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東京)-이상
분야: 어문 > 소설 > 중·단편소설
저작자: 이상
원문 제공: 한국저작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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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던 마루노치 빌딩(속칭 ‘마루비루’)은 적어도 이 ‘마루비루’의 네 갑절은 되는 굉장한 것이었다. 뉴욕 브로드웨이에 가서도 나는 똑같은 환멸을 당할는지. 어쨌든 ‘이 도시는 몹시 가솔린 내가 나는구나!’가 동경의 첫인상이다.
우리같이 폐가 칠칠치 못한 인간은 우선 이 도시에 살 자격이 없다. 입을 다물어도 벌려도 척 가솔린 내가 침투되어 버렸으니 무슨 음식이고 간에 얼마간의 가솔린 맛을 면할 수 없다. 그러면 동경 시민의 체취는 자동차와 비슷해 가리로다.
이 ‘마루노치’라는 빌딩 동리에는 빌딩 외에 주민이 없다. 자동차가 구두 노릇을 한다. 도보하는 사람이라고는 세기말과 현대 자본주의를 비예(睥睨)하는 거룩한 철학인, 그 외에는 하다못해 자동차라도 신고 드나든다.
그런데 내가 어림없이 이 동리를 5분 동안이나 걸었다. 그러면 나도 현명하게 택시를 잡아타는 수밖에. 나는 택시 속에서 20세기라는 제목을 연구했다. 창밖은 지금 궁성(宮城) 호리 곁, 무수한 자동차가 영영(營營)히 20세기를 유지하느라고 야단들이다. 19세기 쉬적지근한 냄새가 썩 많이 나는 내 도덕성은 어째서 저렇게 자동차가 많은가를 이해할 수 없으니까 결국은 대단히 점잖은 것이렷다.
신주쿠(新宿[신숙])는 신주쿠다운 성격이 있다. 박빙(薄氷)을 밟는 듯한 사치. 우리는 프랑스 야시키에서 미리 우유를 섞어 가져온 커피를 한잔 먹고 그리고 10전씩을 치를 때 어쩐지 9전 5리보다 5리가 더 많은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에루테루ERUTERU’(동경 시민은 불란서를 ‘HURANSU’라고쓴다)는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연애를 한 사람의 이름이라고 나는 기억하는데 ‘에루테루’는 조금도 슬프지않다. 신주쿠(귀화(鬼火) 같은 이 번영(繁榮) 3정목(丁目)) 저편에는 판장(板墻)과 팔리지 않는 지대(地岱)와 오줌 누지 말라는 게시가 있고 또 집들도 물론 있겠지요.
C군은 우선 졸려 죽겠다는 나를 치쿠지(築地[축지]) 소극장으로 안내한다. 극장은 지금 놀고 있다. 가지가지 포스터를 붙인 이 일본 신극운동의 본거지가 내 눈에는 서투른 설계의 끽다점 같았다. 그러나 서푼짜리 영화는 놓치는 한이 있어도 이 소극장만은 때때로 참관하였으니 나도 연극 애호가 중으로는 고급이다.
‘인생보다는 연극이 재미있다’는 C군과 반대로 H군은 회의파다.
아파트의 H군의 방이 겨울에는 16원, 여름에는 14원, 춘추로 15원, 이렇게 산 비둘기처럼 변하는 회계에 대하여 그는 회의와 조소가 깊고 크다. 나는 건망증이 좀 심하므로 그렇게 계절을 따라 재주를 부리지 않는 방을 원하였더니 시골사람으로 이렇게 먼 데를 혼자 찾아온 것을 보니 당신은 역시 재주가 많은 사람이라고 조주(女中[여중]) 양이 나를 위로한다. 나는 그의 코 왼편 언덕에 달린 사마귀가 역시 당신의 행복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위로해 주고 나서 후지(富士[부사]) 산을 한번 똑똑히 보았으면 원이 없겠다고 부언해 두었다.
이튿날 아침 7시에 지진이 있었다. 나는 들창을 열고 흔들리는 대동경을 내다보니까 빛이 노랗다. 그 저편 잘 개인 하늘 소꿉장난 과자같이 가련한 후지 산이 반백의 머리를 내놓은 것을 보라고 조주 양이 나를 격려했다.
긴자(鋃座[은좌])는 한 개 그냥 허영독본(虛榮讀本)이다. 여기를 걷지 않으면 투표권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여자들이 새 구두를 사면 자동차를 타기 전에 먼저 긴자의 보도를 디디고 와야 한다.
낮의 긴자는 밤의 긴자를 위한 해골이기 때문에 적잖이 추하다. ‘살롱하루’ 굽이치는 네온사인을 구성하는 부지깽이 같은 철골들의 얼크러진 모양은 밤새고 난 여급의 퍼머넌트 웨이브처럼 남루하다. 그러나 경시청에서 ‘길바닥에 침을 뱉지 말라’고 광고판을 써 늘어놓았으므로 나는 침을 뱉을 수는 없다.
긴자 8정목이 내 측량에 의하면 두 자 가웃쯤 될는지! 왜? 적염난발(赤染亂髮)의 모던 영양(令孃)한 분을 30분 동안에 두 번 반이나 만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영양은 지금 영양 하루 중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소화하시려 나오신 모양인데 나의 이 건조무미한 프롬나드는 일종 반추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교바시(京橋[경교]) 곁 지하 공동변소에서 간단한 배설을 하면서 동경갔다 왔다고 그렇게나 자랑을 하던 여러 친구들의 이름을 한번 암송해 보았다.
시와스(走師[주사])─ 섣달 대목이란 뜻이리라, 긴자 거리 모퉁이 모퉁이의 구세군 사회 냄비가 보병총처럼 걸려 있다. 1전, 1전만 있으면 가스로 밥 한 냄비를 끓일수 있다. 이렇게 귀중한 1전을 이 사회 냄비에 던질 수는 없다. 고맙다는 소리는 1전어치 가스만큼 우리 인생을 비익(裨益)하지 않을 뿐 아니라 때로는 신선한 산책을 불쾌하게 하는 수도 있으니 ‘보이’와 ‘걸’이 자선 쪽박을 백안시하는 것도 또한 무도(無道)가 아니리라. 묘령의 낭자 구세군, 얼굴에 여드름이 좀 난 것이 흠이지 청춘다운 매력이 횡일(橫溢)하니 ‘폐경기 이후에 입영하여도 그리 늦지는 않을걸요’ 하고 간곡히 그의 전향을 권설(勸說)하고도 싶었다
미쓰코시(三越[삼월]), 마츠자카야(松板屋[송판옥]), 이토야(伊東屋[이동옥]), 시로키야(白木屋[백목옥]), 마츠야(松屋[송옥]), 이 7층집들이 요새는 밤에 자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속에 들어가면 안 된다.
왜? 속은 7층이 아니오 한 층인데다가 산적한 상품과 무성한 숍걸 때문에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
특가품, 격안품(格安品), 할인품, 어느 것을 고를까. 그러나저러나 이 술어들은 자전에도 없다. 그러면 특가·격안·할인품보다 더 싼것은 없다. 과연 보석 등속, 모피 등속에는 눅거리가 없으니 눅거리를 업신여기는 이 종류 고객의 심리를 이해하옵시는 중형(重刑)들의 슬로건, 실로 약여(躍如)하도다.
밤이 왔으니 관사(冠詞) 없는 그냥 ‘긴자’가 출현이다. ‘코롬방’의 차(茶), 기노쿠니야(紀伊國屋[기이국옥])의 책은 여기 사람들의 교양이다. 그러나 더 점잖게 ‘브라질’에 들러서 스트레이트를 한잔 마신다. 차를 나르는 새악시들이 모두 똑같이 단풍무늬 옷을 입었기 때문에 내 눈에는 좀 성병(性病) 모형 같아서 안 됐다. ‘브라질’에서는 석탄 대신 커피를 연료로 기차를 운전한다는데 나는 이렇게 진한 석탄을 암만 삼켜 보아도 정열은 불붙어 오르지 않는다.
애드벌룬이 착륙한 뒤의 긴자 하늘에는 신의 사려에 의하여 별도 반짝이련만 이미 이 카인의 말예(末裔)들은 별을 잊어버린지도 오래다. 노아의 홍수보다도 독가스를 더 무서워하라고 교육받은 여기 시민들은 솔직하게도 산보 귀가의 길을 지하철로 하기도 한다. 이태백이 놀던 달아! 너도 차라리 19세기와 함께 운명하여 버렸었던들 작히나 좋았을까.
<재편집: 오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