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허물 것과 세울 것
울타리는 왜 칠까요? 옛날에는 내 영역에 경계를 표시하여 남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쳤겠지요. 현재에도 그럴 필요가 있는 곳도 있겠지만, 별생각 없이 울타리를 치고 있는 게 아닐는지요.
요즘 울타리는 물리적인 면에서 별 뜻이 없습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제도가 정비되어, 땅에 경계를 표시하는 울타리는 의미가 없어진 것이지요. 땅의 정확한 경계는 지적부에 표시돼 있습니다. 분쟁이 생기면 지적부에 표시된 경계를 기준으로 해결합니다. 건설 현장에도 가설 울타리가 설치돼 있지만 물리적인 의미는 약합니다. 웬만한 울타리는 쉽게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영업비밀 측면에서도 울타리는 상징적인 경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철판으로 울타리를 친다고 한들 공사 현장 내부는 하늘에서 더 잘 보입니다.
■ 없어도 되는 곳 울타리는 허물고,
저는 걷기를 좋아합니다. 서울 길을 걷다 보면 이상한데 싶은 울타리를 자주 봅니다. 서울 법원단지를 둘러싼 울타리, 우면산 자락에 있는 외교안보연구원 마당을 둘러싼 울타리, 그 가까운 데 있는 서울시 인재개발원 울타리에는 ‘관련자 이외에는 출입을 금합니다’라 는 팻말까지 달아뒀습니다.
저 땅은 누구 땅입니까? 국민이나 시민의 땅입니다. 행정기관이 소유자인 시민에게서 빌려 쓰는 것인데, 어쩌다가 시민은 밀려나고 빌려 쓰는 사람이 주인으로 행세합니다. 물론 업무를 위해 아무나 들락날락하게 열어 둘 수 없습니다. 그런 부분은 건물 안으로 못 들어가게 하거나 보안이 필요한 곳만 막아야 하겠지요.
구로구 항동 어느 아파트 단지는 단지 주민 소유이겠지만 경계를 가르는 울타리가 없습니다. 이게 올바른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없어도 되는 울타리는 걷어 냅시다.
(좌) 서울시 인재개발원 울타리 - 철망으로 막혀있다 / (우) 구로구 항동 아파트 단지 - 울타리가 없다
■ 있어야 할 울타리는 세우자
사회제도에도 여러 울타리가 있습니다. 사회제도에서 울타리는 규제제도 중 하나입니다. 규제는 되도록 없애야 합니다. 그래야 자유롭게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선진국일수록 쓸데없는 규제가 적습니다. 한편 규제해야 할 곳에는 제대로 된 울타리가 있어야 합니다. 전문 분야 일은 자질을 갖춘 사람이 처리해야 합니다. 능력은 자격증으로 확인합니다. 자격제도가 울타리입니다.
그 울타리가 있으나 마나 하면 어떤 폐해가 생길지 뻔히 예측됩니다. 지식재산 분야의 전문가는 변리사입니다. 지식재산 분야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 영역인데, 변호사에게 변리사 자격을 검증하지 않고, 6달 실무 연수만 받으면 변리사 자격을 그냥 줍니다. 변리사 자격은 있지만 변리사답지 못한 변리사, 다시 말하면 변리사 이름을 달았지만 진짜 변리사는 아닌 사람이지요. 자동 변리사제도는 논리도 실상에도 맞지 않습니다. 하루 자동 자격을 없애서 울타리를 세워야 합니다.
이런 제도를 없애려면 법을 고쳐야 하는데, 변호사 업역을 건드리는 법안은 법적 요건, 정당성, 사회적 필요성, 국가이익 등 온갖 명분에도 상임위와 더 나아가 법사위를 넘기 어렵습니다. 법사위는 반 이상이 변호사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우리 국회는 언제 국익 우선, 정의 우선을 앞세우게 될까요.
걷어야 할 것은 걷고, 필요한 울타리는 세워야 건강한 사회이고, 선진 사회입니다. 새해에는 허물 울타리, 세울 울타리를 잘 구분하여 허물고 세워나가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