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김영란법
중앙의대 명예교수인 나도 대학의 외래교수, 명예교수와 석좌교수도 김영란법 대상이라고 하였으나 실제적으로 보수를 받지 않으니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더니 시행 하루 전인 9월 27일에 서울고등법원에서 메일이 왔다.
서울고등법원 조정위원님들께.
다름이 아니오라 9월 28일부터 시행 예정인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과 관련하여 알려드립니다. 위원님께서는 청탁금지법 제11조가 정하는 '공무수행사인'에 해당됩니다. '공무수행사인은 각종 법령상 위원회의 공직자가 아닌 위원, 법령에 따라 공공기관의 권한을 위임․위탁받은 법인․단체 또는 그 기관이나 개인, 공무 수행을 위해 민간부문에서 공공기관에 파견 나온 사람, 법령에 따라 공무상 심의․평가 등을 하는 개인 또는 법인․단체입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이해가 걸려있는 이는 의료조정사안에 한하고 다른 것은 무관하리라 본다. 즉 조정 당사자나 연관된 원, 피고 측 변호사와 관계가 없으면 되리라 보고 조정위원을 한 지가 20년이 넘고 지금은 부위원장을 맡은 지도 거의 십년이 다되어 가며 여태껏 이런 일들이 없었고 앞으로는 더욱 없을 것이니까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의료법등의 리베이트 규제와 청탁금지법(김영란법)에 대해서는 시행되기 전 주에 이틀간 각각 다른 자리에서 두 번 강의를 들었다. 한번은 회사 워크샵에서 법무법인 주원의 조상규변호사로 부터, 다음 날은 내과학회에서 법무법인 율춘의 김기영변호사로 부터 이었다. 우스개로 역사적으로 4 대란이 있는데, 임진왜란, 병자호란, 육이오 동란, 김영란이다, 아예 정유재란까지 넣어 5 대란이라면 어떨까?
경찰에게 고맙다고 가져온 한판의 떡과 70대 의사가 경찰에게 촌지를 준 것이 입건되었다는 뉴스 보도가 있었다. 과거 지난 일이지만 병원을 하셨던 선친은 명절이면 찾아오는 관할경찰서의 교통과 직원에게 그동안 수고하였다면서 미리 준비하신 촌지를 주셨다.
나는 72년부터 환자를 보아왔으니 그동안 여러 형태의 촌지를 환자로 부터 많이 받은 건 사실이다. 예를 들면 한 겨울 서해안에 사는 나의 환자 모녀가 손을 호호 불어가며 캐온 굴 한 보시기, 새벽에 싱싱한 우럭을 회로 잡수시라고 차에 싣고 달려온 환자, 한산의 할머니는 손수 빚은 소곡주 댓 병 하나, 음성의 환자는 김장에 쓰라고 곱게 빻아온 고추 가루 한 봉지, 이걸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일가? 내가 굴, 우럭, 소곡주, 고추 가루를 팔아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가 있을까? 정성을 다하여 가져온 그걸 돌려준다고? 그럼 가져온 사람은 얼마나 무안하며 한편 화가 날까? 그 사람들이 나에게 청탁을 하려고 가져온 건 아니다. 이를 상품화, 금전으로 환산할 수가 있을까?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갈 때 와인이 맛이 있으니 한 병 더 달라. 하면 병의 마개를 틀어 따고는 준다. 즉 상품화는 막고 서비스 한다는 것이다.
중앙대 의료원 인공신장실에서 일이다. 가을 집 뒤뜰에서 딴 감을 한 광주리 환자가 들고 왔다. 감은 혈액투석 중인 환자에게는 혈청 칼륨을 올리는 식품이므로 절대금기라서 신장실 식구들과 나누어 먹었다. 말기 신부전에 심장까지도 상태가 아주 좋지 않은 환자가 애 결혼식 때 까지 제발 살려 주세요.라고 부탁한 환자가 있었다. 다행히 결혼식을 무사히 치른 후 떡을 한 시루 해가지고 왔다. 이 떡은 신장실 식구들과 환자들까지 나누어 먹었지요. 환자는 그 후 몇 달이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이것도 청탁인가? 환자가 무거운 걸 들고 가지고 온 감을 돌려주고, 해온 떡을 돌려준다고. 며칠 전 인공신장실에 들렀더니 원장 지시가 ‘아무것도 받지 말라.’해서 이제부터는 이런 재미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한다.
특히 의사는 이런 정성어린 선물을 통하여 환자와 관계가 돈독하여 진다. 왜냐하면 이들은 의사를 믿고, 또 의사도 자신을 존경하고 믿는 환자를 보기가 훨씬 수월하다. 환자가 의사를 생각해주는 만큼, 의사도 환자를 생각해준다. 의사-환자와의 관계(Rapport)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듯이 갑을관계가 아니다. 환자의 병세가 좋아지면, 의사도 기운이 나고, 반대일 경우는 의사도 우울해지는 그러한 관계이기도 하다. 현금과 수표, 상품권, 이용권 등 환금성이 있는 것이 아닌 자가 제조, 자기가 지은 농산물 그냥 두거나 반환하면 가치가 소실되는 물건들은 받아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회사의 여직원이 휴직을 하였다. 이유인즉 사시인 네 살짜리 아들의 수술을 해 주기 위한 것이다. 예약을 하고 보니 3년 후인 2919년이다. 어린애들의 기형은 학교 들어가기 전에 해주어야 놀림을 받지 않는다. 서울대병원 후배 안과교수에게 메일을 보내었다. 좀 예약 일자를 당겨 줄 수 없는가? 하고.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연락이 환자 집으로 왔다. 3년을 당겨 다음 달에 예약을 잡아 놓았다고. 이는 명백한 부정청탁에 해당되지 않을까? 물론 김영란법 시행 전이니 문제는 없겠지만.
과거에는 운전을 하다 교통법규를 위반하여 교통경찰한테 걸리면 운전면허증 뒤에 약간의 현금을 넣어두고 면허증을 달라고 할 때 이를 보여주면 돈은 빼내고 ‘운전 조심 하십시오‘ 하면서 돌려주질 않았던가? 이는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지요. 심지어는 나의 돌아가신 큰 이모부가 진주부근의 골프장에서 경남도경 국장과 골프를 치고 오시다가 이모부 승용차가 교통경찰한테 걸렸는데 어떻게 하나? 하고 유심히 보았더니 그 분이 이모부한테 ’돈 한 푼 주고 가자.‘
동사무소등의 급행료는 또 어떡하였는가? 그냥 신청하면 내일 오세요. 급행료라도 부쳐주면 기다렸다 떼어 가세요. 이도 번호표가 도입되고 또 사무전산화가 되고 난 뒤 없어졌다. 하나의 제도가 민원 청구 시의 급행료를 없앤 좋은 사례이다. 실제 이들 공무원이 받는 보수는 예전과 달리 많이 상향 조정이 되어 그들의 보수만으로도 충분한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새로운 질서가 생긴 다면 환영할 일이나 지금 국민권익위원회의 기준도 오락가락하며 누구든지 첫 번째로는 안 걸려야 한다는 consensus가 있다. 물론 시행규칙이나 세칙이 나와 보아야 알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자기네들은 깨끗하다고 말하여야 하는 인간들이 크게 문제될 일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리하게 만든 법으로 생각된다. 과연 실생활과 동떨어진 이 법이 앞으로 얼마 동안 존속할까? 가 의문점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당장 내가 위원장으로 있는 의협 의료배상 공제회 송년회를 어디서 어떻게 하여야 하나 하고 결정하여야 되는 입장이다. 그러나 의료계는 김영란법 이외에도 리베이트 쌍벌제가 있어 다른 직종 및 계층과는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런 법률이 제정되고, 또 지속되지 않았던 것을 먼저 국내외의 사례를 들어보는 것으로 끝내자.
대표적인 것으로는 미국의 금주법과 우리나라의 가정의례 준칙이 있다.
미국에서 1919년 10월 28일 전국 금주법(National Prohibition Act)이 제정되고 이듬해 발효되면서 미국 내에서 술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금주를 법으로 강요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인류 역사상 어떠한 나라도 알코올을 금하는 법을 제정할 정도로 무모하지도, 숭고하지도 않았다. 수백 만 명의 사람을 죽인 나치 독일이나 스탈린의 소련조차도 생각할 수 없는 조치였을 것이다. 이때부터 미국인들은 경건한 삶을 살아가야 했다. 그런데 세상 일이 그런 방식으로 통제될 수 있다면 오늘날 무슨 사회 문제가 존재하겠는가? 술의 합법적 생산이 금지되면서 제한적으로 유통되는 술의 가격이 급등했고, 이는 당연히 서민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다. 뿐만이 아니라 밀주가 확산되었고 그 과정에서 저질 술을 마시다가 목숨까지 잃는 사람까지 속출했다. 물론 모두 서민들이었다. 반면에 금주법을 추진한 사회 지배층은 약간의 돈이 더 드는 불편을 겪었지만 술을 마시는 데는 썩 어려움이 없었다. 게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으니 갱단이 밀주 제조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스무 살에 불과한 카포네가 시카고 갱단의 중심 세력으로 자리를 잡고 급기야 1925년에는 시카고의 일인자가 되었다. 그리고 매춘과 밀주, 도박장 등의 사업 다각화를 통해 1927년에는 1억 달러에 이르는 재산을 축적했다니, 합법적 주류 공장을 폐쇄하고 불법적 공장을 건립한 공로는 입안자 볼스테드와 금주운동 단체들에 돌아가야 할 것이다. 결국 1929년 대공황을 겪으면서 미국 전역이 혼란에 빠져 들었고 이후 대통령에 출마한 루스벨트는 금주법의 폐지를 공약했다. 그리고 1932년 선거에서 승리한 그는 1933년 이 법의 폐지안에 서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가정의례에 있어서 허례허식을 없애고 그 의식절차를 합리화함으로써, 낭비를 억제하고 건전한 사회기풍을 진작하기 위한 법으로 1969년 1월 16일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을 비롯하여 동법시행령인 가정의례준칙 등이 있다. 1973년 3월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로 개명되었고, 1980년 12월 전문 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정의례는 혼례·상례·제례·회갑연 등을 말하며, 금지된 허례허식행위는 ① 청첩장 등 인쇄물에 의한 하객초청, ② 기관·기업체·단체 또는 직장명의의 신문부고, ③ 화환·화분 기타 그와 유사한 장식물의 진열·사용 또는 명의를 표시한 증여, ④ 답례품의 증여, ⑤ 굴건(屈巾)제복의 착용, ⑥ 만장의 사용, ⑦ 경조기간 중 주류 및 음식물의 접대 등이다. 이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기관·기업체 또는 단체의 명의로 행하는 상례의 경우에도 적용되지만, 일정한 경우에 신문부고·화환 등의 증여는 허용된다. 이를 위반한 경우, 상주·제주 등 당사자, 위반자가 14세 미만인 경우에는 그 친권자나 후견인 등을 2백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 가정의례준칙은 의식절차에 관한 기준을 정하고 있는데, 상례에 있어서는 3일장을 원칙으로 하고, 부모·조부모·배우자의 상기(喪期)는 1백 일, 제례에 있어서 기제(忌祭)는 2대조까지, 연시제(年始祭)와 절사(節祀)는 추석에 직계조상을 지내도록 하고, 약혼서·혼인식식순·혼인서약·성혼선언·상례식순·상장규격·제례절차·신위모시기 등의 서식을 규정하고 있고, 공무원·사회지도층인사는 솔선수범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로 인정을 무시한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전통적인 유교적 의례준칙에 대신하여 현대사회에 맞는 의례준칙을 규정하였으나, 오랜 전통의 뿌리 깊은 습속을 쉽게 고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1998년 10월 15일의 결정에 의하여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 4조 1항 7호 중 경사 기간 중에 주류 및 음식물의 접대를 금지한 부분 및 위반자에게 2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과하는 15조 1항 1호는 헌법에 위반된다고 선언하였다. 그 후로 이 법의 시행이 흐지부지 되더니 지금 내가 받는 청첩장은 대부분 호텔에서 예식을 하고 이 때문에 처벌을 받은 사람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첫댓글 Medical Portal site의 칼럼에 올린 글입니다.
우리 같은 민간인은 김영란법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지냅니다.
법을 만드는놈과 법을 지키는 놈이 따로 있습디다.
떼법도 있는데, 떼법이 더 위력을 발휘합니다.
만드는 놈과 지키시는 분 올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