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기계체조 대표로 파리올림픽 2관왕에 오르며 부와 명예를 거머쥐며 부러움을 샀던 카를로스 율로(24)가 어머니와 돈 문제로 분쟁을 벌이고 있다고 영국 BBC가 필리핀 언론을 인용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번 대회 두 번째 금메달을 따내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오른 것이 지난 4일이어서 일주일도 안 돼 이런 분란으로 의미가 퇴색된다는 것이 놀랍다.
어머니인 안젤리카 포퀴즈율로가 아들의 재산을 관리하는데 아들의 여자친구인 틱톡 크리에이터가 끼어들어 둘을 갈라놓고 있다는 것이 갈등의 핵심이다. 인터뷰와 소셜미디어 포스트, 심지어 급하게 마련된 기자회견까지 지나친 보도 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많은 이들이 언론에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율로는 3년 전 2020 도쿄올림픽 역도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안긴 역도의 히딜린 디아즈에 이어 두 번째로 조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그는 필리핀 정부로부터 2000만 페소(약 4억 7700만원)의 현금 보너스를 지급받는다. 후원사들은 콘도미니엄, 뷔페와 이나살(inasal, 레몬그라스와 마늘을 가미한 닭구이 요리) 평생 무료 이용권 등을 제공하겠다고 앞다퉈 나섰다. 수도 마닐라는 그의 귀향에 발맞춰 대대적인 축제 준비에 착수했다.
아들이 2관왕에 오른 같은 날, 어머니가 필리핀 라디오 방송과 가진 인터뷰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어머니는 알려진 것과 달리 아들의 돈을 함부로 쓰지 않았으며 실제로는 마닐라의 한 은행에 예치했다고 밝혔다. 어머니는 아들을 대신해 돈을 관리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틀 뒤 율로는 틱톡 동영상을 통해 자신은 우승 상금이란 것을 "받아본 적이 없다"며 그 돈이 어디로 갔느냐고 어머니에게 따졌다. 그는 필리핀인 여자친구가 "붉은 깃발"(red flag, 원래는 경고장 의미인데 여기에서는 얼굴이 붉은 서양인이란 의미로 쓰인 것 같음)이 아니라며 어머니가 외모와 호주에서 자랐다는 점 때문에 여자친구를 이렇게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머니 당신에게 드리는 내 메시지는 치유하고 (다른 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것이다. 난 오래 전에 당신을 용서했다. 당신이 언제나 안전하고 잘 지내길 기도한다."
어머니는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아들의 동영상에 대한 소회와 함께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인터뷰에서 급한 질문을 받고 생각할 겨를 없이 대답하는 바람에 실수가 있었다며 사과했다. 또 아들과 의견 차이를 보이는 것에 대한 "마지막 말"을 하는 것이라며 자신은 아들의 돈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일로 남겨뒀어야 마땅한 때인 지금, 온 나라가 우리 각자가 다음에는 어떤 말을 할지 기다리는 위험한 수위에 이르렀다. 난 완벽한 엄마가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알듯이 넌 완벽한 아들이 아니다. 완벽한 가족이란 없다."
모자 모두 그날 회견 이후 공개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팬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율로의 역사적 업적에 다시 관심을 집중시키자고 요청하는 한편, 그의 사생활을 들추는 일을 그만 하자고 촉구했다. 필리핀 시청자들은 막장 드라마와 가십에 열광하는데 특히 공적 인물들이 누구와 사귀고 어떻게 돈을 쓰는지에 특히 관심이 많다고 방송은 전했다.
동네의 추한 풍문이나 수다 집단을 가리키는 은어가 있는데 , 필리핀 여인을 통칭하는 마리테스(Marites)다. 팬데믹 록다운 기간, 당시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아 1억 1500만명이 모여 사는 나라가 "마리테스 공화국"이 됐다는 실없는 소리를 했다.
그러나 율로 사례에서는 언론의 관심이 너무 지나쳤다고 저명한 저널리즘 학자인 다닐로 아라오는 지적했다. 그는 BBC에 "뉴스 가치가 담기지 않고 공론을 형성하지도 않는 사소한 일들을 보도함으로써 2024 파리올림픽에서 거둔 빼어난 성취를 퇴색시키도록 하지 말자"고 호소했다. 아울러 가족 분쟁이나 사적인 인물의 개인 문제들을 보도하는 일은 "관음증(voyeurism)과 풍문에 탐닉하는, 받아들일 수 없는 문화"를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율로의 승리를 보도하며 국가 지원이 부족해 필리핀 선수들이 직면하는 시련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율로 가족의 불화는 자녀들은 부모들이 자신을 최우선으로 여기지 않을 때에도 항상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둘러싼 논란이 소셜미디어에서 벌어지게 만들었다.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이 나라의 새로운 스포츠 스타에 관한 재미있는 밈(meme)들을 만들어 퍼뜨리고 있다. 한 살균제 브랜드는 율로의 매력을 빗대 살균력은 99.99% 효력이 있는데 0.01%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어머니는 상처받을 말들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그럼에도 가족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집은 네가 돈이 있건 없건 열려 있다. 네가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나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