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기독교란 무엇인가?(수영로교회)
하나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비롯하여 하늘의 온 우주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후 "보시기에 참 좋았다" 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우주는 저절로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할까요?
모든 물건은 반드시 만든 사림이 있습니다.
만들지 않고는 물건이 있을 수 없습니다.
손목시계에는 수많은 부품들이 있어 그것들이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자기의 일을 열심히 함으로써 분,초,시간을 정확히 알려줍니다.
한번 이 손목시계를 다 뜯어서 그 부속품을 상자에 넣고 수백, 수천, 수억 번을 흔들어 봅시다.
그러다 보면 상자 속의 부품들이 우연히 들어맞아 자기 위치에 끼워져서 분, 초, 시간을 정확히 가리키는 완성된 시계가 될 수 있을까요?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작은 손목시계도 불가능한데 이보다 엄청나게 크고 정교하게 운행되는 우주가 어찌 저절로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고...
우리는 어느날 갑자기 우연히 생긴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를 지금 이곳에 있게 하신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존재의 근원이십니다.
이 사실은 인간이 어쩌다가 우연히 세상에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분명히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있는 자들임을 알려줍니다.
집에 전기밥솥이 있습니다.
그 전기밥솥은 어쩌다가 우연히 거기 있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 밥솥은 분명히 만든 사람이 있고 또한 내게 필요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가져다 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 이렇게 존재하는 이치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여기 있는것은 우연히 어디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만들었고,
목적이 있기에 여기에 보낸 것입니다.
그 '누군가'는 바로 기독교 신앙에서 고백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흙이라는 무가치한 것으로 존귀한 우리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흙에서 지음 받아 흙으로 돌아가는, 어찌 보면 참으로 보잘것 없는 존재입니다.
비록 우리의 육신이 흙으로 돌아갈지라도 우리의 영혼이 우리를 지으신
그 분게 돌아간다면 비로소 우리는 제자리를 찾고 참 안식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0년경에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은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누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기원전의 역사를 기원후의 역사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지금 세계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이 태어난 해를 0년으로 하는 서기(AD)를 쓰고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령에 의하여 잉태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지만 세상은 전혀 몰랐습니다.
아기 예수는 마구간이라는 초라한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마구간 탄생은 예수님의 앞으로의 생애를 잘 예고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호의호식하기 위해 이 땅에 온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섬기기 위해 오셨으니까요.
예수님의 지혜와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고
30세 전까지는 부모님 곁에서 목수인 아버지의 일을 거들며 살았습니다.
30세쯤 되었을 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공생애(公生涯) 를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 나가서 40일을 금식하면서
마귀에게 부귀와 명예와 권력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 이기고 공생애를 위한 준비를 마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고 많은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렇게 3년간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3년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분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와 사랑의 말씀을 외치고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을 고쳐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던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러나 무덤이 예수님을 가두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예언하신 바대로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죄의 불의가 패배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이시고 활동하시다가
40일이 지난후에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가 되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를 구분하시고
영원한 나라의 왕이 되실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러나 성령을 단순한 하나님의 능력이나 활동력 정도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성련은 지.정.의를 가진 인격체 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로, 아들(예수님)로, 성령으로 각각 따로따로 존재하는 동시에 그 성품과 의지와
능력에 잇어서는 본질적으로 서로 완전히 일치되십니다.
이것을 일컬어 삼위일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신비로우며 말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성령은 삼위(三位)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 제자들에게 자기가 하나님께로 갈 것을 예고 하시면서
그들을 보살피고 도우실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보혜사'란 의도를 가지고 계획하며, 사려 깊고 분별력 있는 변호사, 상담자, 조력자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대신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 요한복음 14장26절 )
사람은 맨눈으로 박테리아를 볼 수 없습니다.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를 들을 수도 없습니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것들을 믿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 적이 없습니니다.
만져본 사람은 더더욱 없습니다.
사실 우리로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의 이성(理性)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것이 아니면 잘 납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최고 감각기관인 이성도 능력에 한계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초월적인 존재이십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와 다른 차원의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규명해 보려고 명상이나, 고행, 참선 등 많은 종교적 노력들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어떤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인신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부터 온 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들을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 고린도전서 2장12절 )
우리가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수 있을까요?
보지도 못한 영적인 세계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나타내 보이셔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식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납득하고, 성경에 나오는 많은 기적들을
믿을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이 바라 성령이십니다.
성경은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일단 죄인이란 소리를 들으면 우리는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들여다 보면 " 나는 결코 죄인이 아니오 " 라고 자신있게
이야기 할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은 일화로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활동을 하시던 중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여인을 끌고 예수님 앞에 찾아 왔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이 여인은 다른 남자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서 여기까지 끌려 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법에 따른다면 이런 여인은 돌로 쳐서 죽여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을 끌고 온 사람들은 여인을 죽이기 전에 예수님의 판결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사실 예수님에게 적의를 품고 일부러 이 골치 아픈 간음 사건을 예수님께 가져와
그 분을 공궁에 빠뜨리려고 했던 것이죠.
이때 예수님은 "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이 여인을 돌로 쳐라 "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머뭇머뭇하더니 한 사람 한 사람씩 모두 그 자리를 뜨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속에 감춰진 죄를 들추어 낸 것이지요.
우리가 만일 그 자리에 있었다면 떳떳하게 그 자리에 그냥 서 있을 수 있었을까요?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은 죄인이 되었다고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 로마서 5장 12절 )
우리 인간의 본성 중에는 이런 죄의 모습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인류는 끊임없이 죄를 짓습니다.
나 역시도 보이게 안 보이게 계속 죄를 짓습니다.
우리의 죄 중에서 가장 근원적인 죄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존재한다고
하는 교만 입니다.
이 교만한 마음이 우리로 하여금 범죄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이야기 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믿고, 또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결코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도리가 없습니다. ( 히브리서 1장1-2절 )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분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와 교제를 나누십니다.
이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위대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줍니다.
그리고 우리를 영적으로 자라도록 돕습니다.
또한 성경은 우리의 믿음을 굳세게 합니다.
모든 성경은...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 디모데후서 3장 16절 )
우리는 기독교인 입니다.
왜 우리는 그리스도인(기독교인)이라 불리어 집니까?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본으로 삼아야 할 그리스도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바로 성경을 통해서 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삶을 보여 주며 그것이 우리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성서를 기독교 경전이라 하는데, 경전이란 말은 영어의 잣대, 기준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성경이 기독교인의 삶의 잣대요 기준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 된다고 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우리의 삶의 기준과
행동의 동기로 삼는다는 것은 중요한 관련이 있습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내게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 요한복음 6장 35절 )
우리는 하루 세끼를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음식을 섭취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하루에 필요한 음식물을 섭취해야 하루를 살고 또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짐승들처럼 육신만을 가진 존재가 아닙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인간은 영혼을 가진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영혼도 양식이 필요합니다.
양식을 섭취해야만 그날을 살 수 있습니다.
영혼의 양식은 우리의 양심을 깨끗케 해 주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해서
가르쳐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경은 바로 영혼의 양식입니다. ( 신명기 8장3절 )
우리는 성경을 읽음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는지,
또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몸에는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 피는 온 몸을 돌면서 몸의 각 부분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해 주고 노폐물을 수집해
오는 역할을 합니다.
이 피는 심장에서 보내집니다.
심장에서 나와서 동맥과 모세혈관을 통해 몸의 구석구석까지 보내진 후 다시
모세혈관과 정맥을 통해서 심장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 세상을 인간의 몸에 비유한다면 교회는 심장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바로 세상에 생명을 주는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육체적인 생명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 말입니다.
또한 피는 기독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장은 생명을 공급해 주는 창고이지만 그것을 운반해 주는 피가 있어야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피인 기독교인은 심장인 교회에서 생명을 받아서 세상이라고 하는 몸의 곳곳에 가서 죄악의
노폐물들을 거두어 들이고 생명의 말씀을 공급합니다.
이 교회는 두가지 종류로 나뉠 수 있습니다.
먼저, 보이는 교회 입니다.
이 교회는 눈에 보이는 건물로서의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스럽게 구별하여 주시고 어느 지역에 교회를 세워 주셔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함게 예배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곳이 보이는 교회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는 교회입니다.
보이는 교회는 여럿이지만 보이지 않는 교회는 하나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바로 보이지 않는 교회입니다.
서로 피부색도 다르고 자라난 환경도 다르지만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한가지 이유로
연합되어 있다면 이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 에베소서 4장4-6절 )
기독교가 처음 생겨난 당시에는 보이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박해가 아주 심했기 때문에 어느 한 곳에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쫓겨다니면서도 기독교인끼리 함께 모이면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1)주일성수
기독교인의 삶 중에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주일예배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께서 성스럽게 구별한 날이고, 이날에 드리는 에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주시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 자리 입니다.
2)기도생활
쉬지말고 기도하라 ( 데살로니가전서 5장17절 )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편의 마음을 알려면 대화를 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하여 품으신 하나님의 마음은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으며, 기도를 통하여 구체적인
응답을 체험합니다.
기도는 기독교인에게 호흡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폐를 통하여 숨을 쉬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듯이 신앙인이 기도생활을 멈추는 것은
그 신앙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신자는 개인적인 기도시간도 가질수 있고 교회의 새벽기도나 철야(심야)기도회에 참여함으로서
여러 교우들과 함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3)성경 보는 생활
베뢰아 사람은....아주 기꺼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 사도행전 17장11절 )
우리의 육신이 하루에 세끼 식사를 해야 유지되듯이 우리의 영혼도 영의 양식을 섭취해야만 합니다.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성경을 보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성경ㅇ르 계속 반복해서 읽고 깊이 묵상을 하면 성경의 더욱 깊은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 속에 담겨 있는 인생의 참된 길을 찾아서 하루하루 걸어가야 합니다.
4)감사의 생활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요.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의 자녀였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건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암에 걸려 일개월밖에 못산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가 기적적으로 암이 완쾌되었다면, 이제부터 그 사람은 덤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원래 살수 없던 시간을 덤으로 얻어 사는 것이니 그는 당연히 늘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더 귀한 " 영원한 생명 "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당연히 기쁜과 감사가 넘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5)은사의 활용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신령한 선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 로마서 12장 6절 )
사람은 누구나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운동을 잘하고 어떤 사람은 음악을 잘 합니다.
사람마다 제각기 다 독특한 재능이 있기 마련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은사라고 부릅니다.
은혜로 얻은 재능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능은 본래 내것이 아니라 하나님게서 선물로 주신 것이란 이야기 입니다.
내것이 아니므로 내 마음대로 써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뜻에 맞게 써야만 합니다.
은사는 두가지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하나는 일방적인 은사로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재능들을 의미합니다.
또 한가지 비일상적인 은사로서는 방언, 병고침, 예언 등의 아주 특별한 은사가 있는데 모두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주어지게 됩니다.
모든 은사는 하나님의 것이기에 우리가 그 은사를 가지고 자랑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