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부부(夫婦)의 날은,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제정한 날로,
부부 관계의 개인적, 사회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평등하고 민주적인 부부 문화를 확산시키고
가족 구성원의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제정한 날이다.
신혼부부부터 황혼부부까지 부부가 갖는 의미는 똑같다.
부부는 가장 가까운 동지이자,
인생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줄 반려자이기 때문이다.
노란 장미꽃은 위엄을 상징하고,
흑장미는 젊은 남녀의 애정을 상징하는데
부부의 날에는
남편은 아내에게 사랑과 정열을 상징하는 빨간색 장미를,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과 존경의 의미를 담은 분홍색 장미를 선물한다.
부부의 날은,
1995.5.21. 경남 창원의 권재도 목사부부가 처음 시작하였고
기독교를 중심으로 제정운동을 펼쳐 2007년 법정기념일이 됐다.
5월 21일로 정해진 까닭은,
가정의 달 5월에 두 사람(2)이 하나(1)가 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사람은 대부분 어느 부부의 아들딸로 태어나
누구누구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한 세상을 살아간다.
사람은 누구나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삶을 산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내가 구애받지 않고 사는 것을 해탈(解脫)이라 한다.
사람은 속박이나 번뇌 따위의 굴레에서 벗어나
편안한 경지에 도달하여야 하며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해야 한다.
불교에서 공적으로 돌아가라 한 것은
집착과 탐욕에서 해탈하라는 것이다.
<나>는 세상사람 중의 한 사람에 불과하기에
세상일은 나의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사람은,
파도가 치면 파도를 즐기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즐기면 된다.
세상일이 내 생각대로 안 된다고 너무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사소한 일에 구애되면 큰일을 그르치기 쉽다.
아무 것에도 구애되지 않는 자유로운 처지에 몸을 두어
오직 관조(觀照)의 세계에만 살아야 한다.
금방 있던 사람이 수명이 다하고 업(業)이 다하면,
세상의 모든 것들과 작별하게 된다.
화장장(火葬場)에 가면 그 어떤 고인(故人)도
한 시간만 지나면 한줌의 재가 된다.
죽은 자는 산자에게 죽음의 내용을 전할 수 없고,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인지할 수 없다.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에
삶의 무거움과 죽음의 가벼움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사람의 죽음은 금방이고 가볍기 때문에
남은 여생의 무거운 삶을 견디며 버티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언제 죽을지, 어디서 죽을지,
어떻게 죽을지를 모른다.
건강은 가장 큰 선물이고
만족과 감사는 가장 큰 재산이며
보시(布施)는 가장 큰 복을 짓는 것이다.
사람은 극한 욕심을 부릴 것도 없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갈 필요도 없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야하는 게 인생일진데
세상에 <내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다만 내 것이라고 하는 것들은
내가 잠시 관리하고 있는 것들이다.
하여 법정스님은 무소유의 삶을 살라고 했다.
누구나 가장 두려운 것이 죽음이지만
죽음은 하나의 자연 현상이기에 너무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죽음은 그저 일생생활의 한 과정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죽음을 앞두고 내 주위를 들여다보면
내가 중요하다고 움켜쥔 것들을 모두 다 부질없는 것들이며
내가 이 큰 쓰레기 더미 속에서 한 생애를 보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재물과 욕심에 얽매여 아무것도 제대로 한 것도 없으면서
쓰레기들만 잡고 놓지 못하는 습관에 사로잡혀
허무(虛無)한 삶을 살게 되면 그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 된다.
백 년도 못살다 가는 인생이다.
조금 더 의미 있는 행복(幸福)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세상살이는 정답과 비밀과 공짜가 없다.
내가 말 할 수 있고 맨발걷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행복이다.
행복한 삶은 <소풍>과 같다.
가는 길에도 쉬고 오늘 길에도 쉬며
중간 중간 틈나는 대로 쉬어야 한다.
인생을 너무 바쁘게 얽매여 살 필요는 없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살면 된다.
매일매일 하루하루를
마치 무슨 목적을 완수하기 위한 수단인 것처럼 소모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세상에 일하러 온 것도 아니고
돈을 벌고 성공하려고 온 것도 아니다.
그런 것들은 다 부차적이고 수단적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100 년을 누릴 수 있는 삶을 선물로 받고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삶을 하나의 수단으로 삼지 말고 삶 자체가 목적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삶을 소풍가듯 즐거운 마음으로 즐기며 참되게 살아야 한다.
사람이 곱게 늙어 가면 세상이 참 고와 보인다.
늙음 속에는 낡음이 있지 않고 새로움이 있다.
늙음과 낡음이 함께 만나면 허무와 절망과 후회만 남는다.
비록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이 젊고 낡지 않는다면
삶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인격은 높아지며 보다 원숙한 삶이 펼쳐진다.
겉은 늙어가도 속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 아름답게 늙는 것이며,
겉이 늙어 갈수록 속이 낡아지는 것은 추하게 늙어가는 것이다.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이나 빨리 달리는 사람이나
주어진 시간은 오직 한 세상이다.
이 소중한 시간마다를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베풀며 감사하며 살아야한다.
마음이 아름답고 부자인 사람은 행복하다.
나중에 가져갈 수도 없는 무겁고 힘든 일에 미련을 둘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도 아까울 것도 하나 없는데
그것들을 이고 지고 들고 안고 미련을 두고 있으면
금방 지치고 힘이 들게 되며 현재를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마음은 마음 쓰는 대로 된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매일매일이 <좋은 인생>이 된다.
인생이란 폭풍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퍼붓는 빗속에서도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희망과 의지가 있는 사람은 음악이 없어도 멋진 춤을 출 수 있다.
희망과 의지는 어떤 일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어떤 일도 잘되고 말 것이라는 믿음의 마음이다.
마음은 마음 쓰는 대로 되는 것이니
내 인생의 봄날은 항상 “지금”이 되어야 한다. <쇳송. 3165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