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6대 사무총장 故 이종욱 박사님
요즘 코로나-19 사태가 혼란스러워지면서 대한민국의 의료인들이나 일반인들이 가장 생각나는 사람일 것이다. 혹은 WHO의 오래된 의료진들 역시 그분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과한 생각일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한국인 최초의 국제기구의 선출직 의장을 역임한 이종욱 사무총장님.
이종욱 사무총장님은 누군가의 배경 덕에 WHO 사무총장을 한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뭔가 정치적으로 뛰어났으니 국제기구의 사무총장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할 것이다.
이제 그 분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생애
이종욱 박사님은 경복고등학교를 졸업 , 한양대 공과대학을 졸업후 다시 서울대 의과대에 입학한다. 이때 나이 26살
이후 미국 하와이 주립대 대학원에서 전염병학 석사과정을 취득한다.
의대 재학 시절부터 경기 안양시 나자로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봉사활동을 하며 이때 부인 레이코 여사와도 만났다.
1976년 대학 졸업후 태평양 피지에서 빈곤 환자에 대한 봉사활동 시작
1983년 WHO 남태평양지역 사무처 나병퇴치 팀장
많은 봉사활동으로 이종욱 사무총장은 "아시아의 슈바이처"라는 별명을 얻었다.
WHO에서 남태평양지역 사무처 질병예방관리국장, 예방백신사업국장, 정보화담당팀장등을 거쳐 결핵관리국장으로 있으면서 2003년 7차까지가는 접전 끝에 마침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6대 WHO 사무 총장자리에 취임한다.
취임 후 행보
예방백신 사업국장 시절 소아마비 유병율을 세계인구 1만명당 1명이하로 떨어트리며 "백신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고,
사무총장 취임당시에는 에이즈 환자 300만명에게 치료제를 보급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다만, 이 공약은 100만명에게만 에이즈 치료제가 전달되고 200만명에게는 전달 되지 못하게 되어 실패라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반인이 보기에는 그 100만명도 치료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실패라고만 할수는 없었다.
이종욱 사무총장님은 공약 실패후 이렇게 답변했다고 한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며, 재정지원도 늘어나지 않는다.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고 좌절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큰 결과를 남기는 법이다.
바로 그것이 중요하다.
이종욱 총장님의 검소함
연 30만Km를 비행하며 150일을 출장다녔지만 비행기는 항상 2등석, 수행원 2명을 데리고 다녔고,
자신의 명의로 된 집은 없었으며, 전용차는 토요타 프리우스 2세대 즉 하이브리드 차였다.
이런 소박한 생활에 대한 대답은
"우리(WHO)가 쓰는 돈은 가난한 나라 분담금도 섞여있다. 그 돈으로 호강할 수 없다."
2004년 조류독감 확산방지, 소아마비와 결핵 예방, 흡연규제 등 탁월한 업적을 인정받고, 타임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성과와 행보는 "행동하는 사람"(Man of Action) 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에이즈 퇴치 사업, 조류 인플루엔자 확산방지 사업등 주로 소외되고 가난한 저개발국 질병을 예방하는데 헌신하던 중, 2006년 사무총장 재직 3년째에 과로로 쓰러져 스위스 제네바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61세의 나이로 영면하셨다.
장례는 WHO장으로 치루어졌다. (대한 민국 정부는 최고등급 국민훈장인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WHO 이종욱 사무총장의 명언
취임사 중
"We must do the right things"
(우리는 옳은일을 해야합니다.)
"We must do them in the right places
and We must do them right ways"
"우리는 올바른 장소에서 해야하며,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합니다"
300만명의 에이즈 환자에게 치료제를 공급하고자 했으나,
100만명의 에이즈 환자에게밖에 치료제를 공급하지 못하였을때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며, 재정지원도 늘어나지 않아.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많지. 시작하지 않는 것 보다 실패는 훨씬 큰 결과를 남기는 법이야.
바로 그 점이 중요하지.
돌아가신 이종욱 사무총장님은 "한국인 최초로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는 큰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본인 스스로는 절대 과욕을 부리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가장 낮은 곳과 가장 험한 곳에서도 앞장서서 참된 의료인으로서 외길을 걸으셨다는 점과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봉사를 했다는 점, 의료인으로서 그 누구보다도 높은 곳에 있었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 의료인의 삶을 살았던 분이십니다.
그 분은 국제 기구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화려한 외교관을 상상하지 마라. 그리고 편협한 인종주의와 속좁은 애국심 같은 것으로는 국제기구에서 견디기 힘들다.
더군다나 열정없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죄악이다."
궁금한 하루깨비님의 세상이야기
아름다운 사람들에서 발췌
첫댓글 https://youtu.be/lvp-WxiwK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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