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영담 자항교
자항교의 난간에나툰 코끼리 아홉쌍
미래사 편액
삼회도인문의 배면. 문앞산자락에는 편백나무 숲이 울창하다.
삼회도인문에서의 대웅전
亞형 범종루 1993년 건립.
황매실 九山 石獅子
황매실
설매당 우측문위의 황매실 취산 구하
자항선원 石獅子
자항선원
참선중
반가사유상
연잎위에 개구리가 올라앚은 양산같이쓴 동자상
포대화상
대웅전1983년 중건. 적광탑 1990년 부처님의 진신치아사리를 봉안한 삼층석탑을 건립.
대웅전 불단의 삼존상 지장보살좌상 석가모니좌상 관세음보살좌상
도솔영당
도솔영당의 외벽화. 초조달마대사에게 혜가스님이 팔목을 잘라 법을 인가받는 모습
백운 보홍 용악 혜견, 백하 청민
구산 수련, 석두 보택, 효봉 학눌,
계봉 암우(溪峰巖雨) 향봉 향눌(香峰香訥) 화봉 유엽(華峰柳葉)
불유각
미륵부처님 참배길의 편백나무숲
편백나무. 어른나무와 어린나무
석조미륵입상 1975년 조성
석조미륵입상앞에서 바라본 통영 앞바다
효봉스님께서 안거하셨던 눌암(訥庵)
친환경 해우소
구산 스님 비 효봉 스님 비 석두 스님 비
자항당 종욱화상 부도. 미 래사는 1996년 입적한 자항당 종욱스님께서 30여년간에 걸쳐 현재의 모습으로 사세가 확장되었다.
등산객들과 참배자들을 배려한 먼지털이
용화산 미래사 경남 통영시 산양읍 영운리 915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쌍계사의 말사.
효봉(曉峰)스님의 상좌였던 구산(九山) 수련스님이 1951년 두스승(석두, 효봉)의 안거를 위해 토굴을 지은 것을 시작으로 하여
1954(갑오)년에 법당을 낙성하였다.
1975년 미륵불상을 조성, 1977년 6월 토굴 중수, 1983년 대웅전 중건.
1984년 삼성각을 해체하여 도솔영당 재건하였으며, 1985년 대웅전과 도솔영당 단청, 1988년 설매당 건립.
미래사는 구산, 법정, 고은. 박완일 등을 상좌로 두었던 효봉 문중의 발상지가 되었다.
미래사는 詩人 고은이 효봉 스님을 처음 만난 곳도 이곳이었다.
고은 시인은 1952년,19세에 전북 군산 동국사에서 머리를 깎고 혜초 스님의 상좌가 됐다.
그러나 이듬해 혜초 스님이 느닷없이 환속하는 바람에 깊은 정신적 충격을 받고 여기저기 행각승으로 떠돌던 끝에
이곳 미래사로 혜초 스님의 스승이었던 효봉 스님을 찾아와 그의 상좌가 된다.
삼회도인문(三會度人門)이라는 현판을 건 문의 삼회도인문이란 미래에 오실 미륵부처님이 '삼회에 걸쳐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이다.
경내에는 삼회도인문. 설매당. 자항선원. 불유정. 적광석탑. 대웅전. 도솔영당. 아자형 범종루. 요사. 석조미륵입상. 부도 비군.
친환경 해우소 등이며,
미래사 주변에는 수령 80~90년의 편백나무는 일제때 심어졌는데 6.25후 효봉. 구산스님이 계실때 매입해 가꾸어온것이다.
편백나무가 배출하는 피톤치드는 아토피나, 피부염, 천식, 각종 암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석두 스님 법호: 石頭. 볍명: 寶澤. 속명: 林尙夏(함경도 영천군 하가면 하대동 1882.9.6~1954.4.25). 자호: 無化子.
1954년 4월25일 오후 8시30분 석두 선사는 세수 73세, 법납 57세로 열반에 들었다.
석두 선사로부터 효봉, 향봉, 화봉, 계봉 해봉 석정, 석봉 인선, 은봉 원광 선사 등 뛰어난 제자들이다.
★효봉 學訥스님(1888~1966년)은 일본 와세다대 법학부를 졸업한 후 조선인 최초의 판사가 돼 평양 복심법원(고법)에서 근무했다.
법관 생활 10여년,어느 날 한 피고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난 뒤 '인간이 인간을 벌하고 죽일 수 있는가?'라는 깊은 회의에 빠졌다.
그 길로 법관직을 버리고 3년 동안 산천을 방랑하다가 1925년 금강산 신계사로 석두 스님을 찾아가 출가했다.
엿장수. 절구통수좌. 판사 너나 잘해라 등의 별칭이 따라 다니는 근대의 고승이시다.
1966년 5월에는 다시 밀양 표충사(表忠寺) 서래각(西來閣)으로 옮겨 머무르다가 10월 15일 정좌한 채 입적하였다.
다비(茶毘)를 하자 사리 50여 과와 정골이 많이 나와 송광사와 표충사, 용화사, 미래사 등 선사가 머물렀던 사찰에 봉안하였다.
★구산(九山 1909~1983)
법호: 구산(九山). 법명; 수련(秀蓮). 자호; 석사자(石獅字). 속명: 소봉호. 전북 남원 출생.
조계산 송광사 초대 방장 '慈航禪院'과 '雪梅堂' 편액 글씨는 구산 선사의 필적이다.
14세에 부친을 잃고, 남원보통학교(南原普通學校)를 졸업하자 한학(漢學)을 수학하였다.
38세에 순천 송광사(松廣寺)를 찾아가 승려가 되고, 효봉(曉峰)의 지도로 사미계(沙彌戒)를 받았다.
1940년 양산 통도사(通度寺)의 해담(海曇)을 계사(戒師)로 비구계(比丘戒)를 받은 후,
해인사(海印寺)와 김천 청암사(靑巖寺) 등에서 수도에 정진하였다.
해인사에 가야총림(伽倻叢林)이 개설되자 초대 도감을 맡았으나 6·25 전쟁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1951년 동래 금정선원(金井禪院)에 있으면서 원명의 법맥을 이었다.
1953년 통영 미래사(未來寺)를 창건한 후, 교단정화운동에 힘써, 1956년 조계종 감찰원장이 된 것을 시작으로,
1960∼1967년 중앙종회위원을 역임하는 등 종단적인 후진양성·교단 정화에 전력하였다.
1967년 송광사 주지로서 사찰을 중창하여, 1969년 조계총림(曹溪叢林)을 개설, 방장을 맡았고, 불일회(佛日會)를 창립, 총재가 되었다,
1973년 불일 국제선원을 개원하고, 1976년 동국대학교 이사 등을 역임하여 교육·포교에도 힘썼다.
1983년 병이 들자 구산 선사는 '내 몸에 주사하지 말 것, 좌선의 자세로 열반할 것이니 좌관을 사용하고 좌장을 해줄 것,
화합 단결하여 선풍(禪風)에 누를 끼치지 말 것, 자신을 속이는 중노릇을 하지 말고 실답게 수행에 임할 것'을
제자들에게 당부하고 12월 16일 입적하였다. 다비를 한 뒤 나온 53과의 사리는 삼일암에 탑을 세워 안치하였다.
★회광 승찬 1924-1996
1960년 미래사 주지. 1962 용화사 주지. 1971년 조계총림 송광사 주지. 1984년 송광사 제 3대 방장에 취임.
1988년 관음선원 개축 당래선원 개원
한국의 아름다운 길
통영시 남쪽의 미륵도 해안을 일주하는 23km의 산양일주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될 만큼 경치가 아름답기도 하며
달아공원에서의 일몰현상은 환상적이다.
노부모님을 뫼시고, 가족들과 연인들 모두모두 손잡고 아름답고 고요한 미래사 참배하고 환상적인 길을 ~~~~~
첫댓글 신기루님 미래사 구경 잘하고 갑니다.
소중한 자료 올려주셔서 항상 잘 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자성(自性) 부처님 ♡
고맙습니다...관세음보살()()()
행복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자성(自性) 부처님 ♡
방생 법회 갔던 곳이네요,,,
맞습니다...무상신님~고맙습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자성(自性) 부처님 ♡
미래사하면 효봉큰스님이 계셨던 절로 가장 기억에 남아요,
행복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자성(自性) 부처님 ♡
일심으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_()_()_()_
관세음보살()()() ♡ 자성(自性) 부처님 ♡
관세음보살()()() ♡ 자성(自性) 부처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