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이야기하면서 공자님 말씀까지 거론하기는 어색하지만, 어쨌든 일찍이 공자님께서 ‘지미(知味)’라는 말씀을 사용하셨다. 중용(中庸)에 나오는 단어로 이 부분의 원문은 “인막불음식야(人莫不飮食也) 선능지미야(鮮能知味也)”라는 표현이다. “세상 사람이라면 누구든 마시고 먹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음식의 진정한 맛을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다”로 해석된다.
경북 영양 지방에서 발견된 안동 장 씨 할머니(장계향)가 쓴 조리서의 이름이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이다. ‘디미’라고 발음하지만 역시 ‘지미(知味)’가 들어 있다. 궁중에서 “음식을 맛보는 일”을 ‘지미’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미’는 음식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노는 맛’ ‘일하는 맛’ 나아가서는 인생의 깊은 맛을 의미하기도 한다.
호남음식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나오는 단어가 ‘개미’다. “호남음식에는 개미가 있다” 혹은 “개미가 있어야 호남음식이다”는 식으로 사용한다. ‘개미’는 모든 맛이 어우러진 음식의 깊고 오묘한 맛 정도로 해석된다.
‘지미’와 ‘개미’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개미’가 혹시 ‘지미’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쨌든, “호남음식도 예전과 다르다”고 이야기하지만 제대로 된 호남음식의 깊고 오묘한 맛에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 역시, 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는 뜻이다.
서울에서 맛볼 수 있는 호남음식, 호남음식점들을 소개한다. 풍성한 호남음식들을 내놓는 집들 위주니 아무래도 단가는 얼마쯤 비싸다. 가격은 상대적인 것이다. 6,000 원짜리 별 반찬 없는 백반(白飯)이 비싼 경우도 있지만 3만원 식탁이 오히려 싸다고 느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연말이 다가온다.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는 분들을 위해서 한번쯤 ‘과용(過用)’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모임을 가지기 좋은 집들을 소개한다.
호남음식의 시작은 삼청동 입구 원서동의 ‘장원’이다. 역사가 무려 60년에 가까워진다. 음식도 좋지만 식당 군데군데 장식된 기물들이 수준급이다. 예전에 호남에 있는 음식점들을 가면 반드시 수준급의 그림이나 글씨 한두 점은 있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장원’이 그러하다. 자개농이나 도자기, 병풍 등이 예사롭지 않다.
1958년 지금은 고인이 된 주정순씨가 처음 문을 열었다. ‘장원’은 한때 한국 ‘밀실정치’의 원조로 불렸다. 당대의 유명한 정치인, 경제인들이 모두 단골 고객들이었다. 물론 대통령을 비롯해 국무총리, 당 대표 등이 모두 단골 혹은 손님이었다. 주정순씨는 고향이 목포로 시집이 “잔치를 하면 최소 10일을 하는” 부호 집안이었다. 손이 커서 음식이 넉넉하고 맛은 호남의 깊은 맛 즉, ‘개미’를 제대로 보여 주었다.
지금은 따님 문수정씨가 어머니를 잇고 있다. 주정순씨는 본인뿐만 아니라 종업원에게도 ‘고객들의 비밀유지’에 엄격했다. 여러 차례 ‘장원’에 드나드는 손님들에 대한 인터뷰나 단행본 출간 제의가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알려진다. 게 탕수와 홍어, 굴비 등이 유별나지만 역시 시래기 된장무침 등 별다른 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기본 반찬들과 젓갈들이 탁월하다. 1, 2층을 모두 사용하고 2층은 단체 예약도 가능하다. 단체인 경우 음식을 맞춤형으로 주문할 수도 있다.
호남사람이 운영하고 호남음식이 주류이지만, 반가의 음식과 궁중음식을 적절히 배합한 음식은 종로구 운니동의 ‘송죽헌’에서 만날 수 있다. 흔히 ‘한정식(韓定食)’이라고 표현하지만 한상차림에 가까운 한식, 호남한식이다. 앞서서 몇몇 요리들이 나오지만 결국 한상 위에 음식들이 대부분 모이는 식이다. 대부분이 호남음식이지만 수수전병을 둥글게 만 것이나 쇠고기 구이, 삼치조림 등은 ‘호남스럽지 않은’ 음식들이다. 식당 측도 “호남음식을 위주로 맛있는 다른 지역 음식들을 섞었다”고 이야기한다. ‘풀치 무침’이나 굴비젓갈을 포함한 젓갈 5종류 등이 별미다. 가격은 역시 높다.
2호선 교대역 부근의 ‘토담’도 수준급의 호남음식점이다. 특이하게도 점심식사를 1만 원대에 내놓고 있다. 반찬가짓수도 10종류를 넘기고 양도 푸짐하니 인근 직장인들이 편하게 와서 식사한다. 저녁식사도 2, 3만 원대로 제법 푸짐한 호남한식 상을 받을 수 있다. 역시 주인의 손이 커서 음식양도 푸짐하고 맛도 수준급의 호남한식이다. 코다리조림이나 시래기된장조림, 각종 전 종류, 굴비 등이 수준급이다. 물론 장맛은 따질 필요가 없다.
강남 교보문고 사거리 부근에서 역삼동 국기원 부근으로 이사한 ‘천일관’도 이미 유명한 호남음식점이다. 단점은 가격이 역시 만만치 않다는 점. 해남 ‘천일관’과 같은 집안 출신이 주인이다. 음식의 수준도 좋지만 역시 장이나 김치 종류가 좋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집으로 신사동 사거리 부근의 ‘진수성’도 추천할 만한 집이다. 음식 수준은 타박할 부분이 없으나 주인 여자의 ‘입담’이 대단하니 걸쭉한 남도 사투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저녁식사 위주로 1인당 5만~6만 원이고 문어 구이를 비롯해 홍어 등을 위주로 각종 김치류와 장, 굴 무침 등이 나온다. 묵은 지와 문어를 불판에 구워먹는 맛이 일품이다. 반찬류는 매일 달라진다.
이 외에도 마포 ‘호남식당’의 가격이 낮으면서도 푸짐한 밥상과 해산물, 특히 ‘낙지탕탕’이나 갈치조림 장둥이 탕이 좋은 논현동 ‘목포자매집’ 등이 권할 만한 호남한식당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