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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학(5) 유치환,「선善한 나무」外
1. 청마 유치환의 생애
검정 포대기 같은 까마귀 울음소리 고을에 떠나지 않고
밤이면 부엉이 괴괴히 울어
남쪽 먼 포구의 백성의 순탄한 마음에도
상서롭지 못한 세대의 어둔 바람이 불어오던
隆熙 2년!
그래도 계절만은 천년을 다채(多彩)하여
지붕에 박넌출 남풍에 자라고
푸른 하늘엔 석류꽃 피 뱉은 듯 피어
나를 잉태한 어머니는
짐즛 어진 생각만을 다듬어 지니셨고
젊은 의원인 아버지는
밤마다 사랑에서 저릉저릉 글 읽으셨다
왕고못댁 제삿날 밤 열나흘 새벽 달빛을 밟고
유월이가 이고 온 제삿밥을 먹고 나서
희미한 등잔불 장지 안에
번문욕례繁文縟禮 사대주의의 욕된 후예로 세상에 떨어졌나니
신월新月같이 슬픈 제 족속의 태반胎盤을 보고
내 스스로 고고(呱呱)의 곡성哭聲을 지른 것이 아니련만
명이나 길라 하여 할머니는 돌메라 이름 지었다오
-「출생기出生記」전문
2. 생명(파)의 시인 청마
청마靑馬 유치환(1908∼1967) 시인은 1931년『문예월간』2호에 시 「靜寂」을 발표하며 등단한다. 이 시기는 역사적 전환기로서 카프 제1차 검거와 함께 일제의 만주 침략이 본격화되고, 문학 안에서도 서정시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 하기에 이른다. 시문학파와 모더니스트들의 지나친 감각주의와 기교주의 성향에 반해, 서정주와 유치환 그리고 오장환 시인은'생명파-인생파'란 이름으로 참여한다. 그들은 저마다의 개성적 언어로, 인간과 생명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존재의 더 높은 차원을 제시하며, 한국 현대시사의 큰 봉우리(김종길에 의하면, 청마는 한국 현대시에서 가장 거대하고 꾸준하고 열렬한 도덕적 시인)를 이루게 된다. 생명파는 어떤 절대적인 이념이나 형식미의 탐구가 아니라, 서정시 본연의 위치에 대해 새롭게 감각하기 시작한다. 특히 청마 유치환은 남성적인 톤을 바탕으로 서정시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한다. 작품집으로는 첫 시집『청마시초』(1939)를 비롯하여『생명의 서』(1947),『울릉도』(1948),『보병과 더불어』(1951),『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1960),『파도야 어쩌란 말이냐』(1965) 등 12권이 있다. 서정과 현실, 형이상의 정신과 세계를 추구하는“유치환 시의 본질은 의지와 감성의 두 흐름으로 파악될 수 있다. 전자는 애련을 거부하는 비정非情의 철학이자 남성적 목소리를 갖춘 힘의 수사학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예언자적 고발과 저항으로 돌출되기도 한다. 후자는 애련에 휩싸이는 연정의 노래이고 여성적 섬세함을 드러내 보이며, 때로 그것은 주체할 길 없는 마음을 담은 연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의 남성적 의지가 정신주의 시와 현실참여의 시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라면, 그의 여성적 감성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연시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다음 서평 참조) 산문집으로는『예루살렘의 닭』(1953),『동방의 느티』(1959),『구름에 그린다』(1959),『나는 고독하지 않다』(1963)가 있다. 자연과 일상을 다룬 내용에서 사회와 정치에 대한 비판, 신과 인간에 관한 형이상적 사유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관심과 사유의 폭이 넓은 편이다.
3. 청마의 문학론에 나타난 현실과 초월
3.1. 무릇 어떠한 主義나 流波에 속하는 作家나 詩人이고 간에 그의 作品인즉, 그가 呼吸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現實이라는 밭에서 얻은 資料를 自己의 아이디어로 빚어 具象化한 體驗의 反映이며, 그의 아이디어 역시 어디까지나 人間의 現實相을 對應으로 해서 結果된 未成의 모습인 것이므로 그들은 어떤 다른 部類에 속한 生活人과 마찬가지로 現實에서 遊離한다든지 눈을 감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存在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바이다. 아니 作家나 詩人일수록 現實의 氣流에 대하여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敏感하고, 또한 敏感하여야 되기 마련인 것이다. (「現實과 文學」,『대구매일신보』1960년 4월 3일자)
3.2. 현대시는 주지적이어야 되고 주지적인 시는 방법론적으로서 써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껏 전 세기 수공업시대의 장인바치처럼 시를 쓰고 있다. 나의 생리가 그래 먹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 작품이란 현대시의 범주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시도 아닌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까짓 시는 시가 아니라고 판결을 내린다면 나는 그대로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결코 시라는 것을 쓰겠다고 고집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생겨난 것이 아니요, 나의 시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한 나의 말인 것 밖에는 아니라고 믿고 있는 때문에서이다. (한국시인협회 편,「나의 시 나의 시론」)
-시는 햇볕이 가득 내리는 마당에 철없는 어린아이들이 깨진 사금파리를 갖고 노는 장난에 불과.
3.3. 시집〈서문〉관련
a. 나는 시인이 아닙니다. 만약 나를 시인으로 친다하면 그것은 분류학자의 독단과 취미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요, 어찌 사슴이 초식동물이 되려고 애써 풀잎을 씹고 있겠습니까? (『생명의 서』서문)
-시가 아니어도 시인이 아니어도 아름답고 정갈한 사람 되기를 희망했던 청마 유치환의 마음은 종교와 같다.(한상봉,「청마 유치환과 선한 나무」)*지밀지미至密至微한 목숨들의 연결을 생각하는 청마
b. 시인의 책무는 있고도 보이지 않는 귀한 것을 증거하고, 그 증거를 통해 인간에게 용기와 이해를 가져다 주는 일에 있다.
c. 항상 시를 지니고, 시를 앓고 시를 생각함은 얼마나 외로웁고 괴로운 노릇이오며, 또한 얼마나 높은 자랑이오리까. *시를 앓고 생각하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동안 내 몸과 마음이 어질고 깨끗하게 된다.
d. 시란 생명의 표현, 혹은 생명 그 자체다.
e. 시인이 되기 전에 한 사람이 되리라.
f. 진실한 시는 마침내 시가 아니어도 좋다. (『청마시초』서문)
3.4. 우주와의 교감, 생명에의 열애, 생명의 구경에서 느끼는 허무와 초탈이 청마 시의 특색이다. 청마의 시들은 이 영원으로 표상되는 무한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한다. 무한(infinity)이란 영원성의 감각이다. 순환과 윤회, 무無에 대한 감수성과 자의식은 허무의 근간을 이룬다. *인간(자아)/현실/허무(신)
나의 살갗ㅡ/ 저 허무虛無의 무無, 그 광막한 시공時空의 아득한 해안선海岸線! (「나의 살갗」 전문)
우주란 思惟!/ 무한대한 그 一角에다/ 한뼘 은실 그물을 치고/ 비늘 반짝이는 적은 思想을/ 가만히 지켜 고기잡이하는 자 (「蛛絲」 전문)
“오직 思惟하는 者만이 能히/ 이 絶大한 孤獨을 견”(「히말라야 이르기를」)딘다면, 청마에게 우주는 무한으로 구성된 물질적 실체이면서 형이상학적 사유의 정점을 말한다. 반면 인간이란 지상과 그 무한 공간의 점이지대에서 부유하는 중간자다. 인용시에서 거미로 표상된 인간은 우주를 구성하는 전(全) 사유로부터 떨어져 나와“적은 思想을/ 가만히 지켜 고기잡이하는 자”로 표상되어 있다. 거미란 지상과 하늘에 떠 있는 중간자. 니체에 의하면, 그런 중간자적 존재에서 영원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존재론적 숙명이다. 이 시는 무한과 유한의 의미, 그리고 그 길항 관계 속에 놓인 인간의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3.5. 청마 유치환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무량광대하고 영원무궁한 우주 만유에 미만하여 있는 신이라는 절대적 세계에 인간이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그에겐 직관과 예지로써 감득되는 고차원적 절대의 세계가 항상 전제되어 있었던 바, 이에 도달하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성과 고귀성을 회복하는 일이자 인간의 과제다.
솔이 있어/ 여기 정정히 검은 솔이 있어// 오랜 세월/ 瑞雲도 서리지 않고/ 白鶴도 내리지 않고// 먼 人倫의 즐거운 朝夕은/ 오히려 무한한 밤도/ 등을 올려 꽃밭이언만// 아아 이것 아닌 목숨/ 스스로 모진 꾸짖음에 눈감고/ 찬란히 宇宙 다를 그날을 지켜// 정정히 죽지 않는 솔이 있어/ 마음이 있어 (「老松」 전문)
이 시에서 자연-노송은 인간과 구별되는 강한 정신성을 상징하고 있다. 그것은 안락을 추구하는 범속한 세계에 대립하여 오연하고 강인한 이미지를 나타낸다.“오랜 세월 瑞雲도 서리지 않고 백학도 내리지 않는”장소로서'노송'은 그것이 모든 유한하고 일회적인 사태와 절연한 절대 궁극의 지대에 해당한다. 그것은 곧 절대선의 지대이자 신성한 세계를 대변하는 경지를 일컫는다. 노송의 이미지를 보면 이러한 감각은 유교의 영향권 내에 있던 선비적 기질로 말미암는다.“스스로 모진 꾸짖음에 눈감고 찬란히 宇宙 다를 그날을 지키는”노송은 곧 강한 의지와 정신력을 바탕으로 절대선의 세계로 차원 상승하고자 하는 유치환의 내면을 잘 드러내는 매개체라 할 수 있다.
4. 청마 유치환과 사랑
4.1. 간혹 젊은이들에게서 시인이 된 동기가 뭐더냐는 물음을 받는 수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서슴지 않고 연애일 게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이 실은 어느 정도 정확한 것인지 내 자신도 정확히는 모를 일이로되 다정다감하기 이를 데 없는 소년 시절 일찍부터 한 이성에의 애정에 눈떠 느낀다는 일은 어린 감수성을 더욱 윤나게 하고 폭을 넓힐 것만은 사실일 것입니다. 누구나 들으면 응당 망칙스리 여길 일입니다마는 열네 살 때부터 나는 벌써 한 소녀를 사랑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한 데는 그럴 만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많은 사내 형제끼리 속에서만 자라던 터라 항상 누나 같은 사람이 하나 있었으면 하고 그리워했던 것입니다. 그리해서 동무들 가운데 누구나 누님이나 누이를 가진 아이를 보면 얼마나 부러웠던지? 그러한 심정이 한 이성의 소녀를 사랑하게 된 데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내 소년의 날은/ 일 삼아 하모니카 불며 불며/ 풋보리 기름진 밭이랑/ 배추꽃 피어 널린 두던을 노닐어/ 햇발처럼 행복하고/ 달콤한 연정에 일찍 눈떠/ 민들레 따서 가슴에 꽂고/ 꽃 같이 우울할 줄 배웠네라 (「소년의 날」전문) ▲출전:『구름에 그린다』(1959)
4.2. 나의 생애에 있어서 이 애정은 그 후 몇 번 바뀌었습니다. 이 같은 절도 없는 애정의 방황은 나의 커다란 허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갓 나의 방종의 소치만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게 있어서의 여성은 단지‘섹스’의 대상이 아닌 그 이상의 마치 고독한 밤 航海에 아득히 빛나는 등대불과 같이 나의 인생에 있어 항상 없지 못할 영혼의 어떤 갈구의 응답인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아니‘마리아’를 통해서 천주에게 이르듯이 내게 있어서는 異性의 熱愛를 거침이 채울 수 없는 허망을 비치는 구원의 길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출전:『동방의 느티』(1959)
4.3.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함이 나위없는 자연일진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극히 사랑함은 바로 자연 속에 동화되는 일임에 틀림없겠습니다. 따라서 자연이란 오로지 영원을 염원하는 염원 속에 있는 것일진대 사랑하는 사람을 통한 이 자연 속의 동화는 곧 영원에의 동화이기도 할 것입니다. ▲출전:『파도야 어쩌란 말이냐』(1965)
끝내 올리 없는 올 이를 기다려/ 여기 외따로이 열려 있는 하늘이 있어.// 하냥 외로운 세월이기에/ 나무그늘 아롱대는 뜨락에/ 내려 앉는 참새 조찰히 그림자 빛나고.// 자고 일고-/ 이렇게 아쉬이 삶을 이어 감은/ 목숨의 보람 여기 있지 아니함이거니.// 먼 산에 雨氣 짙으량이면/ 자옥 기어 드는 안개 되창을 넘어/ 나의 글줄 행결 고독에 근심 배이고-/ 끝내 올 리 없는 올 이를 기다려/ 외따로이 열고 사는 세월이 있어. (「歲月」전문)
한편, 사랑의 담론과 관련해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랑의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사랑이다. 사랑은 단순히 감각적이고 감상적感傷的인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인생에 있어 항상 없지 못할 영혼의 어떤 갈구”이자 갈구에 대한 응답이며, 구원과 영원에 이르는 길이다. 사랑은 시인의‘인생에 있어 항상 없지 못할’살아가는 힘이다. 하여 그는 사랑으로 자신의 삶 자체를 열애한 것이다. 사랑은 자아와 자연, 우주의 오묘한 섭리가 내재해 있는 영역이다. 그런가하면,〈에로스의 방랑은 인간의 타락과 구원을 상징하는 일종의 순례이자 정화의 과정〉[노발리스(김재혁 옮김),『푸른 꽃』, 작품 해설]이란 점이다.
5. 작품 분석과 감상
깃발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 기旗, 혹은 마음과 사물. 깃발-아우성, 손수건, 순정, 애수, 마음. 그리움(sehnsucht, 갈애-연모-향수): 얼굴과 신비, 너머와 여기. 시간과 영원.“나의 향수는 天心에도 있다”(「紙鳶」). 주체는 도달할 수 없는〈대상a〉를 욕망한다.(라캉) 시인 혹은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의 운명. 깃발과 깃대: 동경과 좌절. 침묵의 언어. 애의 시학 등.
선善한 나무
내 언제고 지나치는 길가에 한 그루 남아 선 노송老松 있어, 바람 있음을 조금도 깨달을 수 없는 날씨에도, 아무렇게나 뻗어 높이 치어든 그 검은 가지는 추추啾啾히 탄식하듯 울고 있어, 내 항상 그 아래 한때를 머물러 아득히 생각을 그 소리 따라 천애天涯에 노닐기를 즐겨하였거니, 하룻날 다시 와서 그 나무 무참히도 베어 넘겨졌음을 보았나니.
진실로 현실은 한 그루 나무 그늘을 길가에 세워 바람에 울리느니보다 빠개어 육신의 더움을 취함에 미치지 못하겠거늘, 내 애석하여 그가 섰던 자리에 서서 팔을 높이 허공에 올려 보았으나, 그러나 어찌 나의 손바닥에 그 유현幽玄한 솔바람소리 생길 리 있으랴.
그러나 나의 머리 위, 저 묘막渺漠한 천공天空에 시방도 오고 가는 신운神韻이 없음이 아닐지니, 오직 그를 증거할 선善한 나무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로다.
*啾啾히: 구슬프게. 天涯: 하늘의 끝. 幽玄: 깊고 그윽함. 渺漠: 아득하게 넓음. 天空: 하늘. 神韻: 고상하고 신비로운 운치.
■ 길가 서 있던 노송이 어느 날 베어져 버린 사건. 자연과 생명, 우주의 의미. 공자는 영혼과 무관하고서도 능히 선하게 살 수 있음을 가르침. 유현幽玄과 신운神韻의 미학 등.
6. 더 읽을거리
그리움 외 1편 / 유치환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찌기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광야에 와서
흥안령 가까운 북변北邊의
이 광막한 벌판 끝에 와서
죽어도 뉘우치지 않으려는 마음 위에
오늘은 이레째 암수暗愁의 비 내리고
내 망나니의 본받아
화툿장을 뒤치고
담배를 눌러 꺼도
마음은 속으로 끝없이 울리노니
아아 이는 다시 나를 과실過失함이러뇨
이미 온갖 것을 저버리고
사람도 나도 접어 주지 않으려는 이 자학自虐의 길에
내 열 번 패망의 인생을 버려도 좋으련만
아아 이 회오悔悟의 앓음을 어디메 호읍號泣할 곳 없어
말없이 자리를 일어나와 문을 열고 서면
나의 탈주할 사념의 하늘도 보이지 않고
정거장도 이백리 밖
암담한 진창에 갇힌 철벽 같은 절망의 광야!
참고문헌
유치환, 유치환 시선,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유치환, 구름에 그린다-자작시해설집, 도서출판 경남, 2007.3.
김윤정, 유치환의 문학에 나타난‘인간주의적 형이상학(形而上學)’고찰, 한민족어문학 69집, 2015.송기한, 유치환 시에서의 무한(infinity)의 의미 연구, 어문연구 60집, 2009.
한국시인협회 편,「나의 시 나의 시론」, 신흥출판사, 1960.
허만하, 靑馬풍경, 솔, 2001.
노발리스(김재혁 옮김), 푸른 꽃 Heinrich von Ofterdingen, 민음사, 2020. 외
차시 예고
16회(9.20.) 이태호 (통청원장/철학박사) 儒家의 사랑(2) 17회(9.27.) 금교영 (전 대구한의대교수/철학박사) 성은 억압되어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