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어느새 6월로 치닫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녹음이 짙어지고 초하의 날씨는 '덥다'소리가 절로 나온다.
산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 아파트 놀이터 앞을 지나는데 아이들이 왁자지껄하다. 잠시 쉬어갈 겸 놀이터 옆 벤치에 앉았다. 자주 지나다니는 곳에 놀이터가 있으니 눈여겨보게 된다. 오전에는 비어 있다가 오후 서너 시쯤 되면 제법 붐빈다. 이 놀이터를 지날 때마다 손녀딸들 생각이 나서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손녀딸 둘을 맡아 기를 때 큰 아이가 미끄럼타기를 배운 것도 그네타기를 배운 것도 이 놀이터에서였다. 작은 것은 어려서 유모차에 타고 구경만 하다가 제 어미 품으로 갔지만….
이제 겨우 아장아장 걷는 꼬마에서부터 5,6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까지 열댓 명이 섞여 놓고 있다. 코끼리 모양의 작은 미끄럼틀에는 꼬마가 미끄럼타기를 처음 배우는 모양이다. 엄마는 밑에서 아이를 쳐다보고 얼른 미끄러져보라고 성화이고 아기는 자신이 없다는 듯 쭈뼛쭈뼛 망설이다가 안 되겠는지 뒤로 돌아 다시 층계를 내려온다. 뒤뚱뒤뚱 걸음이 서투르니 엄마는 계단 밑으로 달려가 아기를 부축해 내리면서 안타깝다는 표정이다. 손녀딸에게 미끄럼타기를 가르치던 그때가 떠올라 혼자 웃으며 '아기 엄마, 그렇게 서두를 께 없다우. 모든 것은 때가 되면 다 하게 되지. 나도 당신 같은 마음이었으니까…'
2학년쯤 된 여자아이는 즐기듯 흐뭇한 표정으로 그네를 탄다.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은 모두가 자전거 부대다. 세발자전거와 두발자전거가 서로 엇갈리며 놀이터를 누빈다. 은빛 햇살이 자전거 바퀴마다 부서져 눈이 부시다. 엄마들은 나무 그늘이나 벤치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아이들을 바라보거나 엄마들끼리 얘기 장단이 한창이다. 그런데 노는 아이들 숫자와 앉아있는 엄마나 할머니들 숫자가 거의 같다. 요즈음 빈번한 어린이 유괴사건으로 아이 혼자서는 외출조차 꺼리는 삭막한 세상이 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엄마가 돌봐주는 아이들은 그렇다 치고 엄마가 직장에 간 아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혼자 밖에 나가지 마라, 아무나 따라가면 안 된다, 못이 박히도록 들은 엄마 말을 상기하고 혼자서 집을 지키며 컴퓨터게임에 빠지거나 나쁜 것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토끼미 외갓집으로 가던 날 나는 해자네 앞마당에서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그곳에서 지내던 1,2학년 시절, 내 유년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그 마당 구석구석에 머물러 있다. 흠뻑 땀 흘리고 깔깔대며 노래 부르던 아이들만의 행복한 공간, 그 뽀얗던 흙 마당이 그립다.
해자네 앞마당은 넓었다. 병풍처럼 둘러친 산 밑에 안채가 아늑하고 행랑채를 나서면 앞마당이었다. 그 마당은 동네 길이기도 했다. 울도 담도 따로 없어 장에 갔다 오는 사람, 고개 넘어 향림으로 가는 사람들도 이 마당으로 지나다녔다. 지나가다 물 한 그릇 얻어먹고 가기도 하고 행랑채 쪽마루에 걸터앉아 다리를 쉬며 우리들이 노는 모습을 흐뭇한 듯 바라보기도 했다.
학교가 파하면 남자고 여자고 으레 그 마당에 모였다. 남자아이들은 말타기, 자치기, 제기차기, 비석치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팽이치기 같은 놀이에 열중했고 여자아이들은 고무줄뛰기, 줄넘기, 숨바꼭질, 공기놀이, 땅따먹기 같은 놀이에 취하여 해 지는 줄 몰랐다. 그런 놀이들은 혼자서 하는 놀이는 아니었다. 편을 갈라서 승부를 내는 공동 놀이였다. 고무줄뛰기만 해도 고무줄을 길게 이어 양 끝에서 두 사람이 붙잡고 서 있어야 할 수 있었고 그 줄을 무릎부터 허리, 목, 머리 위까지 차차 올려가며 노래에 맞추어 깡충깡충 넘었다. 삼각형, 사각형으로 만들어 그것을 빙빙 돌면서 뛰어넘기도 했으니 최소한 세 명은 있어야 하는 놀이였다. "가랑잎 떼굴떼굴 어디로 굴러가니, 바람 찬 이 벌판이 춥고 추워서 따뜻한 부엌 속을 찾아간단다."
줄넘기도 긴 줄을 양쪽에서 붙잡고 돌리고 아이들은 노래에 맞추어 들락거렸다. "꼬마야, 꼬마야, 땅을 짚어라… 만세를 불러라…" 그때 부르던 노래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공기놀이도 두 명은 있어야 판을 벌였다. 모이는 아이들 숫자에 따라 놀이를 선택할 만큼 놀이 종류도 다양했다. 지금 이 아이들의 노는 모습은 모두가 혼자다. 편을 갈라서 승부를 내는 놀이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개인주의의 모습이 놀이터에서도 실감 나게 느껴진다. 이 아이들은 집에서도 혼자서 인터넷으로 정보의 바다를 헤엄쳐 다닐 것이다.
우리 어릴 때보다 아이들 숫자는 몇 배 늘어났는데 놀이문화는 퇴보하여온 것이 아닌가 싶다. 학교가 파하면 이 학원 저 학원을 순례해야 하는 아이들이 언제 모여서 땀 흘려 놀 새가 있는가. 그 시절 우리는 놀이시설도 아무것도 없는 빈 마당에서 어울려 놀면서 다치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암암리에 사람끼리 어울려 살아야 하는 이치를 배웠다. 양보하는 법도, 남을 배려하는 법도 스스로 익혔다. 그 놀이터에 어른들은 아무도 없었다. 가끔 진달래꽃 따러 산에 가면 문둥이가 잡아간다는 헛소문은 있었지만 제 새끼들과 다름없는 아이들을 해치는 사람은 없었다. 엊그제는 모임에 갔더니 근처 모 초등학교에서 유괴 사건이 났었단다. 다행히 미수에 그쳤다지만 청주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며 모두들 분개했다. 세상이 왜 이지경이 되었을까.
저 아이들, 새순 같은 저 아이들을 어떻게 지켜야 하나. 엄마들이 놀이터에 나와 마냥 시간을 보내며 지켜보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어미의 눈길이 없으면 불안해서 못 사는 나약한 아이들로 키워야 한단 말인가. 일본에서는 '어린이지키미 내비게이션'이라는 제도를 고안하여 아이들을 지키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속수무책이니 언제까지 불안에 떨어야 하나. 내 걱정스런 마음속에 손녀딸들 얼굴이 어른거린다.
해는 어느새 서편 하늘에 걸리고 햇살은 엷어져 아이들 소리도 잦아들었다. 행랑채에 군불을 지피던 해자네 노 할머니의 "해자야, 저녁 먹어라." 정다운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박영자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