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 2일
호주제 폐지안 국회본회의 통과
호주제 폐지안이 국회본회의를 통과하자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 등 여성단체 회원
들이 국회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호주제(戶主制)와 동성동본 혼인금
지 제도를 폐지하고, 양자(養子)도 친자
(親子)와 같은 법적 권리를 갖도록 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이 2005년 3월 2일
국회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양성평등이라는 시대흐름에 따라 촉발된
호주제에 대한 논쟁은 2005년 2월 3일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후 28일 국회 법사위에서 호주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후 3월 2일 국회본회의에서 호주제(戶主制)
와 동성동본 혼인금지 제도를 폐지하고,
양자(養子)도 친자(親子)와 같은 법적 권
리를 갖도록 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이 통
과되면서 호주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새로운 민법 개정안이
시행되는 2008년 1월 1일부터 호주제는
폐지되고, 호적부 대신 ‘1인1적부’ 형식의
가족관계등록부가 사용된다.
이번 호주제 폐지는 양성 평등이라는 인
권과 민주주의의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라
는 주장과 함께 가족의 결속력과 가족복
지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2012년범죄심리학 '깨진
유리창의 법칙' 창시자 제임스 윌슨 별세
▶2009년한국인
최초 아이비리그 총장 김용
▶2003년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식민통치 후 40년 만에 알제리 첫 공식방문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오른쪽)이 2003년
3월 2일 알제리의 수도 알제 공항에 도착,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과 반갑게 포옹하고 있다.
▶2003년북한 전투기 4대,
미국 정찰기 위협
▶2001년국악 FM방송 개국
윤미용 국악방송 이사장.
‘국악 FM방송’ 은 국립국악원이 운영 주체를 맡아, 서울·경기 일원에 출력5㎾·주파수 99.1㎒, 전북 남원 일원에 1㎑·95.9㎒, 매일 새벽5시부터 다음날 오전2시까지 하루 21시간 방송을 한다. 국악원이 재단법인 ‘국악방송’(이사장 윤미용·국립국악원장 겸임)을 설립해 서울 서초동 국악원 내 국악박물관 2층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생방송 프로그램은 ‘FM국악당(오전6~7시) ‘김자영의 창호에 드리운 창살’(오전9~11시) ‘채치성의 국악세상’(오전11~12시) 등 4개. ‘이금희의 고운 님의 노래’ 등 6개는 녹음 방송한다. 방송 인력이 ‘아나듀오’(아나운서·프로듀서·오퍼레이터의 합성어) 8명 등 14명에 불과해 방송의 질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윤미용 이사장은 “1인 3역의 디지털·초미니 음악방송이지만, 예산과 재정자립도를 차츰 높여 국악 진흥의 전진기지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1999년조선일보, 가로짜기 제작 시작
▶1997년정부, 초등학생 학원
영어 과외 금지 발표
▶1997년탈북자 강철호씨
김포공항 통해 귀순
김포공항을 통해 귀순한 북한인 강철호씨가
가짜 중국인 신분증과 해원증을 내보이고 있다.
▶1997년워싱턴포스트, 오리건대학 돈 월프 박사
등이 96년 8월 원숭이를 복제탄생시켰다고 보도
▶1995년미국 우주왕복선 엔데버호 발사
▶1995년러시아 오스탄키노TV 방속국 블라디슬라프 리스티예프 사장 총격 피살
▶1995년한국어선 모로코서 피격 -
이원호 선장 사망, 선원 24명 억류
▶1995년베어링 은행 파산
주범 닉 리슨 검거
▶1994년해직 전교조교사
1,135명 4년 만에 교단 복귀
▶1990년토지공개념제도 시행
▶1989년문공부, 평화방송과
불교방송 설립 인가
▶1988년이현재 제20대 국무총리 취임
▶1983년중고생 복장자율화 시작
ㆍ“일제 잔재” 교복 제도 폐지
새하얀 칼라, 플레어스커트, 허리에 벨트를 한 감색 상하의’의 예쁜 여학생을 등굣길 버스 안에서 훔쳐보는 ‘스탠드칼라를 단 검정 상의와 바지’를 입은 까까머리 소년의 첫사랑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다. 1970년대 대부분 학교는 이런 색상과 디자인의 교복을 입었다.
이 시절엔 칼라의 호크 하나를 풀어 놓는 것만으로도 불량한 복장으로 간주될 정도로 규율이 엄격했다. 억압에 대한 반발로 졸업식장에서 교복과 교모에 밀가루를 뿌려 칼로 찢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었다.
이러한 엄격한 교복 착용과 두발 제한이 학생 개성을 신장시키는 데 방해가 되며, 일제의 잔재라는 각계 의견이 빗발치면서 83년 3월2일부터 교복자율화가 실시되었다. 제한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예전 같은 강제성은 사라졌고, 사실상 대부분의 학교는 교복 제도를 폐지한다.
그러나 가계 부담 증가로 교복에 대한 학부모의 요구가 높아지고, 교육계에서도 그 필요성을 실감함에 따라 86년 2학기부터는 학교장 재량으로 교복 착용 여부 및 교복의 형태가 결정되도록 방향이 수정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교복 착용은 대세가 되었고 현재에 이른다.
우리나라 교복의 역사는 개화기부터 시작된다. 1886년, 이화학당을 창설한 선교사 메리 스크랜턴은 소녀들에게 붉은 무명천으로 치마저고리를 지어 입혔다. 우리나라 최초의 교복이었는데, 사람들은 이 교복을 입은 이화학당 학생들을 ‘홍둥이’라고 불렀다. 이후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로 바뀌었다. 남학생의 교복은 그보다 2년 뒤에 등장한다. 미국인 선교사 H G 아펜젤러가 설립한 배재학당에서 당복(堂服)을 학생들에게 입혔는데, 이 당복은 당시 일본의 학생복과 비슷한 형태였다고 한다.
최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새 학기부터 중·고교생의 두발·복장을 자율화하겠다는 의향을 밝혀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곽 교육감은 두발·신발·양말 등의 규제는 없애되 교복은 그대로 입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교복자율화가 되면 학생 간 빈부격차가 옷차림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입학 시즌인 3월, 예전 중·고교 입학생들은 다들 자신의 몸보다 몇 치수는 큰 교복을 입고 갔다. 한창 클 나이를 고려한 부모님이 교복을 맞출 때 강력하게 주장한 탓이었다. 외모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은 학생주임 선생님의 눈을 피해 교복을 몸에 꼭 맞게 수선해 입기도 하고, 치마를 무릎 위로 접어 올려 멋을 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리운 것이 교복이다. 졸업 후 교복을 보며 추억에 빠지는 이유는 순수하고 풋풋했던 학창시절을 대표하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1979년국산전기자동차 개발 성공
▶1978년여성 법학자 박관숙 사망
▶1972년파이어니어 10호 발사
▶1969년중국과 소련, 전바오섬(珍寶島)에서 무력충돌 발생
1969년 3월 중·소(中蘇) 국경 우수리강에 있는 전바오섬(러시아명 다만스키섬)에서 일어난 양국 국경경비대의 무력 충돌사건.
1950년대 말 이후 중·소 대립이 가장 첨예화되어 일어난 사건이다. 3월 2일 아침, 중국 국경경비대가 전바오섬이 중국령이라 주장하고 거기에 주둔한 소련 국경경비대를 기습, 31명을 살해하고 이를 점령하였으나, 15일 소련의 계획적인 대규모 반격을 받고 패퇴하였다.
이를 계기로 하여 소련은 극동 및 몽골의 주둔 병력을 증가하고 군관구를 신설하여 대중공전비(對中共戰備)를 강화하였고 중국 또한 국경군구(國境軍區)의 병력을 증가하였다.
▶1969년콩코드기 첫 시험비행에 성공
콩코드기 시험 비행.
▶1969년미국의원단 21명 내한
▶1967년뤼프게 서독 대통령 방한
▶1964년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
(KORSTIC) 발족
▶1962년버마 쿠데타로 네윈장군 집권
▶1960년부산 국제고무공장
화재로 여공 62명이 사망
▶1959년한국과 노르웨이 국교수립
▶1958년영국 후크 탐험대
사상최초로 남극대륙 횡단 성공
▶1956년모로코, 프랑스로부터 독립
▶1955년부산역구내에 객차에서 큰 화재로 사망 42명, 화상48명
▶1949년 미공군기 ‘B-50 스트래터포트리스'가 94시간만에 세계일주 논스톱 비행에 성공
▶1945년캐나다 화가 에밀리 카 사망
▶ 1933년 영화 “킹콩” 개봉
1933년 3월 2일 미국 뉴욕에서 개봉한 영화 ‘킹콩’은 충격 그 자체였다. 거대한 고릴라가 뉴욕시를 덮쳐 지하철을 부서뜨리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복엽기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이 영화를 할리우드 영화사상 기념비적인 걸작으로 남게 했다.
‘킹콩’은 이후로도 수차례 리메이크됐다. 2005년에는 ‘반지의 제왕’의 감독인 피터 잭슨이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킹콩’을 최첨단 촬영기법을 사용해 다시 제작하기도 했다.
“‘콩’에 대해 들어봤소? 짐승도 인간도 아닌 좀 더 무서운 괴물이 아직도 살아서 섬을 위협하고 있다고 전해진다오. 미신은 진실을 반영하는 법. 그 섬에는 우리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 살고 있는 게 틀림없소.” “설마 그걸 찍을 생각이오?”(1933년판 ‘킹콩’의 대사)
해골섬에 살고 있는 ‘콩’은 신장이 18m에 이르는 거대한 고릴라. 기록영화 제작자 칼 덴햄은 킹콩을 사로잡아 뉴욕으로 데리고 온다. 그러나 카메라 플래시에 놀란 킹콩은 창살을 부수고 뛰쳐나와 사랑하는 앤을 데리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옥상에 올라선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을 보호하다가 빌딩에서 떨어져 죽고 만다.
“예언자가 말하기를, 야수는 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잔인한 손은 얼어붙었고, 그 날 이후 야수는 얼이 빠진 자처럼 되었다.”(고대 아라비아의 속담)
피터 잭슨 감독은 호러 스릴러 영화였던 ‘킹콩’을 도시에서 길 잃은 야수의 슬픈 러브 스토리로 재구성해 냈다. 괴물 같은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와의 사랑은 그리스 신화 ‘큐피드와 프시케’, ‘미녀와 야수’, ‘개구리 왕자’부터 ‘노트르담의 꼽추’ ‘오페라의 유령’ 등에서 꾸준히 변주되고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지막에 멋진 왕자님으로 변신하는 ‘미녀와 야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나게 마련이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주인공 ‘유령’은 납치한 크리스틴을 라울에게 보내준 뒤 죽음을 맞고, ‘킹콩’은 자신을 점점 궁지에 모는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결국 마천루까지 오른다.
▶1931년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출생
▶1930년영국작가 D.H.로렌스 사망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저자 D.H.로렌스.
▶1923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창간
▶1919년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 창립대회
▶1906년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으로 부임하다.
▶1904년미국 산업 디자이너 헨리 드라이푸스 출생
▶1900년미국 작곡가 쿠르트 바일 출생
▶1867년미국 의회,
하워드대학교 설립 허가
▶1855년러시아의 황제(1825-55) 니콜라이1세 사망
▶1824년체코 작곡가 스메타나 출생
▶1817년헝가리 최고
서사시인 오로니 출생
▶1791년영국 신학자 존 웨슬리 사망
▶1711년러시아 터어키에 대한 선전포고
▶1316년스코틀랜드 왕 로버트 2세 출생
https://youtu.be/fnrpXimWzbg
출처 네이버지식백과,반가운의hi스토리,솦트리종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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