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은총’
교회에서 ‘사랑’ 만큼이나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은혜’이다. 은혜와 비슷한 말로 가끔 듣는 말이 ‘은총’이다. 은혜와 은총이라는 말은 어감이 서로 비슷해 혼용되고 있지만 사용되는 빈도수나 이 단어가 쓰이는 상황에는 차이가 있다.
한글 개역성경에는 은혜가 287회, 은총이 46회 사용되고 있다. 일상에서도 은혜라는 말을 은총이라는 말보다 훨씬 더 많이 쓰고 있다. 어떨 때는 ‘이 상황에 은혜라는 말이 맞는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너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이에 비해 은총이라는 말은 설교 시간에 듣기는 하지만 성도들 사이에서 많이 쓰이지 않는다.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과 인사할 때도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라고 하지 ‘은총 받았습니다’라고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두 단어가 가진 뜻보다는 신학적인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서 ‘은혜, 은총’에 해당하는 말은 헤세드(chesed) 라하밈(rahamim) 헨(chen)이다. 의미는 ‘고통받는 자에게 베푸는 사랑’ ‘언약적 사랑’ ‘과분한 호의’ 등에 해당한다. 헬라어로는 카리스(charis)이며 ‘선물’ ‘은사’ ‘사람을 끄는 매력 또는 아름다움’이라는 의미가 있다.
은혜와 은총의 사전적인 뜻은 같지만 문맥에서 사용된 의미가 달라서 신학적인 차이가 발생한다. 은혜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관계’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6장 35절의 후반부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은혜를 모르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은혜를 모르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은총은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출 33:16)와 같이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사용된다. 은총과 은혜를 신학적으로 구분한다면 ‘은총’은 이 세상과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뜻과 선물이며, 그것을 깨닫는 것이 인간의 관점에서 ‘은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설교 말씀을 듣고 은혜받았다는 말을 쓸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쓰고 있지만 그 의미와 뜻을 모른다면 죽은 언어와 다름이 없다.
이상윤 목사(영국 버밍엄대 신학박사)
국민일보
'은혜'와 '은총'에 대한 이해
1. 은혜(恩惠, grace, favor)와 은총(恩寵, grace, favor)의 어원(語原)
한글 개역성경에 '은혜'가 276요절에 287회. '은총'이 43요절에 46회 표현되고 있다.
'은혜' 또는 '은총'으로 번역된 말은 구약에서 헤세드(chesed)와 헨(chen), 신약에서는 카리스(charis)dl다.
그런데,
1) 헤세드(chesed)도 은혜(창20:13;출15:23)와 은총(창32:10;삼하10:2)으로,
2) 헨(chen)도 은혜(창6:8;출33:19)와 은총(출33:19;잠22:1)으로,
3) 카리스(charis)도 은혜(계22:21)와 은총(행7:10)으로 번역되고 있다.
즉 '은혜'와 '은총'은 동일 어원이다.
2. 은혜와 은총의 어의(語義)
1) '헤세드'[ds,j(chesed)]
인애, 인자, 인자하심, 은혜, 은총, 후대, 선한 일, 선대, 긍휼, 자비, 불쌍히 여김,
진실한, 사랑, 동정, 한결 같은 사랑, 아름다움, 우의 등의 뜻으로 성경에 번역되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신약성경의 '은혜'에 내용적으로 가장 가까운 말은, '인자'(仁慈)로 번역되어 있는 '헤세드'이다.
이것은 원칙적으로 계약을 지키는 백성에 대하여 주어지는 것이데,
예외로서 죄를 범한 다윗에 대하여(삼하7:15), 불복종한 백성에 대해서도(사54:8) 약속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은 자기 백성을 변함없이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
2) '헨'[@je (chen)]
고마움, 호의, 은고(恩顧)의 뜻으로,
하나님께서 경건한자(시4:3,26:11), 고생하고 있는 자(시6:2,25:16)에게 호의로써 권고하심을 의미하고,
하나님께서 받는 경우(창6:8)와 사람에게서 받는 경우(창39:4)가 있다.
3) '카리스'[cavri"(charis)]
우아함, 감사, 선물, 호의, 친절, 은총, 은혜 등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다.
'카리스'는 주로 예수님을 통해서 믿는 자들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구원의 선물을 가리킬 때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요1:16;롬6:14).
종합하면 '은혜'와 '은총'은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자발적이고 조건 없는 선물
또는 거듭남과 성화(聖化)를 위해 인간에게 작용하는 하나님의 영향력'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3. 은혜와 은총의 구별(區別)
은혜와 은총의 의미를 구별하여야 한다면 다음과 같이 그 의미의 차이를 둘 수 있다.
1) '은혜'(恩惠, grace)
사랑으로 베풀어 주는 신세나 혜택 즉 타인(또는 자연)으로부터 값없이 받는 혜택으로,
'받아들이는 상태'를 의미한다(창6:8;삼상1:18;시5:12;계22:21).
2) '은총'(恩寵, grace)
높은 이에게서 받는 특별한 사랑.
즉 지위가 높은 사람(또는 재물이 넉넉한 사람)이 지위가 낮은 사람(또는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으로,
'주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창32:10;삼상2:26;시40:13;행7:10)
4. '은혜'에 대한 정의(定義)
기독교에서 '은혜'라는 용어로 사용될 때는 죄인을 용서하고 축복하는 하나님의 사랑,
특히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구속적인 사랑을 말한다.
예수께서 '은혜'라는 말을 별로 사용하시지 않았지만 언행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은혜'란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한 사람은 바울이었다.
그가 말한 '은혜'는 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롬5:8)인데,
이 '은혜'를 받는 신앙도 하나님의 '은혜'이다(엡2:8).
기능적으로 말하면 '은혜'는 사죄와 화해와 신생의 '은혜'이며(고후5:17), 성령의 역사이다.
5. 은혜언약(恩惠言約, covenant of the grace)
하나님께서 믿음에 근거하여 은혜로 영생을 주시겠다는 약속(겔31:33,36:28;마26:28).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해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해 죄 사함과 생명 주심을 말한다.
하나님이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주신 약속으로서(갈3:16)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은혜의 결정이시므로(롬5:15-21;사53:10,11),
사람은 예수를 믿는 것으로 의로움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는 것이다(갈2:16;요3;16).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포함한다.
아담이 하나님과 가졌던 관계는 그의 범죄로 깨어졌었고, 은혜언약으로 회복된다(요1:12).
6. 은혜의 방편(方便)
성령께서 피택자들을 중생(重生), 성화(聖化)시켜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가 성취되게 하시는 방편들이다.
동일한 목적을 위해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방편들을 교회와 신자들도 사용한다.
넓은 의미로는 인간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모든 수단을 가리켜 은혜의 방편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의 은혜의 방편은 하나님의 말씀, 성례, 기도 등 성령이 통상으로 사용하시는 방편들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