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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학(6) 이상화,「나의 침실로」外
When we are in love, we love the grass,
And the barns, and the lightpoles,
And the small mainstreets abandoned all night.
-Robert Bly,「Love Poem」전문
1. 이상화의 인간과 문학
사람들은 산봉우리, 바다의 무시무시한 파도, 아득히 흘러가는 강물, 대양의 물거품, 그리고 천체의 궤도 등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하여 가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선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F․페트라르카의 이러한 지적과 일갈은 시작의 이유이자 근간이 된다. 너머와 여기를 잇는 시에는〈나〉에 대한 특별한 언어와 감정이 들어 있다. 그것은 시를 통해서만이 가능한 말과 삶, 앎과 느낌의 방법이다. 다음 시를 보자.
혼자서 깁흔 밤에 별을 보옴에
갓모를 白沙場에 모래알 한아가치
그리도 적게 세인 나인 듯하야
갑갑하고 애닯다가 눈물이 되네
-「叡智」전문 (『萬國婦人』1호, 1932.10)
상화 시의 여성성과 예지를 잘 보여주는 이 시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1행에서 나는 지금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다. 혼자서, 그것도 깊은 가을밤에 말이다. 이런 고독한 시간과 공간의 현상은 비-존재에 가까우며, 예지의 순간을 경험하기에 적절하다. 시의 예지는 먼 곳에 있다. 별과의 그립고 아득한 미적 거리가 그것이다. 모리스 블랑쇼에 의하면,본다는 것은 거리를 전제로 한다. 그런 만큼 작품은 고독하다. 작품은 완성된 것도, 완성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작품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2행에서는 그 하늘만큼이나 신비한 지상의 바닷가와 백사장이 배경으로 펼쳐져 있다. 밤하늘 별이 그렇듯 백사장은 끝이 없다. 그 모래알 낱낱이 별인 것이다. 이는 밤하늘의 뭇별과 지상의 모래알이 대비되는 순간이자, 거시 우주와 미시 우주가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이다. 3행과 4행에는 모래알이 갖는 양가성이 드러나 있다. 시인의 초점과 예지는 마지막 행의눈물에 모아져 있다. 여기서 눈은 신체와 영혼을 아우르는 기호이다. 그 눈에서 흐르는 물은 물론 별이다. 상화 시의 감각과 예지는 신체나 길에 있다기보다는, 영혼이나마음의 막다른 띠집(「單調」)에 있다. 그것은 아름답고 슬픈 노래이며, 띠처럼 칡넝쿨처럼, 끊어질 듯 이어져 있는 게 특징이다.(벙어리같은 아픈설음이 츩넝쿨같이 몇날몇해나 얽히여 트러,「逆天」). 시인의 눈은 어두울수록 더욱 빛나는 별이다. 때로는몬지투성인 지붕우로/달이 머리를 쳐(「달밤―都會」)들 듯 달을 향하기도 한다.
■ 참고. 2020, 2021 상화유적답사 (지도: 김상환)
https://www.youtube.com/watch?v=xLLEzVjbVZc. https://www.youtube.com/watch?v=_XkyM7H1sQ4
2. 생명의 시인 尙火
a. 시란 것은 가장 산듯한 생명의 발자국 (「지난 달 시와 소설」, 개벽 60호, 1925년 6월호)
b. 시는 생명의 본질을 말한 것이다. 그러고보면 현실에서 나올 시, 곧 현재할 시는 반드시 자연과의 종합성을 깨친 것이라야 할 것이다. 나는 사람이면서 자연의 성분인 것ㅡ 말하자면나라는 한 개체가 모든 개체들과 관계있는 전부로 된 것이라야 할 것이다. (「시의 생활화」, 조선일보 1925년 6월 30일)
c. 자연은 언제 무엇에게든지 비극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주는 것이다. (「出家者의 遺書」, 개벽 57호, 1925년 3월호)
d. 언어도 생명. (「傍白」, 개벽 63호, 1925년 11월호)
윤리와 미학, 시와 삶의 양립이 불가능한 시대, 그 불가능의 가능성을 시적으로 현현하기 위해 이상화는 가장 위험하게 살았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비극의 형이상학적 의미, 비非의 시학적 의미가 새롭게 요청되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그런가하면, 상화의 시와 미의식에는 생명 또는 신령에 수반되는 울음과 울림, 혼魂과 초월이 있다(ᄭᅡ치가 ᄲᅧ만남은 나무가지에서 울음을운다,「겨울 마음」). 까치와 뼈가 검은 빛이라면, 나뭇가지는 그 비非의 시가 거주하는 장소다. 특히 근대시의 면모를 지닌‘언어 생명’으로서 방백(言語 生命,「傍白」)은 들리면서도 들리지 않는 즉卽의 언어이자, 프론트Front 구조를 갖는다.
3. 相和, 시의 의식과 세계
3.1. 모든것은 변하는대서 아름다움이잇고 목숨이나오게되는것이다. 한갈가티 잇다는그것은 깁븜도 설음도업는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사라잇대도 썩어지는것이다. 대채로 사람이 산다고하는그것은 슬픔이란 날과 깁븜이란 씨로 목숨이란 한필베를 는동안을 가라친것일것이다. 슬픔만잇서도 슬픈줄을 모를것이고 깁븜만잇서도 깁븐줄을 모를것이다. 깁븜이 잇기에 슬퍼하고 슬픔이 잇기에 깁버한다 세상에 가진것이 나기에 업서지고 업서지기에 나는것과 마찬가지로. (산문「心境一枚」, 문예운동 2호, 1926.)
3.2.「시인(詩人)에게」
한 편(篇)의 시(詩) 그것으로
새로운 세계(世界) 하나를 낳아야 할 줄 깨칠 그때라야
시인(詩人)아 너의 존재(存在)가
비로소 우주(宇宙)에게 없지 못할 너로 알려질 것이다
가뭄 든 논께에는 청개구리의 울음이 있어야 하듯-
새 세계(世界)란 속에서도
마음과 몸이 갈려 사는 줄풍류만 나와보아라
시인(詩人)아 너의 목숨은
진저리나는 절름발이 노릇을 아직도 하는 것이다.
언제든지 일식(日飾)된 해가 돋으면 뭣하며 진들 어떠랴
시인(詩人)아 너의 영광(榮光)은
미친 개꼬리도 밟는 어린애의 짬 없는 그 마음이 되어
밤이라도 낮이라도
새 세계(世界)를 낳으려 소댄 자국이 시(詩)가 될 때에- 있다.
촛불로 날아들어 죽어도 아름다운 나비를 보아라.
3.3. 상화의 시와 세계
3.3.1. 음영陰影의 시와 윤리적 감각
이상화의 시에서 비非는 다른 한편으로 비悲의 성격을 갖고 있어 비극적 상황에 대한 음영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는 신체적이고 윤리적인 감각이 수반되어 있으며 외부 지향적이다. 대표작인「ᄲᅢ앗긴들에도, 봄은오는가」와「나의 寢室로」를 비롯해「金剛頌歌」와「暴風雨를 기다리는 마음」,「緋音」과「夢幻病」등이 그것이다.
「ᄲᅢ앗긴들에도, 봄은오는가」의 경우도 현실과 환상의 국면이 뒤섞여 있다. 발화자인 나는 아지랑이 피는 봄의 들길을 걸어가며 나와 또다른 나, 즉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의식하고 있다.(내맘에는 내혼자온 것 갓지를 안쿠나) 하늘과 들은 입술을 다문 채 침묵하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봄이라는 신령神靈은 나로 하여금 혼의 방황을 유도하고 있다. 그 방황은ᄭᅳᆺ도업이 (내)닷는 내혼에서 야기된다. 부재와 상실의 감정은 사라졌으나 나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혼으로 말미암아 헤맨다. 그러나 지금은 들(판)의 현실은 말할 것도 없고, 봄의 환상마저 빼앗기게 될 처지다. 이런 막다른 상황에서 만나게 되는 자아가 곧 비존재다. 비-존재는 또다른 자아의 혼과 시선으로서,푸른한울 푸른들이 맛부튼 곳에 위치해 있다. 그것은 근원적 일자一者이거나,푸른웃슴 푸른 설움이 아우러진 사이를 말한다. 이 사이Zwischen라는 존재는 시원Anfang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나누고 잇는 특징이 있다.그 결과 상화는 부재와 상실의 시대, 환상이라는 현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그 길은 겨울과 봄 사이에 있고, 거기엔 기쁨과 슬픔의 윤리와 비밀이 내재해 있다.詩人은 항상 變轉하는 現實과 永遠한 것을 同時에본다. 상화의 시에는 찬가와 비가, 시是와 비非가 한데 어우러져 있어달밤에 선지피를 뱉아 우는 두견새의 울음과황홀한 詩의 누리가 바로 그의 시가 차지하는 영토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나의 寢室로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속에만 있어라「내말」
「마돈나」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疲困)하여 돌아가려는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水蜜桃)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
「마돈나」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遺傳)하던 진주(眞珠)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도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덧 첫닭이 울고– 뭇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둔 침실(寢室)로 가자. 침실(寢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국- 오, 너의 것이냐?
「마돈나」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맘의 촉(燭)불을 봐라,
양(羊)털 같은 바람결에도 질식(窒息)이 되어 얄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오너라 가자. 앞산 그르매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이곳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는지- 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마돈나」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무나, 사원(寺院)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이 내 목을 안아라, 우리도 이 밤과 같이,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마돈나」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寢室) 열 이도 없느니!
아,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같이 가볍게 오려무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마돈나」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내 몸에 파란 피- 가슴의 샘이, 말라버린 듯, 마음과 목이 타려는도다.
「마돈나」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테면, 우리가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믿는「마리아」- 내 침실(寢室)이 부활(復活)의 동굴(洞窟)임을 네야 알련만 …….
「마돈나」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그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으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歲月) 모르는 나의 침실(寢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 물결도 잦아지려는도다.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나의 寢室로」가마돈나(외부) ― 외나무다리(매개항) ― 침실(내부)의 구조로 되어 있다면,「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나(출발) ― 들판(매개항) ― 맞붙은 곳(종착)으로 전개되어 각기 삼원 구조로 되어 있다.이런 분석과 시각은 비非의 시학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도 매우 새롭고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나의 寢室로」에서 침실이라는 비(밀)의 장소는復活의 洞窟에 해당한다. 부활의 동굴은 완전한 어둠도 아니고, 완전한 빛도 아니며. 반半음영으로 된 구멍을 말한다. 마돈나Madonna의 경우도성모 마리아와나의 아씨, 즉 성속聖俗의 사이 존재로 드러나 있다. 마돈나를 기다리는 새벽 시간도 경계가 모호한, 현묘玄妙한 시간이다. 이 시가 품고 있는 다른 하나의 비밀은 부제인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에 있다.오직 꿈속에서만 존재하는거기란 꿈이나 환상이 깃드는, 비의 장소를 말한다. 이곳에 거주하는 비의 시인은 철학적 인간에 해당한다. 니체의 말대로라면, 철학적 인간은 현실의 밑에 또하나의 현실, 완전히 다른 현실이 놓여있다는 예감을 갖고 있다. 이 때 다른 현실로서 환상은 새로운 현실 창조의 긍정적 계기이자 에너지로 작용한다. 환상은 더이상의 환상이 아니라“현실에 대한 전복”(로즈마리 잭슨,『환상성』)이며,“문학의 근본적인 충동”(캐서린 흄,『환상과 미메시스』)으로서 새로운 창작방법이다
3.3.2. 반음영半陰影의 시와 미학적 감각
반半음영의 시편들은 주로 미학적인 감각을 유지하고 있으며, 지성과 영혼을 위주로 하고 내향성을 갖는다. 여기엔「파-란 비」,「달밤-都會」,「原始的 悒鬱-漁村哀景」,「도쿄에서」,「叡智」,「저므는 놀 안에서-勞人의 劬苦를 읇조림」,「그날이 그립다」,「池畔靜景-把溪寺 龍沼에서」등이 있다.
파란 비
파란 비가「초―ㄱ초―ㄱ」명주 찢는 소리를 하고 오늘 낮부터 아직도
온다.
비를 부르는 개고리 소리 어쩐지 얼사년스러워 구슬픈 마음이 가슴에 밴다.
나는 마음을 다 쏟은 비누질에서 머리를 한번 쳐들고는 아득한 생각으로 빗소리를 듣는다.
「초―ㄱ초―ㄱ」내 울음같이 훌적이는 빗소리야 내 눈에도 이슬비가 속눈썹에 듣는구나.
날 맛도록 오기도 하는 파란 비라고 서러움이 아니다.
나는 이 봄이 되자 어머니와 오빠 말고 낯선 다른 이가 그리워졌다.
그러기에 나의 설움은 파란 비가 오면서부터 남 부끄러워 말은 못 하고 가슴 깊이 뿌리가 박혔다.
매몰스런 파란 비는 내가 지금 이와같이 구슬픈지는 꿈에도 모르고
「초―ㄱ초―ㄱ」나를 울린다
이 시에는 여성 화자의 순수한 정서와 미감이 소리의 상상력과 음성 상징어로 잘 드러나 있다. 그 소리는 시간의 추이에 따라 변화하며(비를 부르는 개고리소래 → 훌적이는 비소리 → 매몰스런 파―란 비), 차분하고 인상적인 느낌을 준다. 그에 따른 정서의 변화는구슬픔․아득함․서러움․그리움등으로 드러나 있다. 봄은 환각을 불러 일으킨다. 내리는 비雨에 색깔-파란색을 부여함으로써 신비감을 더하고 있다. 비非는명주ᄶᅵᆺ는 소리를 하고 있다. 그찢음은 세계와의 단절을 의미하기보다는, 낯선 것에 대한 감각을 환기한다.(봄이되자 어머니와 옵바말고 낫선다른이가 그리워젓다.) 여기서~말고혹은~낫선은 비非의 언어와 존재의 특성에 해당된다. 봄은 친숙하면서도 낯선 계절이다. 시가 먼 것에 대한 그리움과 내면의 언어라면, 소리의 정서와 상상력은 존재의 언어이자 울림의 세계다. (파란) 비가 오면서부터 비롯되는 나의 서러움은남붓그려 말은못하고혼자 애를 태우며, 내 마음을 추호도 몰라주는 데에 있다. 이와 관련해구슬프다,아득하다라는 술어는, 반半음영의 심리와 정서를 잘 보여 준다. 그런 만큼 그 실체가 모호한非 면이 있으며, 촉각적 이미지로 드러나 있다.초―ㄱ초―ㄱ하고 내리는, 빗소리에 대한 감-촉(초―ㄱ)이 바로 그것이다.
4. 더 읽을거리
그날이 그립다 / 이상화
내 생명(生命)의 새벽이 사라지도다
그립다 내 생명(生命)의 새벽- 서러워라 나 어릴 그 때도 지나간 검은 밤들과 같이 사라지려는도다
성녀(聖女)의 피수포(被首布)처럼 더러움의 손 입으로는 감히 대이기도 부끄럽던 아가씨의 목-젖가슴빛 같은 그때의 생명(生命)!
아 그날 그때에는 낮도 모르고 밤도 모르고 봄빛을 머금고 움돋던 나의 영(靈)이 저녁의 여울 위로 곤두박질치는 고기가 되어
술 취한 물결처럼 갈모로 춤을 추고 꽃심의 냄새를 뿜는 숨결로 아무 가림도 없는 노래를 잇대어 불렀다.
아 그날 그때에는 낮도 없이 밤도 없이 행복(幸福)의 시내가 내게로 흘러서 은(銀)칠한 웃음을 만들어만 내며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았고 눈물이 나와도 쓰린 줄 몰랐다.
내 목숨의 모두가 봄빛이기 때문에 울던 이도 나만 보면 웃어들 주었다.
아 그립다 내 생명(生命)의 새벽- 서러워라 나 어릴 그때도 지나간 검은 밤들과 같이 사라지려도다.
오늘 성경(聖經)속의 생명수(生命水)에 아무리 조촐하게 씻은 손으로도 감히 만지기에 부끄럽던 아가씨의 목-젖가슴 빛 같은 그때의 생명(生命)!
참고문헌
이기철, 이상화 전집, 문장사, 1982.
김상환, 비非의 시학: 이상화 시 다시읽기, 상화문학세미나(수성문화원 주관), 2016.
염 철, 시와 생활의 일치-새로 찾은 이상화의 시와 수필, 근대서지 제6호, 2012.
진순애, 1920년대 연애시와 사랑의 정치학: 이상화, 소월, 만해 시를 중심으로, 비평문학 32호, 2009.6.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