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상을 차릴 때 고춧가루, 마늘, 개고기를 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매큼한 김치
각각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지요. 김치는 왜 쓰지 않을까요? 사실 김치는 종류가 매우 많습니다.
보통 쓰지 않는 김치는 고춧가루가 들어간 새빨간 김치입니다.
김치 하면 고춧가루가 들어간 김치가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데, 도대체 왜 김치를 쓰지 않을
까요? 여기에는 좀 이상한 이유가 있습니다. 한 20여 년 전쯤에 대학입시에 나온 문제입니다.
요즘에도 이런 문제가 나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 기억에 따른 것이니 비슷하지는 않겠지만, 골격
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다음과 같은 장면이 역사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여러분들이 맞춰보시기
바랍니다. 재미있는 우리 영화 〈황산벌〉의 한 장면일 것도 같습니다.
장군(김유신 장군)께서 우리를 위로하시느라 삶은 돼지를 내리시고 매큼한 고춧가루로 버무린 겉절이 김치를 내주
신다네! 내일은 전투에 나가서 반드시 승리하세나!
자, 이런 장면은 과거에 있을 법한 일이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고추는 우리나라 사람
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자 음식의 맛을 내는 매우 중요한 재료입니다. 고추 없는 우리 음식은 생각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임진왜란이 지나고 나서였습니
다! 김유신 장군과 그의 병사들은 고추를 넣은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장면 설정은 그릇된 것입니다. 이런 문제도 있습니다. 단군할아버지 시절 호랑이가
담배를 피웠다. 가능할까요? 담배도 임진왜란 이후에 들어왔으니 고조선 시대에 담배가 있을 리가 없
지요.이런 이유 때문에 고춧가루를 넣은 김치는 우리의 고유한 음식이 아니므로 제사상에 올리지 않
았던 것입니다. 마치 지금 바나나나 수입 과일을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단순한 기원의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 깊은 철학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
입니다.
신토불이(身土不二) 라는 말을 알고 계시죠? '몸과 몸이 태어난 땅은 둘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둘이
아니니까 나눌 수 없는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우리 농촌이 세계경제의 조류 속에서 자립 기반
을 잃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농협에서 내건 농업 자활을 위한 슬로건입니다.
'혹 어떤 분들은 일본식 한자라느니, 일본에서 한 말을 들여온 것이라느니 하면서 그 말 자체를 싫어하
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일본의 농민들이 지은 말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일본에서 지은 것이라고 해
도, 그 속에 들어 있는 의미까지 일본식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원효대사나 많은 큰스님들의 글 속에 그런 생각은 부지기수로 있습니다.
씨앗이 좋아도 잘 자랄 수 있는 토양에 떨어지지 않으면 암만 많아도 소용없는 일 아니겠어요?
우리의 토양에 저 씨는 잘 맞아떨어지는 궁합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남의 나라 말이 아닙니다.
우리말이죠. 어쨌든, 신토불이의 정신이 김치를 제사상에 놓지 못하게 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당시이지,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김치는 한국 문화의 대표적인 아이콘입니다. 그것을 금기해야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오히려 저는 그 붉은색이 주는 화려한 느낌이 금기에 작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
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제사상에 고춧가루는 균형을 상실한 조금 과한 느낌을 준다고 해서 전체적인 균
형을 위해 제외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춧가루와 더불어 마늘이 금기가 된 이유는 '귀신을 쫓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추도 그렇지만 마늘
도 양기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금욕적인 종교는 마늘을 두려워합니다. 수도자에게 양기는 세상의 쾌락
을 불러일으키는 고통의 근원이기 때문이지요. 그뿐인가요, 음기로 뭉쳐진 흡혈귀들은 마늘을 무서워한
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마늘은 좋은 귀신, 나쁜 귀신을 가리지 않나봅니다. 마늘이 가진 귀신을 쫓는
힘이 조상의 귀신까지 쫓으면 안 되기 때문에 제사상에 놓지 않습니다.
고등어
고등어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첫 번째, 고등어처럼
비늘이 없는 물고기는 상에 올리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쉽게도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아마
위생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뒤에서 말해보겠습니다. 두 번째는 단순한 이유입니다.
제사상에는 북어나 자반 같은 종류를 올리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따로 고등어를 올릴 필요가 없다는 것
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왜 북어와 자반이고 고등어는 아닌가에 대한 답은 아닙니다.
세 번째는 첫 번째 이유와 통합니다. 고등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비늘이 없고, 흔히 볼 수 있는 생선
이며, 천하다는 인식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왜 고등어가 천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과학의 도움을 빌려서 이제 이와 같은 생각을 과학적으로 이해해볼까 합니다. 고등어는 세계적으로 발견
되는 인류의 공통적인 생선입니다. 꽁치, 정어리 등과 함께 바다 깊은 데서 살지 않고 바다 위층에서 서식
합니다. 이 때문에 위의 물고기들은 수압을 비교적 덜 받습니다.
그 결과 육질이 단단하지 않고 연하게 생겼습니다. 이렇게 되면 썩기 쉽습니다. 그래서 고등어는 '살아 있
으면서 썩는다'는 역설적인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잘 썩는 생선이라는 것이지요. 고등어는 회로 먹을 경
우에 식중독에 걸리기 쉽습니다. 산란기가 되는 여름에는 내장에서 독성이 분비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합
니다. 그리고 역시 잘 썩기 때문에 갓 잡아도 위험합니다. 더구나 부패균이 내장 속에 살아 있어서 안으로
도 빠른 속도로 썩기 쉽고, 육질이 연해서 더욱더 잘 썩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고등어는 부패하기 쉬운 음식이기 때문에 제사상에 놓지 않은 것은 아닐까요?
혹 어떤 사람이 고등어를 제사상에 올렸다가 식중독이나 복통을 일으킨 경우를 생각해보지요.
아마 부정을 탔다고 생각해서 제사를 그르치게 될 것입니다. 당연히 고등어는 금기시되었겠지요.
개고기
개는 신석기시대부터 인간에게 길들여져서 함께 살아온 동물입니다. 생물은 살아남기 위한 생존 본능이
강하기 때문에 환경에 수동적으로 적응하기보다는 능동적으로 환경을 변화시키는 전략을 취합니다.
우리가 개를 길들이고 난 뒤, 오히려 개는 자신의 환경인 인간의 문명을 잘 이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동물들이 멸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데, 개만은 인간에게 기생하여 그 수를 늘리고 있습니다. 기아
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어떤 사람은 "죽어 유럽의 개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을 정도랍
니다. 개는 인간에게 충직합니다. 개에게서 충직이라는 말을 빼놓으면 개가 아니죠.
이 충직 때문에 개는 인간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데나 배설하고, 소중
한 주인의 물건을 잘근잘근 씹어놓고도 꼬리를 살랑살랑 치고 있습니다.
한때 우리나라는 개고기를 먹는 야만스러운 나라로 세계에 고발당한 적이 있습니다.프랑스의 한 여배우
는 우리나라를 저주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문화의 한 양상이므로 더 넓은 식견을 가져야지, 좁은 식견으로 간섭하지 말라"고 타일렀습니다.
그리고 그런 말 하는 프랑스는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개는 물론 고양이나 쥐도 잡아먹었을 뿐만 아니
라 어엿한 전문 고깃집도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개를 먹는 풍속이 있는 것은 우리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나라들이 개를 식용하고 있습니다.우리 문화에서 개를 식용한 것은 매우 오래전부터입니다.
맛좋은 음식으로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제사상에는 개고기를 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음식 자체가 가진 맛과 향이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모두 좋아하는 음식이라면서요? 예서에서도 제사상에 개고기를 올린 흔적
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만 와도 우리 풍습에서는 개고기를 제사상에 거의 올리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개와 불교
고려는 불교국가였기 때문에 육식이 공식적으로 권장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몽골 침입 후에 몽골이라는
유목민족의 식습관이 전해져서 많은 육식을 합니다. 하지만 북방 민족은 개를 신성시했기 때문에 개를 식
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북방 민족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중국도 점차 개를 식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개가 신성시
된다면 당연히 식용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불교에는 개를 신성한 존재로 보는 설화가 있
습니다.어떤 사람이 눈이 셋 달린 개를 주워다가 정성스럽게 키웠습니다.
함께 오랫동안 살았지만, 개는 수명이 인간보다 짧아서 먼저 죽었습니다. 주인도 세월이 지나 죽게 되어 저
승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승의 첫 관문에서 눈이 셋 달린 삼목대왕(三目大王)을 만나게 됩니다.
눈이 셋이니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하지만 삼목대왕은 이 남자를 보고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자신이
죄를 지어 인간 세상에 개의 모습으로 태어났는데 다행히 인정 많고 착한 분을 만나서 고생 없이 살다가 이
제는 죄를 씻고 다시 본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하며 엎드려 감사하더랍니다.
그러면서 염라대왕 전에 갔을 때 다시 환생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눈 셋 달린 개의 주인은 염라대
왕 전에 가서 시키는 대로, "불법을 널리 알리지 못하고 와서 한스럽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염라대왕은 그를 도로 인간 세상에 환생시켰다고 합니다. 삼목대왕이 은혜를 갚은 것입니다.
이제 불교도들에게 개는 단지 개가 아니라 저승의 대왕이 환생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로부터 사람이 죽어 환생하면 대부분이 인간 곁에 가까이 있는 개로 태어난다는 전설이 퍼지게 되었습니
다. 특히 부모나 조상이 개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이러니 개를 먹어도 얼마나 찜찜했을까요? 이에 덧붙여서
절은 대부분 산속 깊은 곳에 있으므로, 개고기를 먹는다면 그 고기 냄새가 몸에 배어 호랑이가 물어갈 수도
있기 때문에 개고기를 금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개고기를 제사상에 두지 않는 것은 정통 예법이라기보다는 우리의 풍속에 널리 퍼진 금기 때문
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는 어떤 의미에서 인간을 연상시키는 것입니다.
불교의 신화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개는 사람과 가까이 살기 때문이고, 사람이 먹는 밥을 먹여 키우기 때
문일까요? 가까움이 지나치면 뭔가 균형을 잃기 때문에 제사상에서 멀리하게 된 것일까요? 우주의 균형이
작용한 것일까요? (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