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이에 끓인 라면
요즈음 유튜버들 사이에 고수입을 얻는 장르 중 ‘먹는 방송’, 이른바 ‘먹방’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에도 한국 관련 단어에 '먹방'(mukbang)이 올랐을 정도로 세계적인 단어가 됐습니다.
유튜버들의 먹는 방송을 보면 상상을 초월하다 못해 인간이 아닌 괴물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가냘픈 소녀처럼 생긴 ‘쯔양’이라는 유튜브 동영상 제공자는 라면을 20봉지, 햄버거를 20개 정도는 거뜬히 먹습니다. 어른 두 명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치킨은 5마리 정도는 거뜬히 먹는다고 자랑하기도 합니다. 시쳇말로 배가 터지도록 먹는 대가로 월 1억8천만 ~ 2억 3천만 원의 수입을 얻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먹방 유튜버 ‘햄지’는 구독자 수가 1천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햄지’는 ‘쯔양’처럼 양으로 승부를 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맛있게 먹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햄지’가 ‘쯔양’보다 음식을 적게 먹어도 수입이나 구독자 수가 훨씬 많습니다. 음식은 많이 먹는 것보다 맛있게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 주는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보릿고개로 고샹하던 1960년대에는 먹을 것이 귀했습니다. 하루 두 끼도 간신히 먹는 집들이 흔하다 보니 동네잔치가 있는 날은 말 그대로 아귀처럼 먹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잔치를 치르는 집도 그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부잣집은 돼지를 서너 마리씩 잡기도 했습니다.
학생들도 방과 후에 종종 먹기 내기를 했습니다. 학교 앞에 있는 찐빵집에서 찐빵을 20개 먹기를 해서 지는 쪽이 빵값을 내는 내기입니다. 꽈배기로 종목을 바꿀 때도 있고, 호떡을 열몇 개씩 먹기도 했습니다.
기철이라는 고등학교 동기가 있었습니다. 키나 덩치나 얼굴 생김새나 중학생처럼 왜소했습니다. 기철이의 집은 버스가 다니지 않는 산골이라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습니다. 요즘처럼 피시방이 있던 시대도 아니고, 인터넷 항해로 시간을 보내는 시대도 아니니까 기철의 자취방은 자연스럽게 사랑방이 됐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밤이 이슥해지면. 돈을 걷어서 국수를 사다 삶아 먹기도 하고, 때로는 소주를 됫병으로 사다가 김치나 깍두기, 좀 넉넉한 날은 새우깡 같은 걸로 안주를 해서 마시고 이리저리 얽혀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이런저런 말끝에 기철이가 라면을 10개까지 먹어봤다고 자랑했습니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고 “니가 10개를 먹으면, 나는 20개를 먹겠다.”는 말로 웃어넘겼습니다. 헌데 기철이가 정 못 믿겠으면 내기하자고 팔뚝을 걷어붙였습니다.
기철이의 말이 너무 진지한 데다 밤이 늦어 배가 촐촐해질 무렵이라서 라면 먹기 내기가 시작됐습니다. 기철이가 자취하다 보니 한꺼번에 라면을 10개 이상 끓일 냄비나 솥이 없었습니다. 기철이를 포함해서 4명의 친구들은 부엌을 뒤지다가 양동이를 찾아냈습니다.
때아닌 밤중에 한 개에 10원씩 하는 삼양라면 15개를 까서 양동이에 끓였습니다. 15개의 라면이 끓으니까 양이 엄청 많았습니다. 기철이를 제외한 3명이 각각 그릇에 1개 반 정도의 분량을 담았습니다. 그래도 양동이의 3분의2 정도 분량이 남았습니다.
“야! 그릇에 덜어 먹어라. 니가 다 못 먹으면 우리라도 먹어야 할 것 아녀?”
기철이가 양동이를 가랑이 사이에 끼고 젓가락을 챙겼습니다. 누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하는 말에 기철이는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요즈음 먹방 유튜버들이 라면 먹는 모습을 보면 라면 한 냄비를 서너 젓가락으로 비웁니다.
기철이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여학생이 남학생 앞에서 짜장면 먹는 모습처럼 젓가락으로 한입에 들어갈 만큼만 건져서 천천히 먹기 시작했습니다.
구경꾼들은 번갯불에 콩 튀기듯 라면 그릇을 비워냈습니다. 기철이의 양동이에는 라면이 그대로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라면이 불어나는 속도가 먹는 속도보다 빨랐습니다. 이제나저제나 기철이가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며 양동이를 밀어내기를 기다리는 방 안에는 기철이가 라면을 삼키는 소리만 났습니다.
기철이는 금방이라도 젓가락을 놓을 것 같으면서도 꾸준하게 먹었습니다. 친구들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사라지고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열 개 먹은 걸로 칠 테니까, 그만 먹어라.” 걱정하다 못한 제가 기철이 들고 있는 젓가락을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기철이는 배를 툭툭 두들기며 아직 배가 덜 찼다며 계속 먹었습니다. 양동이는 위쪽이 넓고 아래쪽이 좁습니다. 거의 30분이 지날 무렵 젓가락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습니다. 우리는 할 말을 잊어버리고 하나같이 ‘저놈이 인간이냐?’는 얼굴로 기철이를 바라봤습니다.
이튿날 학교에서는 기철이가 라면 10개를 먹었다는 소문이 산불처럼 번졌습니다. 소문을 들은 학생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기철이에게 진짜 10개를 먹었냐며 확인하러 왔습니다. 2학년 선배들이 일부러 찾아와서 오늘 학교 끝나고 라면 먹기 내기를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기철이는 "당분간은 라면을 안 먹을 생각이다. 다음 주에는 10개 먹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장담했습니다.
기철이가 먹는 양은 나이가 들수록 늘어갔습니다. 군대 입대하기 전에는 생맥주를 5천CC 정도 마시고 짜장면 곱빼기를 세 그릇이나 비워냈습니다. 그렇다고 살이 찌거나 배가 나온 것도 아닙니다. 나이가 들어서 얼굴은 좀 통통하지만, 배가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대전에서 식당을 하는 요즘도 오랜만에 만나 술잔을 나눌 때도 마지막에 수저를 내려놓는 사람은 기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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