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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6:4]
당시에 땅에 네피림(킹제임스역 : 거인)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5. [민 13: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6. [삼하 21:16]
거인족의 아들 중에 무게가 삼백 세겔 되는 놋 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므로
7. [삼하 21:18]
그 후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는 거인족의 아들 중의 삽을 쳐죽였고
8. [삼하 21:20]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 곳에 키가 큰 자 하나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기 여섯 개씩 모두 스물 네 개가 있는데 그도 거인족의 소생이라
9. [삼하 21:22]
이 네 사람 가드의 거인족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다 넘어졌더라
- 성경에 나타난 네피림 특징: 큰 키,에 손가락 발가락 6개, 당대의 유명한 사람 및 영웅들
- 외경(에녹서 등) 에 나타난 기타 특징: 고도의 기술을 갖고 인간에게 전수시킴, 식인, 난폭
고대 거인족 네피림, "타락천사의 후예?"
역시 또다른 발자국크기로 보건데 어른 거인으로 추정되는 키 8M내외임을 알수 있다.
창세기에는 하늘의 천사가 내려와 지구상에 살고 있는 여인들과 만나 네피림(거인)을 낳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보수주의 신학에서는 이를 신앙이 있는 크리스천이 타락한 논크리스천과 만나 결혼한 것을 비유한 것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다.
보수주의 신학자들이 먼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있는그대로 쓰인 것이다. 당시의 표현은 하나님의 아들은 곧 천사를 말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제외된 외경인 에녹서에도 분명히 천사라고 써있다. 에녹은 성경을 통틀어 엘리야와 함께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간사람이며 엄청난 존경을 당대에 받았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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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흥리 고분
감신총
5개의 칼 찬 연개소문 <경극>
고구려계 남녀 장군으로 추정되는 돈황석굴 벽화(http://blog.ohmynews.com/historynote/127534)
신라 토우
하루 쌀 6말, 술 6말, 꿩 10마리를 먹은 대식가 무열왕 영정
<고구려>
광개토대왕 : 어려서부터 체격이 크고 뜻이 고상했다.
연개소문 : 6개의 칼을 찼다(신당서)
(※ 백제, 신라와 비교해볼 때 고구려 왕들 중에 거인이 꽤 있으리라 추측되지만, 기록이 멸실되어 남아 있지 않다)
<백제>
구수왕(6대) 2미터10센티(7척)
(仇首王, ? ~ 234년, 재위: 214년 ~ 234년)은 백제의 제6대 국왕이다. 귀수왕(貴須王)이라고도 부른다. 초고왕의 아들로 키가 7척에 풍채가 빼어나 비범했다고 한다.
책계왕(9대) 키가 매우 큼(身長大)
(責稽王, ? ~ 298년, 재위 : 286년 ~ 298년)은 백제의 제9대 국왕이다. 고이왕(古爾王)의 아들로 청계왕(靑稽王) 또는 책찬왕(責贊王)이라고도 부른다. 체격이 장대하고, 의지와 기품이 걸출하였다고 한다.
무령왕(25대) 2미터40센티(8척) 신발 350mm
(武寧王, 462년~523년 6월 5일(음력 5월 7일), 재위: 501년~523년)은 백제의 제25대 국왕으로 성은 부여(扶餘)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동성왕의 둘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키가 크고 외모가 수려했으며, 성격이 인자하고 관대하였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키가 8척에 눈매가 그림과 같았으며 인망이 매우 두터웠다고 한다.
무령왕 금동신발 35센티미터
발받침
"유물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금동으로 만들어진 왕의 신발이다. 신발이라는 명칭을 생각한다면 도저히 사람이 신었을 것이라 여겨지지 않는 어마어마한 크기에 축구화도 아닌 것이 마치 스파이크처럼 신발 바닥에 삐쭉삐쭉 못을 박아놓은 신발 같지 않은 신발. 이에 더불어 발받침 또한 크기도 크고 그 장식 또한 화려해서 잊기 어려운 이미지를 남겼다."
http://mahan.wonkwang.ac.kr/culture/2003-3/report/jungsunyung.htm
"무령왕의 신발입니다. 제가 손바닥을 대어보니 거의 두뼘도 넘습니다. 길이가 35cm에 이르는데.... 이걸 지금 신발 사이즈로 하면 350mm라는 거죠."
<신라>
남해 차차웅(2대) : 3미터~3미터30센티[추정]
(南解次次雄, ? ~ 24년, 재위 4년 ~ 24년)은 신라의 2대 국왕으로, 혁거세왕과 알영부인의 적자이다. 그는 훤칠한 키에 성품이 깊고 두터웠으며, 지략에 뛰어난 임금이었다.
탈해 이사금(4대) : 2미터97센티(9척7촌), 머리둘레 96센티(3척2촌)
(脫解尼師今, 기원전 19년~80년, 재위: 57년~80년)은 신라의 제4대 국왕)이다. 서기 8년에 남해 차차웅의 사위가 되며, 10년에 대보(大輔)로 등용되어 정사를 맡았고 43년부터는 손윗처남 유리 이사금의 대리청정을 맡았다. 57년 유리 이사금의 유언에 따라 왕이 되었다. 토해(吐解)라고도 한다.
그 두골(頭骨)의 둘레가 3척2촌, 신골(身骨)의 길이가 9척7촌이나 되며 이가 엉키어 하나가 된듯하고 골절이 모두 연해졌으니 참으로 천하에 짝이 없는 역사(力士)의 뼈였다.[삼국유사]
아달라 이사금(8대) : 2미터10센티(7척)
(阿達羅泥師今, ? ~184년, 재위: 154년~184년)은, 신라의 제8대 국왕이며, 상대(上代)의 마지막 박씨 군주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그는 일성왕(逸聖王)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 박씨, 왕후는 지마왕(祇摩王)의 딸인 내례부인(內禮夫人) 박씨이다.
아달라 이사금은 일성 이사금의 맏아들로 키가 7척이고 콧마루가 우뚝하고 용모가 기이하였다.
실성 마립간(18대) : 2미터25센티(7척5촌)
실성 마립간(實聖 麻立干, ? ~ 417년, 재위 402년 ~ 417년)은 신라의 제18대 임금이며 김알지의 후손으로 이찬 대서지(大西知)와 석씨 이리(伊利) 부인의 아들로, 그의 왕비는 아류부인 김씨(阿留夫人 金氏)로 미추 이사금(味鄒泥師今)의 딸이었다.
실성(實聖)은 키가 7척 5촌이고 지혜가 밝고 사리에 통달하여 앞일을 멀리 내다보는 식견이 있었다. 내물왕이 죽고 그 아들이 아직 어렸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실성을 세워 왕위를 잇도록 하였다. [삼국사기]
지증왕(22대) : 음경의 길이 45센티(1자5치)
(智證王, 437년 ~ 514년, 재위: 500년 ~ 514년)은 신라의 제22대 왕이다. 내물왕의 증손이며 복호 갈문왕의 손자이자 습보 갈문왕(習寶)의 아들이다. 전임 소지 마립간과는 6촌 형제간이었다. 법흥왕의 아버지로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라고도 한다. 502년 순장법을 금하고 농사를 장려하였으며, 소를 길러 땅을 갈게 하였다. 이듬해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왕의 칭호를 사용하였다.
그의 기골이 얼마나 장대하였는지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다음의 기록으로도 알 수 있다. 지증왕은 음경이 너무 컸다. 그의 음경의 길이는 무려 1자5치(약 45센티미터)였다. 음경이 너무 큰 관계로 마땅한 신부감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지증왕은 각 지방에 사자를 보내 자기의 음경을 능히 감당할 만한 처녀를 수소문하였다. 어느 날 지증왕이 보낸 한 명의 사자가 모량부에 도착해 동로수(冬老樹)아래에 쉬고 있는데 큰 개 두 마리가 북만한 누런 똥을 양쪽에서 물고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이것을 본 사자는 쾌재를 부르며 마을로 내려가 그 커다란 똥덩이의 주인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 소녀가 말했다.
"그것은 모량부 상공의 딸이 빨래를 하다 숲속에 숨어서 눈 똥입니다."
사자가 그 집을 찾아가 처녀를 보니 키가 7자5치(약 2미터 15센티미터)나 되었다. 사자는 급히 지증왕에게 그 처녀를 소개했고, 지증왕은 수레를 보내 그녀를 궁중으로 불러 왕비로 삼았다.
법흥왕(23대) : 2미터10센티(7척)
(法興王, 487년? ~ 540년, 재위: 514년 ~ 540년)은 신라의 제23대 임금이다. 성은 김(金)이고 이름은 원종(原宗) 또는 모즉지(牟卽智, 另卽智)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지증 마립간과 연제부인(延帝夫人)의 아들이다. 그의 아호(雅號)는 법운(法雲)이며 불교 승려로서의 법명은 법공(法空)이다.
에는 왕의 키(身長)는 7자(尺)였으며, 성품이 너그럽고 후하여 뭇 사람들을 사랑하였다.[삼국사기]
진평왕(26대) : 3미터30센티(11척) 키가 크고 힘도 장사
(眞平王, 565년? ~ 632년, 재위 579년 ~ 632년)은 신라의 제26대 임금이다. 성은 김(金), 휘는 백정(伯淨, 白淨, 白丁), 중국측 사서에는 진평(眞平)으로 기록되어있다. 진흥왕의 장손으로 아버지는 진흥왕의 장남인 동륜태자, 어머니는 갈문왕(葛文王) 김립종(金立宗)의 딸 만호부인(萬呼夫人)이고, 왕비는 복승갈문왕(福勝葛文王)의 딸 마야왕후(摩耶夫人)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얼굴이 기이하고 몸이 장대하였으며, 의지가 깊고 식견이 명철하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장이 11척에 달했다 한다.
진덕여왕(28대) : 2미터10센티(7척) 팔의 길이가 무릎까지 닿았다.
(眞德女王, ? ~ 654년, 재위: 647년 ~ 654년)은 신라 제28대 여왕(군주)이다. 성은 김(金), 휘는 승만(勝曼)이다. 진평왕의 동생인 국반 갈문왕(國飯葛文王)과 월명부인(月明夫人)의 딸이다.
사촌 언니인 선덕여왕(善德女王)의 유언에 따라 그녀의 뒤를 이어 즉위한 647년부터 654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647년부터 648년까지 상대등 알천(閼川)이 대리청정하였고 648년부터 654년 붕어할 때까지 친정하였다.
자태가 풍만하고 아름다웠으며, 키는 7척에 팔이 길어 무릎 밑까지 닿았다고 한다.
무열왕(29대) : 장대한 체격. 대식가. 쌀 6말, 술 6말, 꿩 10마리.
(太宗武烈王, 604년 ~ 661년 음력 6월)은 신라(新羅)의 제29대 임금(재위 654년 ~ 661년)이다. 무열왕(武烈王)으로 불리기도 한다.
즉위 전 성명은 김춘추(金春秋)이고, 진지왕의 손자로 이찬(伊飡) 용춘(龍春)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천명부인(天明夫人)으로 진평왕의 딸이다. 비는 문명부인(文明夫人)으로, 각간(角干) 서현(舒玄)의 딸이자, 김유신의 누이동생인 문희(文姬)이다. 그의 용모는 백옥과 같고 영특하고 늠름하여 온화한 말씨로 말을 잘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세상을 다스릴 큰 뜻이 있었다고 한다.
태종 무열왕은 대식가로 유명했다. [삼국유사]에는, "왕의 식사는 하루에 쌀이 3말, 수꿩이 9마리였다. 경신년에 백제를 멸망시킨 후부터는 점심을 없애고 아침과 저녁만 먹었는데 그래도 이것을 합하면 하루에 쌀 6말, 술 6말, 꿩 10마리였다."고 한다.
고구려를 치려고 당나라에 군사를 빌리러 갔을 때 당 태종이 그의 풍채를 보고 칭찬하며 자신의 신하가 되어달라고 했다는 말이 있다. 김춘추의 장대한 체격을 가늠할 수 있는 기록이다.
경덕왕(35대) : 음경의 길이 24센티(8촌)
(景德王, ? ~ 765년, 재위: 742년 ~ 765년)은 신라의 제35대 왕이다. 성은 김씨(金氏). 휘는 헌영(憲英). 효성왕의 동복 동생이며, 아버지는 제 33대 왕 성덕왕. 어머니는 이찬 순원(順元)의 딸 소덕왕후(炤德王后).왕비는 서불감 김의충(金義忠)의 딸 만월부인(満月夫人, 경수왕후(景垂王后)). 효성왕에게 아들 없었기 때문에 742년 5월에 효성왕의 사망하여 왕위에 올랐다.
[삼국유사]에는 경덕왕의 음경 길이가 8치(八寸:24cm)나 되었으며, 오랫동안 아들이 없다가 표훈대덕(表訓大德)의 도력(道力)으로 혜공왕을 낳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아들을 늦게 낳은 탓에 후계자인 혜공왕은 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된다.
※ 조선시대 평균신장은 남성은 164cm 여성은 150cm였다.
http://blog.daum.net/hearo9mars/7072085
<거인 여성의 기록>
[삼국사기] 의자왕(義慈王) 19년(659년) 8월 여자 시체가 떠내려오다.
여자 시체가 생초진 (生草津)에 떠내려 왔는데 길이가 18척(5미터40센티)이었다.
[삼국유사] 문무왕 법민(661년)
왕이 처음으로 즉위한 용삭 신유(661년)에 사비수 남쪽 바다에 여자의 시체가 있었는데 몸 길이가 73척(21.9미터)이요, 발 길이가 6척(1.8미터)이요, 생식기 길이가 3척(90센티)이나 되었다. 혹은 말하기를 몸 길이가 13척이며, 건봉 2년 정묘(667년)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는 고려시대에 편찬된 것이다.
고려시대의 길이 단위는 1척이 32cm였으나(아래 참조), 신라의 길이 단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첫댓글 퍼왔습니다. 제가 요즘 네피림 자료들을 찾고 있어서요.
혹시 참고하시라고 '에녹서' 첨부합니다. 고고학적 자료로서만 보시기 바랍니다.
'에녹서'는 사해사본 중 하나로도 발견되어 고고학적 가치가 매우 높은 자료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요.....에녹서를 정경(오대정경)으로 인정하고 대대로 보관, 관리하고 있는 교단이 있습니다^^
바로 에디오피아 정교회죠^^ 빌립집사님이 세우신 교단입니다,,ㅎ
카톨릭과 정교회의 형님이 되는 가장 오래된 교단입니다.
에녹서는 유다서에서 나와있듯이 정경에 포함 안된것이 이상할 정도죠.
당시 유대인은 정경처럼 대우하고 읽혔던 책인것입니다.
여기에서 타락한 천사들(창6)의 내용이 자세히 설명되어져 있습니다.....너무나 자세히......
좋은 자료 또한 감사합니다^^ (첨부파일이 안열리네요?)
인류역사가 성경의 말씀대로 씌여졌다는 좋은 증거들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무명소자 덕분에 저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ㄳ 합니다. 저는 성경에 백향목 하면 욥기 백향목이 가장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꼬리가 백향목을 흔드는것 같은 동물 '배해못' 설명하는 부분. 이거 분명 브라키오사우르스 같은 '용각류 공룡' 묘사가 분명하다고 교회에서 알려드렸더니, 나이든 권사님들이 좋아해 하셨습니다. ㅎㅎ
제가 공주에 가서 무령왕릉에 가본적이 있는데 가이드하시는 분이 왕릉 발굴시 왕의 키가 9척 가까이 된것이 확인되었다는 것을 듣고 사실인가 생각한적이 있었는데 .. 사실이네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