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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제단과 물두멍을 만들다
출 38:1-8
1 그가 또 조각목으로 번제단을 만들었으니 길이는 다섯 규빗이요 너비도 다섯 규빗이라 네모가 반듯하고 높이는 세 규빗이며
2 그 네 모퉁이 위에 그 뿔을 만들되 그 뿔을 제단과 연결하게 하고 제단을 놋으로 쌌으며
3 제단의 모든 기구 곧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고
4 제단을 위하여 놋 그물을 만들어 제단 주위 가장자리 아래에 두되 제단 절반에 오르게 하고
5 그 놋 그물 네 모퉁이에 채를 꿸 고리 넷을 부어 만들었으며
6 채를 조각목으로 만들어 놋으로 싸고
7 제단 양쪽 고리에 그 채를 꿰어 메게 하였으며 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었더라
8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
출 38:1-8 / [제단을 만들다] 브사렐은 또한 아카시아나무로 길이 2.3미터, 나비 2.3미터가 되게 네모 반듯하게 만들고 높이는 1.4미터가 되게 하였다. 2) 이 제단의 윗면 네 모퉁이에는 각각 뿔이 위로 뻗어 나오게 제단과 이어서 만들었다. 그리고 제단을 모두 놋쇠로 감쌌다. 3) 또 제단에 딸려 있는 모든 기구들, 곧 재를 담아내는 통과 부삽과 피 뿌리는 대접과 고기 갈고리와 화로 등도 모두 놋쇠로 만들었다. 4) 그물 모양으로 엮어 만든 놋쇠 철망을 제단의 네 옆면에 붙여 이 놋쇠 그물이 제단의 중간까지 닿게 하였다. 5) 놋쇠 그물 네 모퉁이에는 채를 꿸 고리를 거푸집에 부어 만들어 달았다. 6) 채는 아카시아나무로 만들어 놋쇠를 입혔다. 7) 이 채는 제단의 양쪽 옆면에 있는 고리에 꿰어, 이 채를 붙잡아 제단을 들 수 있게 하였다. 제단은 널빤지로 만들어 속이 비게 하였다. 8) [물두멍을 만들다] 또 브사렐은 놋쇠로 물두멍을 만들고 물두멍을 받칠 받침대도 놋쇠로 만들었다. 물두멍과 그 받침대는 만남의 장막 문간에서 봉사하는 아낙네들의 놋쇠 거울을 녹여서 만든 것이다.
브살렐은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태워서 제사드리기 위한 번제단을 만들고 회막 문 앞에 물두멍을 만들었습니다.
조각목으로 번제단을 만들었으니(1-7) 구약 제사의 가장 핵심이 되는 번제란 희생제물을 번제단 위에서 불태워 드리는 제사입니다. 고대 이방 종교에서는 삼각형과 원형의 제단도 많았으나, 이스라엘의 번제단은 사각형으로 만들어 이들과 구별하였습니다. 번제단은 놋으로 입혔고, 번제단의 모든 기구를 놋으로 싼 이유는 번제단이 제물을 태우는 불의 열기를 능히 견뎌낼 수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번제단을 놋단(왕하 16:14, 15)이라고 부릅니다. 번제단 네 모퉁이 위에는 각각 뿔을 만들었습니다. 이 제단의 뿔은 우발적인 범죄자가 성소로 도피하여 이 제단 뿔을 잡을 경우, 그 죄인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왕하 1:50).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위한 제단 뿔과 같으신 분이십니다. 번제단의 부속 기구들 중에 재를 담는 통, 재를 퍼 담는 부삽, 단에서 흘러내리는 희생제물의 피를 받는 대야, 그리고 세 살 갈고리는 잘려진 고기를 단 위에 골고루 펴는 작업에 쓰였습니다. 불 옮기는 그릇은 불씨를 담아 향단으로 옮기는 데 사용된 기구입니다. 향단의 향은 반드시 번제단의 불씨로 분향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로 분향하다 여호와의 불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레 10:1). 놋 그물은 희생제물을 불에 잘 태우기 위해 마련된 그물 모양의 석쇠입니다. 번제단의 내부가 텅 빈 상태로 만들어진 이유는 그 안에 놋 그물을 아래에 타고 남은 재와 찌꺼기들이 텅 빈 공간으로 떨어지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놋 그물 네 모퉁이에는 운반용 채가 들어갈 네 고리를 만들어 레위 자손들이 제단을 운반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8) 물두멍은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가기에 앞서 번제를 드릴 때, 손이나 발에 묻은 희생제물의 피나 오물들을 깨끗이 씻기 위한 큰 놋대야입니다. 그래서 물두멍은 번제단과 성소 사이에 위치하였고, 물두멍에서 깨끗하게 씻지 않으면 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물두멍을 만드는데 사용된 놋은 회막문에서 봉사하는 여인들의 놋 거울을 거둔 것입니다. 여인들이 자신들의 얼굴을 비추어보며 외모를 치장하는데 사용했던 놋 거울이 성소에 들어가기 위한 제사장들의 손과 발을 씻으며 마음을 살펴보는 성결의 물두멍으로 변모하게 된 것입니다.
적용: 제단과 물두멍은 물과 성령으로 죄 씻음을 받고 거듭나야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당신은 외모를 치장하기 전에 영혼을 성결하게 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영어로 화는 anger인데 이는 위험이라는 danger에서 글자 하나가 빠진 것에 불과합니다. 살다 보면 사람으로 인해, 상황으로 인해 주체 못 할 정도로 화가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화를 다스리지 못하면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반면 화가 나는 그 순간을 지혜롭게 잘 넘기면 좋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화를 다스리는 방법은 다양한 방법들이 있는데 우선 화가 나면 일단 후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도 화에 대해 이런 글을 적었습니다. '화가 나면 열까지 세고 상대를 죽이고 싶으면 백까지 세라'
< 설 교 >
번제단과 성막의 울타리
출 38:1-20 / 이상호 목사
오늘도 역시 출애굽기 27장에 나온 말씀대로 번제단과 물두멍, 그리고 성막의 울타리를 만든 말씀입니다. 따라서 긴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번제단과 성막의 뜰에 대해서 한 번 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1. 번제단(1-7절)
번제단은 성막에 있는 모든 성물 가운데 가장 큰 기물입니다. 다른 모든 성물을 합한 것보다 큽니다. 그래서 번제단은 우선 그 크기만으로도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번제단은 희생제물을 불로 태워서 하나님께 드리는 곳입니다. 번제단에 사용되는 제물, 그물, 채, 제단 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예수 그리스도가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죄가 사함 받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번제단은 구약의 십자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만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되 죄 지은 사람의 죄는 용서하시고, 대속제물을 향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대속 제물로 번제단에서 희생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때문에 우리가 그 희생을 당하지 않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은혜에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번제단의 희생제사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이 계신 성소와 지성소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번제단은 십자가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내 죄를 대신 속해 주셨다는 믿음 없이는 어느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림자처럼 보여줍니다. 천국은 착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천국에 들어갈 만큼 착한 사람은 없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가는 곳도 아닙니다. 천국은 죄를 많이 지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죄 사함 받고 성령 받은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번제단을 통과한 사람은 지성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2. 성막의 뜰에 관한 내용(9-20절)
성막의 뜰에 관한 내용입니다. 주님께서 성막을 짓게 하시면서 울타리도 두르게 하셨습니다. 길이가 50m, 폭이 25m의 직사각형 울타리였고, 울타리에는 남과 북으로 각 20개, 동서로는 10개씩의 기둥을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60개의 기둥의 재료는 놋이었고, 세마포를 걸기 위한 고리는 은이었고, 세마포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아주 정결한 천이었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성막 울타리에는 네 가지 목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불법한 자들의 접근을 막고,
둘째는 맹수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고,
셋째는 이방인들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별하고,
넷째는 단 한 개의 문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성막의 뜰을 만들라 하신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뜰을 통해서 구별을 원하셨습니다. 주님이 구별을 원하신다면 우리는 그 구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목사로서의 구별된 삶이 있습니다. 성도로서의 구별된 삶이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사이비 교인들을 만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그 깊은 뜻을 우리의 생활 속에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주셔서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직장을 보호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에 확신을 가진 사람은 다윗의 고백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녀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함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분의 소유입니다. 그분의 울타리 안에 있을 때에 그의 양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와 하나가 되는 연합의 삶을 삽니다. 그리고 성도는 성도와 연합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됨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울타리를 통해서 주님의 보호하심과 주님께로의 소속감과 연합됨, 그리고 당신의 백성이라고 하는 그 분명한 영적 구별됨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언제나 표현되시고, 그것이 여러분에게 자부심이 되시고, 여러분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헌신의 향기
출 38:8 / 오정호 목사
인도의 국부(國父) 간디는 현대사회의 7대악(七大惡)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원칙없는 정치, 둘째, 도덕성없는 상거래, 셋째, 일하지 않고 얻는 행운, 넷째, 양심없는 쾌락, 다섯째, 인간성을 잃어버린 과학, 여섯째, 개성없는 교육, 마지막으로 헌신없는 예배(Worship without Sacrifice)입니다. '헌신없는 예배'란 구약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희생없는 제사, 즉 입술만의 예배(Lip Service)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열매없는 무미건조한 삶이라면 그 원인은 헌신이 결여되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실천이 없기 때문에 삶의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주전1450년경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들도 하나님을 향한 아름다운 헌신의 향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믿음과 재능이 충만한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하나님께 부름받아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처소로서 성막(聖幕,Tabernacle), 혹은 백성들을 만나주시는 장소의 의미로서 회막(會幕,The tent of meeting)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먼저 하나님의 지시로 물두멍을 만듭니다.
물두멍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번제단으로 나아가는 제사장은 물두멍에서 손발을 깨끗이 씻고 제물을 잡아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제사를 드리고 나올 때 다시 손을 씻는 곳이 물두멍입니다. 물두멍은 '정결'을 의미합니다. 물두멍은 신약의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거룩한 만남을 위해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죄악된 영혼과 육체를 깨끗이 씻는 것을 상징합니다.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이며 신약은 구약의 실체입니다. 왕같은 제사장인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반드시 예수그리스도의 보혈과 말씀으로 정결케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물두멍은 회막문에서 제사장과 제사드리는 일을 섬기는 여인들의 놋거울로 만들어졌습니다. AD.1세기에 유리로 만들어진 거울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청동으로 거울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여성과 거울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더구나 당시 거울은 여인들에게 있어 가장 소중하고 값진 것이었습니다. 청동거울은 대단히 희소하고 값진 것이었는데 고고학 자료에 의하면 애굽왕에게 진상하는 값진 보물중에 청동으로 만들어진 거울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는 회막을 수종드는 익명의 여인들로부터 헌신의 향기를 가진 복된 삶을 살 수 있는 몇가지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사랑은 봉사를 통해 나타납니다.
물두멍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헌신의 과정이 따랐습니다. 회막의 수종드는 여인들은 그들의 가치있는 최상의 봉사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나타냈습니다. 사랑은 봉사를 통해 나타납니다. 내가 쓰고 남은 잉여물이 아니라 내게 있어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을 가지고 봉사할 때 사랑의 증거가 나타납니다.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은 물두멍의 정결의식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인들은 물두멍의 재료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거울의 재료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성막의 제사를 섬기기 위해서 그들에게 가장 값진 거울을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여인들의 마음에 일어난 헌신의 불길은 성막을 짓기 위해 거울을 헌납함으로 하나님의 성막을 짓는 귀한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점을 시사합니다. 우리는 성전건축을 위해 헌신할 때 우리의 쓰고 남은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하고 값진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여 헌신의 상징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2. 믿음으로 물질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몇년전 '김밥 할머니'라고 불리우는 한 할머니가 평생을 모은 재산을 기꺼이 지방대학교에 기증하여 '21세기관'이라는 건물이 세워지게 되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아깝다'는 개념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우리가운데 자녀들을 위해 돈을 사용하는 것을 아깝다라고 생각하는 부모는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아깝다'는 개념은 적용되는 대상에 의해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죄인이었던 우리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아들이셨던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것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롬8:32).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주셨습니다(롬5:8).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남김없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 인생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가치있는 존재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를 주십시오. 예수그리스도의 생명과 복음만이 인생의 참된 가치를 부여합니다.
회막의 수종드는 여인들은 성숙한 내면의 믿음으로 눈에 보이는 물질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물질을 다스리는 능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영력으로 물욕을 다스리는 성도다운 성도가 됩시다.
3. 자발적인 봉사입니다.
물두멍에는 거울을 드린 여인들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발적인 헌신과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대원칙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름을 내지 않는 헌신이 축복된 헌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자 성막을 짓기 위한 물질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원하는 마음, 즐거운 마음으로 물질을 드렸습니다. 그로 인해 모든 재료가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습니다(출36:2-7).
우리가 넉넉한 주님의 사랑을 받았다면 우리 또한 자원하는 넉넉한 마음으로 헌신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빼앗기는 심령이 아니라 자원하는 심령으로 드릴 마음이 있는지 물으실 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주님은 자원하는 심령으로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4. 헌신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점에 가장 소중한 것을 드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헌신은 날마다 연속되어야 하지만 일생에 중요한 획을 긋는 헌신의 기회는 자주 오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그가 헌신의 정상에 설 수 있었던 독자 이삭을 드리는 장면은 아브라함의 인생에 유일하게 한 번 등장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헌신의 절정을 드리는 순간이 필요합니다. 그 때의 헌신의 수준이 우리의 신앙의 수준을 결정짓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회가 축복입니다. 기회가 은혜입니다. 이 기회를 붙잡는 자가 승리자입니다. 우리의 생애의 결론은 얼마나 주의 거룩한 영광을 위해 마음과 기도와 물질을 드렸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이방 종교에서는 복을 받기 위해 선을 행하고 물질을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받은 은혜와 복이 너무 크기에 물질을 드리는 것입니다.
회막문에서 섬겼던 익명의 여인들이 물두멍을 만들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막을 만드는데 쓰임받았다면 우리의 삶도 성전건축을 위해 쓰임받는 기쁨이 충만하게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헌신의 향기가 가득한 삶이 되게 합시다. 예수 사랑만이 우리 인생의 결론이 되게 합시다.
거울없이 사는 여인들
출 38:8 / 강문호 목사
우리는 흔히 거울하면 얼굴을 매만지는 도구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거울은 여러 가지로 사용되었습니다. 요즈음은 좁은 음식점에서 넓게 보이게 하는 데 거울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역사에는 거울에 얽힌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 거울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놀랍습니다. 기원전 215년 로마 함대는 희랍의 도시 시라쿠시를 공격하였습니다. 이 때 이 도시에 유명한 수학자요 발명가인 아르키메데스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약세인 나라를 지키고자 기발한 발명을 하였습니다. 대형 청동 거울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해변에서 적함의 노를 젓는 노예들의 눈에 비쳤습니다. 이들은 눈이 부셔서 도저히 노를 젓지 못 하였습니다. 방향을 잃어 버리고 우왕좌왕하다가 서로 부디치고 파손되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전쟁에 거울 때문에 승리하였습니다. 얼마전 우리 나라에서도 대학생들이 데모할 때 경찰은 최류탄으로 대항하고 대학생들은 거울을 경찰들에게 비추어서 제대로 활동 못 하게 하였던 사건이 있습니다. 거울에 읽힌 이야기들입니다. 본문에 거울없이 사는 여인들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출38;8)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나님의 집인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크기, 색깔, 방향, 재료등을 상세하게 지시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물두멍은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놋 거울로 만들었습니다.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리고 물두멍에서 손을 씻고 성소로 들어가는 것이 제사장들이 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라고 하시니까 문 앞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이 자기 놋 거울을 다 바쳤습니다. 그래서 물두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나는 이스라엘 골통품 상을 돌면서 그 당시 여인들이 사용하던 놋거울 진품 한 점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2,000불 주었습니다. 약 260만원 지불하였습니다. 여인들이 거울을 바쳤다는 것은 화가가 붓을 드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전거 선수가 자전거를 드리고, 축구 선수가 공을 드린 것입니다. 목사가 성경을 준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거울없이 사는 여인들이 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없어지면 또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애급에서 나와서 광야생활할 때입니다. 가나안 땅으로 이동중이었습니다. 일단 모든 것이 없어지면 구할 수 없을 때입니다. 그래서 거울없이 사는 여인들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문앞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에게 거울은 필수품이었습니다. 늘 24,000명의 제사장들을 대합니다. 그리고 성막을 드나드는 200만명을 대하는 여인들입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여인들이 얼굴을 매만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불편하기 짝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확실하게 수종드는 여인들이었습니다. 수종든다고 하였는 데 누구에게 수종드는 것일까요? 1. 하나님께 수종들었습니다. 2. 제사장들에게 수종들었습니다. 3. 백성들에게 수종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확실하게 수종들었습니다. 자기에게 가장 귀중한 것을 없애면서 수종드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를 수종들고 있습니까? 확실하게 수종드십시오. 반드시 결과가 좋을 것입니다. 장 세동이 전 두환 대통령을 수종들 때 감옥에 갈 일이 있으면 꼭 장 세동이 갔다 왔습니다. 그리고는 꼭 "각하! 휴가 갔다 왔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부산 모 교회 부흥회 갔을 때 장로님이 식사 대접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자기가 나가는 회사가 부도가 났습니다. 모두 퇴직금을 챙겨 가지고 나가려고 바쁠 때였습니다. 장로님은 사장님에게 말했습니다. "사장님! 사장님이 부도 처리를 못 하여 감옥에 들어 가 앉아 있으면 우리 회사는 망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내가 모든 책임을 지고 들어가 앉아 있다 오겠습니다. 그 동안 회사를 일으키십시오. 그리고 모든 것은 내게 뒤집어 씌우십시오" 그리고 감옥에 들어 갔습니다. 그 동안 사장은 회사를 차분하게 다시 일으킬 수가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형기를 마치고 나왔더니 사장님이 너무 고마워 하면서 조그만 회사 하나를 차려 주었습니다. 그 회사가 하나님의 축복가운데 먼저 다니던 회사보다 더 큰 회사가 되었습니다. 일년이면 일본을 수 십번을 가는 데 주일 낮 예배를 본 교회에서 안 드린 적이 한번도 없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수종들 때 확실히 수종드는 것이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이 거울을 없앨 정도로 확실하게 수종들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느 왕이 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가장 충성스런 신하 한 명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자네는 내게 가장 충성을 다 하였어. 나는 지금 죽게 되었어. 이왕 충성하는 것 먼저 가서 내 길을 예비할 수 있는가?" 이 말을 들은 신하는 "폐하! 내가 먼저 가서 폐하를 맞겠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그 자리에서 자살하였습니다. 수종들되 너무나 분명한 수종입니다.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이 거울을 바친 것은 이런 수종이었습니다., 1. 수종드는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수종드는 여인들은 하나님 수종을 들은 것입니다. 하나님 께서 물두멍을 만드실 때 놋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여인들은 정말 필요한 놋거울을 바쳤습니다. 수종들어야 하는 이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낌없이 드리는 수종이었습니다. 이것이 참 수종입니다. 나는 잊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에스콰이어 구두 회사에 설교하러 가서 사장님과 함께 식사하다가 들은 이야기입니다. 4,500명 직원을 IMF를 지나면서 3,800명을 해고시키고 지금은 700명 남았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남게 되었느냐고 목사적인 감각으로 물었습니다. 회사가 주어야 할 것은 주어야 했고 받을 것은 받지 못 할 때 부도위기였습니다. 받지 못 하여도 가죽은 사와야 했습니다. 받지 못 하여도 월급은 주어야 했습니다. 경영 위기에 있을 때 집문서를 가지고 와서 "은행에 담보로 사용하여 회사를 일으켜 주십시요"라고 말하는 사원들이 있었답니다. 이런 사원들은 회사와 운명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알고 끝까지 같이 일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수종들어야 하는 분의 뜻에 절대적으로 맞추는 자세를 가진 자가 정말 수종드는 이입니다. 내가 필요하여도 수종들어야 하는 분이 필요하다면 드리는 수종이 참 수종입니다. 2. 수종드는 제사장의 필요를 따라 수종드는 여인들은 누구 수종을 들었다는 말입니가? 하나님 수종을 들으며 제사장 수종을 들어야 했습니다. 당시 제사장은 24,000명이었습니다. 물두멍은 제사장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손발을 닦지 않고 성소에 들어가면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할지니라>(출30;18-20) 물두멍은 제사장들에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인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없으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장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하니까 거울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거울없이 사는 여인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군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수종드는 여인들은 꼭 필요하여도 드렸습니다. 엘리야가 사르밧에 갔습니다. 3년 6개월간 가뭄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였습니다. 과부가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가루가 조금 있고 기름이 조금 있는 데 마지막 떡을 만들어 먹고 죽겠다고 불을 피우려고 나무를 줍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가 그 집으로 갑니다. 마지막 가루와 마지막 기름으로 마지막 떡을 만들 때까지 기다리던 엘리야가 그 떡을 달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먼 길을 왔기에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하나님의 종이 필요한 것을 공급하였습니다. 자기가 마지막 먹으려던 떡으로 수종들었습니다. 엘리야가 먹고 난 후 축복기도를 하였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가루통에 가루가 끊어지지 않았고 기름통에 기름이 마르지 아니 하였습니다. 수종드는 제사장의 필요를 채워 주었습니다. 3. 수종드는 백성들의 필요를 따라 이 여인들은 누구 수종을 들은 것입니까? 하나님 수종, 제사장 수종을 들은 것입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종을 들은 것입니다. 제사 드리러 온 사람들 수종을 들은 것입니다. 제사 드리러 온 사람들은 제물을 제사장에게 드립니다. 그러면 제사장들은 그 제물을 죄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성소에 있는 분향단으로 들어 갑니다. 성소에는 떡상, 등대, 분향단 세 개가 있습니다. 떡상의 떡은 안식일에만 먹는 것입니다. 등대의 불은 담당자가 하루에 두 번 기름을 공급할 뿐입니다. 그러나 분향단은 수시로 들어가서 기도하는 곳입니다. 물론 향은 하루에 두 번 담당자가 공급합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기도하러 왔을 때에도 제사장이 대신 들어가서 기도하였습니다. 성소에는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미 언급한 대로 물두멍에서 손발을 닦고 들어가야지 거냥 들어가면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온 백성들을 위하여 물두멍은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꼭 필요하고, 제사장들에게 꼭 필요하고,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물두멍이었습니다.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물두멍이니까 이 여인들은 백성들을 수종든다고 하면서 백성들이 필요한 것이니 거울을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거울없이 사는 여인들이 된 것입니다. 사실 이 여인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접하며 살기에 몸 단장을 잘 하고 지냈습니다. 거울은 필수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들은 성적 대상이기도 하였습니다.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삼상2;22-23) 항상 사람들을 접하는 여인들이라 뽑을 때에도 미녀들을 뽑았는 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남자들을 홀린 만한 아름다움을 지녔고 또 항상 몸을 그렇게 단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미드라쉬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모세가 성막을 만들겠다며 헌물을 광고하였을 때 얼마나 많은 헌물이 들어오는 지 그 때 그만 가지고 오라고 광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초기에는 여인들로부터는 헌물을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남자들만 동원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여인들도 바치는 일에 열성이었습니다. 여인들이 모세에게 와서 항의하면서 말했습니다. "모세 선생님! 당신은 왜 여자들이 헌금을 드리는 것은 받지 않습니까? 여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가 없다는 말입니까? 여기 우리들이 입고 있던 옷들이 있습니다. 남자들 눈에 뜨이지 않게 우리 몸을 가리던 옷입니다. 우리의 정성입니다. 이 옷에서 실을 뽑아 하나님의 집 휘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 우리들이 사용하던 놋 거울이 있습니다. 이 거울은 남자들이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입니다. 우리들도 헌신하고 싶습니다" 여인들이 모세에게 놋 거울을 가지고 나타났을 때 모세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여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육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데 사용하던 거울입니다. 선정적이고 성적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집을 만드는 데 어떻게 사용하라는 말입니까?"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 집을 지으라고 수많은 물질을 봉헌하였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기뻐하는 것이 여인들이 바친 놋 거울이다. 이유가 있다. 내 백성들이 애급에서 격무에 시달리고 있을 때 남자들에게는 기쁨이 없었다. 항상 일에 지쳐 살고 있었다. 남자들이 온 종일 애급 감독관들에게 시달리고 나서 집에 돌아 오면 여인들은 자기 남편에서 먹을 것, 마실 것을 정성스럽게 대접하여 주었다. 남편들이 안식을 취하며 기쁨으로 먹고 마실 때 여인들은 이 거울을 꺼내어 몸을 단장하였다. 그러면서 남편들에게 여자들이 아양을 떨었다. '여보 보세요. 내 모습이 더 예뻐졌지요' 예쁘게 단장한 아내들을 보면서 남자들은 성적인 욕망을 느꼈다. 그래서 아내를 품게 되었다. 그래서 자녀를 많이 낳게 된 것이다. 내가 내 백성을 하늘에 별과 같이 바닷가에 모래알 같이 번성시켜 주겠다고 하였는 데 그 예언을 이루게 한 도구가 바로 이 거울이다. 그래서 나는 이 거울을 제일 좋아 한다. 모세야! 이 거울들을 녹여서 물두멍을 만들어라. 그래서 제사장들이 손발을 깨끗이 씻게 말들어라" 이 거울은 여인들을 예쁘게 만들어 남자들이 성적 충동을 일으켰고 그랬기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알같이 인구가 번성하는 데 큰 역할을 감당하였던 도구였습니다. 이런 여인들에게 필수품인 거울을 드리고 거울없는 여인들이 되었습니다. 그 후 여인들은 보상을 받았습니다. 여인들이 남편으로부터 공연히 의심을 받을 때는 이렇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셨습니다. 아내가 정결한 데 남편이 의심할 때에는 성막 번제단앞으로 옵니다. 제사장은 토기에 물두멍 물을 담습니다. 그리고 성막 바닥의 티끌을 취하여 물에 넣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저주의 말을 종이에 이렇게 씁니다. <여호와께서 네 넓적다리로 떨어지고 네 배로 부어서 너로 네 백성 중에 저줏거리,맹셋거리가 되게 하실지라 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물이 네 창자에 들어가서 네 배로 붓게 하고 네 넓적다리로 떨어지게 하리라 할 것이요 여인은 아멘 아멘 할지니라>(민5;21-22) 이 종이를 물두멍에서 뜬 물에 빨아 여인에게 마시게 하여 아무 일이 없으면 정결한 여인으로 인정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물은 남편과 아내 사이에 틈이 생겼을 때 해결하는 물이 되었습니다. 여인들이 사용하던 거울로 만들어진 물두멍이라 여인들의 죄를 벗어 주는 역할을 하는 데 공헌하였습니다. 거울없이 산 여인들! 이들은 수종들 때 확실하게 수종든 여인들이요 하나님께 충성한 행동에 대하여는 틀림없이 보상을 받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 하나 드리고 마치렵니다. 한 교도소에 두 사형수가 같이 나란히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한 사람은 양민을 무참히 학살한 이였습니다.그리고 다른 한 명은 월남전에서 동료를 죽인 장본인이었습니다.어느 날 한 사형수는 간수에게 이런 부탁을 하였습니다. "내가 사형당하게 되면 내 시신을 실험용으로 팔겠다.돈을 미리 받아 주고 싫컷 먹다가 죽게 하여주시오" 결국 그 사형수의 몸은 미리 팔렸습니다.돈을 미리 받았습니다.맛있는 음식을 먹기 시작하였습니다.사람들이 맛있냐고 물으면 "너는 네 몸을 뜯어 먹으면서 맛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드디어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다른 한 사형수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약간의 돈과 누가 영치금을 넣어 주면 모았던 돈을 예배당 건축헌금에 드렸습니다.이왕 죽을 것이니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헌당식 날 사회자가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모임에 참석하였던 신문기자가 이 사실을 보도하였습니다.결국 그 사형수는 무기수로 감형되었습니다.모범수로 인정되어 후에 출감되었습니다.긍정적이고 헌신적인 삶에는 반드시 보상이 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꼭 심는 대로 거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