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강을 닦는 사람
조만식 선생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독립운동가였으며 또한 민족의 지도자로서 ‘한국의 간디’라 불리던 사람입니다.
그는 청년 시절에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였다고 합니다. 집안이 가난해서 머슴살이를 하였지만,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열심히 일을 했다고 합니다. 매일같이 주인이 요강을 깨끗이 닦아놓는 일부터 시작해서 하루 온종일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이 머슴의 자세를 보고 주인은 이 청년이 머슴살이를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서 학자금을 대주어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숭실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오산학교의 교장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그는 항상 제자들이 인생의 성공 비결을 물을 때마다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거든 요강을 닦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일러주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성심성의껏 하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조만식 선생의 검소한 생활은 보통 사람들이 흉내를 내기도 힘들 정도였습니다. 선생은 언제나 무명 두루마기를 입었습니다. 그 두루마기의 긴 고름은 낭비에 속하는 일이라고 단추로 대신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모자도 대를 이어 쓸 수 있도록 말총으로 만들어서 썼습니다.
오산고등보통학교의 교장으로 있을 때 학교의 특별한 행사인 입학식이나 졸업식에도 서양 예복인 코닝코트를 입지 않았습니다. 어느 해의 졸업식 때 있었던 일입니다. 설립자인 남강 이승훈 선생은 조만식 선생의 초라한 모습을 내빈들에게 보이게 되는 것이 거북하다고 생각되어 “교장선생님, 평상시에는 괜찮지만 졸업식 때만이라도 예복을 입어 주십시오.” 하고 권유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조만식 선생은 “아니, 없는 예복을 어떻게 입겠습니까? 교장 노릇을 못하면 못했지 예복은 입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고집을 끝끝내 꺾지 않았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그의 아들이 항상 신고 싶어했던 구두를 아버지 몰래 맞춰 신었습니다. 그런데 조만식 선생이 이것을 알았습니다. “네가 구두를 맞춰 신고 다니는 모양인데 그 구두 좀 보자. 이리 가져오너라.” 하고 명령했습니다. 아들은 언젠가는 벼락이 떨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던 일이 드디어 닥친 것입니다. 겁을 먹은 아들이 구두를 가져오자 조만식 선생은 가위로 싹둑싹둑 자르고 나서, “우리 신분에 맞지 않는 사치는 용서할 수 없다.” 하고 엄하게 꾸중을 했던 것입니다.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