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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列國誌] 503
■ 2부 장강의 영웅들 (159)
제8권 불타는 중원
제 21장 불타는 임치성 (1)
"으헉 -" 다음날 아침 눈을 떠 성루에 올라섰을 때, 제영공(齊靈公)은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내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이게 무슨 조화인가.눈길이 가닿는 곳 - 산봉우리마다, 숲마다, 골짜기마다,
평원마다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진(晉)나라 군대의 깃발뿐이 아닌가.
제영공(齊靈公)은 심한 공포감에 다리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했다."여봐라!"
눈에 익은 그림자 하나가 그 앞에 대령했다. 내시관 숙사위였다.
제영공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떨어졌다."임치로 돌아가겠다.""예?"
"네 눈에는 저것이 보이질 않는가? 이토록 작은 평음성(平陰城)에서는 저 대군을 막을 수 없다.
임치(臨淄)로 돌아가서 다시 싸움을 시작하겠다."
말을 마친 제영공(齊靈公)은 굴러떨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급하게 성루에서 내려왔다.
"오늘 밤 사이에 철군을 끝내도록!"
평음성 안은 어수선했다. 장수서부터 병졸들에 이르기까지 짐을 챙기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그때 임치성에서 공자 아(牙)가 보낸 사자가 당도했다. 사자는 제영공에게 공자 아의 말을 전했다.
- 안영(晏嬰)이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원래 겁쟁이인지라 반드시 도망칠 것입니다.
임치성(臨淄城)으로 향했다는 2천 승의 기습군은 진군(晉軍)이 지어낸 거짓말이니 모쪼록
도망치지 말고 평음에서 적군을 맞아 싸우시도록 하시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영공(齊靈公)은 이미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일 마음이 아니었다.
"안영(晏嬰)이 평음성의 지금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평음성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 날은 10월 그믐날이었다. 달이 뜨지 않았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어둠 속으로 쉴 새 없이 차가운 바람이 몰아쳤다.
그 어둠과 바람을 헤치고 제영공(齊靈公)과 그 군대는 썰물처럼 평음성을 빠져나갔다.
그 순간만큼은 군주의 체면이고 패업에 대한 야망이고 모두 잊었다.
이때의 제영공의 철군과 관련하여 이채로운 일화가 사서(史書)에 실려있다.
아마도 허장성세로써 제군(齊軍)을 겁주리라 마음먹었던 진나라 중군 좌장 범개(范匃)도
제영공이 이토록 재빠르게 도주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다.
다음날인 11월 1일, 날이 환하게 밝았으나 진(晉)나라 군대는 조금도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평음성을 향해 허장성세를 취했을뿐이었다.
진나라 군영에서 제영공의 도주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장님 악공인 사광(師曠)
이라는 사람이었다. 사광의 '사(師)'는 음악 지휘자 혹은 악사장이라는 뜻이며, '광(曠)'은 사람 이름이다.
풀어 말하면 악사장 광(曠)인 것이다.악공으로서 전쟁터까지 따라나선 것을 보면
진평공의 총애도 총애려니와 음악에 대한 깊이가 대단했던 것이 분명하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사광(師曠)은 진평공과 마주한 자리에서 말했다.
- 하늘을 나는 까마귀 떼의 지저귀는 소리가 매우 맑고 즐겁습니다.
아마도 제(齊)나라 군대는 도망친 것이 틀림없습니다.진평공(晉平公)은 중군 원수 순언을 불러오게 했다.
순언이 진평공의 군막으로 향하는 중에 형백(邢伯)이 달려왔다. 형백이란 형읍을 다스리는
소영주를 말함이다.그때 형백은 평음성 가장 가까이에 접근하여 제군의 동태를 살피고 있던 중이었다.
- 반마(班馬)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제군(齊軍)은 도망갔음이 분명합니다. 속히 추격하십시오.
반마란 대열에서 이탈한 말이라는 뜻이다. 움직인다, 또는 떠나간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거의 같은 시각, 중군 좌장 범개(范匃)도 비슷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
- 성 위에 새들이 앉아 노닐고 있습니다.
원수 순언을 비롯한 진나라 지휘 장수들은 진평공의 군막으로 모여들었다.
즉각 척후병을 보내 평음성 내의 동태를 확인했다. 결과는 사광(師曠)이 말한 대로였다.
기막혀한 것은 오히려 허장성세의 계(計)를 짜낸 범개였다.
"제공(齊公)이 그토록 겁쟁이였단 말인가?"
어찌됐건 범개(范匃)가 시행한 계책은 효과 만점이었다.
진나라 군대는 평음성(平陰城)에 무혈입성했다.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진평공(晉平公)은 노래하듯 즐거운 표정으로 물었다."추격하면 제공을 잡을 수 있을까?"
그렇게만 되면 완벽한 승리가 아니겠는가.계산해보면 제영공과의 거리는 반나절쯤 될 것이다.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추격합시다.
중군 원수 순언(荀偃)은 서둘러 제영공의 뒤를 추격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공연히 머뭇거리다가 제영공이 임치성(臨淄城)으로 들어가 철저한 방비 태세를 갖추면
그 다음은 항복을 받아내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그가 이런 주장을 낸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이번 싸움에서 그는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
더욱이 출병하기 직전 무당 고(皐)로부터 금년 안에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다.
그는 하루빨리 승리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반면, 중군 좌장 범개(范匃)는 신중론을 주장했다.
- 이 상황에서 무리할 필요는 없겠지요.
급하게 제영공을 추격하다가 주변에 매복해 있는 제군의 기습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보다는 차라리 노읍(盧邑)과 경자(京玆) 등 평음성 일대의 제군을 먼저 공략한 후 힘을 한데 모아
일제히 임치성(臨淄城)을 들이치자는 주장이었다.둘 다 일리가 있었다.
진평공(晉平公)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결단을 내렸다.
"추격하라!"순언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았다. 즉각 추격군을 편성했다.
대군으로는 제영공을 따라잡기가 힘들다. 진나라 장수 중 몸이 날래고 힘이 장사인 맹장 주작(州綽)을
추격대장에 임명했다.평음성(平陰城)을 탈출한 제영공은 석문산(石門山) 골짜기의
좁고 험한 길을 지나고 있었다. 평음에서 30리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산이다.
군대가 후퇴할 때 가장 중요한 부대는 후대(後隊)다. 언제 적의 추격을 받아
공격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공격을 받을 경우 죽음으로써라도 본대의 안전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 후대의 임무다.이때 제군(齊軍)의 후대를 맡은 장수는 숙사위였다.
환관인 숙사위(夙沙衛)가 다른 장수를 제치고 가장 중요한 후대를 책임진 것은 상당히 기묘한 일이었다.
이는 물론 나름대로 병법(兵法)에 자신이 있어 본인이 자청한 일이었고, 제영공 또한
그 능력을 어느 정도 인정했기 때문에 허락한 일이었다.
숙사위(夙沙衛)는 후대의 대장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척후를 보내 끊임없이 진군(晉軍)의 동태를 살폈다.- 진군이 추격해오고 있습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숙사위는 제영공에게로 달려가 자신의 각오를 밝혔다.
"주공께서는 먼저 임치성으로 들어가십시오. 신은 이 곳에 남아 진군의 추격을 저지하겠습니다."
본대가 출발하자 숙사위(夙沙衛)는 다시 뒤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가장 좁고 험한 골짜기에다
빈 수레들을 모아 쌓기 시작했다.진군(晉軍)이 그 장애물을 치우기 위해 애를 쓰는 동안
제영공을 추격권 밖으로 완전히 내보내기 위한 나름대로의 계책이었다.
그런데 뒤늦게 숙사위(夙沙衛)가 후대(後隊)에 남아 진군의 추격을 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장수가 있었다.제나라에서 제법 용명(勇名)을 떨치고 있는 식작(殖綽)과 곽최(郭最)라는 장수였다.
그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내관 따위가 후대를 맡아 추격군과 싸우려 하다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우리 제나라 장수들은 천하에 웃음거리가 될 것이 뻔하오."
"그렇소. 우리 주공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환관에게 후대를 맡길 수는 없는 일이오."
이렇게 뜻을 맞춘 두 장수는 제영공에게 보고한 후 숙사위(夙沙衛)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때 숙사위(夙沙衛)는 이미 수레를 쌓아 길목을 차단하고 진군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식작(殖綽)은 숙사위 앞으로 다가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그대 같은 환관이 군대를 맡는다는 것은 우리 제(齊)나라의 수치요. 지금부터는 우리들이
후대를 맡을 터이니, 그대는 주공 곁으로 돌아가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바라오."
숙사위(夙沙衛)는 발끈하는 표정으로 턱을 치켜들었다. 입술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무서운 눈길로 두 사람을 쏘아보던 숙사위는 휭하니 몸을 돌려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앞쪽을 향해 달려가버렸다.이윽고 진군 추격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식작(殖綽)과 곽최(郭最)는 후대 병사들을 정돈하여 천천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숙사위가 쌓아놓았던 수레는 진군의 추격을 저지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진군 추격대장 주작(州綽)은 재빠른 솜씨로 길을 가로막은 수레를 치우고 추격의 고삐를 조였다.
식작과 곽최의 제군(齊軍) 후대와 주작이 이끄는 진군(晉軍) 추격대 사이가 상당히 가까워졌다.
활을 쏠 수 있는 거리까지 좁혀졌다.그때 예상치 못한 상황이 식작(殖綽)과 곽최(郭最)의 눈앞에 벌어졌다.
진군 추격대를 경계하며 천천히 후퇴를 거듭하던 그들 전방에 느닷없이 장애물이 나타난 것이다.
죽은 말 30여 마리가 큰 바위 사이로 난 좁은 길목에 쌓여 있었다.
식작(殖綽)의 눈초리가 금세 험악해졌다."틀림없이 숙사위의 소행이오. 빌어먹을 환관 자식!"
그랬다. 그것은 숙사위의 짓이었다. 그는 식작과 곽최에게 당한 모욕을 앙갚음하기 위해
일부러 말을 죽여 그들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진로를 막아버렸던 것이다.
말의 시체를 치우기에는 진군 추격대가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식작(殖綽)이 결전을 각오하고 수레를 돌렸을 때였다.
화살 두 대가 연이어 날아와 식작의 목 양쪽 어깨에 나란히 박혔다. 놀라우리만큼 정확한 솜씨였다.
"헉!"식작은 기겁했다.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자신의 목부터 어루만졌다.
목을 중심으로 식작의 양 어깨에 연속 화살을 쏜 사람은 진군 추격대장 주작(州綽)이었다.
그는 어느 틈에 식작과 곽최 가까이 다가와 또 하나의 화살을 시위에 걸고 외쳐댔다.
"그대들이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결박을 받는다면 내 그대들을 죽이지 않고 후대하겠지만,
만일 끝까지 저항한다면 이번에야말로 앞선 두대의 화살 중간을 겨냥하고 이 화살을 날릴 것이다."
말투로 보아 일부러 죽지 않게 활을 쏜 것이 분명했다. 식작(殖綽)은 싸울 의욕을 완전히 잃었다.
곁눈으로 곽최를 돌아본 후 큰소리로 외쳐 물었다.
"우리를 죽이지 않겠다는 말을 하늘에 대고 맹세할 수 있는가?"
이때의 주작(州綽)의 대답이 재미나다."해와 같다(如日)."태양처럼 분명히 맹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깨끗하게 단념한 두 사람의 행동에 호감을 느꼈음이 분명하다.
주작의 시원한 대답에 식작(殖綽)과 곽최(郭最)는 들고 있던 활을 버렸다.
두손을 뒤로 한 채 스스로 병차에서 내려 포로가 되었다.
제(齊)나라 맹장을 둘씩이나 사로잡은 주작(州綽)은 여기서 추격을 멈췄다.
제영공을 사로잡기는 글렀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는 식작과 곽최를 데리고 뒤따라오는 중군 원수 순언에게로 돌아가 보고했다.
"제공(齊公)은 이미 석문산을 벗어났습니다. 대신 후미를 맡았던 제군 장수 식작과 곽최를 잡아왔습니다.
짐작건대, 이 두사람은 용맹한 장수들입니다. 잘 대접하면 우리나라을 위해 힘쓸 사람입니다."
순언(荀偃) 역시 제군을 더 이상 추격하기는 무리라고 생각했음인지 군대를 돌려 평음성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식작과 곽최에 대해서는 홀대하였다.
"이자들에 대해서는 싸움이 끝난 후 처리하리라. 우선 중군 안에다 가둬라."
그러고는 일반 포로를 대하는 식으로 아무렇게나 감옥에 팽개쳐 넣었다.
504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504
■ 2부 장강의 영웅들 (160)
제8권 불타는 중원
제 21장 불타는 임치성 (2)
- 평음성(平陰城) 함락! 경자(京玆)를 지키고 있던 최저(崔杼)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평음에는 제영공(齊靈公)이 친히 군대를 지휘하고 있다. 식작, 곽최 등의 제나라 명장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그런 평음성이 이제 막 시작된 싸움에서 패해 함락되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잘못된 소식이겠지.'
최저(崔杼)는 급히 세작을 풀어 상세한 정보를 수집했다. 사실이었다.
- 주공께서는 싸워보지도 않고 퇴각했습니다.철군 이유를 듣고 최저는 기가 막혔다.
'바보 같은 ......주공은 순언(荀偃)에게 농락당하셨다.'
분노와 함께 머리를 스치는 것은 제영공의 안위였다. 다행히 무사하다는 소식이었다.
또 하나의 불안이 그를 엄습했다.- 더 이상 여기서 꾸물거릴 필요가 없다.
이렇게 중얼거린 최저(崔杼)는 경자 수비군을 모아놓고 명령했다."임치성으로 돌아간다. 지금 당장!"
최저군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들은 신속하게 경자에서 철수하여 임치성으로 내달았다.
- 늦으면 임치성마저 함락당할지 모른다.
이런 불안감이 최저(崔杼) 군의 발걸음을 급하게 재촉했다.
그러나 순언(荀偃)이 이끄는 진나라 중군은 임치로 직행하지 않았다.
제영공 추격에 실패하고 나서 범개가 제안한 전략으로 수정한 것이었다.
- 주변 일대의 제군(齊軍)을 소탕한다!
순언과 범개는 진평공(晉平公)을 호위하며 경자(京玆)로 향했다.
경자 근처에는 하군 대장 위강(魏絳)이 최저 군을 견제하고 있었다. 순언이 그 곳에 당도했을 때
경자는 이미 텅 비어 있었다.순언(荀偃)은 진평공을 앞세우고 경자로 입성했다.
11월 13일의 일이었다.그로부터 6일 뒤인 11월 19일에는 시(邿) 땅을 점령했다.
시 땅에 진나라 깃발을 꽂은 것은 하군 대장 위강(魏絳)이었다.상군 대장 조무(趙武)와
좌장 한기(韓起)는고후가 지키는 노읍을 공격했으나 이렇다 할 전과를 거두지 못했다.
노읍(盧邑)은 고씨의 식읍. 게다가 제영공이 임치성으로 퇴각한 줄도 몰랐다.
고후로서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노읍을 지키겠다는 전의를 불태울 수밖에 없었다.
조무(趙武)는 내심 초조했다. 자신만이 아무런 공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중에 중군 원수 순언으로부터 명을 받았다.- 노읍의 포위를 풀고 임치로 진격하시오.
순언(荀偃)은 모든 전력을 임치성 공격에 쏟아부을 작정이었던 것이다. 순언의 명을 받은
조무(趙武)는 노읍(盧邑)을 깨끗이 포기했다. 즉각 군대를 돌려 동으로 향했다.
12월 3일, 진(晉)나라 3군을 포함한 12개국 연합군은 동방의 대국이라 불리는 제(齊)나라 도성
임치(臨淄)를 포위했다. 임치가 타국에 의해 포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齊)나라 사람들로서는 이 자체가 엄청난 치욕이요 수모였으나, 그걸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당장에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했다. 임치성은 초비상사태로 돌입했다.
이렇다 할 결전 한 번 치르지 않고 임치성을 포위한 순언(荀偃)은 가슴이 벅찼다.
- 이래도 내가 무능력한 원수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는 자신을 뒤따르고 있는 진(晉)나라 장수들을 향해 이렇게 외쳐대고 싶었다.
북채를 쥐었다. 둥둥둥.....
임치성 공격을 알리는 북소리가 차갑게 얼어붙은 겨울 하늘 저 멀리로 힘차게 울려 퍼졌다.
가장 먼저 공격에 나선 사람은 진(晉)나라 장수 범앙(范鞅)이었다.
그는 중군 좌장 범개의 아들로서, 한때 난씨 집안과의 알력으로 진(秦)나라로 망명하기도 했었다.
그는 난침이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오해를 풀기 위함인지 그 어느 때보다 용맹을 발휘했다.
그가 공격한 곳은 옹문(雍門)이라 불리는 임치성 성문이었다.
그는 옹문 밖에 심어져 있는 가래나무들을 쳐서 쓰러뜨리고 마침내 옹문을 깨뜨렸다.
진군은 성문 안으로 돌진했다.- 여기 진나라 범앙(范鞅)이 임치성 안에 발을 들여놓았노라.
이렇게 외치고는 자신의 병차를 모는 어자 추희(追喜)를 시켜 개 한마리를 죽여 창에 꿰어
높이 치켜들었다. 이것은 승리를 기념하는 일종의 의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기념 의식을 행한 것은 범앙뿐만이 아니었다. 그 뒤를 이어 들이닥친 노나라 장수
중손속(仲孫速)은 성문 안으로 들어서다가 교목 하나를 발견했다."이건 춘(槆)이 아닌가?"
춘은 참죽나무다. 거문고를 만드는 재료로 안성맞춤이다.
중손속(仲孫速)은 싸움은 뒷전에 두고 그 참죽나무를 베어 성밖으로 운반해갔다.
나중에 그는 그 나무로 거문고를 만들어 노양공(魯襄公)에게 바쳤다.
옹문을 돌파한 자신의 용맹과 공을 과시하려는 기념품으로 삼은 것이었다.
그러나 제(齊)나라 병사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그들은 필사적으로 성안으로 돌입한
적군을 막아냈다. 이 때문에 범앙과 중손속은 더 이상 성안 거리로 들어서지 못했다.
다음 날, 진군은 더욱 거세게 공격을 퍼부었다. 재차 옹문을 돌파함과 동시에 화공(火攻)을 가했다.
임치성 수비군이 옹문 주변으로 몰려드는 틈을 타 진장 사약(士弱)이 신문(申門)을 공격했다.
신문은 임치성 남쪽에 위치한 문이다.신문 밖에는 신지(申池)라고 하는 연못이 있었고,
그 주변으로 대나무숲이 울창했다. 사약은 이 대나무숲을 몽땅 불태웠다.
마침내 신문(申門)도 돌파되었다.
이때부터 임치성의 서쪽 성곽과 남쪽 성곽 마을에는 불기둥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제영공(齊靈公)은 나와 항복하지 않았다.3일 뒤, 중군 좌장 범개는 다시 명을 내렸다.
- 동려문(東閭門)과 양문(楊門)을 공격하라!동려문은 동문이요, 양문은 북문이다.
동려문(東閭門)을 공격한 장수는 제군의 장수 식작과 곽최를 사로잡은 바 있는 주작(州綽)이었고,
양문(楊門)을 공격한 장수는 옹문을 공격하여 돌파한 바 있는 범앙(范鞅)이었다.
이로써 임치성(臨淄城)은 사방 성문을 중심으로 크게 불타올랐다.
그 불길 속에서 제(齊)나라 방어군과 진(晉)나라 공격군은 치열한 백병전을 펼쳤다.
함성은 지축을 뒤흔들고 화살은 궁성을 향해 빗발치듯 날았다.
글자 그대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이었다.그 시각, 제영공(齊靈公)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아직 공궁까지는 진군이 침입하지 않았지만 언제 공궁마저 불바다가 될지 알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개처럼 죽어 창에 꿰일 것이다.'
이런 불안감이 엄습하자 도저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숙사위를 불렀다.
"수레를 대령시켜라!"근신(近臣)들은 제영공이 친히 나서서 진군의 공격을 막으려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곧이어 내린 명령은 그들을 대경실색케 했다."우당(郵棠)으로 갈 것이니라."
우당이라면 산동 반도 끝자리에 위치한 곳이다. 내(萊)나라 영토였던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제영공(齊靈公)의 말은 무엇인가.도망치겠다는 뜻이 아닌가.
근신들은 너무나 어이가 없어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공궁 뜰 앞에 수레 한 대가 놓이고 네 마리의 말이 매어졌다.
궁을 지키는 병사들이 동요하는 가운데 제영공(齊靈公)이 뜰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저를 비롯한 장수들은 공궁 밖에서 진군의 돌격을 저지하느라 이런 제영공의 움직임을
전혀 알지 못했다.다만 세자 광(光)만이 물을 마시기 위해 안으로 들어왔다가 수레에 올라타려는
제영공의 모습을 보았다.그는 황급히 달려가 제영공(齊靈公)이 탄 수레 앞을 가로막으려 외치듯 말했다.
"부군(父君)께서는 도망치지 마십시오. 진군(晉軍)이 비록 거세게 임치성(臨淄城)을 몰아붙이고 있으나,
저들인들 어찌 후방에 대한 걱정이 없겠습니까. 오래지 않아 스스로 군대를 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군(父君)께서 이 곳을 버리시면 임치(臨淄)를 지킬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군주가 백성을 버리면 후일 백성이 그 군주를 버리는 날이 옵니다.
부디 부군께서는 이 나라를 버리지 마십시오."
피를 토하는 듯한 간절한 외침이었다.그러나 제영공(齊靈公)의 표정은 싸늘했다.
"네가 감히 나를 거역할 셈이냐? 어자는 뭘 하는가. 어서 수레를 몰아라!"세자 광(光)이 다시 외쳤다.
"안 됩니다.""몰아라!"수레가 움직였다. 동시에 세자 광의 손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칼을 뽑은 것이다. 벌겋게 충혈된 눈에서는 묘한 광채가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제영공(齊靈公)은 그러한 세자의 행동을 예상치 못한 듯 주춤했다.
"무례한 짓을 하면 용서하지 않겠다. 그 칼을 거두어라!""그럴 수 없습니다.
부군께서 수레에서 내리십시오.""밀고 나가라!"다시 수레가 앞으로 전진했다.
말발굽에 채일 순간, 세자 광(光)은 옆으로 비켜섰다.
수레가 그 앞을 지나갈 때였다. 칼을 들고 있던 세자의 손이 번쩍 하고 움직였다.
"앗!"경악의 외침 소리와 함께 제영공(齊靈公)이 타고 있던 수레가 기우뚱 흔들리며 멈춰섰다.
수레와 말을 연결한 끈이 두 동강으로 끊어져 있었다.동시에 제영공(齊靈公)은 수레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서운 눈길로 세자 광(光)을 쏘아보았다. 양쪽 관자놀이로 푸른 혈관이 꿈틀 돋아나 있었다.
이에 질세라 세자 광도 제영공을 향해 충혈된 눈을 마주 던졌다.
두 부자 간의 눈싸움.숨막히는 듯한 침묵이 이어졌다."너는 나를 베었다."
제영공(齊靈公)은 말을 마치자 천천히 수레에서 내려섰다. 그러고는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내궁으로 들어가버렸다.
제영공(齊靈公)이 사라진 뒤에도 세자 광(光)은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당연히 들려와야 할 공궁 밖에서의 군사들 싸우는 소리가 어느 때부터인가
일체 들려오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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