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50년만에… 소똥구리 돌아왔다
1970년대 공장형 축사 도입되며
먹이인 ‘말-소똥’ 없어져 국내 멸종
몽골서 토종과 유전자 같은종 도입
4년 연구 끝 복원 태안에 방사
13일 오후 충남 태안군 신두리해안사구에서 열린 소똥구리 방사 행사에서 초등생들이 통에 담겨 있던 소똥구리를 방사하고 있다. 태안=박형기 기자
“비 오는 날 이사 가면 잘산다니까….”
13일 뿌연 운무가 낀 충남 태안 신두리사구(砂丘·모래언덕). 해안가 옆 드넓은 목초지에 소 5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목초지 여기저기에는 이날 이곳으로 이사하는 소똥구리의 먹이가 될 진흙색 소똥이 ‘한 상’ 차려져 있었다.
윤기 없는 까만색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쯤 크기, 모래가 담긴 투명한 플라스틱통 안에 있던 소똥구리를 풀밭으로 내보냈다. 잠시 어리둥절했던 소똥구리들이 모래를 파내며 부지런히 다리를 움직였다. 김황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연구원은 “비가 와서 땅에 숨는 것”이라고 말했다.
● 1970년대 완전히 자취 감춰
사라졌던 소똥구리가 50여 년 만에 우리 곁에 돌아왔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이날 소똥구리 200마리를 신두리사구에 자연 방사했다. 2019년 몽골에서 ‘토종’ 소똥구리와 유전적으로 같은 개체를 들여와 4년여간 짝짓기 환경을 위한 온도, 습도까지 연구하며 얻은 성과다.
소똥구리는 조선시대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에 등장하고, ‘똥, 똥, 똥을 굴려라…’ 같은 동요의 주인공일 만큼 친숙한 존재였다. 가축을 방목하던 시절에는 한반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국내 야생 소똥구리가 마지막으로 공식 관찰된 곳은 1969년 8월 서울 강북구 수유동이다.
소똥구리는 소나 말의 똥을 둥근 경단으로 만들어 굴리면서 먹이로 삼거나, 경단 안에 알을 낳아 번식한다. 그런데 도시는 개발됐고 농촌이 공장형 축사로 바뀌면서 먹을 만한 ‘똥’이 없어졌다. 환경부는 소똥구리를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하고 2017년 소똥구리 복원 사업을 위해 ‘해외에서 소똥구리 50마리를 들여오면 5000만 원을 주겠다’는 공고를 냈다. 이 공고가 ‘소똥구리를 발견하면 상금을 준다’로 와전되며 각종 제보가 쏟아졌지만 모두 ‘토종’ 소똥구리는 아니었다. 왕소똥구리, 긴다리소똥구리 등으로 국내 ‘토종’ 소똥구리와는 다른 종이었다. 올 5월 국립생물자원관은 ‘토종’ 소똥구리를 야생에서 더이상 찾아볼 수 없다는 ‘지역절멸종’으로 분류했다.
● 4년간 고군분투, 내년 봄 1차 관문
결국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2019년 몽골에서 국내 토종 소똥구리와 같은 유전자를 지닌 소똥구리 200마리를 직접 들여왔다. 하지만 당시 검역법상 수입금지품으로 국내서 모두 폐기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2021년 가까스로 수입금지품에서 해제됐고, 이후 유전자증폭(PCR) 검사까지 받은 830마리를 새로 들여와 연구를 진행했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먹이이자 번식에 필수적인 ‘똥’ 확보였다. 제주에서 농약에 노출되지 않은 말똥을 공수해 먹이다 2020년부터 퇴역한 경주마를 기증받아 똥을 확보했다. 이런 보살핌 속에 현재는 1300여 마리로 늘어났다.
이번에 방사한 소똥구리들은 6, 7월 짝짓기철에 태어나 한 달가량 자라난 개체들이다. 야외 적응 훈련까지 마치며 방사를 준비했다. 방사지는 5개 후보지 중 서식지 평가를 거쳐 신두리사구로 최종 결정됐다.
김영중 멸종위기종복원센터 곤충·무척추동물팀장은 “소똥구리가 살기 좋은 모래 토양인 데다 천연보호구역이라 농약 없이 소를 방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똥구리의 방사 성공 여부는 동면이 끝나고 땅속에서 나오는 내년 4월 말쯤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팀장은 “내년 여름 번식에 성공해 개체 수가 1000마리까지 늘어나면 정착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태안=김예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