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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재지두이십분(春在枝頭已十分)
봄은 나뭇가지 끝에 이미 무르익어 있다는 뜻으로,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음 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때가 무르익어 절정에 이름을 비유하는 말이다.
春 : 봄 춘(日/5)
在 : 있을 재(土/3)
枝 : 가지 지(木/4)
頭 :머리 두(頁/7)
已 : 이미 이(己/0)
十 : 열 십(十/0)
分 : 나눌 분(刀/2)
출전 : 대익(戴翼)의 탐춘(探春)
이 성어는 송(宋)나라 시인 대익(戴翼)이 쓴 '탐춘(探春)' 시(詩)에 나온다.
盡日尋春不見春
하루 종일 봄을 찾아 다녔으나 보지 못하고,
芒鞋遍踏壟頭雲
짚신 닳도록 먼 산 구름 덮인 곳까지 헤매었네.
歸來笑然梅花臭
지쳐 돌아오니 창 앞 매화 향기 미소가 가득,
春在枝頭已十分
봄은 이미 그 가지에 매달려 있었네
집안 뜰에 핀 매화는 보지 못하고 하루 종일 집 밖에 나가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며 헤맨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시구다. 진리는 멀리 있지 않고 가까운 곳에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주변에서 찾지 않고 먼 데서만 구하려고 한다.
같은 사람의 같은 제목으로 다른 시도 보인다.
탐춘(探春) / 봄을 찾아서
대익(戴翼 / 宋)
終日尋春不見春(종일심춘불견춘)
하루 종일 봄을 찾아 나섰으나 보지 못하고
杖黎踏破幾重雲(장려답파기중운)
지팡이 짚고 구름 낀 험한 길 헤매 다니다
歸來試把梅梢看(귀래시파매초간)
돌아와 시험 삼아 매화가지 잡아보니
春來枝頭己十分(춘래지두기십분)
봄은 이미 가지 끝에 완연히 와 있네
위 시와 내용이 같은 또 다른 시이다.
尋春(심춘) / 작자 미상
盡日尋春不見春(진일심춘불견춘)
종일토록 봄을 찾아 헤맸건만 봄은 보지 못하고,
芒鞋遍踏壟頭雲(망혜편답롱두운)
짚신이 다 헤지도록 언덕 위 구름만 따라 다녔네.
歸來笑撚梅花臭(귀래소연매화취)
지쳐서 돌아와 뜰 안에서 웃고 있는 매화향기 맡으니,
春在枝頭已十分(춘재지두이십분)
봄은 여기 매화가지 위에 이미 무르익어 있는 것을.
다음은 송나라 때 요연이라는 스님의 오도송(悟道頌)이라는 시이다.
盡日尋春不見春
하루 종일 봄(春)을 찾았으나 봄(春)은 찾지 못하고,
芒鞋踏破籠頭雲
이산, 저산 헤맨다고 짚신만 다 떨어졌네.
歸來隅過梅花下
지쳐 돌아와 뜰 모퉁이, 매화나무를 보니,
春在枝頭已十方
봄(春)은 가지마다 이미 와 있네.
다음은 중국 송나라 때 나대경(羅大經)이 지은 '학림옥로(鶴林玉露)'에 실려 있는 무명 비구니의 오도송 '심춘(尋春)'이다.
盡日尋春不見春
하루 종일 봄을 찾아 다녔지만 봄은 보지 못하고
芒鞋踏遍壟頭雲
짚신 발로 온 산을 헤매며 구름만 밟고 다녔네
歸來笑拈梅花臭
돌아와 웃으며 매화가지 집어 향기 맡으니
春在枝頭已十分
봄은 가지 끝에 이미 한창이더라
*'돌아와 웃으며 매화가지 집어 향기 맡으니(歸來笑拈梅花臭)' 대신 '돌아와 우연히 매화나무 밑을 지나는데(歸來偶過梅花下)'라고 소개하는 경우도 있다.
■ 춘재지두이십분(春在枝頭已十分)
사람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덧 봄은 벌써 나뭇가지 끝에 와 있었다는 말이다.
출전 : 학림옥로(鶴林玉露)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지붕마다 엄청난 눈을 덮어쓰고 있는 영동 지역의 모습을 TV를 통해 보고는 이 겨울이 언제 끝나려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적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하루가 다르게 해가 길어지는 모양새가 봄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케 한다.
춘재지두이십분(春在枝頭已十分)이란 말이 있다. 이는 사람들이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봄은 이미 나뭇가지 끝에 걸려 있다는 뜻이다.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우리 곁으로 찾아온 봄을 말한다.
송(宋)나라 때 사람인 대익(戴益)이 지은 탐춘시(探春詩)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글귀다. 이 말은 '사람이 찾는 건 대개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자기 주변에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을 때 자주 쓰인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盡日尋春不見春
온종일 봄을 찾아다녔지만 봄을 보지 못하고
芒蹊踏遍隴頭雲
아득한 좁은 길로 언덕 위 구름 있는 곳까지 두루 헤맨 끝에
歸來適過梅花下
돌아와 마침 매화나무 밑을 지나노라니
春在枝頭已十分
봄은 가지 머리에 벌써 와 있은 지 오래였구나
울타리 안의 매화 가지엔 벌써 꽃망울이 져 있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도 모르고 봄을 찾아 하루 종일 들과 산으로 쏘다닌다. 그러다 지쳐 하릴없이 집으로 돌아와 보니 바로 집 안의 매화 가지에 봄을 알리는 꽃망울이 달려 있다.
소리 없이 가까이 와 있는 봄의 모습이 무릎을 치게 할 정도로 잘 그려져 있다. 이 구절은 또 진리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운 데 있음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사람은 대개 가까이에서 보다는 먼 데서 진리를 추구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곤 한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그 의미를 조금 더 확장하자면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란 뜻도 될 것 같다. 행복은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즉 마음속의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분수를 지키고 족함을 아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태도를 견지하며 집착과 욕심에서 벗어나면 그게 바로 행복일 듯싶다.
때로는 세상 풍조에 좌우되지 않고 나만의 주관과 주장대로 밀고 나가는 특립이독행(特立而獨行)의 태도를 견지하며 한세상 살아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춘재지두(春在枝頭)
도불원인(道不遠人)
봄은 매화가지 끝에 벌써 와있는데 봄을 찾겠다고 온 사방을 헤매고 다니듯이, 깨달음은 마음 가까운 곳에 있는데 우리는 바깥, 먼곳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말이다.
소한(小寒) 눈 속에서도 피는 매화.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한다는 매화풍(梅花風)이 불어온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나 경칩이다. 이제 개나리와 진달래는 꽃봉우리를 언제 터뜨릴까 손 없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 세월의 빠름은 싫으나 새봄이 오니 새삼 좋다.
일찍이 봄을 찾아 신발이 해어지도록 눈과 구름이 덮힌 산봉우리를 헤매다 마침내 뜰앞 매화가지에서 봄을 찾은 사람이 있었다. 중국 당나라의 비구니인 무진장(無盡藏) 스님이 그 주인공이다.
盡日尋春不見春(진일심춘불견춘)
해종일 찾아 돌아다녔어도 봄은 보지 못하고
芒鞵蹈遍隴頭雲(망혜도편롱두운)
짚신짝이 다 해어지도록 구름 덮힌 산봉우리까지 헤매고 다녔네
歸來偶把梅花嗅(귀래우파매화후)
지친 몸 이끌고 돌아오니 매화향 앞뜰 가득
春在枝頭已十分(춘재지두이십분)
이런, 봄은 벌써 매화 가지 끝에 방긋거리고 있었네!
이 시는 요즘 시쳇말로 하면 그야말로 '간 보는' 시다. 자신의 간을 보고, 그 맛을 알아낸 오도송(悟道頌)이다.
단순히 봄의 서정을 노래한 시가 아니다. 봄을 '깨달음' 즉 불성(佛性), 진여(眞如), 진심(眞心)에 빗댄 구도의 어려움과 깨달음의 순간을 표현한 처절한 자기성찰의 노래다. 여기서 매화향의 역할은 바늘이다. 풍선이 한껏 부풀어 한 땀 콕 찔러주면 빵터지는 바늘이다.
이 시는 남송의 나대경(羅大經)이 편찬한 학림옥로(鶴林玉露)에 실린 작품이다. 나대경은 이 시를 '산뜻하고 속됨이 없는(脫灑可喜)' 경지에 이르렀다고 극찬하고,
공자가 중용에서 강조한 '세상의 이치란 우리 곁에서 멀리 있지않다(道不遠人)'라거나, 맹자가 주창한 '도는 가까운데 있는데 사람들은 멀리서 구하려 한다(道在邇而求諸遠)'란 속뜻과 유사하다고 평했다.
물론 유가와 불가에서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다르다. 진나라 이전의 유가에서 추구하는 도는 주로 자연의 이치 또는 우리 인간의 생활규범이라 한다면, 불가에서의 도는 불성이나 본성을 말한다. 나대경은 유학자라 유가식으로 평한 것이다.
무진장의 행적과 생몰연대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혜능과의 한가닥 소중한 인연이 전해지고 있다. 선종의 제6조이며 남종선(南宗禪)의 시조인 혜능은 일자무식 나무꾼 출신이다.
어느날 시장에 나무 팔러 가다가 우연히 무진장이 열반경을 독송하는 소리를 듣고 바로 참뜻을 이해했다.
무진장이 신기해서 묻자 혜능은 이렇게 대답한다. "진리는 하늘의 달과 같고, 문자는 손가락과 같은 것이오. 달을 보는데 손가락을 거칠 필요가 있겠소?"
혜능의 이 한 마디에 달이란 본체를 알기 위해서 손가락은 큰 걸림돌이라는 이치를 깨달은 무진장이었다. '달을 봤으면 가리키는 손가락을 잊으라'는 이른바 견월망지(見月忘指)의 가르침이었다.
본질을 깨우쳤으면 수단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다. 누군가의 손가락을 달의 본체로 여긴다면 우리는 달과 손가락을 모두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남송의 선승 보제(普濟)는 오등회원(五燈會元)에서 '손가락과 달'의 비유를 '사자와 개'로 바꿔 설명한다. '사자교인(獅子咬人) 한로축괴(韓盧逐塊)'란 말이 그것으로 '사자에게 돌을 던지면 그 사람을 무나, 개는 흙덩이가 먹이인줄 알고 그것을 쫓는다'는 의미다.
한로는 전국시대 한(韓)나라의 명견으로 소문난 검은 사냥개다. 그러니까 말(言)만 쫓으면 한로가 되어버리고, 그 말의 참뜻을 알아들으면 사자가 된다는 의미다.
무진장의 시를 화제로 한 매화도가 조선에 있다. 조선 중기 대표적인 문인화가인 어몽룡(魚夢龍)의 대표작인 묵매화다. 이 작품은 굵은 선의 매화 등걸이 곧게 뻗어나는 간결한 구도와 단촐한 형태, 고담한 분위기 등을 특징으로 한다.
담묵으로 정갈하게 묘사한 가지, 윤곽선이 없는 몰골법으로 처리한 매화꽃의 형태, 농묵으로 간결하게 처리한 꽃술과 꽃받침의 표현은 조선 중기 묵매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원나라 비구니 묘담(妙湛)은 무진장의 오도송 가운데 '귀래우파매화후(歸來偶把梅花嗅)' 귀절을 ‘귀래소연매화후(歸來㗛撚梅花嗅)로 몇글자 바꿔 쓰기도 했다.
'귀래우파매화후(歸來偶把梅花嗅)‘는 직역하면 '돌아와 우연히 매화가지를 잡아 향기를 맡다'는 뜻이고, 묘담의 '귀래소연매화후(歸來㗛撚梅花嗅)’는 '돌아와 웃으며 매화향을 맡다'로 직역된다. 전체적인 의미에서 보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우연히 매화향을 맡으나, 웃으며 매화향을 맡으나 결국에는 매화 향기를 맡는다.
깨달음이란 우리의 마음밭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우리는 기를 쓰고 밖에서만 찾고있다. 가까운데 있는 것은 버리고 먼데서만 찾으려하고, 근본은 버리고 말단을 쫓으며, 안에서 찾을 생각은 전혀 하지않고 밖에서만 구하려하니, 결국엔 심력만 쏟고 제풀에 주저앉게 되는 것이다.
▶️ 春(봄 춘, 움직일 준)은 ❶회의문자로 旾(춘)이 고자(古字), 㫩(춘)은 동자(同字)이다. 艸(초; 풀)와 屯(둔; 싹 틈)과 날일(日; 해)部의 합자(合字)이다 屯(둔)은 풀이 지상에 나오려고 하나 추위 때문에 지중에 웅크리고 있는 모양으로, 따뜻해져 가기는 하나 완전히 따뜻하지 못한 계절(季節)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春자는 ‘봄’이나 ‘젊은 나이’, ‘정욕’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春자는 日(해 일)자와 艸(풀 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春자의 갑골문을 보면 艸자와 日자, 屯(진칠 둔)자가 함께 그려져 있었다. 여기서 屯자는 새싹이 올라오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러니 갑골문에서의 春자는 따스한 봄 햇살을 받고 올라오는 새싹과 초목을 함께 그린 것이다. 그러나 해서에서는 모습이 크게 바뀌면서 지금의 春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春자는 단순히 ‘봄’이라는 뜻 외에도 사람을 계절에 빗대어 ‘젊다’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욕’이나 ‘성(性)’과 관련된 뜻도 함께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春(춘, 준)은 ①봄 ②동녘 ③술의 별칭 ④남녀(男女)의 정 ⑤젊은 나이 ⑥정욕(情慾) ⑦성(姓)의 하나 그리고 ⓐ움직이다(준) ⓑ진작(振作)하다(떨쳐 일어나다)(준) ⓒ분발하다(마음과 힘을 다하여 떨쳐 일어나다)(준)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가을 추(秋)이다. 용례로는 봄날에 느끼는 나른한 기운(氣運)의 증세를 춘곤증(春困症), 봄이 옴을 춘래(春來), 봄의 짧은 밤에 꾸는 꿈을 춘몽(春夢), 봄의 시기를 춘기(春期), 봄에 피는 매화나무를 춘매(春梅), 봄철에 입는 옷을 춘복(春服), 봄철에 어는 얼음을 춘빙(春氷), 봄에 입는 홑옷을 춘삼(春衫), 따뜻한 봄을 난춘(暖春), 봄이 돌아옴으로 늙은이의 중한 병이 낫고 다시 건강을 회복함이나 다시 젊어짐을 회춘(回春), 꽃이 한창 핀 아름다운 봄으로 꽃다운 나이를 방춘(芳春), 다시 돌아온 봄 새해를 개춘(改春), 봄을 맞아 기림 또는 봄의 경치를 보고 즐김을 상춘(賞春), 봄을 즐겁게 누림을 향춘(享春), 성숙기에 이른 여자가 춘정을 느낌을 회춘(懷春), 몸파는 일을 매춘(賣春),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 시절을 청춘(靑春), 봄의 난초와 가을의 국화는 각각 특색이 있어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춘란추국(春蘭秋菊), 봄철 개구리와 가을 매미의 시끄러운 울음소리라는 뜻으로 무용한 언론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춘와추선(春蛙秋蟬), 봄철의 꿩이 스스로 운다는 뜻으로 제 허물을 스스로 드러내어 화를 자초함을 이르는 말을 춘치자명(春雉自鳴), 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라는 뜻으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함을 이르는 말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 추위와 노인의 건강이라는 뜻으로 모든 사물이 오래가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춘한노건(春寒老健), 봄에는 꽃이고 가을에는 달이라는 뜻으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춘화추월(春花秋月), 봄 잠에 날이 새는 줄 모른다는 뜻으로 좋은 분위기에 취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을 춘면불각효(春眠不覺曉), 봄철의 지렁이와 가을 철의 뱀이라는 뜻으로 매우 치졸한 글씨를 두고 이르는 말을 춘인추사(春蚓秋蛇), 봄바람이 온화하게 분다는 뜻으로 인품이나 성격이 온화하고 여유가 있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춘풍태탕(春風駘蕩), 얼굴에 봄바람이 가득하다는 뜻으로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모양을 나타내는 말을 춘풍만면(春風滿面), 봄철에 부는 바람과 가을 들어 내리는 비라는 뜻으로 지나가는 세월을 이르는 말을 춘풍추우(春風秋雨), 이르는 곳마다 봄바람이란 뜻으로 좋은 얼굴로 남을 대하여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려고 처신하는 사람 또는 가는 곳마다 기분 좋은 일을 이르는 말을 도처춘풍(到處春風), 사면이 봄바람이라는 뜻으로 언제 어떠한 경우라도 좋은 낯으로만 남을 대함을 이르는 말을 사면춘풍(四面春風), 한바탕의 봄꿈처럼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일이란 뜻으로 인생의 허무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일장춘몽(一場春夢), 입춘을 맞이하여 길운을 기원하는 글을 이르는 말을 입춘대길(立春大吉), 다리가 있는 양춘이라는 뜻으로 널리 은혜를 베푸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양춘(有脚陽春), 범의 꼬리와 봄에 어는 얼음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험한 지경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호미춘빙(虎尾春氷), 가을 달과 봄바람이라는 뜻으로 흘러가는 세월을 이르는 말을 추월춘풍(秋月春風) 등에 쓰인다.
▶️ 在(있을 재)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흙 토(土; 흙)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재(자; 才의 변형; 풀의 싹 모양)의 뜻이 합(合)하여 있다를 뜻한다. 흙으로 막아서 그치게 하다, 멈추어 있다, 살아 있다, 존재하다의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在자는 ‘있다’, ‘존재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在자는 土(흙 토)자와 才(재주 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才(재주 재)자는 새싹이 새로 돋아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才자가 ‘존재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후에 才자가 ‘재주’와 관련된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금문에서는 여기에 土자를 더한 ‘존재하다’라는 뜻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在(재)는 (1)돈이나 물건 따위의 쓰고 난 나머지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있다, 존재하다 ②찾다 ③보다, 살피다 ④안부를 묻다 ⑤제멋대로 하다 ⑥곳, 장소(場所) ⑦겨우, 가까스로 ⑧~에, 처소(處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존(存), 있을 유(有)이다. 용례로는 학적이나 호적이나 병적 등에 적혀 있음을 재적(在籍), 창고에 쌓아둔 물건을 재고(在庫), 전부터 있어 내려옴을 재래(在來), 임금의 자리에 있음 또는 그 동안을 재위(在位), 직무에 있음 또는 그 자리에 있는 동안을 재임(在任), 직장에 근무하고 있음을 재직(在職), 학교에 다니는 중임을 재학(在學), 외국에 있음을 재외(在外), 집에 있음 또는 집에 있으면서 중처럼 도를 닦음을 재가(在家), 초야에 파묻혀 있음을 재야(在野), 고향에 있음을 재향(在鄕), 어떤 자리에 있는 물건을 재물(在物), 어느 직장에 근무하는 일을 재근(在勤), 한동안 머물러 있음을 재류(在留), 세상에 살아 있음을 재세(在世), 지금 이때를 현재(現在), 현존하여 있음 또는 있는 그것을 존재(存在), 속에 숨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음을 잠재(潛在),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있는 곳 또는 있는 바를 소재(所在), 현실에 존재함 또는 그것을 실재(實在),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 또는 직무 상으로 파견되어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을 주재(駐在), 어떤 사물이나 범위의 안에 있음을 내재(內在), 여기저기 흩어져 있음을 산재(散在), 남아 있음을 잔재(殘在), 건강하게 잘 있음을 건재(健在), 이것과 저것의 사이에 끼어 있음을 개재(介在), 나타나 있음을 현재(顯在), 이 한번으로 담판을 짓는다는 뜻으로 단 한 번의 거사로 흥하거나 망하거나 끝장을 냄을 일컫는 말을 재차일거(在此一擧), 집에 있으면서 독서함을 이르는 말을 재가독서(在家讀書), 바삐 돌아 다니느라고 집에 있는 날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재가무일(在家無日), 어떠한 일에서 벗어나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재소난면(在所難免), 자기가 소속된 바에 따라 처신을 하게 마련이라는 말을 재소자처(在所自處),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음을 일컫는 말을 인명재각(人命在刻), 새가 높이 날 때는 바람은 그 밑에 있다는 뜻으로 높은 곳에 오름을 이르는 말을 풍사재하(風斯在下), 뜻이 천리에 있다는 뜻으로 뜻이 웅대함을 이르는 말을 지재천리(志在千里) 등에 쓰인다.
▶️ 枝(가지 지, 육손이 기)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支(지; 갈려 나온다)로 이루어졌다. 나무 줄기에서 갈려 나온 가지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枝자는 ‘가지’나 ‘버팀목’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枝자는 木(나무 목)자와 支(가를 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支자는 손으로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버티다’나 ‘지탱하다’라는 뜻이 있다. 枝자는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는 모습을 그린 支자를 응용한 글자로 여기에 木자를 더해 ‘나무의 가지’라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枝(지, 기)는 ①초목의 가지 ②팔다리, 사지(四肢) ③버팀목(물건이 쓰러지지 않게 받치어 세우는 나무) ④분가(分家) ⑤지지(地支) ⑥가지를 치다 ⑦흩어지다, 분산하다 ⑧분기하다, 나누어지다 ⑨짚다, 세우다 ⑩버티다, 지지하다 그리고 ⓐ육손이(기)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가지와 잎 또는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지엽(枝葉), 가지와 줄기를 지간(枝幹), 맞서 겨우 버티어 나감을 지오(枝吾), 나무로 만든 이쑤시개를 양지(楊枝), 식물의 줄기와 가지를 간지(幹枝), 버드나무 가지를 유지(柳枝), 대나무의 가지를 죽지(竹枝), 말라 죽은 나뭇가지를 고지(枯枝), 초목의 짧은 가지를 단지(短枝), 가지와 잎이 서로 받친다는 뜻으로 자손들이 서로 도와 지지함을 이르는 말을 지엽상지(枝葉相持), 중요하지 않은 사항이나 하찮고 자질구레한 부분을 일컫는 말을 지엽말절(枝葉末節), 금 가지에 옥 잎사귀란 뜻으로 귀한 자손을 이르는 말 또는 아름다운 구름을 형용하여 이르는 말을 금지옥엽(金枝玉葉), 두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서 결이 서로 통한 것의 뜻으로 화목한 부부 또는 남녀 사이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연리지(連理枝), 계수나무 숲의 한 가지라는 뜻으로 사람됨이 비범하면서도 겸손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계림일지(桂林一枝), 가지와 잎을 제거한다는 뜻으로 사물의 원인이 되는 것을 없앤다는 말을 거기지엽(去其枝葉), 같은 뿌리와 잇닿은 나뭇가지라는 뜻으로 형제 자매를 일컫는 말을 동근연지(同根連枝), 가지 마디에 또 가지가 돋는다는 뜻으로 일이 복잡해 그 귀결을 알기 어려움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절상생지(節上生枝), 나뭇가지를 꺾는 것과 같이 쉽다는 뜻으로 대단히 용이한 일을 이르는 말을 절지지이(折枝之易) 등에 쓰인다.
▶️ 頭(머리 두)는 ❶형성문자로 头(머리 두)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머리혈(頁; 머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豆(두)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豆(두)는 고기 따위를 담는 식기로서 둥근 그릇에 높은 발이 달려 있고, 頁(혈)은 얼굴이나 머리에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頭(두)는 豆(두)라고 하는 도구가 서 있듯이 사람의 머리가 몸위에 곧게 달려 있는 모습으로 머리와, 일의 시작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頭자는 ‘머리’나 ‘꼭대기’, ‘처음’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頭자는 豆(콩 두)자와 頁(머리 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豆자는 ‘콩’이라는 뜻이 있지만, 본래는 제기 그릇을 그린 것이다. 전국시대 때의 頭자를 보면 豆자 위로 頁자가 그려져 있었다. 마치 사람의 머리를 제기 그릇에 올린 것 같지만 이것은 사람의 머리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니 豆자는 발음과 함께 사람의 신체 윗부분에 있는 머리를 표현하기 위해 쓰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頭(두)는 (1)주로 마소나 양, 돼지 같은 네발 가진 짐승의 수효(數爻)를 세는 단위 (2)골치 등의 뜻으로 ①머리 ②꼭대기, 최상부(最上部) ③우두머리 ④처음, 시초(始初) ⑤첫째, 상위(上位) ⑥맨 앞, 선단(先端) ⑦근처(近處), 근방(近方) ⑧변두리 ⑨물건을 셀 때의 단위, 마리 ⑩사람을 세는 말 ⑪음식상을 세는 말 ⑫지혜(智慧), 재능(才能) ⑬어조사(語助辭)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우두머리 추(酋), 머리 수(首), 으뜸 괴(魁),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꼬리 미(尾)이다. 용례로는 머리의 존칭을 두상(頭上), 머리가 되는 차례를 두서(頭序), 머리가 아픈 증세를 두통(頭痛), 좋지 못한 집단의 우두머리를 두목(頭目), 실마리를 두서(頭緖), 짐승 따위의 머리에 있는 뿔을 두각(頭角), 머리와 낯을 두면(頭面), 머리 털을 두발(頭髮), 음절의 첫소리를 두음(頭音),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이 어떤 일에 오로지 파묻힘을 몰두(沒頭), 머리나 마음 속의 생각을 염두(念頭), 이야기의 말머리를 화두(話頭), 글이나 일의 첫머리를 벽두(劈頭), 해의 첫머리를 연두(年頭), 이야기나 글의 첫머리를 모두(冒頭), 어떠한 곳에 몸소 나감을 출두(出頭), 마주 대해 입으로 하는 말을 구두(口頭), 시가지의 길거리를 가두(街頭), 제사의 제물을 진설할 때 생선의 머리는 동쪽을 향하고 꼬리는 서쪽을 향하게 놓음을 두동미서(頭東尾西), 머리가 벗어지고, 이가 빠져 사이가 벌어진다는 두동치활(頭童齒闊), 참형을 당하여 머리와 다리가 따로따로 됨을 이르는 두족이처(頭足異處), 정신이 어찔하여 쓰러짐을 두중각경(頭重脚輕), 머리는 차게 발은 따뜻하게 하면 건강에 좋음을 이르는 두한족열(頭寒足熱) 등에 쓰인다.
▶️ 已(이미 이)는 ❶상형문자로 본디 지지(地支)의 巳(사)와 같고 뱀 모양을 본떴으나 그와 구별하여 已(이)라 쓰며, 그 음(音)을 빌어 이미, 그치다, 따름 따위의 뜻으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已자는 '이미'나 '벌써'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已자는 己(자기 기)자와 매우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다만 已자는 己자보다 삐침이 조금 올라와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已자는 본래 다 자란 태아를 그린 것이었다. 已자에 '이미'나 '벌써'라는 뜻이 있는 것도 배 속의 아이가 다 자라 이미 출산이 임박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의 已자는 '이미'나 '벌써'라는 뜻 외에도 '매우'나 '반드시', '이것'과 같은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그래서 已(이)는 ①이미, 벌써 ②너무 ③뿐, 따름 ④매우, 대단히, 너무 ⑤반드시 ⑥써, 써서 ⑦이, 이것 ⑧조금 있다가, 그 후 얼마 되지 아니하여 ⑨병이 낫다 ⑩말다, 그치다, 그만두다, 끝나다 ⑪용서하지 아니하다, 불허하다 ⑫버리다, 버려두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이미 기(旣)이다. 용례로는 오래 전이나 그 전을 이왕(已往), 이미 결정했거나 결정됨을 이결(已決), 지나치게 심함이나 정도에 지나침을 이심(已甚), 이미 준비하여 마침을 이계(已戒), 이미 과거에 급제함을 이과(已科), 국가에 대하여 진 빚을 탕감하여 주는 일을 이채(已債), 이미 통과하였거나 통과됨을 이통(已通), 이미 오래 됨을 이구(已久), 이미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이귀(已歸), 이미 지나간 일을 이사(已事), 해가 이미 서쪽으로 기욺을 이서(已西), 벌써 앎이나 이미 앎을 이지(已知), 이미 다하거나 끝남을 이진(已盡), 이미 기재를 완료함 또는 이미 적재를 완료함을 이재(已載), ~할 따름이나 ~뿐임 또는 ~일 따름임을 이이(而已), 마침내 이미를 과이(果已), 이미를 기이(旣已), 이미 알고 있는 수를 일컫는 말을 이지수(已知數), 마지못하여 또는 하는 수 없이나 어쩔 수 없이를 일컫는 말을 부득이(不得已), 연으로 인하여 생기는 결과를 이르는 말을 연이생(緣已生), 마지 못하여나 어쩔 수 없이를 이르는 말을 불획이(不獲已), 마지 못하여 할 수 없이를 이르는 말을 비득이(非得已), 쏘아 놓은 살이란 말로 한번 저지른 일은 다시 고치거나 중지할 수 없다는 뜻의 속담을 이르는 말을 이발지사(已發之矢), 이미 깨어진 시루라는 뜻으로 본래의 상태로 돌이킬 수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이파지증(已破之甑), 이미 지나간 일을 이르는 말을 이과지사(已過之事), 이미 지나간 일을 이르는 말을 이왕지사(已往之事), 이미 그렇게 된 일을 이르는 말을 이연지사(已然之事), 일이 매우 급박하여 어떻게 할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박부득이(迫不得已), 시루가 이미 깨졌다는 뜻으로 다시 본래대로 만들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증이파의(甑已破矣), 죽어야 그친다는 뜻으로 죽을 때까지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함을 이르는 말을 사이후이(死而後已) 등에 쓰인다.
▶️ 十(열 십)은 ❶지사문자로 什(십), 拾(십)은 동자(同字)이다. 두 손을 엇갈리게 하여 합친 모양을 나타내어 열을 뜻한다. 옛날 수를 나타낼 때 하나로부터 차례로 가로줄을 긋되, 우수리 없는 수, 다섯은 ×, 열은 Ⅰ과 같이 눈에 띄는 기호를 사용하였다. 나중에 十(십)이라 썼다. ❷상형문자로 十자는 ‘열’이나 ‘열 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十자는 상하좌우로 획을 그은 것으로 숫자 ‘열’을 뜻한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十자를 보면 단순히 세로획 하나만이 그어져 있었다. 이것은 나무막대기를 세워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이렇게 막대기를 세우는 방식으로 숫자 10을 표기했었다. 후에 금문에서부터 세로획 중간에 점이 찍힌 형태로 발전하면서 지금의 十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十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모양자 역할만을 할 뿐 의미는 전달하지 않는다. 그래서 十(십)은 ①열 ②열 번 ③열 배 ④전부(全部), 일체(一切), 완전(完全) ⑤열 배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한 해 가운데 열째 달을 시월(十月), 충분히 또는 넉넉히로 부족함 없이를 십분(十分), 어떤 분야에 뛰어난 열 사람의 인물을 십걸(十傑), 보통 4km 거리를 십리(十里), 사람이 받는 열 가지 고통을 십고(十苦), 열 살로부터 열아홉 살까지의 소년층을 십대(十代), 썩 잘 된 일이나 물건을 두고 이르는 말을 십성(十成), 오래 살고 죽지 아니한다는 열 가지 물건을 십장생(十長生), 실을 십자형으로 교차시켜 놓는 수를 십자수(十字繡), 열 번 찍어 아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십벌지목(十伐之木), 열 사람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는 십시일반(十匙一飯), 열에 여덟이나 아홉이라는 십중팔구(十中八九), 열 번 살고 아홉 번 죽는다는 십생구사(十生九死), 열 사람의 눈이 보고 있다는 십목소시(十目所視), 십년 동안 사람이 찾아 오지 않아 쓸쓸한 창문이라는 십년한창(十年寒窓), 열흘 동안 춥다가 하루 볕이 쬔다는 십한일폭(十寒一曝), 오래 전부터 친히 사귀어 온 친구를 십년지기(十年知己),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의 성격이나 사람됨이 제각기 다름을 십인십색(十人十色) 등에 쓰인다.
▶️ 分(나눌 분, 푼 푼)은 ❶회의문자로 푼의 뜻은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된다. 刀(도; 칼)와 八(팔; 나눔)의 합자(合字)로 물건을 나눔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分자는 ‘나누다’나 ‘베풀어 주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分자는 八(여덟 팔)자와 刀(칼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八자는 사물이 반으로 갈린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사물이 나누어진 모습을 그린 八자에 刀자가 결합한 分자가 물건을 반으로 나누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分자는 사물을 반으로 나눈 모습에서 ‘나누어 주다’나 ‘베풀어 주다’라는 뜻을 갖게 됐지만, 물건이 나뉜 후에는 사물의 내부가 보인다는 의미에서 ‘구별하다’나 ‘명백하다’라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分(분, 푼)은 (1)분세(分稅) (2)분수(分數) (3)십진(十進) 급수(級數)의 단위의 하나. 곧 하나를 열에 나눈 것의 하나. 1의 1/10. 시간(時間)의 단위. 한 시간을 60으로 나눈 그 하나 (4)각도(角度). 경위도 등의 1도를 60으로 나눈 단위의 하나 (5)길이의 단위 1치를 10으로 나눈 그 하나 (6)1돈을 10으로 나눈 그 하나 (7)1할(割)을 10으로 나눈 그 하나 (푼)으로 읽힐 때, ㊀옛날 엽전의 단위. 한돈의 1/10 ㊁무게의 단위. 한돈의 1/10 ㊂길이의 단위. 한 치의 1/10, 등의 뜻으로 ①나누다 ②나누어 주다, 베풀어 주다 ③나누어지다, 몇 개의 부분(部分)으로 갈라지다 ④구별(區別)하다, 명백(明白)하게 하다 ⑤헤어지다, 떨어져 나가다 ⑥구별(區別), 다름 ⑦나누어 맡은 것, 몫 ⑧분수(分數) ⑨운명(運命), 인연(因緣) ⑩신분(身分), 직분(職分) ⑪길이, 무게, 시간(時間), 각도(角度), 화폐(貨幣) 따위의 단위 ⑫24절기(節氣)의 하나,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을 때, 그리고 ⓐ푼(엽전의 단위)(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구분할 구(區), 나눌 반(班), 나눌 배(配), 나눌 반(頒),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합할 합(合)이다. 용례로는 어떤 사물을 이루고 있는 각 성분이나 요소를 갈라냄을 분석(分析), 어떤 갈래에 달린 범위나 부문을 분야(分野), 틀림없이 또는 확실하게를 분명(分明), 나누어서 넘겨 줌을 분양(分讓), 서로 나뉘어서 떨어지거나 떨어지게 함을 분리(分離), 찢어져 갈라짐을 분열(分裂), 생산에 참가한 개개인이 생산물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나누는 일을 분배(分配), 일을 나누어서 맡음을 분담(分擔), 종류를 따라서 나눔을 분류(分類), 따로따로 흩어짐을 분산(分散), 서로 구별을 지어 가르는 것을 분별(分別), 분량이 적적하여 모자람이 없음을 충분(充分), 전체를 몇으로 나눈 것의 하나하나를 부분(部分), 처리하여 다룸을 처분(處分), 명목이 구별된 대로 그 사이에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나 분수를 명분(名分), 따로따로 갈라 나눔을 구분(區分), 개인의 사회적인 지위 또는 계급을 신분(身分), 몫몫이 나누어 줌을 배분(配分), 남에게 어질고 고마운 짓을 베푸는 일을 덕분(德分), 마음에 생기는 유쾌 불쾌 우울 따위의 주관적이고 단순한 감정 상태를 기분(氣分), 화합물을 조성하는 각 원소를 성분(成分), 자기에게 알맞은 신분 또는 의무로 마땅히 하여야 할 직분을 본분(本分), 영양이 되는 성분을 양분(養分), 서로 소매를 나누고 헤어짐이란 말로 이별을 뜻하는 말을 분수작별(分手作別), 분가함 또는 별거함을 분문이호(分門異戶), 얼마 안 되는 돈과 곡식을 분전승량(分錢升量), 사리를 분별하는 마음가짐을 분별사식(分別事識), 자기 분수에 만족하여 다른 데 마음을 두지 아니함을 안분지족(安分知足), 두 과부가 슬픔을 서로 나눈다는 뜻으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동정한다는 말을 양과분비(兩寡分悲), 한번 서로 인사를 한 정도로 아는 친분을 일면지분(一面之分),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중대한 의리와 명분을 대의명분(大義名分)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