선인에게 상주고 악인은 벌주며 자신을 꾸짖고 남은 용서하며, 大綱과 小紀, 근본과 말단을 헤아림 등에 넓게 이르러서, 갖추어 거론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대체로 제왕의 도는 처음부터 정밀하거나 거친 것이 없어서, 모든 일이 天理에 부합하고 인심에 합당한 것이니, 이것이 바로 그것이 道가 된 까닭이다. 이른바 執中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모든 사물마다 어디를 가더라도 중도가 아님이 없기 때문일 따름이다. 그러니 어찌 허공처럼 아무런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일컬어 中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通論此章 堯舜禹是說相傳之理 湯是說他心事 武王又是兼政事而言 三說固無不同 然累聖相承 只是一中字 前面說理處是中道流傳之原 下面亦無一不是執中之實 쌍봉요씨가 말하길, “이 장을 통틀어 논하자면, 堯舜禹 임금은 서로 전해주는 이치를 말하였고, 탕왕은 그의 마음속 일을 말하였으며, 무왕은 다시 정사를 겸하여 말한 것이다. 세 가지 말씀에는 본래 다른 점이 없었지만, 그러나 여러 성인들께서 서로 계승한 것은 그저 하나의 中자일 따름이었다. 앞에서 理를 말한 부분은 바로 中道가 흘러 전해진 근원이고, 아래에서도 역시 執中의 실질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前篇之末 言夫子之得邦家者 其用必如此 此篇之首 則述叙自古帝王之用 固如此 以見聖學之所傳者 無非有體有用之學 而凡論語二十篇之大旨 皆不外此也 孟子篇終卽此意 但孟子聞知見知者 知其道 也是從知上說 此則從行道上說 行無不本於知 知卽所以行 固無異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전편의 마지막에 공자께서 邦家를 얻었다면 그 작용은 반드시 이와 같았을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이 편의 첫머리에서는 바로 옛 제왕의 작용이 진실로 이와 같았음을 서술함으로써, 聖學에서 전하는 것은 體도 있고 用도 있는 학문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으며, 논어 20편의 큰뜻이 모두 이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맹자란 책의 끝부분도 곧 이 뜻이나, 다만 맹자에서 ‘들어서 알고 보아서 아는 것’이라 하였는데, 그 道를 아는 것도 안다는 측면을 따라서 말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곧 도를 행한다는 측면을 따라서 말한 것인데, 실행하는 것은 아는 것에 뿌리를 두지 않음이 없고, 아는 것은 곧 행할 수 있는 까닭이니, 본래부터 다름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