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개들을 위한 진혼곡
‘골절에서 회복된 넙다리뼈 화석이 인류의 문명사회의 시작을 알리는 증표이다.’ 20세기의 저명한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가 말했다고 구전되나 구체적인 근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약육강식의 원시 생태계에서 넙다리뼈 골절 같은 중상을 입은 개체는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는 게 보통이기에 부상에서 회복됐다는 것은 누가 돌봐주었음을 방증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측은지심과 함께 망자를 기리는 것도 오래된 인류의 특징일 것입니다. 이런 마음에는 반려동물도 포함이 됩니다. 필자의 동내에 사는 한 아저씨가 반려견과 이별한 것이 가슴이 아픕니다.
생면부지인 곳으로 오게 된 것은 좁은 아파트에서 지내던 강아지 항우에게 마당을 마련해주려는 바람이 중요했습니다. 퇴직 후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여유로운 주택을 찾아 이사했지요. 이 지역은 오래전부터 논농사를 하던 농촌 마을인데 인근에 사는 사람들을 원주민과 이주민으로 나눕니다. 원주민은 대략 나이가 많은 농업종사자로 마을 중심부에 있는 오래된 집에 거주하고, 이주민은 젊은 편이고 마을 진입로 주변 새 주택에 거주합니다. 원주민, 이주민 모두 개를 키우는 집들이 있는데 원주민은 개를 산책시키지 않고, 이주민은 개를 산책시킵니다.
집에 있는 날 필자의 제일 규칙적인 일과는 몸무게가 3kg가 안 되고, 녹내장으로 한쪽 눈을 실명한 시추종 강아지 항우(겁이 많아 붙인 용감한 이름)를 산책시키는 일입니다. 작은 몸통과 보폭을 감안하면 산책길이 긴 것 같아도 밖에 나가면 무조건 좋답니다. 보통 항우가 산책 경로를 정해 다닙니다. 종종 마을 중심부를 관통하는데 일부 원주민들은 시답잖은 눈치입니다. 마당에 묶어 놓거나 심지어 우리 안에 개를 키우는 ‘미풍양속’에 반해 목줄을 하고 온 데를 쏘다니는 것이 눈에 거슬렸을 법도 합니다. 마을 이장자리에 관심이 없고, 배변가방을 지참한 필자는 눈치를 보지 않고 다니지요.
이사 후 얼마 되지 않아 산책길에 마주친 한 아저씨가 항우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습니다. 그 후 만날 때마다 비슷한 질문을 해 좀 싱거운 사람이다 생각했습니다. 가끔 누가 자전거 뒷자리에 중형견을 앉히고 집 앞 마을 진입로 길을 지나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자전거 신사가 그 싱거운 사람이었고, 뒷자리에 안정되게 앉아있는 항우의 대여섯 배 크기의 강아지가 곰순이였습니다.
싱거운 아저씨의 교통수단은 자전거여서 곰순이를 뒤에 태우고 운동 시키러 다닌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개를 산책시키지 않는 원주민의 지침(?)을 의식해 아예 마을 밖으로 나간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운동을 자주 가고, 15세 된 반려견을 위해 약초 우려낸 물을 섞은 사료를 먹인다는 등의 대화를 통해 아저씨가 상당히 개를 아낀다는 것을 알았지요.
올들어 곰순이가 병이 났습니다. 목과 가슴에 종양이 생겨 10년 넘게 다니던 인근 동물병원에서 수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겁니다. 8월쯤 혹 하나가 큰 혈관과 너무 가까이 있어 나이든 수의사가 수술하기 어려우니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보라 해 궁리 중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동네를 따라 이어진 낮은 산자락에 있는 아저씨 집을 찾아 갔습니다. 전세로 산다는 꽤 큰 주택에 곰순이와 둘이만 살고 있었습니다. 목부위 수술 자국과 함께 기운 없어 보이는 곰순이가 안쓰러웠습니다. 그런데 그 후 다행히 아저씨가 산책을 시킬 정도로 기력을 회복해 가까운 병원에서 계속 진료를 받았습니다.
늦가을 한동안 강의 때문에 주말 외에는 대구에서 지내야 해서 동네 소식을 듣지 못하다 지난달 중순 슬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밤중에 오줌누러 나가는 줄 알았던 곰순이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아저씨는 곰순이를 찾는다며 헤매고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웃은 개가 마지막으로 주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나간 것이라 위로한다고 했습니다.
며칠 전 아저씨 집을 찾았습니다. 전보다 수척해 보이는 그는 집 앞마당과 바로 이어진 마을 뒷산을 5일 동안 샅샅이 뒤지며 다녔는데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60대 후반인 아저씨는 독신이었고, 15년 전 새끼 강아지 두 마리를 입양하기 몇 해 전 인연이 없는 이곳으로 왔습니다. 인근 넓은 땅 주인인 누님의 농사일을 도우려고 온 것이랍니다. 마음이 여리고 조용한 성격이라 사회생활 하며 여러모로 불이익을 겪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까지도 13년 전 곰순이와 같이 키우던 강아지를 도독맞은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마음의 상처를 토로했습니다. 봄부터 이어진 치료로 비용도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텐데 단골 병원이어서 치료비를 많이 깎아주었다고 합니다.
개를 산다는 확성기 방송을 하는 작은 트럭이 가끔 다니고, 우리에 갇혀있던 개가 언제부터 보이지 않을 때 이 동네가 몹시 싫어집니다. 여기만이 아니겠지요. 사람에게 의존하도록 진화된 개는 어떤 이에게는 매우 소중한 반려자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존중되어야 할 생명체라고 생각합니다.
글렌 굴드(왼쪽), 굴드의 기증을 기리는 기념패(오른쪽)
제가 좋아하는 20세기 거장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1932~1982)는 독신이었는데 그의 전 재산을 본인 근거지였던 캐나다 토론토의 동물구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Humane society)에 남겼습니다. 그가 연주하는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큰 위안을 줍니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 역시 위안과 평화를 느끼게 하지요.
이 곡들과 더불어 베토벤의 장엄미사를 곰순이와 개장수에게 팔려간 강아지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그들이 더 나은 세상으로 갔기를 빕니다.
https://youtu.be/mGQLXRTl3Z0
https://youtu.be/poCw2CCrfz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