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절 교민 생활의 중심지
/ 윤시내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나는 넓고 반듯한 뜰을 앞에다 두고 길에서 뚝 떨어져서, 축대 위에 높이 솟은 절을 보았다. 주택가에 있는 이 절은 주변의 집과는 너무나 틀린 모습이기 때문에 놀랍기도 하고 이상스러운 느낌도 들었으나 절은 버젓하고 당당하게 서있었다. 나를 좀 보십시오. 내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나라 절일까. 가느다랗고 지붕 끄트머리가 뾰족하게 하늘로 치켜 올라간 건축양식이며 절을 단장한 색깔이 타이랜드 절과 비슷한데. 그러나 타이 절은 아니었다. 내가 아는 한 워싱턴 주변에는 타이 절이 한 군데 뿐이고 이 곳에서 동북쪽으로 약 10마일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렇다면 월남 절일까.
마침 ‘워싱턴 불자회’의 유승묵 처사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 유 처사에게 물어봤더니 그것은 캄보디아 절이라고 한다. 그럴 리가 있느냐고, 나는 유 처사에게 믿을 수 없다는 표시를 하였다. 캄보디아라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살상의 들녘 (Killing Field)'이 아닌가. 오랜 독재정치와 내전(內戰)으로 인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고 집과 공장은 파괴되었고 경제적으로는 동남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인데, 캄보디아가 무슨 돈이 있어서 저렇게 크고 버젓한 절을 질 수 있겠는가. 한번 찾아가서 확인을 해야지!
인터뷰 신청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으나 받는 사람이 없어서 메시지만 남겨놓았다. 토요일까지 회신이 없어서 망설이다가 허탕칠 셈으로 집을 나섰다. 황금 빛 수선화가 4월 초순의 맑은 햇살을 받고 바람에 한들거리는 절 앞의 넒은 주차장에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그러나 뜰 한 귀퉁이 꽃밭에서 일하는 승려와 남자가 보여서 차를 내렸다. 전화로 연락을 했던 사람이라고 인사를 하니 누르스름한 승복을 입은 건장한 승려가, 알고 있었다고 하며 저 뒤 승려들 처소로 가보라고 한다.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집안으로 들어가니 사무실 컴퓨터 앞에서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고단해 보이는 중년 남자가 일을 하다가 나를 맞이해 준다. 그는 ‘캄보디아 불자회’ (Cambodia Buddhist Society)의 회장, 소반 툰(Sovan Tun) 박사였다. 책상 위 상자마다 가득 들어있는 것은 발송할 편지 같은데 바쁜 중에서도 툰 박사는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이 절에 관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이 절 (Vatt Buddhikarama)은 캄보디아 절이며 캄보디아 불자회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불자회는 독립된 조직이며 캄보디아의 어떤 불교 종파와도 연관이 없습니다. 1976년 워싱턴 지역에 사는 캄보디아 사람들 몇이 메릴랜드주 옥슨 힐 (Oxon Hill)에 있는 가정집에서 모여 불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2년 후 1978년에 불자회의 정관(定款)을 만들고 비영리 종교단체로 설립되었지요. 같은 해 우리는 메릴랜드주 뉴 캐롤턴 (New Carrolton)으로 이사했고 1986년에는 현 위치인 실버 스프링으로 옮겼습니다. 이미 작고하신 옹민 스님 (Venerable Oung Mean)의 노력과 헌신으로 불자회는 크게 성장했어요. 우리는 우선 스님들의 숙소를 짓고 1991년에는 성전을 짓기 시작했지요. 성전이 준공되고 1993년 3월에는 축성식(祝聖式)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옹민 스님은 축성식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스님의 재는 앞뜰에 있는 무덤에 모셨어요.

절을 짓기 위해서 캄보디아 정부나 다른 단체의 재정 보조를 받았나요?
아닙니다. 재정 보조는 어디에서도 받지 않았어요. 신자들의 기부금으로만 지었습니다. 기부금이 많고 적고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나 기부금을 냄으로써 절의 주인이 되는 것이지요. 아시다시피 절은 종교적인 공간만은 아닙니다. 절은 캄보디아 교민들 생활의 중심이에요. 우리는 캄보디아 교민이 누구나 절의 주인이고 절에 속해 있다는 자부심을 갖는 것을 원합니다.
캄보디아 불자회의 회원은 몇 명이나 되며 그들은 회비를 납부하는지요?
캄보디아 교민이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회비는 일정하게 정한 액수가 없어요. 교민들에게 맡기지요. 1불이든 5불이든 100불이든 교민들의 성의와 재정이 허락하는데 따라 내라고 부탁합니다. 사람들은 절에 1,000불 시주하는 것은 기꺼이 하지만 회비납부의 의무를 가진 회원이 되는 것은 꺼려해요.

현재 활동하는 회원은 약 1,000명됩니다. 이 절은 미국에서 제일 처음 생긴 캄보디아 절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미국 전역에서 신자들이 예불하러 왔었지요. 아직도 특별한 명절, 즉 캄보디아 새해 경축행사에는 전국에서 옵니다. 사실은 좀 전에도 편지 보내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툰 박사는 상자에 들은 편지 봉투를 뒤적이며 캘리포니아, 뉴욕, 펜실바니아 등의 주소를 보여주었다.) 올해는 4월 13일부터 18일 까지 새해 행사가 있습니다. 음악, 춤, 다큐멘터리 영화, 어린이들을 위한 상품, 노인들에게 드리는 새해 선물, 등의 프로그램이 있어요. 마지막 날에는 몽고메리군의 군수가 올 예정이고 그분에게 감사장을 수여할거에요. (사진틀에 끼어 있는 감사장을 툰 박사가 보여주었는데 놀랍게도 감사장은 캄보디아말과 영어 두 가지 언어로 쓰여 있었다.)
우리는 음력으로 된 캄보디아 달력을 발행합니다. 교민들은 달력을 보고 캄보디아 명절이나 불교 명절이 언제인가를 알고 절에 오지요. 갈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숙소를 제공합니다. 먹여주기도 하구요. 숙소와 음식이 필요한 사람들은 누구든지 올 수 있어요. 작은 방이 5개, 큰 방이 하나 있고 담요, 베개, 홑이불, 수건 등이 많이 있어요. 방이 없으면 바깥에서 자는 것도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아요. 그들은 그저 와서 며칠씩 묵다가 가요.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자원봉사자들은 툰 박사에게 절의 경내를 장식할 재료, 연장, 표지 등에 관해 끊임없이 의견을 물었다.)
절에는 스님이 몇 분이나 되며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합니까.
현재는 스님이 7분 있어요. 주지 스님은 거의 90이 되어서 거동이 불편하세요. 그래서 이사회에서는 찬 한 (Chann, Harn) 스님을 선출해서 종교적인 문제를 관할하게 했습니다.

스님들은 하는 일이 많아요! 이 지역에는 캄보디아 교민이 약 10,000명이나 되고 그들은 생일이나 출산, 결혼, 장례, 휴일잔치 등에 스님들이 축복해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늘 바빠요. 기독교 목사들과는 달리 스님들은 결혼식을 주관하지는 않아요. 결혼하는 한 쌍에게 ‘남편과 아내’가 됐다고 선언할 수가 없거든요. 스님은 우리 전통에 따라 새 부부를 축복해주지요.
일요일에는 춤, 음악, 언어 교실을 나이에 따라 만들어서 가르칩니다. 최근에는 시민권 교실을 새로 시작했어요. 말씀드렸듯이 절은 생활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교민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절에 오고 우리는 이 지방 관청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어요. 미국에서는 종교와 정부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관청의 직원들이 우리 절하고 일하는 것을 꺼려했어요. 미국 사람들은 절이 생활의 중심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해요. 그렇지만 이제는 바뀌었어요. 절이 캄보디아 교민 생활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 프로그램을 후원해주지요.
정규적인 법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음력으로 네 번 (초순, 보름, 하순, 그믐날) 법회를 하니까 한 달에 네 번은 있는 셈인데 꼭 일요일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캄보디아의 가장 큰 명절은 언제입니까?
비삭(Visakha)입니다 (석가 탄신, 각성, 열반의 날). 올해는 5월 3일과 4일 이틀에 걸쳐 축하행사가 있습니다. 국제불자위원회 (International Buddhist Committee)에서는 매해 어느 절에서 합동 축하행사를 주최할지 정하는데 올해는 월남 절에서 5월 15일, 토요일에 합니다. 2000년에는 우리가 했고 작년에는 티베트 절 차례인데 자기네 절이 작으니까 우리 절에서 할 수 없느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지요.
툰 박사는 무슨 일을 하십니까?

Dr. Sovan Tun, President of Cambodian Buddhist Society, Inc.
저는 EEOC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에서 통계학자로 일합니다. 그 외에도 하는 일은 많아요. 아태문제 위원회, 국제불자위원회 고문 등이지요. 군수 덩칸씨가 일요일, 4월 18일 행사에 오는데 초대장을 보낼테니까 11시 전에 오세요.
[2004년 5월 167호]
첫댓글 참 아름답고 감동적이네요. 우리도 해외에서 이렇게 절이 교민들의 생활의 중심이 되면 좋겠어요....
윤시내선생님! 안녕하세요? 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캄보디아 불교도 많은 활동을 하시는군요. 활발히 활발히 부처님의 법음이 세걔에 두루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