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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강화도 여행]. 훈맹정음의 창시자 松庵[송암] 朴斗星[박두성] 선생생가..........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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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강화도 여행]. 훈맹정음의 창시자 松庵[송암] 朴斗星[박두성] 선생생가..........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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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교동도 여행길에서 박두성 생가라는 이정표를 보고 농로를 따라 무작정 들어가 보았다. 좌측으로 바닷가가 바
라다보였고 인가가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마을 중간 지대 벌판에 아담한 초가집이 하나가 자릴 잡았다. 사실 유랑자에겐
조금은 생소한 이름이었다, 박두성! 누구지? 하는 생각으로 찾아 들어간 초가집! 그런데 정작 이 집의 인물에 대해서는 몰
랐던 유랑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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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 조용한 시골 마을 입구에 자리 잡은 이곳은 田園[전원]의 조용한 시골 마을 주차장도 깔끔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인천시와 강화군이 13억 8천만 원을 들여 2021년 11월 준공식을 갖고 초가집 형태의 생가 복원을 해 놓은 것이다. 사유지
였던 생가터[2,244m² 약 680평]를 사들였고, 사라진 옛 건물의 사진과 松庵[송암] 친척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考證[고증]
작업을 거쳐 생가 복원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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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탄압 속 피어난 '기적'…위험 무릅쓰고 비밀리에 훈맹정음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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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가 조선인 유화 정책으로 시각장애인 학교(제생원 맹아부)를 설립하면서 기독교인 교사를 추천받았는데, 당
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박 선생이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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流浪者[유랑자]는 호기심 반, 궁금증 반, 필요 반, 몰랐었던 상식은 쌓아가고 기억함으로써 또 하나의 지식을 쌓아가는 과
정이라 생각하고 하나하나 읽어 내려간다. 그리고 이 인물과 시각장애인들의 활동과 생활 적응에 대한 불편함과 고통에 대
해서 외면하고 살아왔던 무지를 이번 참에 반성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면서 유랑자는 열심히 선생의 업적에 대해
서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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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의 유년 시절 나의 모친께서 즐겨 부르셨던 판소리 ‘심청가’의 한 대목이 있다. 여기서 ‘病身[병신]’이란 가락이 나오
는데 이는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경멸하는 표현이 아니라, 말뜻 그대로 ‘병든 몸’이라는 의미를 노래한 것이다. 사실 ‘병신’
이 輕蔑[경멸]과 厭惡[염오]의 비속어로 전락한 것은 19세기 근대 이후다. 그전까지 장애는 단순히 고치기 어렵거나 항구
적인 질병 정도로 여겼다. 병은 나, 너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를 예비 장애인으
로 취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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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운동 이후 식민 통치가 강화되면서 조선어 교육을 없애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자, 송암 선생은 더욱 절실하
게 한글 점자의 필요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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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1920년부터 한글 점자 연구를 본격화했고, 1923년 제자 8명과 함께 비밀리에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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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의 상식으로도 ‘장애인’이란 단어가 정착한 것은 불과 반세기 전으로 알고 있다. UN은 1981년을 ‘세계 장애인의 해’
로 정했다. 그해 우리나라에서도 ‘심신장애자 복지법’이 제정[1989년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 됐다. 우리말 ‘장애인’은 영
어 단어 ‘disability[무능, 신체장애]’를 일본이 ‘障害者[장해자]라고 번역한 것을 옮겨왔다. 그전까지 주로 ‘불구[자]’라는 용
어가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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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올해가 訓盲正音[훈맹정음] 100주년이라고 한다. 유랑자가 무식하고 창피하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사실 세
종대왕이 만든 '訓民正音[훈민정음]'은 알고 있었지만 '훈맹정음'이라는 말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엔 '훈맹정음 반포
100주년'이라는 글을 보면서 '훈맹정음'이라니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유랑자는 부랴부랴 핸폰을 꺼내 들고 찾아보았다.
훈맹정음은 조선총독부의 후생 기관이었던 제생원 맹아부[현 서울맹학교]의 초대 교사였던 松庵[송암] 朴斗星[박두성] 선
생이 만든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 글이라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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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각막염에 걸려 실명할 뻔할 정도로 밤낮없이 연구에 매달려 마침내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완성했고, 1926년
11월4일 이를 세상에 내놨다. 이날은 한글날 기념식이 처음 거행된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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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점 형 한글 점자인 훈맹정음(訓盲正音, ⠚⠛⠑⠗⠶⠨⠻⠪⠢)을 창시하여 시각장애인의 눈과 입이 되어준 한글 점자가 아
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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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으로 불리는 송암 박두성 선생[1888∼1963]이 태어난 생가 인천 강화군 교동도 달빛이 비
치는 우물이 여러 개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오는 달우물[달빛 동화] 마을에 복원 사업이 본격화됐다. 송암은 제생원 맹
아부(현 국립 서울맹학교) 교사로 지내면서 일본어로 된 점자만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다 1923년 조선어 점자연구회를
조직한 데 이어 1926년 한글 점자 ‘訓盲正音[훈맹정음]’을 창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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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생가 옆에 자릴 잡고있는 허스름한 옛 예배당인 ‘교동교회’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한글 점자 창안자 송암
박두성 선생의 모 교회이자 생가터이기 때문이다. 박두성 선생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기리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지난 한글날 EBS가 ‘또 하나의 한글, 훈맹정음’이라는 다큐를 통해 송암 선생을 기렸다. 2002년 당시 문화관광부는 송암
을 ‘4월의 문화 인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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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手語)도 그렇고 점자(点字)도 마찬가지로 한글이 있었기에 직관적인 한국어 수어와 한글 점자가 한글 기반으로 만
들어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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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박두성 선생 어록
▶"능숙한 목수는 상한 나무도 버리지 않는다. 눈먼 사람들을 위하여 점자가 있으니, 이것을 통해 무엇이든 읽을 수 있다."
▶민족이 노예가 되더라도 그 언어를 잘 보존하고 있는 한 그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비록 눈은 잃었으
나 우리말 우리글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
▶실명한 사람들에게 조선말까지 빼앗는다면 눈도 보이지 않는데 벙어리까지 되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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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정부는 1992년 송암에게 銀冠文化勳章[은관문화훈장: 문화 훈장의 다섯 등급 가운데 두 번째에 해당하는 훈장] 을
추서했다. 송암은 일제강점기 이후 시각장애인[성서의 ‘맹인’]들에게 ‘맹인의 세종대왕’으로 존경받고 있다. 松[소나무 송],
庵[암자 암] 을 쓰는 松庵[송암] '암자의 푸른 소나무처럼 뜻을 굽히지 말고 남이 하지 않는 일에 평생을 바치라'라는 의미
를 담고 있다. 선생의 본관은 무안[務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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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庵[송암]‘은 강화도 출신 기독 독립운동가 이동휘[1873~1935]가 그를 아낀 나머지 내린 호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이동휘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으나 다른 요인들과의 의견 대립으로 탈퇴했으며 고려공산당을 창
당한 후 남은 생애의 대부분을 공산주의 활동에 투신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알고 보면 상용리는 기독교 초기 신앙을 받
아들인 박씨 일가 集姓村[집성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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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박두성 선생 어록
▶장애를 방어, 제거하여 완화, 회복시킬 수 있는 원리, 방법은 오직 시각장애인에게 문자를 주어 그들의 정서를 순화하는 길 밖에는 없다.
▶제대로 된 맹아 교육을 위해서는 점자 교과서가 있어야 합니다.
▶맹인 교육을 등한시한다면 국민에게 행복을 주기는커녕 문화 창달에 역행할 것입니다. 능한 목수는 아무리 굽은 나무라도 버리지 않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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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박두성 선생 어록
▶장애를 방어, 제거하여 완화, 회복시킬 수 있는 원리, 방법은 오직 시각장애인에게 문자를 주어 그들의 정서를 순화하는
길 밖에는 없다.
▶제대로 된 맹아 교육을 위해서는 점자 교과서가 있어야 합니다.
▶맹인 교육을 등한시한다면 국민에게 행복을 주기는커녕 문화 창달에 역행할 것입니다. 능한 목수는 아무리 굽은 나무라
도 버리지 않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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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의 선대가 五衛將[오위장:종2품-오위란 으뜸 벼슬로 왕 주변에서 군대를 통솔하는 관직] 벼슬로 해안을 지킬 무렵 조
난 당한 토머스[1840~1866] 선교사를 구해준 기록이 있을 정도다. 토머스 선교사는 성경 보급을 위해 조선에 왔다가 제너
럴셔먼호 사건으로 순교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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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제너럴셔먼호 사건이란 19세기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는 민, 관을 가리지 않고 눈에 불을 켜고 아시아를 개방시켜
이권을 선점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때였다. 당시 미국의 무장상선 '제너럴 셔먼이 1866년 7월 25일 조선 평안도 용
강현 주영포 앞바다에 도착한 뒤 대동강을 거슬러 평안도의 중심지인 평양부까지 올라와 통상을 요구하며 대포를 쏘고 민
간인을 살해하자, 9월 5일 당시 평안 감사 박규수 휘하의 조선군 부대가 배를 급습하여 불태우고 선원들을 살해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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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박두성 선생 어록
▶맹목적인 교육자는 학생의 육안을 밝히려 하기 전에 자신부터 개안하여 학생들의 심안을 밝혀야 한다.
▶노산 이은상은 송암 박두성 선생을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이라 칭송했고, 선생의 서거 3주기 때 '송암을 추모하며'라
는 추모 시를 썼다. 현재 송암 박두성 선생 동상 뒷면에도 '송암을 추모하며'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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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을 추모하며(노산 이은상)
점자판 구멍마다 피땀 괴인 임의 정성
어두운 가슴마다 광명을 던지셨소.
이 아침 천국에서도 같이 웃으시리라.
남의 불행 건지려고 자기 행복 버리신 임
한숨을 돌이켜서 입마다 노래 소리
그 공덕을 잊으리까
영원한 칭송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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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은 13억 8천만 원을 투입하여 2,244㎡의 부지에 86.4㎡의 박두성 선생의 생가를 복원하고, 흉상, 야외 전시 벽,
녹지공간으로 구성된 기념 공원을 조성하여 2021.11.22. 준공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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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박씨 일가는 강화, 교동지 역 목회자 존스 선교사와 권신일 목사 지도에 따라 신앙 信仰 集姓村[신앙 집성촌]을 이
루기 시작했다. 박두성은 1901년 존스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선생은 강화도 교동도에서 아홉 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선생은 1904년 조선과 대한제국의 군인이자 일제강점기 시기에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동휘가 세운 강화 넓을 보[普] 창성
할 창[昌]을 쓰는 普昌學校[보창학교]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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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창 학교는 본래 육영학원이었으나, 고종에게 "普昌[보창]"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으면서 현재 이름이 되었다. ‘국권 피탈
[한일 합병]‘이 이루어지고 1915년에 보창 학교는 폐교되었으나, 이후 사립 흥천 학교[현 양도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꾼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로 이동휘의 보창 학교는 1904년 9월에 설립된 이준의 보광학교, 1905년 이종호[이용익의 손자]
의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학교와 함께 근대 교육의 三寶[삼보]라고 일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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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맹정음 제작 및 보급 관련 유물 8건 48점과 훈맹정음 점자표 및 해설 원고 유물 7건 14점은 국가 등록문화재 제800-
1호와 제800-2호로 등록되었다. (등록일 : 20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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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888년 4월26일 인천 강화 교동면 상룡리 516번지에서 태어난 송암 박두성 선생은 어려운 가정환경이었지만, 독
립운동가였던 이동휘 선생님이 힘써 주셔서 서울에서 한성 사범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졸업 후 1913년 서울 서대문구 천
연동 제생원 맹아부 교사로 발령받으면서 시각장애인들과의 인연을 맺었다. 이동휘가 그를 아껴 松庵[송암]이라는 호를 내
린 것도 이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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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성 선생님은 이곳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해서 1913년 8월 25일 일본에서 점자 인쇄기를 들여와 우리나라 최초의 점자
교과서를 만들었다. 비록 일본 점자이긴 했지만, 우리나라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비로소 책으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박두성 선생님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드신 과정을 연구하였고, 1926년 8월 드디어 '6 점형 점자'인 한글 점자를 완
성 발표하였다. 일제 치하라서 비밀스럽게 연구하느라 많은 제약이 있었으나 결국 한글 점자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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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 15일은 시각장애인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지정된 '흰 지팡이의 날'이다. 제1,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시
각장애인이 급증하자 미국인 안과의사 리처드 후보(Richard Hoover) 박사는 시각장애인들이 보행할 수 있도록 교육용으
로 제작한 흰 지팡이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흰 지팡이는 동정과 무능의 상징이 아니라 자립과 성취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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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미추홀구 학익동에는 '송암 박두성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은 1999.7.1. 인천광역시 시각장애인 복지관 1층에서 개
관하였고, 2017.11.29. 신축한 '송암 점자 도서관' 3층으로 이전하였다. 또한 2023.6.29. 개관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도
훈맹정음 상설전시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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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만들어진 한글 점자의 이름이 '훈맹정음'이다. 박두성은 “모든 장애에서 이들을 회복시키는 길은 오직 글을 가르쳐 정
서를 순화시키는 길밖에 없다”라며 엄혹한 시기에 한글 점자 보급에 힘써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으로 불리고 있다.
송암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 시기[9월 끝날] 를 양력으로 환산해 11월4일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발표했다. '훈맹정음'
은 '시각장애인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그 이후 훈맹정음이 반포된 11월 4일은 '한글 점자의 날'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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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송암 박두성 선생은 1963.8.25. 인천시 율목동 25 자택에서 숙환으로 서거[향년 75세] 하시고, 인천 남동구 수산
동 산 14 '수산 공설묘지'에 모셔졌다. 현재 송암 박두성 선생의 생가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 516번지에 위치
해 있으며, 송암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미추홀구 한나루로357번길 105-19에 송암 박두성 기념관도 마련돼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선생의 기념관도 한번 둘러 보아야 할것 같다.
생가에서 기념관의 직선거리는 약 50㎞ 정도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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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성 선생 생가 역사공원 찾아가기
*인천 강화군 교동면 교동남로423번길 70
-(구주소)강화군 교동면 상용리 513
*입장료 없음
*주차장 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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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b2345/9toB/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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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여행 가이드
*관광 안내소: 032-932-2302.
*강화군청 문화 관광과: 032-930-3568
*관광 통역안내: 1330(24시간 운영)
*한옥관광 안내소: 032)932-5464
*터미널 안내소: 032)934-5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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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정보는 여기에서 확인 요.
https://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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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8경
#제1경 전등사/. #제2경 보문사/. #제3경 연미정/. #제4경 갑곶돈대/.
#제5경 마니산/. #제6경 광성보/. #제7경 초지진/. #제8경 적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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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성곽길, 강화 나들길 도보 여행 시 유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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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코스를 숙지 후, 시간과 거리를 감안한 자신의 체력에 맞는 여행을 하십시오.
*여러 사람과 함께 여행하며, 위급 시 119나 소리를 내어 주변에 알리도록 합니다.
*해안제방 길에서 밀물과 썰물 및 군사 보호지역 통행시간을 고려하여 여행하십시오.
*해안가 근처에는 폭발물 등의 위험물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강화 나들길 여행시간은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입니다.
*코스 중에는 역사·문화 유적지가 많으니 훼손하지 않도록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행 중에 주민의 사생활 공간을 침해할 수 있으니 조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환경을 위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시고, 쓰레기는 반드시 회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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