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程子曰 知命者 知有命而信之也 人不知命 則見害必避 見利必趨 何以爲君子 정자가 말하길, “천명을 안다는 것은 천명이 있음을 알고서 그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사람이 천명을 알지 못하면, 곧 해로움을 보면 반드시 피하게 되고, 이로움을 보면 반드시 쫓아가는데, 무엇으로써 군자가 될 수 있는가?”라고 하였다.
朱子曰 此與五十知天命不同 知天命謂知其理之所自來 此不知命是說死生壽夭貧富貴賤之命 今人開口亦解說 一飮一啄 自有分定 及遇小小利害 便生趨避計較之心 古人刀鋸在前 鼎鑊在後 視之如無者 只緣見道理 都不見那刀鋸鼎鑊 주자가 말하길, “이것은 ‘나이 오십이면 천명을 안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知天命은 그 이치가 말미암아 오는 곳을 아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천명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생사, 장수와 요절, 빈부, 귀천의 천명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입만 열면, 역시 물 한 모금과 음식 한 점이라도 저절로 분수에 정해진 바가 있다고 해설하지만, 소소한 이해를 만남에 이르러서는 곧바로 쫒거나 피하며 따지려는 마음이 생겨버린다. 옛사람은 칼과 톱이 앞에 있고, 가마솥이 뒤에 있더라도, 그것들 보기를 마치 없는 것처럼 하였는데, 오직 이치만 보았을 뿐, 저 칼과 톱과 가마솥은 모조리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論語首云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終云 無以爲君子也 此深有意 蓋學者所以學爲君子 若不知命 則做君子不成 논어는 처음에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를 말하고서, 마지막에 ‘군자가 될 수 없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대체로 배운다는 것은 군자가 되는 것을 배우기 위함이다. 만약 천명을 알지 못한다면, 군자가 되는 것도 이룰 수 없다.
胡氏曰 一定而不可易者 命也 人不知命 常求其所不可得 避其所不可免 斯所以徒喪所守而爲小人也 호씨가 말하길, “한번 정해지면 바뀔 수 없는 것이 천명이다. 사람이 천명을 알지 못하고서, 자기가 얻을 수 없는 것을 구하고, 자신이 모면할 수 없는 것을 피하려 하는데, 이것이 바로 지키는 바를 헛되이 잃고서 소인이 되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此命指氣而言 謂貧賤富貴窮達得喪 一定不可易者 必知此而信之 始見利不苟就 見害不苟避 故全得我之義理 所以爲君子 경원보씨가 말하길, “여기서의 命은 氣를 가리켜 말한 것인데, 빈천과 부귀, 막히고 통함과 得喪 등 한번 정해지면 바꾸지 못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반드시 이것을 알고 또 그것을 믿어야만, 비로소 이끗을 보아도 구차하게 나아가지 않고, 해로움을 보아도 구차하게 피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의 의리를 온전히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군자가 되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程子釋朝聞道謂知而信者爲難 此亦謂知而信之者 知而不信 知之猶未至也 知之猶未至 則凡見利必趨 見害必避 皆小人之爲也 欲爲君子 得乎 首篇 不亦君子乎 是已到君子地位 此曰無以爲君子也 是方做君子根脚 운봉호씨가 말하길, “정자는 朝聞道를 풀이하면서 알고서 믿는 것은 어렵다고 말하였다. 여기서는 또한 알고서 그것을 믿는 것을 말하였는데, 알면서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을 알기는 하지만 그래도 미처 지극하지 못한 것이다. 알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극하지 못하다면, 무릇 이끗을 보면 반드시 쫓아갈 것이고, 해로움을 보면 반드시 피하려 할 것이니, 이는 모두 소인이 하는 바이다. 그러니 군자가 되고자 한들 그게 되겠는가? 첫편의 ‘또한 군자가 아닌가’의 경우는 이미 군자의 경지에 이른 것이고, 여기서 ‘군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 경우는, 바야흐로 군자의 뿌리와 다리 정도는 된다.”라고 하였다.
不知禮 無以立也 예의를 알지 못하면 설 수가 없으며,
不知禮 則耳目無所加 手足無所措 예를 알지 못하면, 곧 귀와 눈을 더할 곳이 없고, 손과 발을 놓을 곳이 없다. 雲峯胡氏曰 集註十字 是形容無以立三字 耳目無所加 是懵然不知有可立之地 手足無所措 是茫然卒無可立之地 운봉호씨가 말하길, “집주에서 10글자는 無以立이라는 세 글자를 형용한 것이다. 귀와 눈을 더할 곳이 없다는 말은 어리석어 설 수 있는 땅이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고, 손과 발을 둘 곳이 없다는 말은 아득하여 끝내 설 수 있는 땅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不知言 無以知人也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라고 하셨다.
言之得失 可以知人之邪正 말의 득실로 사람의 간사함과 올바름을 알 수 있다.
慶源輔氏曰 言 心聲也 因言之得失 可以知人之邪正 惟格物窮理之君子能之 경원보씨가 말하길, “말은 마음의 소리다. 말의 득실로 말미암아 사람의 간사함과 올바름을 알 수 있는데, 오직 格物과 窮理를 한 군자만이 해낼 수 있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孟子知言之謂 蓋本於此 但集註釋孟子知言 則曰凡天下之言 識其是非得失之所以然 而此不過曰無以知人之邪正 此爲學者言 彼則孟子自言也 於此亦見集註之精 운봉호씨가 말하길, “맹자가 말을 안다고 말한 것은 대체로 여기에 뿌리는 두었을 것이다. 다만 집주는 맹자가 말을 안다고 한 것을 풀이하면서는, 모든 천하의 말에 대하여 그 시비와 득실이 그러한 까닭을 알 수 있다고 말하였고, 여기에서는 그저 사람의 간사함과 올바름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 것에 불과하였다. 여기서는 배우는 자를 위해서 말하였고, 저기서는 맹자가 스스로를 말한 것이니, 여기서 또한 집주의 정교함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하였다.
○ 尹氏曰 知斯三者 則君子之事 備矣 弟子記此以終篇 得無意乎 學者少而讀之 老而不知一言爲可用 不幾於侮聖言者乎 夫子之罪人也 可不念哉 윤씨가 말하길, “이 세 가지를 안다면, 곧 군자의 일이 갖추어진 것이다. 제자들이 이것을 기록한 것으로써 편을 끝마쳤는데, 어떤 뜻도 없을 수 있겠는가? 배우는 사람이 젊어서 그것을 읽었으면서도, 늙어서 한 마디 말도 쓸 만한 것으로 삼을 줄 모른다면, 거의 성인의 말씀을 모욕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공자의 죄인인 것이니, 깊이 생각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此所論命 謂窮達得喪之有命也 不知命 則將徼倖而苟求 何以爲君子乎 知命 則志定然後 其所當爲者 可得而爲矣 禮者 所以檢身也 不知禮 則視聽言動 無所持守 其將何以立乎 知禮 則有踐履之實矣 知言 如吉人之辭寡躁人之辭多之類 不知言 則無以知其實情之所存 其將何以知人乎 故知言 則取友不差矣 此三者 學者之所宜先切要之務也 必以是爲本而後 學可進 不然雖務於窮高極遠而終無所益 門人以此終論語之書 豈無旨哉 남헌장씨가 말하길, “여기서 논한 천명이란 벼슬길에 막힘과 이름과 얻고 잃음에는 천명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천명을 알지 못한다면, 장차 요행을 바라면서 구차하게 추구할 것인데, 무엇으로 군자가 될 수 있겠는가? 천명을 안다면, 뜻이 정해진 연후에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禮라는 것은 제 몸을 검속하는 것이니, 예를 알지 못한다면,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함에 있어 붙잡아 지키는 바가 없을 것이니, 장차 무엇으로 설 수 있겠는가? 禮를 안다면, 실천하고 이행하는 실질이 있는 것이다. 말을 안다는 것은 마치 길한 사람의 말은 적고 조급한 사람의 말은 많다는 것과 같은 부류다. 말을 알지 못한다면, 그 實情이 보존된 바를 알 수가 없으니, 그는 장차 무엇으로 사람을 알겠는가? 그래서 말을 안다면, 친구를 취함에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배우는 자가 마땅히 먼저 절실히 힘써야 할 곳이다. 반드시 이것을 근본으로 삼은 연후에 배움이 진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극히 고원한 것에 힘쓸지라도, 끝내 유익한 바가 없을 것이다. 門人들이 이것으로써 논어라는 책을 끝맺음 한 것에, 어찌 아무런 뜻이 없겠는가?”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知命 知其在天者 知禮 知其在己者 知言 知其在人者 知天 則利害不能動乎外而後 可以修諸己 知禮 則義理有以養乎內而後 可以察諸人 知天而不知己 未必能安乎天 知己而不知人 未必能益乎己 면재황씨가 말하길, “천명을 아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을 안다는 것이고, 禮를 아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안다는 것이며, 말을 아는 것은 남에게 있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하늘을 안다면, 이해가 外物에 의해 능히 움직이지 못하게 된 연후에 그것을 내게서 닦을 수 있고, 禮를 안다면, 義理가 안에서 길러질 수 있게 된 연후에 그것을 남에게서 살필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은 알지만 자신을 알지 못하면, 반드시 하늘에 편안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자신은 알지만 남을 알지 못하면, 반드시 자기에게 보탬이 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知命 則在我者有定見 知禮 則在我者有定守 知言 則在人者無遁情 知斯三者 則內足成己之德 外足盡人之情 故君子之事備 경원보씨가 말하길, “명을 안다면 내 안에 있는 것에 정해진 견해가 생길 것이고, 禮를 안다면, 내안에 있는 것에 정해진 지킴이 생길 것이며, 말을 안다면, 남에게 있는 것이 實情에서 달아남이 없게 될 것이다. 이 세 가지를 다 안다면, 안으로는 족히 자신의 덕을 이룰 수 있고, 밖으로는 족히 남의 실정을 전부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군자의 일이 다 갖추어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學始於致知 終於治國平天下 前篇之末 與此篇前二章 皆說治國平天下 聖學之終事 此章復提起三知字 是聖學之始事 知其三者而爲君子 則聖學之體立 遇時而用之 則聖學之用行 弟子記此以終一書 不無意矣 운봉호씨가 말하길, “배움은 格物致知에서 시작하고, 治國平天下에서 끝난다. 전편의 끝 부분과 이 편의 앞 2장에서는 모두 治國平天下를 말하였는데, 이는 聖學에서 제일 마지막의 일이다. 이 장에서는 다시 세 개의 知자를 제기하였는데, 이는 성학의 제일 처음의 일이다. 이 3가지를 알아서 군자가 된다면, 성학의 體가 세워지고, 때를 만나 그것을 쓰게 되면, 성학의 用이 행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제자들이 이것을 기록함으로써 이 책 한 권을 끝맺음 한 것에, 아무런 뜻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覺軒蔡氏曰 論語首章末以君子言 末章首以君子言 聖人敎人 期至於君子而已 詳味兩章語意實相表裏 學者其合而觀之 각헌채씨가 말하길, “논어의 첫 장의 끝에서 군자로써 말하였고, 끝 장의 처음에서 군자로써 말하였으니, 성인께서 사람을 가르침에 있어, 그가 군자에 이르기를 기대할 따름이었던 것이다. 두 장의 말뜻을 상세하게 음미해본다면, 실제로 서로 표리를 이루고 있으니, 배우는 자는 그것을 합하여 살펴보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論語一書 夫子以君子敎人者 多矣 首末兩章 皆以君子言之 記者之深意 夫子嘗自謂 不怨天 不尤人 人不知而不慍 不尤人也 知命 則不怨天且樂天矣 學者其深玩潛心焉 신안진씨가 말하길, “논어라는 한 권의 책에는 공자께서 군자로써 사람들을 가르친 것이 많다. 처음과 끝의 두 장은 모두 군자로써 말한 것이니, 이는 기록한 사람의 깊은 뜻이다. 공자께서는 일찍이 스스로 말씀하시길,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 것이 바로 남을 탓하지 않는 것이다. 천명을 안다면,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또한 하늘을 즐거워할 것이다. 배우는 자는 거기에 깊이 음미하고 마음을 집중시켜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