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억하는 방식 외 1편
이창수
비누가 사라졌다
칫솔이 보이질 않아 새로 샀다
허리띠와 속옷이 보이지 않았다
새로 산 시집이 사라졌다
하루걸러 술 마시던 친구도 사라졌다
머리 위에서 빛나던
조약별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은
머릿속에 남아 있다
집으로 가는 길모퉁이 교회당과
오리의 꽁지 물어
늙은 집사에게 혼나는
강아지는 그대로 남아 있다
집으로 가는 풍경 속에 살고 있는
오리와 강아지와 늙은 집사와
강물 위 떠도는 종소리가
혼신을 다해 나를 기억하고 있다
봄의 동력
매화나무에서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매화나무 울타리에
벌들이 구름 화물에서 날라 온 석탄 퍼붓고 있다
겨울에 어머니는 고운 옷 입고 화장하고
외할아버지 곁으로 아주 떠났다
겨울에서 봄까지 나는 쓸쓸해져서
어머니 없는 골목에 오래 서 있었지만
매화나무 공장에서 야근하는 일벌들
봄 울타리 여느라 분주하다
—이창수 시집, 『횡천橫川』 (문학세계사 / 2022)
이창수
1970년 전남 보성군 복내면 당촌에서 이형래의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1985년 광주진흥고등학교에 입학 문학동아리 <가문비>에 가입하였다. 오랜 방황 끝에 조태일 시인이 재직하던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했으나 시인이 되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계속 시를 썼으나 거듭 낙선하였다. 실망하여 소설로 진로를 바꾸려던 찰나에 시 전문지 『시안』 신인상에 「겨울 물오리」 등 5편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2000년 봄이었다. 2002년 대학원을 마치고 중앙대학교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에 입학하였다. 2004년 대산창작기금을 수혜 받아 첫 시집 『물오리사냥』을 냈다.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10년에 걸쳐 광주대, 중앙대, 목포대, 협성대 등에서 강의를 했다. 2010년 두 번째 시집 『귓속에서 운다』를 냈다. 2013년 말 광주로 내온 후 2015년 고향 보성에서 인문학 학교인 <(사)시가흐르는행복학교>를 만들어서 이사장을 맡았다. 2016년 보성 예총 초대 회장을 맡았으나 3년 만에 그만두고 광주로 올라와 광주 남구청의 지원을 받아 인문학 학교인 남구대학을 개설 운영했다. 현재는 광주광역시 남구청 홍보팀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