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단평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김창훈 시인
인연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말한다. 우리는 문학의 인연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이것을 문연文緣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연』(피천득)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라고 했다. 30년 동안 눈물과 땀, 열정으로 인연을 이어온 현명한 분들께 박수를 보내고 싶다.
2024년 봄호는 『시와산문』의 과거를 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제시했다. 표지의 30주년을 기념한 홀로그램처럼 『시와산문』은 다이내믹하고 입체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많은 문예지가 생기고, 사라지고,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오늘의 문단을 이루었다. 『시와산문』은 이제 푸르른 들판을 마주하고 있다. 울창한 초목과 같이 젊은 세대가 문연을 이끌어가기를 기대한다. 단순히 물리적 젊음이 아닌, 생명력을 품은 이들이 문학을 더욱 꽃피우기를 바란다.
<30주년 기념 기획 특집>은 『시와산문』의 역사와 목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었다. 『시와산문』의 발행인 장병환 이사장께서 제시한 ‘10개년의 계획’이 꼭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그 목표가 이루어진다면 『시와산문』은 “욕망을 굽히지 않고 문학이라는 들판을 지날 수 있을 것 같다.”(최문자 시인)
<시인조명>에서 김영자 시인의 시를 읽으면 “임이 따뜻한 빵으로 오시는” 것 같았다. “가벼움 속에 진지함이 들어있고, 그 진지함이 가벼운 향기와 음악처럼 우리의 정서에 젖어 든다.” 황정산 평론가의 말처럼 몇 번이나 「내가 빵으로 웃을 때」, 「상자에 관한」을 읽으면서 “뜨거워서 꽃이 핀다.”라는 시인의 정서에 동화되는 것을 느꼈다.
<시인특집>에서는 ‘아픔, 상처, 고통, 고독, 고립’ 등의 시어가 눈에 밟혔다. 그것들은 <시인, 봄에 무늬를 더하다>에서 이승하 시인의 「아픔을 바라보는 방법」에 깃든 정서와도 일맥상통한다. ‘문학’의 관계에서 작가, 작품, 독자 간의 관계는 끊임없이 확장된다. 독자적이고 유기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우리는 외부 세계를 구성한다. 아프지 않은 시대가 없었지만, 그 상처의 깊이를 헤아려 보는 계기가 되었다. “안개와 팔짱을 끼고 / 검은 계단을 걸어봅니다.”-정우신, 「내일의 천사」 부분
18명의 시인이 쓴 <신작시>에서는 서사나 묘사, 진술, 서정 등을 각자의 유려한 문장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정수아의 「슈필라움」, 「당신은 그 모래를 파랑이라고 했어요」 등의 시는 감동과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신선하게 다가와서 특별히 나의 시적 ‘취향’을 매우 만족하게 해 주는 작품들이었다.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다음 호에는 어떤 시인을 만나게 될지 설렘이 앞선다.
단편소설 「라인댄스」는 한 번에 읽힐 정도로 일상적인 소재를 담담하게 풀어나갔다. 여러 사람이 같은 동작을 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나듯 소설 속 인물도 같은 시대, 공간에 있지만 생각이 다르고 의식 세계가 다르다. 따라서 표현과 발산, 행동이 다를 수밖에 없다. 갈등을 풀어나가는 방법의 주체는 자신일 것이다. 스스로 내재하는 갈등을 풀어야 한다. “춤을 출 것이다. 나의 춤을.”이라며 수많은 라인 속에서 독자적인 라인을 만들어 갈 작품 속 인물과 작가에게 응원을 보낸다.
<에세이 한 편>에서는 경험한 소재를 가지고 전문적인 지식을 보여주거나 비유, 은유, 독후에 대한 내용으로 재미나 교훈을 주는 작품이 인상 깊었다. 「달력이 찾아준 추억」(김희식), 「묘한 이야기」(조재형)를 재미있게 읽었다. 책 앞 목차에 오타가 있다. ‘에시이 한 편’ 옥에 티라고 하기엔 예쁜 단어다. ‘에세이+시’를 합친 합성어 같다.
지난 호에서 “인간 삶의 조화로움을 지향하는 문학 전문지 『시와산문』 통권 121호, 봄호, 30주년 기념호”를 발행했다. 작년 이맘때 나는 『시와산문』의 가족이 되었다. 문학의 인연으로 맺어진 동반자가 되었다. 1년 동안 새로운 만남과 관계에서 많은 감동과 힘을 받았다. 모두 같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시와산문』의 목표에 동참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현명한 사람’이 되어 『시와산문』과의 인연을 끝까지 살려내고 싶다.
계간 『시와산문』에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