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를 밟은지 어언 20년이 넘었네요. 그땐 유학생으로 왔었는데
비행기도 일주일 딱 2대만.. 대한항공만 있었고요..
조그만 시골역 같은 유정공항에 도착하면, 창밖엔 온통 인민해방군 전투기 ;;
배타고 오시는 인천분들 많았는데... 골든브릿지 호(중간에 향설란으로 바꼈었는데, 에스컬레이터와 샹들리에가 있는 더 좋은 배로 또 바꼈더라고요) 저도 배를 몇번 타봤었는데, 그때까진 한국 보따리상 한분도 안 계셨습니다. 저랑 한국인 승객 1-2명 빼곤 나머지 승객 100% 는 대만 국적의 화교 보따리상들
매년 옌다(严打:중국판 '범죄와의 전쟁' 같은 뜻입니다)때는 청도시내를 공안들이 기관총을 메고 2인 1조로 세퍼드랑 함께 순찰을 했었죠.
당시엔 한국 유학생 한명이 조폭들에 납치되고, 시내 경복궁 환전상도 살해 당하고... 조선족 동포 조폭들한테 전재산 뺏긴 한국인들이 대학교 기숙사로 몰려 올 정도 였으니깐요. 제 기숙사 방에서도 재워준 적 있습니다.
덕분에(?) 9시부턴 武警(하이바에 사이드카 타고 다니는 무장경찰)들이 내외국인 안 가리고 전기충격기와 진압봉으로 무차별 진압(?)하러 다녔고, 덕분에 8시면 시내 역시도 등화관제 하듯이 깜깜했었죠.
그래도 목숨걸고 술 먹으러 가는 사람들 있었습니다. 시내 聊城路, 泰山路 투다리까지 가서 밤새 술 먹다 오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깐요...
청도 시내 한국인들에겐 사랑방 같은 곳이랄까? 당시엔 늦게까지 영업하는 곳이 없었으니깐... 밤에 거기 가면 술꾼들은 무조건 만날수 있었음, 주재원과 유학생...
96년까진 香港中路 하이티엔(海天)호텔 근처 쟌샨(湛山)에서 공개처형도 했었습니다.
청도 유일의 아스팔트 포장도로 였고, 중간에 중앙분리대가 있었는데.. 신호등은 고사하고 횡단보도조차 없어서 그거 넘어다니는 사람 많았죠. (신호등은 사스 공식종료 선언한 2003년도부터 본격적으로 골목골목 설치됨)
저도 공개처형 장면은 직접 보진 못 했는데요. 트럭에 범죄자들을 태우고 목에 죄명을 걸어 시내를 다니면서 하루종일 광고를 했었고요, 당일 저녁 TV 뉴스에 결과가 그대로 나왔었습니다.
거리엔 차들도 거의 없었지만, 구 소련에서 10년 이상 사용했던 중고 라다(LADA) 가 택시의 대부분이었고, 차체가 낡아 주행중엔 바닥이 보일 정도로 너덜너덜...
물론 중국산 시아리(夏利)도 있었지만 이것들은 기본요금 7원, 한국산 중고차 택시들은 9원이었는데 상하이폴크스바겐의 桑塔纳, 대우 르망, 현대 엑셀이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청도는 중국에서 친구 사귀기 가장 좋은 곳이랄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산동사람들이 한국인에 가장 호의적이었고, 또 호기심도 많았던거 같습니다.
예전의 중국친구들이 정말 보고 싶습니다. 중국어 과외를 했어도 과외비도 한번 안 받고, 어떨땐 냄새나고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놈들이... 지금은 다들 한자리씩 하고 있어서 이젠 제가 연락하기가 더 부담스럽네요.
청도는 제게 그런 첫 인상이 있습니다.
저는 북경이랑 청도에서 학교를 다녔고, 광동성 심천, 동관이랑 상하이에서 회사를 다녔었는데요...
청도가 유독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어제그제 중국에서 같이 학교, 회사 다니던 친구들이랑 동료들, 오랜만에 만나서 한잔 했는데...
아직까지도 집에 안 가고 있는 한 놈이랑 낮술하다 생각나는 얘기들.. 주저리주저리 적어봤습니다.
술 깨면 후회하고, 이거 삭제할지도 모름...
첫댓글 덕분에(?) 9시부턴 武警(하이바에 사이드카 타고 다니는 무장경찰)들이 내외국인 안 가리고 전기충격기와 진압봉으로 무차별 진압(?)하러 다녔고, 덕분에 8시면 시내 역시도 등화관제 하듯이 깜깜했었죠.
이때가 98년도 였나요 아니면 99년도였나요?일본인 손님을 海天호텔에 바래다주고 돌아오는길에 큰 봉변을 당했었거든요.ㅎㅎ 308국도에 검문소가 있을때였는데요.일본손님 바래주려고 같은회사 여직원이랑 함께 차 탔었는데 308검문소에 잡혀 30분간 분리심문을 받은적있어요.문제의 발단은 회사 여직원이 저의 이름 한글자를 잘못말했던탓에.한국글의 발음은 똑같은데 중국말로 하니 이상해졌던거에요.예를 들면 영원(永)영자를(英)으
로 발음해서 말입니다.한국말로는 같은 (영)인데 중국말로 하니 발음자체가 틀린거였어요.그땐 308국도엔 차가 거의 다니질 않을때였으니.캄캄한밤 이름 발음 한글자에 30여분간 같여있던 생각이 새록새록..
제 기억엔 97년 가을이나 98년 가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여기저기 바리게이트 검문 많이 했었죠. 그땐 낮에도 차가 안 다닐땐데, 밤에 308 에 붙잡혀 계셨다니.. 정말 놀라셨겠어요 ;;;
ㅎㅎ 그땐 지금의 청도시내 홍콩화원이 없을때였고 머라했드라?무슨 쫭이라고 기억이 나는데?식당들이 많아 휴일이면 술마시러 자주 갔었는데?ㅎ기억이 가물가물~~리징호텔이 건설중이였나?아마 그랬을것 같은데요.
씬쟈쫭 이제야 생각나네요.辛家庄ㅎ
ㅎㅎ 옛날 생각나네요
역사책에서 나오신 분 같아요. ㅎㅎ
공개처형을 아시는 분들은 별로 없으시던데요. 이촌 중고차 시장 서는 그 곳이었던가.. 거기도 공개 처형 장소였죠.
환전상 살해 사건을 아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에도 놀랐네요. 저희만 아는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그 사건 이후로 늘 다른 사람 있는 곳에서 돈 세지 말라는 주의를 들었었답니다.
가끔 낮에도 308국도 톨게이트 부근에서 차 세워서 검문하곤 했었습니다.
95년에 처음 청도 공항에 대한항공 타고 내리는데, 취항 기념으로 허리에 차는 음료수백 홀더에 생수를 한 병씩 꽂아서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공항에 전투기가 있던 장면도 신기했고요.
입국 심사하는 사람이 비자 확인 하고 도장 찍은 후 경복궁 전단지를 여권에 껴서 줬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한 나라의 국경에서 업체 광고지를 여권에.. ㅎㅎㅎ
순수했던 시절로 기억됩니다. ^^
아 그거 대한항공 증정품 파란 생수병 홀더 지금도 제 기내가방에 있어요. ㅋㅋ
그거 보온병 느낌에다 기내가방 빈자리 끼워넣으면 왠지 충격 흡수도 해줄거 같아서 항상 갖고 다니죠. ㅋㅋ 그리고, 공항에서 경복궁 전단지 나눠줬던 것도.. 다 기억납니다.
경복궁 사장님께서 유학생들에 정말 잘 대해 주셨었어요. 항상 30% 할인 해주시고, 일년에 두번씩 무료 회식도 열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한국식당이 중산로 근처에 서울식당(?)인가 하나 있었고... 시내엔 경복궁, 서울가든, 한국관, 가빈 정도가 생각나는데요. 학생 할인 때문에 경복궁엘 가장 많이 갔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