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왕장구상(梁惠王章句上) 제일(第一)
凡七章. 모두 7장이다. 양혜왕상 제1장.
孟子見梁惠王 맹자가 양혜왕을 알현하였다.
梁惠王, 魏侯罃也. 都大梁, 僭稱王, 謚曰惠. 양혜왕은 위나라 제후 罃(앵)이다. 대량에 도읍을 정하였는데, 왕을 참칭하였다. 시호는 혜라고 말했다.
趙氏曰 按魏初都安邑在漢河東郡安邑縣 至惠王徙大梁在漢陳留郡浚儀縣 조씨가 말하길, “살펴보건대, 위나라 처음 도읍인 안읍은 한나라 하동군 안읍현에 있었다. 혜왕에 이르러, 대량으로 이사하였는데, 한나라 진류군 준의현에 있다.”라고 하였다.
『史記』: “惠王三十五年, 卑禮厚幣以招賢者, 而孟軻至梁.” 사기에 “혜왕 35년에 예를 갖추어(卑禮: 자신을 낮추는 예의) 후한 폐백으로 현자를 불렀는데, 맹가도 양나라에 이르렀다.”라고 되어 있다.
新安倪氏曰 按綱目周顯王三十三年乙酉爲惠王三十五年 신안예씨가 말하길, “통감강목을 살펴보건대, 주현왕 33년 을유년은 양혜왕 35년이 된다.”라고 하였다. 問孟子不見諸侯其見惠王 何也 朱子曰 不見諸侯 不先往見也 見惠王荅其禮也 先王之禮未仕不得見諸侯 時士鮮自重而孟子猶守此禮 故所居之國未仕 必君先就見 然後往見 異國君不得越境 必以禮先焉 然後往荅其禮耳 史記得其事之實矣 누군가 묻기를, “맹자는 제후들을 만나지 않았는데, 양혜왕을 만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제후를 만나지 않았다는 것은 먼저 가서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양혜왕을 만난 것은 그 예에 답한 것이다. 선왕의 예에 따라면, 벼슬하지 않으면, 그 제후를 만나볼 수 없었다. 당시 선비들은 자중하는 사람이 드물었지만, 맹자는 오히려 이 예절을 지켰다. 그래서 거처하는 나라에 出仕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임금이 먼저 나아가 만난 연후에 가서 임금을 만났던 것이다. 다른 나라의 임금은 국경을 넘을 수 없었기에, 반드시 예물로 먼저 초빙한 연후에, 가서 그 예에 답했을 뿐이다. 사기에서 그러한 일의 實例를 얻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
王曰 叟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왕이 말했다. "어르신께서 천리를 멀게 여기지 않고 오셨으니, 또한 장차 내 나라를 이롭게 함이 있겠습니까?
叟, 長老之稱. 王所謂利, 蓋富國彊兵之類. 叟란 나이 많은 어른의 호칭이다. 왕이 말한 이른바 이롭게 한다라는 것은 대개 부국강병의 부류다. 西山眞氏曰 當時王道不明 人心陷溺 惟知有利而已 故惠王利國之問發於見賢之初 서산진씨가 말하길, “당시에는 王道가 밝지 않고, 인심이 타락하여, 오직 이로움이 있음을 알았을 따름이다. 그래서 양혜왕이 나라를 이롭게 하는 질문을 현자를 만나는 처음에 발표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孟子對曰 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맹자가 말하였다. "왕은 하필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仁者, 心之德, 愛之理; 義者, 心之制, 事之宜也. 인이라는 것은 마음의 덕이고, 사랑의 이치다. 의로움이라는 것은 마음의 절제(제재)고 일의 마땅함이다.
朱子曰 仁言心之德 見得可包四者 義者心之制 只是說義 주자가 말하길, “仁을 마음의 덕이라고 말하였는데, 네 가지(仁義禮智)를 포함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義라는 것은 마음의 절제라고 한 것은 그저 義만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心之德是渾淪說 愛之理方說到親切處 心之制是說義之體 程子所謂處物爲義 是也 事之宜是就千條萬緖各有所宜處說 揚雄言義以宜之 韓愈言行而宜之之謂義 若只以義爲宜 則義有在外意思 須如程子所言 則處物者在心而非外也 事之宜 雖若在外 然所以制其宜 則在心也 마음의 덕은 순수하게 말한 것이고, 사랑의 이치는 바야흐로 친절한 부분까지 말한 것이며, 마음의 절제는 義의 體를 말한 것이다. 정자가 말한 이른바 외물에 대처하는 것이 의가 됨이 바로 이것이다. 일의 마땅함은 천 갈래 만 가지 모두 각자 마땅한 바가 있다는 부분에 나아가 말한 것이다. 양웅은 義로써 합당하게 한다고 말하였고, 한유는 행하되 그것을 마땅하게 하는 것을 일컬어 義라고 한다고 말했다. 만약 그저 義를 마땅함이라고 여길 뿐이라면, 義는 밖에 있는 것이라는 뜻이 있다. 반드시 정자가 말한 바처럼 한다면, 외물에 대처하는 것은 마음에 있는 것이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일의 마땅함은 비록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 마땅함을 제어하는 것은 곧 마음에 있는 것이다.
心之制 如利斧事來劈將去 可底 從這一邊去 不可底 從那一邊去 마음의 절제라는 것은 마치 잘 드는 도끼에 일이 와서 쪼개져 나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가능하면 이쪽을 따라서 가고, 불가능하면 저쪽을 따라서 가는 것이다.
仁兼義言者是言體 專言者是兼體用而言 仁에 있어서, 義를 겸해서 말한 것은 體를 말한 것이고, 오로지 仁만 말한 것은 體와 用을 겸해서 말한 것이다.
仁對義爲體用 仁又自有仁之體用 義又自有義之體用 仁은 義에 대응하여 體와 用이 되지만, 仁에는 또한 스스로 仁의 體와 用이 있고, 義에도 또한 義의 體와 用이 있다.
所謂事之宜方是指那事物當然之理 未說到處置合宜處也 이른바 일의 마땅함이란 바야흐로 저 사물의 당연한 이치를 가리키는 것이지, 처치가 합당한 부분까지 언급한 것은 아니다.
問人所以爲性者五 獨擧仁義 何也 曰 天地所以生物 不過陰陽五行 而五行實一陰陽也 人性雖有五 然曰仁義 則大端已擧矣 以陰陽五行言 則木火皆陽 金水皆陰而土無不在 以性言 則禮者仁之餘 智者義之歸 而信亦無不在也 又曰 禮者仁之著 智者義之藏 又曰 仁存諸心 性之所以爲體也 義制夫事 性之所以爲用也 然以性言之 則皆體也 以情言之 則皆用也 以陰陽言之 則義體而仁用也 以存心制事言之 則仁體而義用也 錯綜交羅 惟其所當而各有條理焉 누군가 묻기를, “사람이 性으로 여기는 것은 다섯인데, 유독 仁義만 거론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천지가 만물을 내는 것은 음양오행에 불과하지만, 오행은 사실 하나의 음양인 것이다. 사람의 본성에는 비록 다섯이 있지만, 仁義라고 말하면, 큰 단서가 이미 거론된 것이다. 음양오행으로 말하자면, 木과 火는 모두 양이고, 金과 水는 모두 음이되, 土는 없는 곳이 없다. 性으로 말하자면, 禮라는 것은 仁의 나머지이고, 智라는 것은 義의 귀결이되, 信은 또한 없는 곳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禮라는 것은 仁이 드러난 것이고, 智라는 것은 義가 감추어진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仁은 마음에 보존하는 것이니, 性이 體가 되는 까닭이다. 義는 무릇 일을 제어하는 것이니, 性이 用이 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性으로써 말하자면, 모두 體인 것이고, 情으로써 말하자면, 모두 用인 것이다. 음양으로 말하자면, 義는 體이고 仁은 用이다. 마음을 보존하고 일을 제어하는 것으로써 말하자면, 仁은 體이고 義는 用이다. 얽히고 풀어짐에 있어, 오직 그것의 마땅한 바이면서도 각자 조리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疊山謝氏曰 夫子罕言仁 不過於隨事發見處言 孟子仁人心一語直說 仁之本體 此朱子於論註先言愛而孟註先言心 眞得孔孟之要旨 첩산사씨가 말하길, “공자께서는 仁에 대해 드물게 말씀하셨는데, 일에 따라 발현되는 곳에서 말씀하신 것에 불과하였다. 맹자의 ‘仁은 사람의 마음이다.’라는 한마디 말은 仁의 本體를 곧장 말한 것이다. 이에 주자는 논어집주에서 먼저 사랑을 말하였고, 맹자집주에서는 먼저 마음을 말하였으니, 진짜로 공맹의 요지를 터득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諸葛氏曰 語之爲仁 猶曰行仁 以仁之用言 故集註先言愛之理 孟子此章 以仁之體言 故集註先言心之德 제갈씨가 말하길, “논어의 爲仁은 仁을 행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이는 仁의 用으로써 말한 것이다. 그래서 논어집주에서 먼저 愛之理를 말한 것이다. 맹자의 이 장에서는 仁의 體로써 말한 것이기 때문에, 맹자집주에서 먼저 心之德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心之德是體 愛之理是用 心之制是體 事之宜是用 孟子所言仁義是包體用而言 論語所謂爲仁是以仁之用言 운봉호씨가 말하길, “마음의 덕은 體이고, 사랑의 이치는 用이다. 마음의 제어는 體이고, 일의 마땅함은 用이다. 맹자에서 말한 仁義는 體와 用을 포괄하여 말한 것이고, 논어에서 말한 爲仁은 仁의 用으로써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此二句乃一章之大指, 下文乃詳言之. 後多放此. 이 두 구절은 첫 번째 장의 큰 뜻인데, 아래의 글은 이를 상세하게 풀어 말한 것이다. 뒤에도 대부분 이를 모방하였다. 王曰 何以利吾國 大夫曰 何以利吾家 士庶人曰 何以利吾身 上下交征利而國危矣 萬乘之國弑其君者 必千乘之家 千乘之國弑其君者 必百乘之家 萬取千焉 千取百焉 不爲不多矣 苟爲後義而先利 不奪不饜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하시면, 대부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까 하며 사서인들은 어떻게 하면 내 몸을 이롭게 할까 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이를 취한다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입니다.
만승의 나라에서 그 군주를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천승을 가진 공경의 집안이요, 천승의 나라에서 그 군주를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백승을 가진 대부의 집안이니 만승에 천승을 취하며, 천승에 백승을 취함이 많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만일 의를 뒤로 하고 이를 먼저 하면, 빼앗지 아니하고서는 만족해 하지 않을 것입니다.
○此言求利之害, 以明上文何必曰利之意也. 征, 取也. 上取乎下, 下取乎上, 故曰: ‘交征’. 國危, 謂將有弑奪之禍. 乘, 車數也. 萬乘之國者, 天子畿內地方千里, 出車萬乘. 千乘之家者, 天子之公卿采地方百里, 出車千乘也. 千乘之國, 諸侯之國, 百乘之家, 諸侯之大夫也. 弑, 下殺上也. 饜, 足也. 言臣之於君, 每十分而取其一分, 亦已多矣. 若又以義爲後而以利爲先, 則不弑其君而盡奪之, 其心未肯以爲足也. 이는 이로움을 추구하는 것의 해로움을 말함으로써 윗글 ‘하필 이로움을 말씀하시는가?’의 뜻을 밝힌 것이다. 征은 취한다는 말이다. 위가 아래에서 취하고 아래는 위에서 취하기 때문에, 서로 취한다고 말한 것이다. 나라가 위태롭다는 것은 장차 시해하고 빼앗는 화가 생긴다는 말이다. 乘이란 수레의 숫자다. 만승의 나라란 천자의 직영지 안의 땅이 사방 천리이고 만승의 수레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천승의 가문이란 천자의 공경으로서 그 채읍의 땅이 사방 백리이고, 천승의 수레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천승의 나라란 제후의 나라이고, 백승의 가문은 제후의 대부인 것이다. 弑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饜은 만족하여 질려하는 것이다. 신하가 임금에게 있어 매번 10등분하여 그 하나를 취한다고 할지라도 또한 이미 많은 것인데, 만약 또 다시 의로움을 뒤로 하고 이로움을 앞세운다면, 곧 그 임금을 죽이고 그것을 모조리 다 빼앗지 않고서는 그 마음이 기꺼이 만족하려 하지 않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 前漢刑法志殷周以兵定天下矣 天下旣定戢藏干戈 敎以文德而猶立司馬之官 設六軍之衆(司馬掌邦政軍旅屬焉 萬二千五百人爲軍 王則六軍也) 因井田而制軍賦 地方一里爲井 井十爲通 通十爲成 成方十里 成十爲終 終十爲同 同方百里 同十爲封 封十爲畿 畿方千里 有稅有賦 稅以足食 賦以足兵 四井爲邑 四邑爲丘 丘十六井也 有戎馬一匹牛三頭 四丘爲甸 甸六十四井也 有戎馬四匹兵車一乘 牛十二頭 甲士三人(在車上者) 卒七十二人 干戈備具 是謂乘馬之法(一井八家 一甸六十四井 計田五百七十六頃 五百一十二家 出士卒七十五人 則殷周之制 不及七家給一兵也 又兵車一乘有牛馬共十六 計三十二家又出一馬或牛也) 一同百里 提封萬井(提擧也 擧四封之內也) 除山川沈斥城池邑 居園囿術路 三千六百井(沈斥水田寫鹵也 沈謂淵深 水之下也 斥鹹鹵之地 術大道也) 定出賦六千四百井 戎馬四百匹 兵車百乘 此卿大夫采地之大者也(采官也 因官食地 故曰采地) 是謂百乘之家 一封三百一十六里 提封十萬井 定出賦六萬四千井 戎馬四千匹 兵車千乘 此諸侯之大者也 是謂千乘之國 天子畿方千里 提封百萬井 定出賦六十四萬井 戎馬四萬匹 兵車萬乘 故稱萬乘之主 戎馬車徒干戈素具 전한 형법지에 따르면, 은나라와 주나라는 兵으로 천하를 평정하였지만, 천하가 이미 안정되자, 병장기를 거두어 감추었고, 문과 덕으로 가르쳤으며, 마침내 司馬의 관직을 세우고 6군의 무리를 설치하였다고 한다(사마는 나라의 정사를 관장하였는데, 軍旅도 그에게 배속되었다. 12,500명이 軍이 되는데, 천자는 6군이었다). 정전제를 바탕으로 軍賦(군대와 부세)를 제정하였는데, 사방 1리의 땅을 井으로 하였고, 井 10개를 通으로 하였으며, 通 10개를 成으로 하였다. 成은 사방 10리였다. 成 10개를 終으로 하였고, 終 10개를 同으로 하였는데, 同은 사방 100리였다. 同 10개를 封으로 하였고, 封 10개를 畿로 하였다. 畿는 사방 1,000리였다. 稅가 있고 賦가 있었으니, 稅로 양식을 풍족하게 하였고, 賦로 병사들을 풍족하게 하였다. 4井을 邑으로 삼았고, 4邑을 丘로 삼았는데, 1丘는 16井이었고, 융마 1필, 소 3마리가 있었다. 4丘를 甸으로 하였는데, 甸에는 64정이 있었고, 융마 4필, 병거 1승, 소 12마리, 갑사 3인(병거에 타는 사람이다), 병졸 72인이 있고, 병장기를 모두 갖추었다. 이것을 일컬어 승마지법(1정은 8家이니, 1甸에는 64정으로서, 계산하자면, 토지는 576경이고, 512家였으며, 갑사와 병졸 75명을 냈다. 그러한즉 은나라와 주나라의 제도는 7家에서 병사 1명을 공급하는 수준에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병거 1승에 소와 말이 모두 16마리였으니, 32家에서 또 소나 말 한 마리를 낸 것으로 계산된다)이라 하였다. 同 하나는 사방 100리였으니, 봉토를 다 들어서 10,000井인데(提는 擧다. 사방의 봉토 안의 땅을 모두 든 것이다), 산천과 沈斥과 城池, 邑居와 園囿 및 術路 3,600井(沈斥은 물 논과 소금밭이다. 沈은 깊은 연못 아래를 일컫고, 斥은 소금물이 나는 땅이다. 術은 큰 도로다)을 공제하고, 나머지 6,400井에 융마 400필, 병거 100승을 賦로 내도록 정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경대부의 采地 중에서 큰 것이다(采는 관직이다. 관직으로 인해 땅에서 거두어 밥을 먹으니, 이 때문에 채지라고 말한다). 이를 일컬어 百乘之家라고 하였다. 封 하나는 사방이 316리이니, 봉토 전체는 10만井인데, 6만 4천井에 융마 4,000필, 병거 1,000승을 賦로 내도록 정하였다. 이것이 바로 제후 중의 큰 것이니, 이를 일컬어 千乘之國이라 말했다. 천자의 畿(직할지)는 사방 1,000리이니, 봉토 전체는 100만井인데, 64만井에 융마 40,000필, 병거 10,000승을 賦로 내도록 정하였다. 이 때문에 萬乘之主라고 칭한 것이다. 융마와 병거와 병졸과 병장기는 평소 갖추고 있었다.
新安陳氏曰 以制地定法言 天子萬乘 諸侯取十之一 得千乘 諸侯千乘 大夫取十之一 得百乘 신안진씨가 말하길, “땅을 통제하고 법을 정함으로써 말하자면, 천자는 만승이니, 제후가 10분의 일을 취한다면, 천승을 얻고, 제후는 천승이니,대부가 그 10분의 일을 취한다면, 백승을 얻는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集註發明不奪不饜 最說得人心 求利之意 出蓋尙義則循理而有制 循利則橫流而無節 故不弑逆而盡奪之 其心猶有所不足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집주에서 빼앗지 않으면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어 밝힌 것이 사람의 마음이 이끗을 추구한다는 뜻임을 가장 잘 말해낸 것이다. 대체로 義를 숭상하면, 이치를 따라서 제어함이 있지만, 이끗을 따른다면 함부로 흘러 빠져서 절제함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윗사람을 시해하고 반역을 일으켜서 모조리 빼앗지 않으면, 그 마음에 아직도 부족한 바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此章始末兼言 仁義中單言義者 蓋仁有溫然慈愛之意 義有截然斷制之意 取其斷制以勝私去利 則義之用爲尤切 兼言仁義 該體用之全也 單言義 取功用之切也 下文仁施於親義施於君 此對君言之 故單言義亦通 신안진씨가 말하길, “이 장에서는 처음과 끝을 겸하여 말했는데, 仁義 중에서 단지 義만 말한 것은 대체로 仁에는 온화하고 자애롭다는 뜻이 있고, 義에는 확실하게 결단하고 제지한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결단하여 제어함을 취하여 사사로움을 이기고 이끗을 제거한다면, 義의 용이 더욱 절실하게 될 것이다. 仁義를 겸하여 말하는 것은 體用의 온전함을 갖추는 것이다. 義만 홀로 말하는 것은 功用의 절실함을 취하는 것이다. 아랫글에서 ‘부모에게 仁을 베풀고, 임금에게 義를 베푼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는 임금에 대하여 말한 것이기 때문에, 義만 홀로 말해도, 역시 통한다.”라고 하였다.
未有仁而遺其親者也 未有義而後其君者也. 어질고서 그 어버이를 버리는 자는 있지 않으며, 의롭고서 그 군주를 뒤로 하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此言仁義未嘗不利, 以明上文亦有仁義而已之意也. 遺, 猶棄也. 後, 不急也. 言仁者必愛其親, 義者必急其君. 故人君躬行仁義而無求利之心, 則其下化之, 自親戴於己也. 이것은 인의가 일찍이 이롭지 않은 적이 없었음을 말함으로써, 윗글의 ‘역시 인의가 있을 따름입니다’의 뜻을 밝힌 것이다. 遺란 버리는 것과 같다. 後는 급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진 사람은 반드시 그 부모를 사랑하고, 의로운 사람은 반드시 그 임금을 급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임금이 몸소 인의를 행하면서도 이로움을 추구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아랫사람도 그에 감화되어 저절로 자기 몸을 친애하고 떠받들게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朱子曰 仁者人也 其發則專主於愛而愛莫切於愛親 故人仁則必不遺其親矣 義者宜也 其發則事皆得其宜而所宜者莫大於尊君 故人義則必不後其君矣 주자가 말하길, “仁이라는 것은 사람이니, 그것이 발현되면 오로지 사랑에 주안점을 두지만, 사랑에는 부모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것이 없다. 그래서 사람이 어질면 반드시 자기 부모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義라는 것은 마땅함이니, 그것이 발현되면 일은 모두 그 합당함을 얻지만, 합당하게 하는 것 중에 임금을 높이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 그래서 사람이 의로우면 반드시 자기 임금을 뒤로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仁義心之固有 人君躬行仁義以感之 而無求利之心以誘之 則人心之固有者亦皆興起 而自然尊君親上有不待外求而勉强爲之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仁義는 마음에 본래부터 있던 것이니, 임금이 仁義를 직접 행함으로써 백성을 감화시키고, 이끗을 추구하는 마음을 없앰으로써 백성을 유도한다면, 사람 마음에 본래부터 있던 것이 모두 흥기해서, 자연히 임금을 높이고 윗사람을 친애함에 있어, 밖에서 구함을 기다려 억지로 행하지 아니함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人性有五 仁義爲先 人倫有五 君親爲先 所以孟子揭此於七篇之首 然此二句本文仁義二字 指下之人而言 集註必自人君躬行上說來者 蓋上文先言王 而後言大夫士庶 惟上之人求利而後下皆求利 故集註於此揭人君躬行仁義 而無求利之心 故其下化之而自有仁義之利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인성에는 5가지가 있는데, 仁義를 우선으로 한다. 인륜에는 5가지가 있는데, 임금과 부모를 우선으로 한다. 그래서 맹자가 이것을 7편 중의 첫머리에 게재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의 2구절과 본문의 仁義 2글자는 아랫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집주에서 반드시 임금이 몸소 행하는 것으로부터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대체로 윗글에서 왕을 먼저 말한 후에 대부와 선비와 서인을 말했기 때문이다. 오직 윗사람이 이끗을 추구한 후에 아랫사람들이 모두 이끗을 추구하기 때문에, 집주는 여기에서 임금이 仁義를 몸소 행하여 이끗을 추구하는 마음을 없앤다는 것을 게재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 아랫사람이 그에 감화되어 저절로 인의의 이로움이 생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倪氏曰 孟子謂何必曰利亦有仁義而已矣 是以利對仁義而分言之 集註於此節云仁義未嘗不利 是以仁義合利而貫言之 若與孟子上文有不同者 何哉 蓋有仁義中之利 有仁義外之利 外仁義以求利 孟子之所戒 此章之大旨也 行仁義而得利 集註之所發明 亦孟子此節之本意也 不遺其親卽是親親之仁 不後其君卽是尊君之義 豈非仁義中自然之利乎 신안예씨가 말하길, “맹자가 ‘어찌 하필이면 이끗을 말합니까? 또한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이끗으로 인의와 대조하여 구분해서 말한 것이다. 집주는 이 절에서 ‘仁義가 일찍이 이롭지 않은 적이 없었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仁義를 이로움과 합하여 꿰어서 말한 것이다. 마치 맹자의 윗글과 다른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대체로 仁義 안의 이로움도 있고, 仁義 밖의 이끗도 있기 때문이다. 仁義를 도외시하고서 이끗을 추구하는 것은 맹자가 경계하는 바이자, 이 장의 큰 뜻이다. 仁義를 행해서 이로움을 얻는다는 것은 집주가 드러내어 밝힌 바이자, 또한 맹자에서 이 절의 본래 뜻이다. 자기 부모를 버리지 않는 것은 곧 부모를 친애하는 仁이고, 자기 임금을 뒤로하지 않는 것은 곧 임금을 높이는 義이니, 이 어찌 仁義 안의 자연스러운 이로움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王亦曰仁義而已矣 何必曰利?” “왕께서 다만 인의를 말씀하실 따름일진대, 하필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라고 하였다.
重言之, 以結上文兩節之意. 거듭 말함으로써 윗글의 두 구절의 뜻을 종결하였다.
○ 此章言仁義根於人心之固有, 天理之公也. 利心生於物我之相形, 人欲之私也. 循天理, 則不求利而自無不利; 殉人欲, 則求利未得而害已隨之. 所謂毫釐之差, 千里之繆. 此『孟子』之書所以造端託始之深意, 學者所宜精察而明辨也. 이 장에서 말하길, 仁義는 사람 마음의 고유한 것에 뿌리를 두니, 천리(天理)의 공정함이고, 이끗을 탐하는 마음은 남과 나를 서로 비교함에서 생겨나는 것이니, 人欲의 사사로움이다. 하늘의 이치를 따른다면 곧 이로움을 추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롭지 않은 것이 없고, 사람의 욕심을 따른다면 곧 이로움을 추구해도 결국 얻지 못하면서 해로움이 이미 뒤따르고 있다. 이른바 ‘터럭 같은 차이가 천리나 벌어진다’는 말이 이것이다. 이는 <맹자>라는 책이 이로써 실마리를 만들어 처음을 맡긴 깊은 뜻이니, 배우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정밀하게 살피고 밝게 변별해야 할 것이다.
慶源輔氏曰 利心人本無之 只緣有己有物彼此相形便生出較短量長爭多競少之意 遂欲己長人短 人少己多 偏陂反側 惟己是徇 故曰 人欲之私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이끗을 추구하는 마음은 사람에게 본래는 없었다. 그저 내가 있고 남이 있어서 피차가 서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곧 짧고 긴 것을 비교하여 헤아리고, 많고 적음을 다투는 뜻이 생겨 나와서, 마침내 자기는 길고 남은 짧기를 바라며, 남은 적고 자기는 많기를 바라고, 치우치고 기울어져 전전반측하면서 오직 자기만 따르고자 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인욕의 사사로움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循天理者 無所爲而爲 故不求利 然成己成物 各得其宜 故自無不利 循人欲者 有所爲而爲 故雖求利而未必得 然妨人害物 招尤取禍 故害常隨之 경원보씨가 말하길, “天理를 따르는 자는 행하는 바가 없어도 행해지기 때문에, 이끗을 추구하지 않지만, 자신을 이루고 남을 이루어 주어서, 각자 그 합당함을 얻도록 한다. 그래서 저절로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인욕을 따르는 자는 행하는 바가 있어서 행해지기 때문에, 비록 이끗을 추구할지라도 반드시 얻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을 방해하고 외물에 해를 끼쳐서, 원망을 부르고 재앙을 취하기 때문에, 항상 해악이 뒤따라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覺軒蔡氏曰 學者細玩而已矣與何必之辭 見孟子語意 嚴厲斬釘截鐵斷斷然 只說仁義 更不向利上去 若董子正其誼不謀其利 明其道不計其功 意亦得其傳者歟 각헌채씨가 말하길, “배우는 자가 而已矣와 何必이란 말을 자세히 음미해보면, 맹자의 말뜻이 준엄하여 못을 자르고 쇠를 자르듯 단호하였으니, 그저 인의만을 말하였을 뿐, 더이상 이끗을 향해 나아가지 않았음을 알아볼 수 있다. 동자의 경우라면, 그 의논을 바르게 하되 자기의 이끗은 도모하지 않았고, 그 도를 밝혔을 뿐 자기의 공은 따지지 않았으니, 생각하건대, 역시 그 전함을 얻은 사람이리라!”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子朱子深有取於三山黃登之言曰 天下一切人都把害對利 事事上只見得利害 不問義理 須知利字乃對義字 明得義理便自無乖爭之事 集註所謂循天理 則不求利而自無不利 是以利字與義字對而利不出乎義之外 循人欲 則求利未得而害已隨之 是以利字與害字對而害已藏於利之中 운봉호씨가 말하길, “주자께서 삼산황등의 말에서 깊이 취하심이 있어 말씀하시길, 천하의 모든 사람들은 전부 해로움을 가지고 이로움에 대조하는데, 사사건건 그저 이로움과 해로움을 알아볼 뿐 의리를 묻지 않으니, 반드시 利자가 바로 義자의 상대임을 알아서, 의리를 분명하게 터득해야만, 곧 저절로 어그러지고 다투는 일이 없게 된다고 하셨다. 집주에서 말한 ‘天理를 따르면 이끗을 추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롭지 않음이 없다’고 한 것은 利자를 가지고 義자와 대조하면서도 이로움이 義의 밖으로 나가지 않은 것이고, ‘인욕을 따르면 이끗을 추구해도 얻지 못하고 해악이 이미 뒤따라 온다’는 것은 利자를 가지고 義자와 대조하지만 해악이 이미 이끗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太史公曰: “余讀『孟子』書, 至梁惠王問‘何以利吾國’, 未嘗不廢書而歎也. 曰嗟乎! 利誠亂之始也. 夫子罕言利, 常防其源也. 故曰 ‘放於利而行, 多怨’. 自天子以至於庶人, 好利之弊, 何以異哉?” 태사공(사마천)이 말하길, “내가 맹자란 책을 읽을 적에 양혜왕이 ‘무엇으로써 내 나라를 이롭게 하려는가’라고 묻는 곳에 이르러, 일찍이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가로되, 아 슬프다! 利는 진실로 어지러움의 시작이다. 공자께서 이로움을 거의 말씀하지 않았는데, 그 근원을 항상 방비한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길, 이로움에 따라 방종하여 행동하면, 원망함이 많다고 하였다. 천자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이로움을 좋아하는 폐단이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하였다.
太史公: 新安陳氏曰 司馬談爲太史令 子遷尊其父 故謂之公 遷繼其職 仍稱太史公 西漢龍門人 신안진씨가 말하길, “사마담이 태사령이 되었는데, 그 아들 사마천이 그 아비를 높여서 이에 일컬어 公이라 불렀다. 사마천이 그 직위를 계승하였는데, 여전히 태사공이라 호칭하였다. 서한시대의 용문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問太史公之嘆 其果知孟子之學耶 朱子曰 未必知也 以其言之偶得其要 是以謹而著之耳 누군가 묻기를, “태사공이 탄식하였는데, 그가 과연 맹자의 학문을 알았던 것일까요?”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반드시 알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의 말은 우연히 그 요체를 터득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삼가 그것을 기록하였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程子曰: “君子未嘗不欲利, 但專以利爲心則有害. 惟仁義則不求利而未嘗不利也. 當是之時, 天下之人惟利是求, 而不復知有仁義. 故孟子言仁義而不言利, 所以拔本塞源而救其弊, 此聖賢之心也.” 정자가 말하길, “군자는 일찍이 이로움을 바라지 않은 적이 없으나, 다만 오로지 이로움을 마음으로 삼는다면 곧 해가 있게 된다. 오직 인의를 따른다면, 이로움을 추구하지 않아도 일찍이 이롭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당시 시대에 천하의 사람들은 그저 이롭기만 하면 추구하였고, 다시 인의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맹자가 인의를 말할 뿐 이로움을 말하지 않은 것은 뿌리를 뽑고 근원을 막아 그 폐단을 구제하고자 한 것이니, 이것이 바로 성현의 마음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利者民生所不可無者也 故乾之四德曰利 書之三事曰利 此所謂君子未嘗不欲利 但專欲求利 則不顧義理 專欲利己而必害於人 惟能循仁義而行 則體順有常而自無不利 경원보씨가 말하길, “利라는 것은 백성이 살아감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주역 건괘의 4德(元亨利貞)에서 利를 말했고, 서경의 3가지 일(正德, 利用, 厚生)에서도 利를 말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군자는 일찍이 이롭기를 바라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오로지 利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의리를 돌아보지 않고서, 오로지 자신을 이롭게 하기만을 바라서, 반드시 남에게 해를 끼칠 것이다. 오직 능히 仁義를 따라서 행할 수 있다면, 體가 순조롭고 떳떳함이 있어서 저절로 이롭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龜山楊氏曰 君子以義爲利 不以利爲利 使其民不後其君親 則國治矣 利孰大焉 故曰 亦有仁義而已 何必曰利 구산양씨가 말하길, “군자는 義를 이로움으로 삼지 이끗을 이로움으로 삼지 않는다. 만약 그 백성이 자기 임금과 부모를 뒤로하지 않는다면, 나라가 잘 다스려질 것이니, 이로움 중에 어떤 것이 이보다 크겠는가? 그래서 ‘또한 仁義가 있을 따름이니, 어찌 반드시 利를 말하는 것입니까?’라고 말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凡事不可先有箇利心 才說著利 必害於義 聖人做處 只向義邊做 然義未嘗不利 但不可先說道利 不可先有求利之心 蓋緣本來道理只有一箇仁義 更無別物事 義是事事要合宜 以利心爲仁義 卽非仁義之正 不待有不利然後仁義阻也 주자가 말하길, “모든 일에는 먼저 이끗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이끗을 말한다면, 반드시 義에 해가 된다. 성인께서 하시는 부분은 그저 義가 있는 쪽을 향해서 하시지만, 義가 일찍이 이롭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다만 먼저 이끗을 말해서는 안 되고, 먼저 이끗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대체로 본래 道理는 그저 하나의 仁義가 있을 따름이지, 더 이상 별도의 사물이 없기 때문이다. 義는 모든 일마다 마땅함에 부합되어야 하는 것이니, 이끗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仁義를 삼는다면, 곧 仁義의 올바름이 아닌 것이고, 이롭지 않음이 있기를 기다린 연후에서야 仁義가 가로막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孟子之得於子思者曰 仁義所以利之也 及告梁王 則言仁義而不言利 蓋子思所言者 利物之利 梁王所問者 利己之利也 程子以爲拔本塞源者 所以救當時流弊之極 朱子以爲造端託始者 所以謹夫學者心術之初 운봉호씨가 말하길, “맹자가 자사에게서 터득한 것은 말하길, ‘仁義는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양혜왕에게 고함에 미쳐서는 仁義만 말하였을 뿐 利는 말하지 않았으니, 대체로 자사가 말한 것은 남을 이롭게 하는 利였고, 양혜왕이 물었던 것은 자기를 이롭게 하는 利였던 것이다. 정자가 拔本塞源한 것이라 여긴 것은 당시 流弊의 지극함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고, 주자가 造端託始라고 여긴 것은 저 배우는 자들의 心術의 처음을 경계해주기 위함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孟子一書以遏人欲存天理爲主 何必曰利 遏人欲也 亦有仁義 存天理也 自此以後鮮有不可以此六字該貫章旨者 신안진씨가 말하길, “맹자라는 책 한권은 인욕을 억제하고 天理를 보존하는 것을 주안점으로 삼았는데, 何必曰利는 인욕을 억제하는 것이고, 亦有仁義는 天理를 보존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이후로 이 6글자로써 章의 요지를 갖추어 꿸수 없는 것은 거의 없다.”라고 하였다.
東陽許氏曰 君子利己之心不可有 利物之心不可無 孟子不言利是專攻人利己之心 絶利己之心 然後可行利物之事 然利物乃所以利己也 至於不遺親後君 則己亦無不利矣 但不可假仁義以求利耳 동양허씨가 말하길, “군자에게는 자기를 이롭게 하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되고,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 맹자가 利를 말하지 않은 것은 오로지 사람의 자기를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다. 자기를 이롭게 하는 마음을 끊어낸 연후에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은 도리어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부모를 버리지 않고 임금을 뒤로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면, 자기 역시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다만 仁義를 빌려서 이로움을 추구해서는 아니 될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