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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조선왕조 실록(87편)
사명대사의 실수1
조선이란 나라의 컨셉이 숭유억불.이란 것은 중학교만 제대로 나오면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이대목에서 숭유억불이란?
숭유억불(崇儒抑佛)은 유학(성리학)을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한다는 뜻으로, 조선 왕조의 건국 이념이자 국가 운영의 핵심 통치 방향을 이르는 말입니다.
고려 후기 불교계의 타락과 부패를 비판하며 등장한 신진사대부들이 조선을 건국하면서, 국가의 사상적 기반을 불교에서 성리학으로 전환하기 위해 전개한 정책입니다.
왜 불교를 억압했을까?
고려 말 불교 사찰은 방대한 토지와 노비를 소유하고 고리대금업을 하는 등 경제적 폐단이 심했습니다.
사찰의 재산을 몰수하여 국가 재정을 확보하고 민생을 안정시켜야 했습니다.
신진사대부들은 불교를 현실 도피적이고 가정을 파탄 내는 사상(출가 사상)으로 보았습니다.
반면 성리학은 충孝(충과 효)와 현실 정치를 중시하여, 새로운 유교적 관료 국가를 건설하는 데 최적의 이념 이었습니다.
조선 초기 왕들은 왕권 강화와 국가 기틀 마련을 위해 강력한 억불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교과서 속에 나오는 숭유억불은 단순히 불교를 억압하는 수준정도로만 나와 있는데.
과연 조선시대 불교는 억압’만 받았을까.
이번 회 주제는 조선시대 버림받고, 천대받은 불교에 관한 이야기이다.
불교.그게 어디 사람이 믿을만한 종교냐.
사람이란 게 모여서 나라를 만들고, 자식을 낳아 나라를 영속시켜야 하는 게 사람의 책무인데,
불교 봐봐 금욕 이랍시고,
여자를 멀리하니까 2세를 만들지 못하니.부국강병은 고사하고 나라의 미래 자체를 근심해야 한다니,
이렇게 위험한 종교가 어디 있냐.
가뜩이나 출산률 저하로 머리 아픈데 말야, 그리고 걔네들 하는 것 좀 봐봐.걔네들이 왕으로 모시는 석가모니를 봐 걔가 뭐 생산한 게 있어.
물 한 모금, 쌀 한 톨 먹어도 다 구걸한 거 아냐 이런 것들이 계속 성행하다간 나라 절딴 나는 거 금방이야.
조선이란 나라의 기본개념을 정립한 정도전이 쓴 ‘불씨잡변’이란 책에 나와 있는 불교의 폐단을 대략 간추린 것이다.
요대목에서 불씨잡변 이란?
불씨잡변(佛氏雜辨) 은 조선 개국의 기틀을 다진 삼봉(三峰) 정도전이 1398년(태조 7년)에 지은 책으로,
유학(성리학)의 입장에서 불교의 교리를 조목조목 비판한 대표적인 배불(排佛) 이론서입니다.
조선 왕조의 건국 이념이었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의 이론적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 기념비적인 저술입니다.
고려 말기, 불교는 사원의 비대화, 토지 겸병, 면세·면역 특권을 이용한 폐단 등으로 인해 극심하게 부패해 있었습니다.
신진사대부들은 이를 단순한 종교적 타락을 넘어 국가 재정과 사회 질서를 좀먹는 근본적인 문제로 보았습니다.
정도전은 이 책을 통해 고려의 국교였던 불교를 철저히 비판함으로써, 불교의 시대를 끝내고 성리학에 기초한 새로운 유교 국가(조선)를 건설해야 하는 당위성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불씨잡변 은 총 15편 안팎의 조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불교의 핵심 교리인 윤회설, 인과응보설, 출가주의 등을 성리학적 세계관(이(理)와 기(氣))을 바탕으로 조목조목 반박합니다.
인과응보와 윤회설 비판
불교에서는 전생의 업에 따라 내생이 결정된다고 하지만,
정도전은 사람이 죽으면 정신(魂)과 육체(魄)는 자연으로 흩어질 뿐(氣의 소멸), 다시 태어나는 윤회는 있을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유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효(孝)와 충(忠)을 저버리고 부모와 가정을 떠나 머리를 깎는 행위는 천륜(天倫)을 어기는 것이라 비판했습니다.
또한 생산 활동을 하지 않고 구걸(탁발) 로 연명하는 것은 국가 경제를 피폐하게 만든다고 보았습니다.
불교의 '자비'는 현실 세계를 벗어나려는 이기적인 마음에 기반한 가짜 사랑이며, 유교의 '인(仁)'이야말로 부모를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현실적이고 도덕적인 진짜 사랑이라 주장했습니다.
고려의 정신적 지주였던 불교를 밀어내고, 성리학을 조선의 확고한 국가 이념으로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전의 배불론이 단순히 "승려들이 부패했다"는 식의 행실 비판에 그쳤다면,
불씨잡변 은 불교 철학 자체의 모순을 유교 철학으로 정면 반박한 학술적 비판서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조선 전기의 사상 지형을 완전히 바꾼 철학 논쟁의 중심에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유학자들에게 있어서는 인생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사이비 종교로 간주되었는데,
호구를 늘리고, 농업을 흥성하게 하고, 군비를 튼튼히 하는 것 등등
수령칠사.수령이 보임되기 전 승정원에 가서 외워야 했던 기본적인 수령의 임무 일곱가지)를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는 불교를 싸그리 몰아내야 한다!
이런 현실 속에 불교는 조선시대 내내 천대받아야 했는데, 천대만 받으면 상관없겠지만 불교에 귀의한 스님들을 무슨 가제트 형사로 바라봤다는 게 문제였다.
야, 이번에 과거에 장원급제한 김생원이 해인사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대!
진짜야 사실이야 좋았어!
그럼 나도 해인사로 가서 공부할 거야!예나 지금이나 산사 는 공부하기 딱 좋은 곳이 아니었던가.
더구나 과거가 어떤 시험이던가 가문의 운명을 걸고 전력투구하는 인생역전, 로또시험이 아니던가.
이리하여 전국의 유생이란 유생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산사로 모여드는데,
야이 빠박이들아! 선비가 절에 왔으면 제대로 대접을 해야 할 거 아냐!
이것들이 개념을 바겐세일 해버렸나 본데 나 선비야 선비!
네들 같이 나라를 좀 먹는 놈들이 아니라, 나라 위해 공부하는 선비라고!
선비를 보면, 재깍재깍 튀어 나와서 인사하고, 대접을 해야 할 거 아냐.
그랬다.선비들이 산사로 몰려오면서부터, 불교의 수난은 가속화 되었는데 그나마 나라에서 상사금지 유생이 절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것)외쳤으나, 지켜졌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이 정도는 약과였으니 고을에 새로운 수령이 부임할라치면,
어이! 빠박이들…잘 들어, 이번에 새로운 사또가 부임하려고 하니까.
그래 A조 빠박이들은 연장 챙겨서 관아 리모델링 작업 들어갈 준비하고,
B조! B조 빠박이들은 사또가 절로 순시 하실 수 있으니까.
지금부터 체력단련 들어가.
그리고 C조는 사또가 절에 올라오셔서 파티를 개최 할거니까 알아서들 파티 준비해.
알았지.알았으면 빨랑빨랑 움직여!이렇게 되었던 것이다
절에서 수양을 닦던 스님들을 동원해서 관아의 목수로 활용하는 건 기본이거니와 예나 지금이나 관광코스로 명산고찰이 인기 있는 건 똑같았던지,
사또나 양반들은 절로의 1박2일 코스 유람을 즐겼던 것이다.
물론,경비 일체는 절에서 부담하였음은 두말하면 호흡 곤란할 이야기였다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이 불제자들에게 살생을 강요하는 것과 지로승 과 남여승 으로 차출하는 것이었는데,
역시.두부는 빠박이들이 만들어야 제맛 이라니까!
조선시대 까지만 해도 두부는 소수의 몇몇만 즐기는 음식이었는데 두부의 생산을 명령 받은 곳이 바로 ‘절’이었다.
원래는 왕릉에 제사를 올리기 위한 용도로 왕릉 근처의 절에 할당된 것이 점점 확대 되면서 절하면 ‘두부’라는 공식이 성립된 것이었다.
뭐 절에 와서 두부만 먹고 가면 그럭저럭 참고 넘길 만하겠는데.
문제는 절에 와서 닭을 잡아 달라,
은어를 잡아서 꼬치구이를 해 달라 하면서 스님들에게 살생을 강요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명산을 관광하려면 지로승 과 남여승이 있어야지.
산사 에서 수양을 닦으니 산길에 대해선 훤할 터이고,
이것들이 여자를 멀리하고 맑은 공기 쐐고 앉아있으니 힘 하나는 좋을 거 아냐.
이리하여 산사 에서 수양을 하던 스님들을 끌어다가 길안내 하는 지로승 을 삼고, 양반들이 타는 남여 뚜껑이 없는 작은가마 를 메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뿐인가 양반들을 따라왔던 종들과 하인들 역시 스님들을 핍박해 짚신을 내놓으라고 쌩쑈를 하였던 것이다.
일루와! 네들 짚신 팔아서 먹고 사는 거 다 아니까, 몇 개 내놔! 이것들이 말야 꼭 좋은 말로 하면 안 내놓는다니까!
안내놔 이걸 그냥 확!이리 되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승려로 산다는 건 말 그대로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으니 과연 조선시대 불교계는 이 난관을 어찌 헤쳐 나갔을까?
초특급 대하 울트라 종교 사극 사명대사의 실수(?)’는
엽기 조선왕조 실록(88편)
사명대사의 실수2
조선 시대 스님들의 생활상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 있었으니,
바로 ‘동냥질’이라는 말이다.
양반 들에게 수탈당하고, 국가로부터 핍박받던 스님들, 스님들도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았겠는가.
원래 동냥질의 어원은 동령 이라 해서, 고려시대 스님들이 나귀를 타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작은 종을 흔들던 행동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양식을 들고
나와 스님들에게 시주를 하였는데, 이것이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동냥질’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거 참, 먹고 살기는 힘들고, 나라에서는 우릴 못 잡아먹어 안달이고 어쩔 수 없군.
일단 비구니들은 방물장수 외판원 으로 컨셉을 바꾸고, 힘쎈 남자 스님들은 두부를 만들던가, 짚신을 엮던가,
정 안되면 종이를 만들어서 팝시다.
이리하여 비구니들은 화장품과 악세사리를 들고 민간으로 넘어와 방문판매 외판원이 되어야 했고.
남자 스님들은 팔자에도 없는 제지업과 제화업, 식품업에 뛰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고난의 행군기’였었던 것이다.
자, 문제는 이런 고난의 행군기’가 좀처럼 지나가질 않았다는 것인데,
이조판서 들었소 요즘 민간의 아낙들이 절을 무슨 캬바레 들락거리듯이 들어 간답디다.
아니 이런, 어느 절이 그렇게 물이 좋답니까.
이조판서.아 농담, 조크였소,
조크.음,그런데 아낙들이 절을 들어가는 게 뭐 그리 큰 문제라고.
이조판서! 생각을 해보시오.
아낙들에게 중문 밖에도 나가지 말라고 철저히 통제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 여편네들이 저 깊고 깊은 산사로 들어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소.
허면 절에 불공드리러 간다면 웬만하면 집에서 눈감아주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냐고 그러는데.
아들 낳게 해달라고 불공드리러 갔다가, 남의 씨를 받아서 내려오면 이게 무슨 개스런 상황이요.
음, 생각해 보니 그럴수도 있겠구료.
하긴 10년 동안 태기가 없다가,
이번에 우리 손주 며느리도 불공을 드리러 갔다 오더니 덜컥 임신이 되어서
가만! 뭐야 그럼 이거!이리하여,
조선시대 경제육전에는,부녀자가 절에 올라가는 것은 곧 실절 하여 정조를 잃는 것으로 규정한다! 라며,절=퇴폐업소’라는 등식을 공식화 하였는데.
경제육전의 뒤를 이어 경국대전에서는 이를 명문화 하였으니,
바로 상사 금지법이 바로 그것이었다.
일단 말야, 절에 올라가지?
올라가면 무조건 장 100대야!
맷집 좋다고 자부하는 아줌마는 걍 미친 척 하고 올라가.
네들 맷집이 쎈지,몽둥이 탄성이 쎈 지 한번 시험해 볼 테면 시험해 봐.
여성들이 어떤 존재들이었던가.
조선시대 불교 신도들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이었던 그때,
여성신도들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던 이 상사금지법은 당시 불교계에 엄청난 타격을 입히게 되었으니 쥐도 도망갈 구멍은 파놓고 몰아야지!
지금 이게 뭐하자는 시츄에이션이야!그랬다.조선 불교계 거의 문 닫기 직전이었다.
바로 이때 터져 나온 것이 바로 임진왜란’이었다.왜놈들이 동래성과 부산성을 함락하고 곧장 서울로 치고 올라오고 있답니다!신립장군이 신립장군이 패했답니다.
임금님이 몽진길에 올랐답니다.
경상도에서 의병이 일어났답니다
시시각각으로 전해지는 전황을 들으며, 불교계의 거두인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는 머리를 굴리게 되었으니,
야야, 나라가 절딴 나게 생겼는데
우리가 이렇게 불경이나 외우고 있을때냐.
나라가 있은 다음에 종교가 있는 거 아냐.
그리고 우리한테는 고려시대 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승군 이라는 전통도 있잖아.
대사님, 근데 우리가 궂이 나서야 합니까.
맨날 중대가리니, 문어대가리니, 빠박이니 하면서 우릴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는데, 기껏 나라 찾아 줘봤자. 양반들만 좋은 일 해주는 것 아닙니까!
하 이 자식들,개념을 아예 바겐세일 해 버렸구만
야이 자식아! 일단 나라가 있고,
그 다음에 우리가 있는 거야 임마.
나라가 뭘 해줄까를 생각하기 전에 우리가 나라에 뭘 해줬을까를 생각해 보라는 말도 있잖아 이 자식들아!
그리고, 우리의 원래 목적이 뭐냐 중생을 구제하는 거 아냐 이 자식아.
중생들이 지금 왜놈들 손에 개죽음을 당하는데, 당장 저 중생들을 구제하는 게 우리의 당면과제 아니겠어.
그리고말야, 만약에 우리가 나서서 전쟁에 이긴다 치자,
양반들이 우리를 예전처럼 그렇게 핍박하겠어.
지들도 우리 덕에 나라 되찾게 되었다는 걸 알면 예전처럼 함부로 우리를 굴리지 못할 거야. 안 그래.
이리하여 전국 각지에 있던 명산고찰의 스님들이 대거 집결해 ‘승군을 조직하기에 이르렀으니 일단 절이란 것이 산에 있었던 고로,
스님들 체력 하나는 끝내줬었고, 산을 배경으로 자라났고, 생활했던 고로 산세에 익숙하였던 것이다.
이런 전차로 사명대사를 위시한 승군들은 산을 의지해 게릴라전을 펼처고 왜군들을 상대로 막대한 전과를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봐봐, 된다니까!우리의 전술은 히딩크식의 체력축구.아니 체력 전투다.
홈구장의 잇점을 최대한 살려서 체력으로 계속 압박해 들어가는 것이다!
왜놈들을 최대한 압박한 다음에 미드필더부터 장악해 들어가는 거야.
임진왜란 내내 승군들은 특유의 체력과 산을 배경으로 한 빨치산 식
전술로 왜군들을 궁지로 몰아넣었고, 이는 임진왜란 승리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7년에 걸친 전란은 끝이 나게 되었는데…과연 스님들은 그들의 바램처럼 더 이상 핍박받지 않고,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인가
초특급 대하 울트라 종교사극 ‘사명대사의 실수는.
엽기 조선왕조 실록(89편)
사명대사의 실수3
7년을 끌었던 임진왜란을 승전으로 끝을 맺은 조선의 조정은 논공행상
을 논의하게 이르렀다.
아,그 빠박이들 아니, 중 아니 스님들 말이죠.
장난 아니게 잘 싸우던데요.
괜히 소림사가 있었던 게 아니었어요.그렇죠
그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승군 불러다가 성을 쌓을 정도 였으니까.
그뿐입니까 사명대사는 왜놈들 나라로 건너가 풍신수길의 뒤를 이은
덕천가강과 협상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덤으로 조선 백성 3,500명도
데려오고.빠박이.아니 중.아니 스님들 아니 었으면 조선은 절딴이 나도
진작에 절딴이 났을 겁니다.
이런 우호적인 평가 덕분에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 조선의 불교계는 제법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게 되었다.
우리가 임진왜란 때 얼마나 날렸는데.
조정 놈들, 양반 놈들 다 도망가 있는 동안 불교계가 안 일어났다면 조선은 이미 거덜났다니까!
이제 우리 불교계도 큰소리치면서 사는 거야 흑흑.
정말 길고 긴 200년이었어.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더니만,
이제 우리도 사람답게.아니 중답게 살아갈 수 있겠다.
조선 불교계가 이런 김칫국 을 마시던 그때, 조정에서는 전혀 다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바로 ‘승병 활용을 위한 유관기관 대책회의가 그것 이었다.
에또, 그래설라무네… 지난 임진년과 정유년의 난리 때 빠박이들.
아니 중들이 나서서 세운 공이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이런 중들의 전투력을 발견한 이상,
이걸 놀려먹기는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가뜩이나 전투병이 없어서 고양이 손이라도 빌릴 판국인데, 이런 애들을 놀린다는 거, 이거 국가적 손실입니다!
야~병조판서, 너 간만에 개념 충만한 토킹을 날리는구나.
오케이 바로 저거라니까!
저런 창의적인 발상, 아주 좋아!
자자, 다들 중들을 활용할 방안을 말해봐.
에, 그러니까 중들을 상근 예비역이나 공익근무로 돌리는 건 어떻습니까.
어이 이조판서!그게 무슨 섭섭한 소리십니까.
우리나라 중들이 어디 보통 중입니까.
소림사 같이 사짜 냄새 폴폴 풍기는 애들이 아니라. 100% 오리지널 전투중들이 아닙니까.
임진왜란 때 걔네들이 날고 기는 거 못봤음까 걔네들은 무조건 철책! GOP로 때려 넣어야 합니다.
흠 이런 건 어떻습니까.원래 중들이 산이랑 친하지 않습니까.걔네들 보면 주로 산에 짱박혀서 도닦고 앉아 있으니까, 일단 산에는 정통하죠.
임진왜란 때도 이걸 무기로 게릴라전을 펼치지 않았슴까.
그래서.뮈 얘네들 보면,여자도 멀리하고 맑은 공기 쐬고 지내느라 힘도 좋고 하니까.
평시 때엔 벙커나 산성 같은 전투공병의 임무를 주고, 산성 다 쌓고 나면 산성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야, 그거 굿 아이디어인데.
그런데 그렇게 되면 승군 을 국가에서 먹이고, 입혀야 하는 거 아냐 가뜩이나 재정도 쪼들리는데.
아이 전하~걔네들을 왜 먹이고 입힙니까. 걔네들 사는 데가 어딥니까 바로 절 아닙니까 절은 또 어디 있음까.바로 산에 있죠.
이 자식이, 지금 스무고개해 결론만 빨랑빨랑 말 안할래.
그러니까 중들을 방위로 만들자, 뭐 그런 취지의 발언입니다.
방위.네, 일단 산성 쌓을 때 그 옆에 절을 만들어서 절에서 출퇴근하며 산성을 쌓고, 산성 다 쌓으면 절에서 출퇴근 시키면서 산성을 방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거의 뭐 손 안대고 코풀자는 시추에이션이지요.
야! 그거 엑설런트 한데 바로 시행하자고!
이리하여 조선 조정은 서울의 외곽 방어선인 북한산성과 남한산성을 증축할 때 스님들을 총동원해 산성을 쌓게 만들더니,산성을 다 쌓자 스님들을 데려다가 성의 방어를 맡기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조직된 것이 의승 이라는 승군 조직체 였다.
이 의승은 전국에 있는 스님들이 의무적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교대로 산성 방어에 투입되어야 했다.
만약 이 의승에 들어가지 못하겠다면 대신 돈을 냈어야 했는데.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도 북한산성과 남한산성 근처에 절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에서 였다.
사명대사.좋은 의미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덤으로 탄압받던 불교계의 탈출구를 모색하기 위해 거국적으로 승군을 조직하고 이끌었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으니
나라를 위해 목숨바쳐 싸워도 돌아오는 건 탄압과 멸시·박해밖에 없다는 사실.
다음달이면. 8월인데.
8·15 광복절을 맞이한 독립군들의 심정이 바로 이러하지 않았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