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인 존 켈로그는 당시 채식 생활을 강조하는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었고,
동생은 형의 요양원에서 매니저로 일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형제는 25인분의 밀반죽을 만들다가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었고,
시간이 지난 후 형제는 딱딱하게 굳은 밀반죽을 발견하게 된다.
굳어버린 밀반죽을 버리기 아까웠던 켈로그 형제는 고민 끝에 이를 롤러에 넣고 돌렸고,
이내 딱딱하게 굳은 조각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를 불에 구워 요양원 아침식사로 내놓았고, 환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것.
현재는 이것이 오늘날에 시리얼이 되었다.
1905년 11살짜리 프랑크 엠퍼스는
어느 날 현관에 소다 주스가 담긴 컵을 젓는데
사용된 막대기를 컵에 그대로 놔두었다.
다음 날 추운 날씨 탓에 음료수는 얼어버렸고,
이를 본 프랭크가 막대기를 잡아당기자
얼어버린 음료수까지 함께 나오고 말았다.
이것이 지금의 아이스바가 된 계기다.
감자칩
요리사 조지 크럼이 운영하던 식당에 어느 날 한 손님이
감자튀김이 두껍다며 얇게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손님에 요청에 따라 조지 크럼은 계속해서 얇게 만들어줬음에도 불구하고,
손님은 더욱더 얇게 만들어주라고 요청했고 크럼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오게 된다.
크럼은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손님을 골탕 먹이기 위해
포크로 찍을 수 없을 정도의 얇기로 감자를 썰어 튀겨 주었다.
그런데 손님은 오히려 크럼의 요리에 만족을 하였고,
크럼은 이 요리를 사라토가 칩(Saratoga chips)라고 부르며
정식적으로 식당에서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의 감자칩이 되었다.
초코칩 쿠키
1930년대 미국의 한 고속도로 휴게소 직원 루크 웨이크필드는
초콜릿 쿠키 반죽을 준비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루크는 일반 밀가루 반죽에 초콜릿 칩을 넣었다.
초콜릿이 녹으면서 초콜릿 반죽처럼 갈색으로 변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루크의 예상과 달리 초콜릿이 그대로 박힌 쿠키가 완성됐고
이것이 지금의 초코칩 쿠키의 시초가 됐다.
브라우니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과 달콤한 맛이 매력적인 브라우니는
미국에서 초콜릿 케이크를 구우려던 한 여성이 실수로 베이킹파우더를 넣지 않아 탄생하게 됐다.
이 여성은 버리기엔 아까워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줬고 케이크와는 또 다른 식감에 모두 좋아했다고 한다.
와플
1970년대 영국의 한 식당의 요리사는
팬케이크를 굽다가 실수로 겉면에 홈을 만들었다.
요리사는 그 순간 팬케이크에 홈이 있다면
시럽과 버터가 옆으로 흐르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와플의 탄생 비화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며, 이는 그 중에 하나다.)
쫄면
1970년대 인천 중구 경동에 위치한 제면 공장 직원이
면을 뽑아내는 사출기 구멍을 잘못 맞춰서
기존 냉면에 들어갈 면발보다 훨씬 굵은 면발이 나왔다.
이것을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워서 근처 분식집에 갖다 줬고,
분식집에서는 고추장 양념에 비벼서 팔던 것이 쫄면의 유래라고 한다.
그리고 쫄면을 처음으로 판매한 분식집이
현재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신포 우리 만두’다.
(항간에는 쫄면의 유래가 당시 제면 회사가 뚝뚝 끊기는 면이 싫어서
탄력 있는 면을 만들기 위해 실험을 하면서 탄생되었다는 설도 있다.)
고추장 떡볶이
1953년 신당동 마복림 할머니가 중국음식점에서
가래떡을 실수로 자장면 그릇에 떨어뜨렸는데 떡 맛이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것을 아이디어로 착안,
고추장에 떡볶이를 버무려 파는 것이 지금의 고추장 떡볶이의 유래라고 한다.
대패 삼겹살
지난 2013년 요리 연구가 백종원은
SBS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해
대패삼겹살이 자신이 개발했다고 밝혔다.
백종원은 과거 고기를 직접 썰기 위해
기계를 사러 갔지만 실수로 햄 써는 기계를 사고 말았다.
이에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고기를 썰었고, 썬 고기를 본 사람이
“이게 무슨 삼겹살이냐. 대팻밥 같다”라고 해서
대패 삼겹살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설명했다.
^^길거리 음식의 탄생 비화 5^^
호떡
호떡의 ‘호(胡)’는 ‘오랑캐 호’ 자로, 오랑캐의 떡이란 뜻이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나라가 조선에 육군을 파견했다.
이때 함께 들어온 청나라 상인들이 청나라가 망한 뒤에도
본토로 돌아가지 않고 생계를 위해 만두와 호떡 같은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
이들은 점차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맞게 호떡 안에 조청이나 꿀, 흑설탕 등을 넣어
다양하게 만들어내면서 우리나라의 국민 간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호빵
호떡이 ‘오랑캐의 떡’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탓에,
자칫하면 호빵이 ‘오랑캐의 빵’이라는 오해를 하기가 쉽지만
사실 호빵은 오랑캐와 관련이 없다.
호빵을 처음 만든 건 1971년 삼립식품이다.
“뜨거워서 호호 불어먹는 빵”이라는 뜻에서 호빵이라고 작명했다.
삼립식품 창업자인 고(故) 허창성 SPC그룹 명예회장은
1960년대 일본을 방문했다가 거리에서 파는 찐빵을 보고 착안했다고 한다.
계란빵
한국 계란빵은 1980년대 인하대 후문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계란빵 하나에 계란 한 개가 고스란히 들어가 달달한 맛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계란빵의 원조는 중국에서 팔리는 계단빵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화교에 의해 한국에서 팔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천에서 주로 팔리다가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를 끌며 점차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와플
요즘 국내에서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와플은 벨기에에서 전해졌다.
주로 유럽 지역에서만 먹던 와플은
1620년 영국 청교도들이 와플 기계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온 후 여러 대륙에 전해졌다.
특히 홍대, 명동 등 길거리 노점상이 활성화되면서
와플은 더욱 익숙한 간식거리로 자리 잡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떡볶이
길거리 음식의 대표주자인 떡볶이가 탄생한 비화는 이렇다.
한국 전쟁 당시 피난살이로 궁핍했던 시절,
마복림 할머니가 중국집에 가게 되었다.
너무도 맛있게 먹는 식구들을 보면서 차마 음식에 손을 못 대던 할머니는
개업식용 공짜 떡으로 허기를 채우게 되었는데
먹다가 그만 자장면 그릇에 떡을 빠뜨리게 되었다.
자장면 양념이 묻은 떡은 생각보다 맛이 좋았고,
춘장이 비싸서 고추장 양념을 대신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일화로 떡볶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