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겨울학기를 되돌아보며
잘살고 있는 건가.
세월이 갈수록 잘 살고있느냐 물음이 무겁다. 아이들과 있는 게 좋고 행복해서 교사로 살고 있다. 자주 절망하고 가끔 행복하라는 쇼펜하우어 말이 있지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덕분에 행복하게 가는 세월을 맞이하고 있다. 교사, 언제나 두려운 말이다. 아이들에게 얼마나 도움되고 있는지, 아이들 영혼을 살찌우는 사람으로 그 몫을 다했는지 날마다 되돌아보며 노릇과 위치를 생각한 시간은 줄곧 된다. 어쩌다 운명과 필연이 되어버린 선생님이라 불려온 교사의 길은 여전히 선택과 책임이다.
교사와 교장 사이
3,4학년 장구 수업, 6학년 영어수업 과목 선생 노릇, 달날과 쇠날 다 함께 아침열기와 마침회, 물날 낮 공부열기 이끌기, 모둠선생님 하루 쉬는 날 대신 모둠 선생 노릇, 자연속학교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지내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물날 점심 때 밥상 차림 공부는 교사대표가 잘 챙기고 있다. 특별하게는 교사로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을 다시 새기고자 높임말을 일상에서도 쓰려고 애썼다. 반말과 높임말이 섞인 적도 있으나 대체로 한 해 높임말을 쓰며 살아보니 높임말이 점점 더 편해져 간다. 높임말을 쓴다고 해서 어린이들과 관계가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고 편안했다. 어린이들을 더 존중하고 교사의 말이 지닌 힘을 생각하며 살려는 애씀으로, 교사로 살아가야 할 까닭을 스스로 성찰하는 노릇으로 잘 쓰이겠다. 자연속학교에서 오롯이 어린이들 속에 빠져 살아 어린이들의 자람과 관계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교사로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과목 선생과 대체 선생, 자연속학교 빼고는 교사실 컴퓨터 앞과 바깥 회의 일로 대표되는 교장 노릇에 집중하며 살았다. 작은 학교를 지키고 살찌우는 교육공동체 이끔이 노릇은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교사회와 부모회를 함께 살피며 교육공동체를 가꾸다보면 교사 편에서, 부모 편에서 아쉬운 눈길을 받을 때가 많고 심지어 어이없는 일을 당하기도 한다. 멀리서 두루 깊게 살피니 언제나 부족함 투성이다. 그 틈을 함께 사는 사람들이 채워주셔서 늘 고맙고 미안하다.
앞장서 방향과 전망을 세우고 함께 나누는 일은 그만한 듣기의 힘과 인내가 있어야 함을 날마다 깨닫는다. 어린이 삶을 가꾸고 어른이 함께 자라는 행복한 교육현장을 지켜가는 일에 수많은 분들이 곳곳에서 저마다 보이는 눈길에 따라 곳곳에서 알게 모르게 가꿔가고 있음에 늘 감격하며 쏟아지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보이는 만큼 아는 만큼 깨달은 만큼 살아가는 게 사림이다.
교장이 하는 바깥일은 회의와 서류, 만남인데 익숙함과 새로 만들어가야 하는 도전이 여전하다. 교육활동을 총괄하고 교육공동체를 가꾸고 살찌우는 일은 정확한 일 나누기로 할 수 없는 영역이다. 교육의 중심인 교사회를 챙기고, 교육환경을 뒷받침하는 부모회와 함께 교육공동체를 지키고 가꿔가는 일은 날마다 새 역사를 쓰는 일이다. 대안교육의 길이 그렇다. 안정과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교육운동의 정체성과 앞날을 여는 도전은 멈출 수 있는 게 우리 처지다.
하반기 네팔아이덱과 교육부와 교육청을 상대로 하는 포럼, 대안교육의 앞날을 위한 자리들인데, 올해 줄곧 맑은샘학교 혼자서 풀 수 없고 함께 연대해서 풀어야 하는 일에 애를 쓴 셈이다. 맑은샘의 앞날과 대안교육의 앞날은 다른 게 아님을 날마다 확인했다. 네팔아이덱은 우리가 가는 길에 대한 확신과 변화의 지점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기후위기와 디지털 시대, 불확실성이 높아가는 때, 급격한 인구 감소로 인해 신입생이 없는 때, 대안교육연대 대표를 맡아 맑은샘학교와 한국의 대안교육기관이 교육운동으로, 교육공동체학교를 유지할 수 방법에 대한 모색과 상상은 줄곧 됐다. 끝내 함께 해야 가능한 일들이다.
순리대로
가을겨울 들어 마음에서 내려놓으니 후련한 게 사람 관계의 질이다. 부부라고 그 사람을 다 알 수는 없듯이 오래 같이 한 곳에 있었다고 관계의 질이 깊어지고 사랑하는 마음이 유지되지는 않는다. 중용에 나오는 지극한 정성, 그만한 애씀이 있어야 나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런데 그 지극한 정성을 빼니, 사람 관계에서 줄곧 기다리고 나서서 살피려는 일을 어느 정도 내려놓으니 적당한 마음의 평화가 있고 그것도 살만하다. 먼저 다가서지 않는 사람에게 더 정성을 쏟고 애를 쓰려는 것도 욕심이고, 기대를 하는 것도 다 내 욕심일 뿐이다. 다들 제 자리에서 잘 살고 있고, 저마다 한 번 뿐인 인생 알아서 잘 살면 그만인 것을 굳이 드러내서 풀려고 하고 할 필요가 있을까 싶으니 마음의 불편함과 어색함도 사라진다. 쏟아지는 일에 집중하면 익숙해가는 게 삶이다. 교사회 앞날과 학교의 앞날을 걱정하며 혼자 애를 끊여봤자 제 살 파먹기다.
세상은 나 없이도 잘 굴러가고, 누군가 그만한 열정과 책임으로 교육공동체를 가꾸는 게 순리다. 멘탈이 약한 사람이 센 척처럼 보이는 것도 바꿔야 할 때인 걸 깨닫고 또 잊고를 반복한다. 부디 입을 다스리는 글을 되뇌며 반성과 성찰로 마음을 다스리고, 읊조릴 때다. 욕심을 내려놓고 순리대로.
체력이 열정이다.
부모님 유전자 덕분에 수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체력에 고마워하고 살았는데, 다시 한번 열정의 동력에는 몸의 건강과 체력에 달려있음을 느낀다. 대안교육기관 교사로 교장으로 마을활동가로 살아가는 밑바탕에 체력이 있다. 대안학교 교사를 하려고 마음먹을 때, 신입교사를 모실 때마다 묻던 질문이 핵심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키워가는 일이 교육이라고 말씀하신 이오덕 선생님 말씀은 교사의 길을 걷는 어른들에게도 똑 같이 적용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키워가는 일을 오래할 수 있다. 그러니 스스로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한지 더 절실하게 묻는다. 열정과 책임은 동전의 앞뒤와 같듯, 체력은 열정을 뒷받침하고 오래가도록 만들어준다. 몸을 돌보고 영성을 살리는 교육 속으로 또 거듭나야지 교사의 길을 갈 수 있겠다 스스로 새겨본다.
갈무리할 때
안식년을 가지 않고 시작한 교장 임기를 한 해 남기고 있다. 대표교사와 교장으로 살아온 세월이 꽤 길었다. 직을 맡지 않더라도 학교 앞날과 교육과정 확대를 위해 할 일을 늘 조직해온 세월이다. 교사로 마을로 교육과정을 확대하고, 안정된 교육과정으로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애씀으로 교육과정을 다듬고 맑은샘학교만의 특징과 특색이 충분히 드러나도록 부족하지만 연구와 발표를 해왔다. 학교 운영과 행정을 위해 해 온 일은 스스로 생각해도 많다. 주말과 밤낮 상관없이 학교 일을 해온 삶을 두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티나지 않는 일들을 굳이 만들어 사서 고생을 한다는 말을 들어도 스스로 좋아하는 일에 헌신하는 즐거움을 누렸으니 행복했다. 이제 하나둘 살아온 그간의 과정을 갈무리할 때다. 학교의 여러 일들을 여러 사람들과 초기에 설계하거나 가지치기를 해온 교사로 할 일이 있고, 학교 운영과 행정을 오랫동안 총괄해온 노릇으로 분류하고 넘기고 정리해야 할 것들이 눈에 보인다. 한 분야에서 집중해서 살아온 세월과 그동안 배움의 연습으로 감각으로 들어오는 것도 많다. 교사로 교육과정의 성과를 정리하고 기록하는 일, 사회적협동조합 영역에서 담아야 할 일, 마을에서 할 일, 가장과 시민으로 할 일 들을 그려보고 스스로 할 일, 함께 할 일들을 가늠할 때다. 교사의 길을 성찰하고, 열정과 책임으로 앞날을 열어갈 때다.
첫댓글 혼자서 열일하시는 교장선생님 덕분에 학교가 원활하게 굴러가네요. 항상 고마운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