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8장 9 - 17절
9. ○내가 이 모든 것들을 보고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마음에 두고 살핀즉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는 때가 있도다
10. 그런 후에 내가 본즉 악인들은 장사지낸 바 되어 거룩한 곳을 떠나 그들이 그렇게 행한 성읍 안에서 잊어버린 바 되었으니 이것도 헛되도다
11.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12. 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또한 내가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13.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
14.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15.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16.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을 보았는데 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17.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18세기에 영국에서 Deism(디이이즘)이라는 사상이 대두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표현을 하면 이신론, 자연신론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 사상은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서 그 이후로는 자연법칙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엽 시계에 태엽을 감아주면 시계가 알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우주만물이 그런 식으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냐면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모습과 하나님의 실제적인 모습에 적지 않은 괴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절 말씀에 보면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악인이 악한 일을 했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의인이 의로운 일을 했으면 그에 합당한 상을 받아야 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보면 100% 이런 원리가 적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사회적인 구조가 악한 사람이 더 부요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런 생각이 지나치게 되면 11절 말씀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악한 일을 행한 사람들이 즉각적인 심판을 받게 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악을 행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게 될 것인데 즉각적인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니까 어리석은 사람들 생각에는 ‘악을 행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악을 행하는 데에 더욱 담대해 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겠다는 각오와 결단을 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면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하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을 할 텐데 하나님께서 참고 인내하시면서 우리 스스로가 깨닫고 바르게 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시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아도 큰 손해가 없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고는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내 뜻대로 살아가는데 더욱 담대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르는 한 가지가 뭐냐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리시고 그에 합당한 상을 기억하셨다가 주신다는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악인은 잘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무한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솔로몬도 17절에 보면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라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하나님께서 두 손을 놓고 계신 것 같지만 하나님의 때가 있고 계획이 있고 섭리가 있기 때문에 믿고 신뢰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마땅한 본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신부님이 하루는 설교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설교의 주제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나서 확인해 보니까 마을의 댐이 무너져서 하천이 범람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밖에 나가보니 물이 점점 불어나고 있었는데 이 신부님은 이번 주 말씀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주제인데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오묘하신가를 직접 경험해 보라고 이런 일을 허락해 주신 것이라고 확신을 했습니다. 그래서 도망치지 않고 지붕 위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섭리를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참 후에 보트 한 대가 와서 지붕 위에 있는 신부님을 태우려고 했더니 이 신부님이 거절을 했습니다. “나를 구원해 주실 하나님의 섭리를 나는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그 후에도 두 대의 보트가 더 왔지만 신부는 계속 거절을 하면서 배에 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신부님은 물이 더 불어나서 익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천국에 올라간 신부는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당신의 섭리에 내 생명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왜 구조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은 “무슨 소리냐. 나를 너를 구조하기 위해서 세 번씩이나 보트를 보냈지 않느냐?”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혜롭다고 해도 하나님의 모든 섭리를 다 깨달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선하심, 인자하심, 공의로우심, 사랑하심을 의심하게 되면 우리도 죄에 대해서, 악에 대해서 담대해 지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33절 말씀에 보면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나타날 때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의심을 하고 불평과 원망을 하면서 살게 되면 우리의 인생은 헛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기 시작을 하면 끝이 없는 것이고, 반대로 하나님에 대해서 믿기 시작하면 못 믿을 것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섭리를 다 알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부터 버려야 하고 우리가 이해 못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나더라도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면서 살아가는 좋은 영적 습관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습관이 우리 몸에 배어 있을 때 우리는 헛된 인생이 아닌 가치 있고, 유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섭리대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시고 이해 못할 섭리가 있더라도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