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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列國誌] 512
■ 2부 장강의 영웅들 (168)
제8권 불타는 중원
제 22장 난씨별곡 (3)
며칠 후, 제장공(齊莊公)은 용작(勇爵) 전원을 궁중으로 초청해 술좌석을 가졌다.
주작(州綽)과 형괴(邢蒯)를 환영하는 자리를 겸한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자리가 맨 말석이었다.
이것이 주작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제장공(齊莊公)이 자랑하듯 상석에 앉아 있는 식작(殖綽)과 곽최(郭最)를 가리키며,
- 이들은 나의 가장 으뜸가는 용사들이다.라고 소개하자,
주작(州綽)이 일부러 놀란 체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대들은 지난날 '평음의 역(役)'에서 나의 화살 두 대를 맞고 사로잡힌 자들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가?"'평음의 역'이란 평음 전투를 가리키는 말이다.
주작(州綽)의 외침 소리를 듣고 식작(殖綽)과 곽최(郭最)는 얼굴이 벌개졌다.
두 눈을 부릅뜨며 반박했다."너는 그때 우리를 후대하겠다고 태양에 맹세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너는 우리를 어떻게 대했는가? 마치 잡부 대하듯 우리를 가두어두었다.
그러고도 네가 용사라 할 수 있겠는가?"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제장공은 근신(近臣)에게 명했다.
"용작(勇爵)을 가져오라."'작(爵)'은 곧 술잔이다. 그러므로 '용작'은 벼슬 이름이기도 하지만,
용맹한 장수에게 내리는 술잔을 가리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제장공(齊莊公)은 으뜸가는 장수에게 용작을 내림으로써 이 자리를 진정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더욱 주작(州綽)을 흥분시켰다. 제장공이 식작(殖綽)에게 제일 먼저 용작을
내리려 했던 것이다. 그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외쳤다.
"동려문의 싸움에서 가장 먼저 성문을 깨뜨린 사람은 바로 저입니다. 이만하면 첫번째로
용작(勇爵)을 받을 만한 자격이 되지 않겠습니까?"
진(晉)나라 군대가 임치성을 공격할 때 주작(州綽)은 동려문을 담당했다.
그는 단숨에 동문을 깨뜨리고 성문 안으로 진입하여 성문의 대갈못 숫자를 헤아린 바 있었다.
- 용사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그 술잔은 식작(殖綽)에게 내릴 것이 아니라
나에게 내려야 한다.주작(州綽)은 이렇게 항변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제장공(齊莊公)은 다음과 같이 응대했다.
"그대의 용맹은 진(晉)나라 군주를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용작(勇爵)은 제나라를 위해 활약한 용사에게 내리는 술잔이다, 라고 약간은 비꼼이 섞인 투로
답변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물론 주작(州綽)을 일부러 자극함으로써 그로부터
충성 맹세를 받아내려 한 속셈이 깔려 있기도 했다.
아니나다를까, 자존심이 강한 주작(州綽)은 제장공의 술수에 말려들었다.그는 분연히 외쳤다.
"신은 이제 제(齊)나라 신하로서 군후를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찌 과거의 일로써
으뜸가는 용사에서 제외될 수 있겠습니까. 짐승에 비유하자면, 식작과 곽최는 이미 신에게
살을 뜯기고 가죽이 벗겨진 표범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 대답에 제장공(齊莊公)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흔쾌히 용작(勇爵)을 주작(州綽)에게 내려주었다.
생각해보면 주작(州綽)은 참 어리석다. 원래 그는 빌려주는 명목으로 제장공의 휘하로 들어갔다.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지 난영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신분이었다.
그런데 그는 어찌했는가.
으뜸가는 용사라는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자신의 입으로 제장공이 주인임을 선언하고 만 것이었다.
더욱이 뒷날 제장공(齊莊公)을 위해 싸우다가 죽은 것을 보면 이 날의 술잔은 '영광의 술잔'이 아니라
'죽음의 술잔' 인 셈이라고 할 수 있었다.어쨌거나 그 날의 술자리는 식작을 비롯한
국내파와 주작과 형괴 등 망명파의 알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리가 되었다.
이에 제장공(齊莊公)은 제도를 고쳐 용작을 좌우 반으로 나누어 '용작(勇爵)'과 '호작(虎爵)'으로 분리했다.
주작과 형괴를 우반(右班)인 용작의 지휘자로 삼고, 그 밑으로 노포계(盧蒲癸)와 왕하(王何)를 배치했다.
그리고 식작과 곽최를 좌반(左班)인 호작의 지휘관에 임명하여 나머지 일곱 용사를 소속시켰다.
하지만 한번 감정이 상한 주작과 형괴, 식작과 곽최는 내내 사이가 좋지 못했다
즉위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 제장공(齊莊公)은 성격상 문제가 많은 군주였다.
자신은 용맹스럽고 호방하다고 생각했으나, 신하들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기질이
무도(無道)함으로 비칠 수가 있었다.더욱이 그는 죽음 직전에서 최저와 경봉, 경좌 등의 도움을 받아
군위에 올랐다. 특히 최저에 대해서는 은인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대해 무한한 권한을 내려주었다.
내정에 관한 대부분의 사항을 최저의 결재만으로 이루어지게 하였다.
최저(崔杼)로서는 최고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었다.
간혹 제장공과 최저는 군주와 신하의 관계가 아니라 친구와도 같은 관계로서 행동할 때가 있었다.
특히 제장공(齊莊公)이 최저의 집으로 놀러갔을 때 그러했다.
그랬다. 제장공(齊莊公)은 호방하고 자유분방한 성격대로 심심하면 최저나 경봉의 집으로 행차하여
함께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활쏘기 내기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파격적인 행동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그러나 이러한 파행의 뒤끝이 좋은 경우는 거의 없다.
전대(前代)에 살던 사람들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역사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거울로서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 아니겠는가.제장공(齊莊公)도, 최저(崔杼)도 보다
역사의 지혜를 터득한 사람이었다면 서로간의 관계를 그렇게 유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장공과 최저는 그렇지 못했다. 여기서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싹트기 시작했다.최저(崔杼)는 일찍이 장가를 들어 아들 둘을 낳았다.
장남의 이름은 최성(崔成)이었고, 차남의 이름은 최강(崔彊)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채 장성하기도 전에 최저의 아내는 죽었다. 그는 다시 자신의 가신인
동곽언(東郭偃)의 여동생에게 장가들었다.그런데 동곽언의 여동생은 원래 당씨(棠氏) 성을 가진
사람에게 시집갔던 여자였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그녀를 당강(棠姜)이라 불렀다.
이 무렵, 혼인한 여인들의 이름은 시집 성(姓)과 친정 성(姓)을 합쳐 호칭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므로 당강의 당(棠)은 남편의 성이요, 강(姜)은 친정의 성인 것이다.
동곽언은 제환공의 후손이기 때문에 원래 성은 강이었다. 당강은 전 남편 당공(棠公)과 사는 동안
아들 하나를 낳았다. 아들의 이름은 당무구(棠無咎).당강(棠姜)은 절세 미인이었다.
최저는 당공이 죽었을 때 문상을 갔다가 당강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 즉시로 오라비인 동곽언에게
청혼하여 과부 당강을 후처로 맞이했다.그 후 최저와 당강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그 아들의 이름은 최명(崔明)이었다. 최저(崔杼)는 후처인 당강과 그 소생 최명을 몹시 사랑했다.
그래서 당강의 전 남편의 아들인 당무구(棠無咎)를 집으로 데려와 가신으로 삼고,
동곽언과 당무구에게 어린 최명의 장래를 부탁했다.물론 당강에게도,
- 명(明)이가 장성하면 반드시 그 아이를 후계자로 삼겠다.라고 약속했다.
그 무렵 해서 제장공(齊莊公)이 자주 최저의 집으로 놀러와 함께 술을 마시곤 했다.
그런데 하루는 최저가 아내 자랑을 할 겸 당강(棠姜)을 불러 술을 따르게 했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제장공(齊莊公)은 당강의 아름다운 용모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이런 여인을 품에 안으면 당장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
이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당강(棠姜)을 껴안았다.
최저(崔杼)는 술 취한 중에서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제장공과
아내 당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그러나 이미 제장공(齊莊公)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니, 제정신이 아닌 척 했다."앞으로 이 여자는 내 것이다."
당강(棠姜)을 품에 안은 채 내실로 걸음을 옮겼다.
새하얗게 질린 최저가 제장공의 옷소매를 붙잡았다."주공....... 장난이 지나치십니다!"
"나는 미인을 놓고 장난치지 않소."제장공(齊莊公)은 옷소매를 뿌리쳤다.
"여보!"당강(棠姜)의 일그러진 얼굴을 마지막으로 방문은 닫혔다.
최저(崔杼)가 벌떡 일어나 벽에 걸린 칼을 잡으려 했다.
순간 그 앞을 가로막는 그림자가 있었다.가신이자 당강의 오라비인 동곽언(東郭偃)이었다.
".................!"참으라는 눈빛이었다.내실 어딘가에서 아내 당강(棠姜)의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최저(崔杼)의 눈동자는 피를 쏟을 듯 빨갛게 물들어갔다.
- 죽이리라!그의 움켜쥔 손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513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513
■ 2부 장강의 영웅들 (169)
제8권 불타는 중원
제 22장 난씨별곡 (4)
BC 550년. 제장공(齊莊公)이 군위에 오른 지 4년이요,
난영(欒盈)이 제(齊)나라로 망명해온지 1년이 지났다.
그 무렵, 제장공(齊莊公)은 더욱 자신의 환상 속에 빠져 있었다.
국내적으로도, 국외적으로도 안 되는 일이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진(晉)나라를 치리라!
용작과 호작을 동원하여 진나라 수도 강성을 공격하는 광경을 자주 상상했다.
중원 제패를 어린 아이 땅따먹기 놀이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제장공(齊莊公)은 이러한 상상을 현실로 옮기기 시작했다.마침 좋은 빌미가 생겼다.
- 진(晉)나라와 오(吳)나라의 통혼.
진평공의 누이가 오(吳)나라 왕 제번(諸樊)에게 시집가기로 했다는 소식이 날아든 것이었다.
제장공(齊莊公)은 여기서 만화와도 같은 황당한 착상을 떠올렸다.
- 진공(晉公)은 중원의 맹주다. 맹주의 경사를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우리 공실에서도 마땅히 축하의 의미로 잉첩(媵妾)을 보내리라.
잉첩은 잉녀(媵女)라고도 한다.왕녀나 공녀가 시집갈 때 수행하는 여자를 말한다.
보통은 여동생이나 조카딸 등이 그 역할을 한다. 남자의 경우에는 잉신(媵臣)이라고 부른다.
잉(媵)은 몸종이라는 뜻이나, 이 무렵의 잉녀의 대부분은 남자 쪽의 첩이 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아예 잉첩(媵妾)이라고 불렀다.그 잉첩을 제장공은 제나라 쪽에서 제공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물론 여기에는 제장공 나름대로의 술책이 포함되어 있다. 잉첩을 진나라로 보내면서
그 호위대의 일원으로 난영 및 그 가신들을 진나라에 잠입시켜
단숨에 강성을 점령하겠다는 것이었다.
"어떻소, 나의 책략이?"제장공은 상경 최저를 불러 자랑하듯 말했다.최저(崔杼)는 기가 막혔다.
'어떠냐고?'난영(欒盈)과 그 가신들을 진(晉)나라로 잠입시키겠다는 착상까지는 그래도 봐줄 만했다.
문제는 병력이었다.난영의 무리는 고작 20여 명. 그들만으로 강성을 손에 넣겠다는
제장공의 발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더욱이 난영(欒盈)은 진나라에서
추방된 사람이다. 동조 세력이 있을 리 없다. 발각되는 순간 체포될 것이 뻔하다.
'마침내 주공이 미쳤는가?'예전 같았으면 최저(崔杼)는 극구 반대 의사를 표명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제장공이 강간하다시피 아내 당강의 몸을 유린한 이후부터
그는 제장공의 살해를 꿈꾸기 시작했다.
모든 일을 제장공에게 불리한 쪽으로 꾸며 나갔다.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주공이 난영(欒盈)을 강성으로 들여보내 소란을 일으키면 진(晉)나라는 배후나라인 제(齊)나라에
책임을 물을 것이 분명하다. 군대를 일으켜 침공해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임치는 혼란에 빠지고, 그 틈을 이용하여 주공을 죽인 후 진나라에 그 목을 바치자.
그렇게 된다면 나는 계속 국정을 장악할 것이요.
아내의 몸을 더럽힌 주공에 대해 복수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단숨에 여기까지 생각한 최저(崔杼)는 무릎까지 쳐가며 탄복하는 척했다.
"놀라운 계책입니다. 하지만 다소 미진한 점이 있습니다.""미진한 점이라니?"
"아무리 난영에게 뛰어난 가신들이 즐비하다 하더라도
그들 힘만으로 강성을 점령하기에는 무리입니다."
"식작과 곽최 등을 함께 보내시되, 주공께서도 군대를 이끌고 나가 국경 근처에서 대기하십시오.
그러다가 난영(欒盈)이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그대로 강성까지 진군하십시오.
만일 실패하면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냥 돌아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듯 최저(崔杼)가 제장공을 충동질한 것은 이번 일의 배후가 제장공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였다.뛰는 자 위에 나는 자. 고단수 책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최저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제장공(齊莊公)은 기쁨을 억누르지 못했다.
"과연 경(卿)은 나의 보배요."이어 근신을 불러 명했다."난영을 불러오라."- 진(晉)나라로 돌아간다.
난영은 들떴다. 언젠가 이런 기회가 오기를 기다려왔다. 그래서 먼 길임에도 불구하고
동방의 제국 제(齊)나라까지 온 것이 아닌가.물론 이러한 귀환이 최선책이 아닌 것은 알고 있다.
'주공의 사면을 받아 당당하게 돌아가고 싶었는데.......'
그러나 범개가 건재한 이상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그렇다면.......'
한참 동안의 고심 끝에 난영(欒盈)은 제장공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는 공관으로 돌아와 가신들을 불러놓고 공궁에서의 일을 설명했다.
"우리의 귀환 목적은 분명하오. 우리를 내쫓은 범개를 죽이고 오명을 씻는 것이오."
잠정적으로 강성에서 1백여 리 떨어진 곡옥(曲沃)을 제1차 근거지로 삼기로 했다.
곡옥의 관장은 서오(胥午). 난씨의 문객 중 한 사람이다.
서오에게서 군사를 빌려 강성을 공격하여 범개 일족을 몰아내는 것이 난영의 최종 목표였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난영과 절친하게 지낸바 있는 강성 안의 위서(魏舒)를 포섭할 작정이었다.
- 위서는 하군 대장 위강의 아들이다. 몇 년 전 위강이 죽었으니 지금은 위서가 위씨 일문의 당주(堂主)다.
위씨 일문만 도와준다면 범개를 몰아내고 강성을 장악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역설했다."하늘이 내린 기회요!"난영(欒盈)은 여느 때와 달리 말이 길었다.
반대자가 있을까 염려해서였다.그러나 그것은 우려였다. 가신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 강성(絳城) 귀환!이 말 한마디만으로도 그들의 몸 속에서는 활력이 용솟음쳐 올랐던 것이다.
아니, 반대자가 있긴 하였다.단 한 사람 - 주인인 난영을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강성을 떠나온 사람.
신유(辛兪)였다."당주(堂主)는 진(晉)나라 사람입니다. 진나라 사람으로 진나라에 반기를 든다면
당주께선 천지간 어느 곳에서도 용납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면령이 내릴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하지만 그 말로는 이미 마음이 강성에 가 있는 난영과 나머지 가신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나는 진(晉)나라에 반기를 드는 것이 아니라 범씨 일족을 처단하려는 것이오."
신유(辛兪)는 더 이상 말해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았다.
"정히 그러시다면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죽음으로써 당주님을 전송해 드리겠습니다."
신유(辛兪)는 말을 마치자마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자기 목을 찌르고 자결했다.
51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