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대 두 남자 외 1편
조철형
검은색 잠바를 입은 두 남자
검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허공을 쳐다본다
다소곳한 남자가 지구대 바닥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통장에 얼마 있었나요
검은색 잠바를 입은 남자2 쭈그리며
구십만 육천 원이요
검은색 잠바를 입은 남1 애원하듯이
내 돈 구십만 원이 인출되었어요
이번 달 결제할 돈입니다
바로 돌려주세요
월급을 타야 갚을 수 있어요
죄송한 남자가 낮아서 더 죄송한 지구대 바닥에
최대한 엎드린 채 머리로 구멍을 뚫고 있다
바닥을 자꾸 파느라 머리가 작아지는 남자
월급을 타야 돌려줄 수 있다고 말하는 남자
당장 돌려주어도 처벌을 받는데 못 돌려주나요
이를 치료하느라 다 써버리고 없어요
점점 작아진 남자가 지구대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지구를 두 바퀴 돌고 온 듯 남자가
한숨 크게 쉬며
순찰차 안으로 한쪽 발을 집어넣는 햇살 맑은 날
거리는 지구 반대로 무작정 달려가는
남자들이 있다
이름이 뭡니까
안 알려준다고요, 그냥 교도소에 보내줘요
이름을 대야 좀 알아보고 보내든가 하지요
아― 아 쓰레기요, 내 이름은 쓰레기예요
내가 ○○철이한테 갈게요, 아, 짜증나
길에 위험하게 누워 있어서 그래요
아, 그냥 죽을래요
죽는 건 당신 맘이지만 우리가 보았으니까 안 돼요
우리는 당신을 지켜야 해요
아 그냥 교도소 보내주라니까요
이름을 대야 보내든가 하지요, 죄진 거 있어요
쓰레긴데 뭐가 필요해요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교도소 보내주든가
그러지 말고 이름 대보세요, 왜 짜증을 내는지 말해보세요
아, 몰라요 그냥 날 죽여줘요
죽는다고 자꾸 그러니까 우리가 야간근무 하는 게 힘들잖아요
자꾸 그러면 정말 우리가 피곤해요
당신도 살고 우리도 제발 같이 살자고요, 응?
나도 예전에 야간 일을 좀 해봐서 힘든지 알아요
아, X나게 죽고 싶어요
아, X발! 대한민국(大寒民國)이 정말 싫다고요
이름이 뭐예요
안 알려준다니까요! 그냥 쓰레기라고 불러요
아, 수갑 좀 풀어줘요 죽겠어요
이름 알려주면 수갑 풀어줄게요
아, 제발 풀어줘요 X발!
묻지 말고 그냥 풀어줘요
3분만 풀어주면 나가서 바로 죽을게요
― 조철형 시집, 『스포르찬도 클릭』 (도서출판천우/2020)
조철형
충북 제천 출생. 충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와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창조대학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2011년 월간 《문학세계》 신인상(시)으로 등단. 2012년 제8회 한국농촌문학상 수상 등. (사)한국문인협회 시흥지부장 역임. 시집 『그리움도 때론 푸드덕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