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상을 해보기로 한다. 하루 두 편씩 글을 쓰는데 딱 세 사람에게만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떨까. 세 명의 독자가 식탁에 모여앉아 글을 읽는다. 피식거릴 수도 눈가가 촉촉해질 수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수도 있다. 읽기가 끝나면 독자는 식탁을 떠난다. 글쓴이는 혼자 남아 글을 치운다. 식탁 위에 놓였던 문장이 언제까지 기억될까? 곧이어 다음 글이 차려져야 하고, 그런 노동이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반복된다면 말이다. 그랬어도 슬아는 계속 작가일 수 있었을까? 허무함을 견디며 반복할 수 있었을까? 설거지를 끝낸 개수대처럼 깨끗하게 비워진 문서를 마주하고도 매번 새 이야기를 쓸 힘이 차올랐을까? 오직 서너 사람을 위해서 정말로 그럴 수 있었을까? 모르는 일이다. 확실한 건 복희가 사십 년째 해온 일이 그와 비슷한 노동이라는 것이다. (「부엌에 영광이 흐르는가」, 228쪽)
현실에서는 가사 노동의 가치를 보상받기는커녕 당연시 여겨지고 폄하당하는 게 대부분이지 ‘집 가서 밥이나 해라’같은 미러링도 가부장제에 한방 먹일 수야 있겠지만 거기에서 그친다면 그러한 폄하는 또 돌봄, 가사노동 종사자들이 받게 될 거야 비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돌봄,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 또한 근본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일깨워주는 책이라고 생각해
“이것은 제가 아직 본 적 없는 모양의 가족드라마입니다.
돌봄과 살림을 공짜로 제공하던 엄마들의 시대를 지나, 사랑과 폭력을 구분하지 못하던 아빠들의 시대를 지나, 권위를 쥐어본 적 없는 딸들의 시대를 지나, 새 시대가 도래하기를 바랐습니다.
아비 부의 자리에 계집 녀를 적자 흥미로운 질서들이 생겨났습니다. 늠름한 아가씨와 아름다운 아저씨와 경이로운 아줌마가 서로에게 무엇을 배울지 궁금했습니다.
실수와 만회 속에서 좋은 팀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TV에서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썼습니다.
작은 책 한 권이 가부장제의 대안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저 무수한 저항 중 하나의 사례가 되면 좋겠습니다.
김고 뿌리깊은 역사의 웅름을 명랑하게 거스르는 이물들을 앞으로도 쓰고 싶습니다. 사랑과 권력과 노동과 평등과 일상에 대한 공부는 끝이 없을 듯합니다."
모두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했을때 찾아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다들 가녀장의 시대 꼭 읽어보세요
첫댓글 낼 빌려야쥐
고마워 읽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