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의 뜻 영성 제567차 기도모임
(2023년 10월 1일 – 7일)
- 주간 기도 : 「하느님 뜻의 역사 안에서의 영적 순례」를 기도하시고 기도하십니다.
2. 독서와 묵상
4) 천상의 책 제4권(p79-85)
4권 39장 : 성삼위 하느님의 본성을 이루는 것은
지극히 순수하고 단순하며 서로 나누는 사랑이다
(1900년 12월 03일)
4권 40장 : 하느님 뜻의 거룩함 앞에서는 어떤 격정도 살아남지 못한다
(1900년 12월 23일)
4권 41장 : 예수님의 성탄 광경을 보고 말씀을 듣다
(1900년 12월 25일)
39
1900년 12월 3일
성삼위 하느님의 본성을 이루는 것은
지극히 순수하고 단순하며 서로 나누는 사랑이다
1 아침에 나 자신의 몸 바깥에 나와 있는 동안 아기 예수님을 뵈었는데, 내 팔에 안겨 계셨다. 즐거워하며 그분께 눈길을 모으고 있노라니, 이 아기 예수님께로부터 또 하나의 아기가 나타나고, 조금 있다가 세 번째의 아기가 나타났다. 세 아기들이 서로 구분되면서도 다 같이 아기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었다. 이 광경을 보면서 놀라움에 사로잡힌 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오, 그렇습니다. 이는 바로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지성한 신비를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한 분이시지만 또한 세 분이십니다!”
2 그때, 세 분이 한꺼번에 내게 말씀을 건네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입을 여시자 오직 하나의 음성이 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3 “우리의 본성은 지극히 순수하고 단순하며 서로 나누는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참된 사랑의 본성이 능력과 선성과 아름다움 및 우리가 지닌 다른 모든 것에 있어서 서로 닮은 모습을 우리한테서 낳는 것이다.
4 이와 반대로, 우리의 사랑이 서로 구분되는 특성을 낳는 것은 우리의 전능에 더욱 빼어난 탁월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니, 우리의 이 속성이 사랑 안에 융합하면서 (단순하게, 융합을 가로막는 그 어떤 것도 개재시키지 않고), 그 자체로 셋을 이루고, 다시 융합하면서 셋이 오직 하나가 되게 한다.
5 과연, 참된 사랑의 본성은 그 자신과 완전히 닮을 모습을 낳으며 그가 사랑하는 대상의 모습을 취하는 특성이 있다. 그러니 우리의 제2위인 성자가 인류를 구원하고자 했을 때에 실제로 인간의 본성과 모습을 취하고 그들에게 신성을 주었던 것이다.”
6 그 세 아기들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동안, 나는 사랑하올 예수님을 분명히 식별할 수 있었다. 그분 안에서 인성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오로지 이 예수님 덕분에 그분들 대전에 머무를 수 있는 확신이 생겼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감히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 예수님께서 취하신 인성이 인간에게 통교의 길을 열어 주셨기에, 인간이 신성의 옥좌 앞에까지 올라가서 그분들의 대화 안에 받아들여지며 은총의 칙서를 획득할 수도 있는 것 같았다.
7 오! 그러니 나는 얼마나 복된 순간을 누렸는지! 또한, 얼마나 많은 것을 깨달았는지! 그러나 그 점들에 대해서 좀이라도 기록하려면 내 영혼이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곧 영혼이 육신에서 풀려난 것 같은 때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육신 속에 갇혀 있으니, 이 감옥의 암흑과 멀리 사라진 내 신비로운 태양이신 분을 뵙지 못하는 고통으로 말미암아) 도무지 기록할 수가 없다.
8 그런 것들이 나로 하여금 죽어가는 상태로 살아가게 한다. 이 비참한 육신에 묶이고 갇혀서 임종 중인 듯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9 - 오, 주님, 병든 채 갇혀 있는 이 가련한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께로 날아올라 다시는 돌아오는 일이 없도록, 하루 속히 이 감옥의 벽을 헐어 주소서!
40
1900년 12월 23일
하느님 뜻의 거룩함 앞에서는 어떤 격정도 살아남지 못한다
1 예수님과 나 사이의 기나긴 침묵의 나날을 보내고 나니 내 마음 속이 텅 빈 것 같았다. 오늘 아침, (드디어)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사랑아, 네가 그토록 애타게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니, 대관절 할 말이 무엇이냐?”
2 나는 몹시 당황하면서 이렇게 여쭈었다. “인자하신 예수님, 저는 당신과 당신의 거룩하신 뜻을 열렬히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해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행복하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다.
3 “한마디로 말하자면, 네가 하늘과 땅에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을 청함으로써 모든 것을 움켜잡은 셈이다. 그러니 나도 이 거룩한 뜻 안에서 네 청을 기꺼이 들어주고 싶다. 나의 뜻이 네게 더욱 감미로운 것이 되게 하려면 이 뜻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서 그것의 여러 특성들을 찬미하여라. 어떤 때는 그 거룩함 안에, 어떤 때는 그 선성 안에, 어떤 때는 그 겸손 안에, 어떤 때는 그 아름다움 안에, 또 어떤 때는 이 뜻이 낳는 평온한 끈기 안에 멈춰 서곤 하면서 말이다. 이와 같이 네가 멈춰설 때마다 내 거룩한 뜻에 관하여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새 지식을 얻을 것이고, 단단히 사로잡힐 만큼 매료되어 다시는 이 뜻을 떠나지 않게 될 것이다.
4 이것이 너에게 크나큰 유익을 안겨 줄 것이다. 내 뜻 안에서는 언제나 무장이 되어 있는 셈이기에 너의 격정들과 싸울 필요조차 없을 테니 말이다. (무릇, 격정들이란 죽어가고 있는 것 같다가도 다시 전보다 더 강력하고 사납게 용솟음치기 마련이지만, 네가 내 뜻 안에 있으면) 사실 아무런 싸움이나 소요 사태가 없어도 조용히 죽기 마련이다. 내 뜻의 거룩함 앞에 감히 나타날 수 없기에 저절로 생명을 잃고 마는 것이다.
5 그러니 영혼이 격정의 동요를 감지하는 것은 그가 내 뜻의 범위 안에서 끊임없이 살고 있지는 않다는 표지이다. 때때로 그 자신의 뜻 안으로 잠시 도망치곤 하기에 부패한 본성의 악취를 풍기지 않을 수 없어지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네가 언제나 확고하게 나의 뜻 안에 머물러 있으면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질 터이니, 나를 사랑하고 그 보답으로 내 사랑을 받는 일만 하면 될 뿐이다.”
6 그 뒤 복되신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고 계신 것을 본 나는 그분의 머리에서 그것을 천천히 벗겨 내 머리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가시가 완전히 박히도록 눌러쓰고 나자 그분께서 사라지셨고 나는 내 몸 속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 안에 머물러 있고 싶은, 간절한 열망과 함께.
41
1900년 12월 25일
예수님의 성탄 광경을 보고 말씀을 듣다.
1 평소와 같은 상태로 있다가 나 자신의 몸 바깥에 나와 있는 것을 알고, 이리저리 좀 돌아다녔다. 나중에 어느 동굴에 이르러 여왕이신 어머니께서 아기 예수님을 낳으시는 것을 보게 되었다. 얼마나 굉장한 기적인지! 어머니와 아드님 두 분 다 지극히 순수한 빛에 휩싸여 그 빛으로 변화되신 것처럼 보였다.
2 그 빛 속에서 나는 분명히 예수님의 인성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인성 안에 신성이 내포되어 있었다. 인성이 마치 막처럼 신성을 감싸고 있어서 이 막을 찢으면 인간이라는 막에 싸이신 하느님을 뵐 수 있을 것이었다. 오, 이는 얼마나 기적 중의 기적인가! 하느님이며 사람이신 분, 사람이며 하느님이신 분께서 성부와 성령을 떠나시지 않은 채 (왜냐하면, 그분의 사랑은 절대로 그분들과 갈라지게 하지 않으니까), 인간의 혈육을 취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오셨으니 말이다!
3 그런데, 그 복된 순간에 어머니와 아드님은 이를테면 영화(靈化)되신 것 같았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의 태중에서 나오신 것은 두 분 다 아무런 장애도 받으심 없이 흘러넘치는 극도의 사랑 속에 계실 때였다. 달리 말하자면, 지극히 거룩하신 두 분의 몸이 빛으로 변화되셨기 때문에, 어떤 방해도 받음 없이, 또 두 분 다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은 온전한 상태로, 빛이신 예수님께서 빛이신 어머니 안에서 나오셨으며, 그 후에 자연적인 상태로 돌아가신 것이다.
4 비록 베들레헴의 외딴 (동굴) 속이었지만, 그 복된 순간, 신성의 빛에 잠기신 아기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이 신적인 빛살 안에 온전히 빨려드신 어머니의 아름다움을, 대체 누가 묘사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성 요셉은 그 탄생의 자리가 아니라 동굴의 다른 쪽에서 그 심오한 신비에 온통 빨려든 것 같았다. 육안으로 이를 보지 못했지만 영안으로는 분명히 보았기에, 숭고한 황홀경에 잠겨 있는 것이었다.
5 아기께서 탄생하신 순간, 나는 그분께로 날아가 팔에 안고 싶었다. 그러나 천사들이 이를 만류하면서 가장 먼저 그분을 안는 영광은 어머니께 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 때, 몸을 떠는 듯 하시며 황홀경에 깨어난 어머니께서 천사의 손에서 아드님을 받아 안으셨다. 그리고 뜨거운 사랑으로 어찌나 꼭 껴안으시는지 마치 아드님을 당신 태중에 도로 넣으시려는 것 같았다. 그런 다음, 불타는 사랑을 주시려고 그분을 가슴에 안고 젖을 물리시는 것이었다.
6 그 사이 나는 완전히 압도된 채, 천사들의 꾸중을 또다시 듣지 않으려고, 불러 주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여왕님께서 내게, “오너라. 와서 네가 사랑하는 분을 안아라. 너도 그분을 누리며 네 사랑을 나타내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어머니께로 다가가니 그분을 내 팔에 안겨 주셨는데, (그 순간의) 내 행복과 입맞춤과 포옹과 애정을 어떻게 다 말할지 모르겠다.
7 나는 그렇게 내 사랑을 좀 표현한 후에 그분께 이렇게 여쭈었다. “제 사랑이시여, 당신께서는 우리 어머니의 젖을 빠셨으니, 제게도 조금 나누어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8 그러자 그분께서는 친절하게도 당신 입에서 내 입으로 그 젖의 일부를 흘려 넣어 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사랑아, 나는 고통과 함께 잉태되었고 고통에로 태어났으며 고통 중에 죽었다. 나는 저들이 나를 못박은 세 개의 못을 써서 나를 사랑하기를 갈망하는 영혼들의 세 가지 능력을 곧 지성과 기억과 의지를 십자가에 못박으면서 그들 모두를 내게로 끌어당겼다. 죄가 거리낌없이 그들을 나약하게 만들고 그들의 창조주로부터 멀리 흩어지게 했기 때문이다.”
9 그분은 이 말씀을 하시면서 세상을 둘러보시고 그 비참 때문에 소리내어 울기 시작하셨다. 나는 그분의 우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씀 드렸다. “사랑하올 아기시여, 이토록 기쁜 밤에,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당신 눈물로 슬프게 하시지 마십시오. 눈물 대신 우리 함께 노래를 시작하십시다.”
10 그러면서 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그분은 울음을 그치셨다. 그리고 내가 첫 구절을 다 부르자 그분은 다음 구절을 부르셨는데, 어찌나 낭랑하고 아름다운 음성인지 그렇듯 감미로운 음성 앞에서 우리의 모든 소리는 깡그리 사라지는 것이었다.
11 그 후에 나는 아기 예수님께 고해사제를 위하여, 내 친척들을 위하여, 마침내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를 바쳤다. 그분은 무슨 청이나 다 들어 주실 듯 양순해 보이셨다. 내가 그렇게 기도하고 하는 동안 그분은 사라지셨고, 나도 내 몸 속에 돌아와 있었다.
※잠시 묵상 후나눔의 댓글을 꼭 남겨주시기바랍니다.기도와 묵상을 함께 동참하여 나누고,출석의 표식이며,미사 봉헌의 은총을 받으시게됩니다.
- 직접 모여서 기도 모임을 할 때 천상의 책을 읽고 묵상하며 간단하게 나눔의 시간을 가지는 곳은 이곳입니다. 다른 곳(수난의 시간들, 동정마리아, 영적 순례)에서는 느낌을 나눌 때도 있지만 시간이 없으므로 기도와 읽기만 하고 다음 책으로 넘어갑니다. 온라인에서는 혼자서 기도를 하니 수난의 시간들, 동정마리아, 영적 순례를 읽고 묵상 후 느낌을 댓글로 적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가 나눔을 하는 ‘천상의 책’에서는 댓글을 꼭 남겨 나눔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다른 곳에 댓글을 남기신 기도모임 회원께서는 ‘천상의 책’에서 다시 댓글을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댓글을 남기신 것으로 출석의 표식과 미사 봉헌의 은총을 받으시는 것은 같습니다.
-댓글 쓰시기가 어려우신 분은 지금 읽으신 곳에서 마음에 드신 구절을 적으셔도 됩니다.
-공지에 있는 모임의 끝맺음-마침기도로 가시어 마침기도를 하시면 되겠습니다.
첫댓글 "4-40,5 그러니 영혼이 격정의 동요를 감지하는 것은 그가 내 뜻의 범위 안에서 끊임없이 살고 있지는 않다는 표지이다. 때때로 그 자신의 뜻 안으로 잠시 도망치곤 하기에 부패한 본성의 악취를 풍기지 않을 수 없어지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네가 언제나 확고하게 나의 뜻 안에 머물러 있으면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질 터이니, 나를 사랑하고 그 보답으로 내 사랑을 받는 일만 하면 될 뿐이다.”
우리들의 격정을 없애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언제나 고요한 하느님의 평화 속에 머물러 있으면 격정이 날뛸 수가 없어지니, 우리들은 언제나 확고하게 예수님의 뜻 안에 머물러 있으면 평화를 누릴 수 있으니 이러한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뜻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생활을 하게 되기를 봉헌합니다.
6 그 뒤 복되신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고 계신 것을 본 나는 그분의 머리에서 그것을 천천히 벗겨 내 머리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가시가 완전히 박히도록 눌러쓰고 나자 그분께서 사라지셨고 나는 내 몸 속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 안에 머물러 있고 싶은, 간절한 열망과 함께.
하느님 뜻 안에서,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신 고통을,십자가를 통하여 받으신 고통들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을 묵상하면서 더 깊게 느끼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를 통하여 에수님께 저희들을 새롭게 봉헌합니다.
하느님께 사랑과 흠숭,찬미와 감사,기쁨과 영광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